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세상에서 가장 넓은 집 주인, 토종감자와 수입오이

  • Editor. 강화송 기자
  • 입력 2019.10.01 10: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끔은 캠핑카가 우리 집이 되기도
가끔은 캠핑카가 우리 집이 되기도

8년차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가는 부부에게 여행과 삶을 물었다.

 

“저는 집이 없어요.” 본인을 토종감자라 부르던 그녀를 처음 만난 곳은 사이판 티니안. 유독 비가 많이 내리던 그날 밤, 그녀의 긴 이야기에 매료되었던 이유는 여행 때문이다. 삶이 여행이고 여행이 삶인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넓은 집에 살고 있었다. 세상이라는 집에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며 살아가는 디지털 노마드, 심상은 작가를 만났다. 
인스타그램 BreathingOnTheMoon

제주도 말 목장에서 보낸 3개월
제주도 말 목장에서 보낸 3개월
여행자, 오이군
여행자, 오이군

 

토종감자 수입오이라는 닉네임에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정말 유치하게 시작된 별명이에요. 남편이 스위스 사람인데, 서양인들은 보통 두상이 동양인보다 길쭉하거든요. 저는 서양인에 비해 얼굴이 동그란 편이에요. 그래서 서로의 얼굴형을 여러 사물(?)에 빗대어 별명으로 사용하다가 감자와 오이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국 사람이니 (한국) 토종감자, 남편은 (스위스) 수입오이, 하하.


어쩌다가 수입오이(?)님을 만나게 되었나요?

직장생활을 하다가 인생에 회의를 느끼고 호주로 어학연수를 갔었어요. 그때 오이군(남편)을 만났죠. 학교 옆 반 친구로요. 정식 연인으로 발전한 건 제가 스위스로 프랑스어 어학연수를 갔을 때에요. 연수가 목적이었는데 일도 하고, 연애도 하다가 결국은 스위스 댁이 돼서 6년이라는 시간을 스위스에서 보내게 되었어요.


그럼 스위스를 정말 잘 아시겠어요?

스위스는 저녁 6시만 되면 상점 문을 다 닫아요. 대부분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문화죠. 그렇다 보니 저는 학교나 일을 마치면 할 일이 별로 없더라고요. 심심하고, 지루하니 틈만 나면 스위스 전국을 걸어 다녔죠. 그 결과 얼마 전에 출간된 <스위스 100배 즐기기>가이드북을 출간하게 되었어요. 


이렇게 갑자기 홍보를? 10초 드리겠습니다.

스위스 친구들도 스위스 여행을 계획할 때 저에게 물어본답니다. 스위스 여행을 계획하신다면, <스위스 100배 즐기기>를 확인해 주세요. 이렇게 하는 거 맞나요?(웃음)

디지털 노마드의 작업실
디지털 노마드의 작업실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선택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저는 어린 시절부터 인생의 유일한 목표를 꼽으라면 세계여행이었어요. 원래도 여행을 남들보다 많이 하는 편이었지만, 계속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 자체가 성에 안 차더라고요. 여행 경비도 사실 비행기가 제일 많이 들잖아요. 그냥 계속 옆 나라로 이동하면 더 싸게, 더 많은 곳을 볼 수 있으니 ‘시원하게 몇 년 동안 여행만 하자!’ 했던 거죠. 사실 남편은 불확실하면 선뜻 발을 떼지 않는 신중한 성격이에요. 장기 배낭여행을 끝냈을 때 ‘일자리를 다시 못 잡지 않을까?’ 하고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서로의 성향 안에서 절충안을 찾았죠. 일도 하면서 여행도 할 수 있는 방법을 말이에요. 


디지털 노마드는 많은 이들이 꿈꾸죠. 하지만 여행만으로는 삶을 유지할 수 없으니까, 현실적으로 정말 많은 어려움이 있을 거 같아요. 어떤 방식으로 여행을 유지하고 있으신가요?

오이군은 평범한 회사원이었는데, 학교 동창들과 함께 만든 작은 웹 개발 회사로 직장을 옮기며 비교적 자유로워졌어요. 회사 방침이 상당히 특이해요. 일주일에 40시간만 채우면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재택근무를 해도 되고, 주중에 쉬고 주말에 일해도 되는 거죠. 덕분에 동료들 모두 대부분 해외에 거주하며 일을 한답니다. 대신 매일 화상채팅으로 미팅을 하고, 웹서버 관리를 해야 하니 인터넷 환경이 좋은 곳이어야 한다는 제약이 있지요. 월급은 결혼 여부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생활에 필요한 비용만   지급하는 수준이에요. 스위스 평균치의 절반 정도에 미치는 수준이에요.

토종감자는, 그러니까 저는(웃음) 잡지, 웹진, 관광청 등에 여행 기사를 제공하고 있어요. 물론 책도 쓰고 있죠. 여행지 사진을 촬영하거나, 스톡 업체에 사진을 판매하기도 해요. 간혹 일정이 겹치는 분들에 한해 여행 스냅 촬영도 하고 있어요. 그러고 보니 전부 우연히 시작하게 된 일들이네요. 2010년부터 시작한 여행 블로그를 봐주시는 분들이 점점 늘며 다양한 업체와 협업을 하게 되었어요. 뭐든 좋아서, 꾸준히 미쳐 몰입하다 보면 길이 열린다고 하잖아요. 저는 그 말을 늘 실감하며 살고 있어요.


막 ‘디지털 노마드!’라는 단어만 떠올리면 선베드에 누워서 일할 것만 같은 느낌인데, 주로 어떤 장소에서 일을 하나요?

