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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대로 움직이지 않는 도시, 토론토

호수 위에 멈춘 시간, 온타리오

  • Editor. 김예지 기자
  • 입력 2019.09.03 09:31
  • 수정 2019.11.07 15: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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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타리오의 호수와 시간은 정직하게 흘렀다.
젓는 만큼 나아가면 갈수록 깊어졌다.
멈출 수 없어도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깊어질수록 애틋해졌다.

 

캐나다 남동쪽에 위치한 온타리오는 호수의 주(州)다. 미국과도 국경을 접하고 있는 오대호(Great Lakes, 슈피리어호·미시간호·휴런호·이리호·온타리오호)를 비롯해 크고 작은 수많은 호수들을 끼고 있다. 주도인 토론토를 시작으로 휴런호에 맞닿은 조지아만(Georgian Bay)을 따라 돌았다. 

17세기를 재현한 미들랜드의 세인트 마리 어몽 더 휴런
17세기를 재현한 미들랜드의 세인트 마리 어몽 더 휴런

●너에게 가져온 캐나다

고작 기념품 하나로 계산적으로 굴고 말았다. 시럽 1L를 만들려면 40L의 단풍나무 수액이 필요하고, 단풍나무 한 그루가 1년 동안 생산할 수 있는 수액이 4L 정도라면, 열 그루의 단풍나무를 1년간 짜내야만 1L의 메이플 시럽을 얻을 수 있다는 결론이었다. 그중 50ml를 너에게 가져왔노라. “그러니까 이 한 병에 단풍나무 한 그루의 반년이 농축돼 있는 거지.” 그러니까 팬케이크보다는 부디 창의적으로 먹어 달라.


단풍놀이를 다녀온 것도 아니었다만 H(요리보다 여행을 좋아한다)에게 전하고 싶었던 건 정작 이런 기억들이었다. 영어와 프랑스어가 나란히 쓰인 표지판, 걷는 발마다 퐁퐁 샘솟던 자유 같은 것들. 국기에서도 캐나다의 소수는 확실히 존중받고 있었다. 17세기 초 정착한 프랑스인들의 지배를 받던 캐나다는 18세기 프랑스와 영국간의 7년 전쟁으로 영국령이 됐고, 국기에는 한동안 유니언기(Union Flag, 영국 국기)가 그려져 있었다. 독립 후 프랑스계 국민들의 반발 끝에 1964년 당시 총리였던 레스터 피어슨은 전 국민 대상 국기 디자인 공모전을 열었다. 누구에게나 캐나다인 단풍잎기(The Maple Leaf Flag)가 채택됐다.


전 세계 메이플 시럽의 70~80%이 날 정도로 캐나다에는 단풍나무가 많기도 하지만 단순히 그것만은 아닐 거라고. 단풍잎 모양의 시럽 병을 두고 H에게 지난 여행을 막 토해 내던 참이었다. 1년 내내는 아니고 사실 단풍나무 수액 채취는 3~4월에 몰아 한다고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세상 대부분의 공식들처럼, 여행에 대한 기억 또한 ‘평균’에 수렴한다는 걸 몰라 줄 리 만무한 그에게. 행여 깨질까 톡톡한 스웨터에 말아 가져온 공을 알아주길 바랄 뿐더러, 입에 단데 몸에 좋기까지 한 걸 마다할 이유가 우리 사이에는 없었다.

토론토 버지 공원의 평범한 한낮 일상
토론토 버지 공원의 평범한 한낮 일상

●Toronto 토론토

쿰쿰한 망상들의 출처

자전거와 강아지는 토론토가 살기에 꽤 괜찮은 도시라 판단하게 된 두 가지 이유다. 자전거는 자동차와, 강아지는 사람과 다를 바 없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세인트 로렌스 마켓(St. Lawrence Market)으로 가는 길, 맞은편 버지 공원(Berczy Park)에서 목격한 그것은 다름 아닌 강아지 분수다. 강아지 26마리와 고양이 1마리가 분수 위에 있는 단 하나의 뼈다귀를 쳐다보고 있는 애처로운 형상이라니. 물가에서 신이 난 강아지를 곁에 두고 피크닉처럼 점심을 먹는 사람들이 결국엔 결정적이라 해야겠지. 견주도 아니며 자전거도 서툰 내가 토론토에 살아도 좋겠다고 생각한 진짜 이유.


세인트 로렌스 마켓에서 구할 수 있는 음식은 토론토에 사는 사람들만큼이나 다양했다. 로브스터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간 버거며, 세계 각국 스트리트 푸드가, 온갖 신선한 과일과 해산물과 채소들이 현란하게 늘어서 있다. 200년을 넘겼다는 마켓의 역사처럼 끈덕지게 퍼지는 냄새의 출처는 치즈 가게 집중 구역. 쿵파오 치킨과 샐러드 한 박스, 수박 한 컵에 손이 동났다고 그냥 지나치기엔 숙소에 쟁여 놓은 화이트와인이 아무래도 어른댔다. 이 한 덩이 더한다고 뭐 그리 달라질까, 어깨에 멘 에코백에 결국 치즈 세 덩이를 욱여넣었다. 마켓 앞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서야 손은 가벼워지고 배는 채워지는데 이 녀석, 어떻게 알고는. 저녁에 개봉 예정인 브리 치즈가 유난히 쿰쿰하게도 올라왔다. 


함께이고 싶다는 건 그만큼 깊어졌다는 뜻이겠으나 그 깊이가 지난 시간과 꼭 비례하란 법은 없다. 치즈와 화이트 와인, 강아지나 자전거, 어쩌면 이곳에 온 순간부터 비롯된 망상일지 몰랐다.

세인트 로렌스 마켓
주소: 92-95 Front St East, Toronto, Ontario M5E 1C3

부나 더 소울 오브 커피에서는 에티오피아의 방식으로 커피를 내린다
부나 더 소울 오브 커피에서는 에티오피아의 방식으로 커피를 내린다

보이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 도시


누누는 어쩌다 토론토에 왔다고 했다. 여동생의 레스토랑 일을 돕고자 에티오피아에서 날아온 그녀는 크리스를 만났다. 캐나다인 크리스(Chris)와 에티오피아인 누누(Nunu) 부부는 부나 더 소울 오브 커피(Bu’na The Soul of Coffee)에서 커피를 내린다. 머신에 기대지 않고 오직 손으로, 에티오피아 원두를, 제베나(주전자처럼 생긴 에티오피아 전통 커피 팟)와 시니(커피 잔)를 사용해서. “에티오피아에서 커피를 마시는 행위는 축복을 받는 과정과 같아요. 그 문화를 토론토에 전하는 것이 목표죠.” 

걷기만 해도 심심하지 않은 퀸 스트리트
걷기만 해도 심심하지 않은 퀸 스트리트

씁쓸함 끝에 정착한 맛은 고소한 축복일지도. 토론토에 늘 따라붙는 ‘이민자의 도시’라는 수식어는 누누와 크리스를 떠나서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카페가 위치한 퀸 스트리트 웨스트(Queen Street West)는 토론토 다운타운에서도 특히나 하나로 몰기가 어려웠다. 이탈리아, 중국, 아프리카, 지중해 등 보이는 레스토랑 간판만 봐도. 게다가 보이는 대로 기능을 하지 않는다. 토론토에서 가장 유서 깊은 호텔(Gladstone Hotel)에서 묵지 않아도 전시를 보고 기념품 가게(Craft Ontario Shop)는 딱히 살 게 없지만 갤러리처럼 드나드는 식, 한마디로 멀티다. 이 모든 걸 표현한 누군가의 문장이 멋져서 그대로 빌자면 ‘Easy Access to Creative Toronto’. 언제라도 올 수 있을 것 같고 그게 언제든 토론토일 것 같다.

부나 소울 오브 더 커피
주소: 1176 Queen St West, Toronto, Ontario M6J 1J5 

 

▶travel  info 

GALLERY
온타리오 아트갤러리 Art Gallary of Ontario

온타리오주뿐만 아니라 캐나다를 대표하는 미술관 중 하나다. 100개 이상의 갤러리에 4,000여 점이 넘는 작품에는 로컬 작가들의 작품을 비롯해 클로드 모네, 폴 세잔 등 유럽 작가들의 것도 두루 포함돼 있다. 토론토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가 설계한 건물부터가 이미 작품이다.
주소: 317 Dundas St W, Toronto, Ontario M5T 1G4
영업시간: 화·목요일 10:30~17:00, 수·금요일 10:30~21:00, 토·일요일 10:30~17:30(월요일 휴무)

SPOT
김씨네 편의점 Kim’s Convenience

캐나다 드라마 <김씨네 편의점>에 나오는 ‘김씨네 편의점’이 정말로 토론토에 있다. 실제 운영 중인 가게로, 한국인 주인장이 반갑게 사진을 찍어 주기도 하고 드라마 로고가 박힌 에코백도 판매한다. 비록 김씨 아저씨는 없지만 ‘오케이, 씨유’.
주소: 252 Queen St E, Toronto, Ontario M5A 1S3 
영업시간: 매일 08:30~22:30

 

글·사진 김예지 기자
취재협조 캐나다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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