저도 그런 동경을 쫓아서 올해 태평양 아일랜드 호핑투어라는 콘셉트로 일정을 전부 태평양 섬나라로 계획했어요. 뉴칼레도니아, 바누아투, 피지, 사모아, 타히티, 이스터섬 등에서 각 한 달씩 보내는 거였죠. 근데 지금은 미국에 피신(?)해 있습니다. 그런 곳에서 집중해서 일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더라고요. 선베드에 누워 노트북을 무릎에 얹으면 불편해서 30분도 못 버팁니다. 해변가 테이블은 햇살 때문에 화면이 잘 보이지도 않죠. 덥고, 습하고, 모기, 파리가 괴롭히고 대부분은 전기 코드도 없어 선을 끌어와야 해요. 인터넷도 오락가락하고 매우 번거롭답니다(웃음). 그렇다고 매일 카페에 앉아있으려면 전부 다 비용이 들잖아요. 보통, 작업하는 곳은 머무르는 렌탈 하우스 주방 식탁이에요. 그래서 집을 고를 때 되도록 창밖의 풍경이 좋은 곳을 고른답니다. 

디지털 노마드의 작업실
디지털 노마드의 작업실

아하, 집이 상당히 중요하겠네요. 여행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이 바로 비용이잖아요. 보통 한 달에 어느 정도를 지출하나요? 또 어떤 방식으로 집을 구하면 좋을까요?

확실하게 짚고 넘어갈 것은 저희는 배낭여행자가 아니에요.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15년이 넘는 맞벌이 부부예요. 비용은 배낭여행자보다 훨씬 많이 들죠. 여행비용이 곧 생활비용이기 때문이에요. 물론 한국에서 생활하며 해외여행 비용을 따로 마련할 때보다는 적게 들어요. 집은 보통 에어비앤비를 이용해 한 달씩 렌트해요. 저희는 보통 주 5일에서 하루 8시간씩 꼬박 일을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안정된 환경이 필수거든요. 그래서 원룸형 또는 거실 겸 주방이 있는 집 전체를 렌트해서 지냅니다. 살림살이를 다 가지고 다닐 수는 없으니 모든 살림이 포함되어 있는 곳 위주로 선택합니다. 나라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월세로 100~180만원 정도가 듭니다. 현지에서 발품을 팔면 더 싸게 구할 순 있지만, 구하는 동안에도 머물 곳이 필요하니 에어비앤비 후기를 열심히 정독하는 수준에서 타협해요. 그 외에 비행기, 관광비, 식비가 한 달에 150~250만원 정도 들어요. 밥은 90% 집에서 해결해요. 정리해 보면 둘이 해외에서 사는 데 한 달 평균 350만원 정도 드는 것 같아요. 동남아처럼 물가가 저렴한 나라에서는 훨씬 적게 쓰는데, 호주나 뉴칼레도니아처럼 물가가 비싼 나라에서 결국 더 쓰기 때문에 평균은 딱 저 정도인 것 같아요. 

 

디지털 노마드 생활을 하며, 어느 때가 가장 행복한가요?

일 끝나고 집 근처에서 남편과 산책할 때가 가장 행복해요. 이렇게 들으면 한국에서 직장생활 하는 맞벌이 부부의 답변 같잖아요? 상상해 보세요. 일 끝나고 집 앞에 나왔는데 코발트빛 열대 바다가 펼쳐지기도 하고, 캥거루가 뛰어다니기도 하고,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불빛이 번쩍이기도 해요. 사실 늘 여행 중이며 늘 일하는 중이죠. 그래서 돌아다닐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대신 거주지가 계속 여행지이니 자투리 시간에 집 근처를 돌아다니는 것이 여행인 셈이죠. 가장 슬플 때는 성수기에요. 집값이 평소 두 배로 뛰거든요. 

창밖으로 숲이 펼쳐지던 뉴질랜드의 우리 집
창밖으로 숲이 펼쳐지던 뉴질랜드의 우리 집

생뚱맞은 질문인데,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감자와 오이가 특별하게 맛있었던 나라는?

원래 인터뷰가 이렇게 흘러가는 건가요(웃음)? 뉴질랜드 감자가 진짜 맛있었던 기억이네요. 오이는 거의 비슷비슷했던 것 같아요.


토종감자와 수입오이가 꼽는 최고의 여행지는?

세이셸과 바누아투가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세이셸은 인도양의 섬나라고 바누아투는 태평양의 섬나라에요. 

세이셸은 어딜 가도 생크림같이 하얀 모래사장이 있어요. 사람도 많이 없다 보니 눈부시게 하얗고 예쁜 해변을 늘 혼자 독차지했었죠. 라디그섬에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으로 꼽히는 ‘앙스 수스 다정’이라는 곳이 있어요. 기암괴석의 모양이 정말 특이하고 멋지답니다.

바누아투는 정말 신세계였어요. 아직 신문물이 자리 잡지 않아 야성미가 넘쳐요. 바누아투는 마지막 식인이 1696년까지 이어졌다고 해요. 인터넷이 들어온 것이 불과 몇 년 전이라고 하더라고요.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활화산도 있어요. 어딜 가나 영화 <인디아나 존스>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어요. 


두 사람의 여행방식은 비슷한 편인가요?

다행히도 비슷해요. 스노클링, 스쿠버다이빙, 자전거, 하이킹 같은 것들을 좋아해요. 오이군은 아무것도 안 하고 데굴거리는 것도 좋아해요. 저는 그때를 노리고 열심히 사진을 찍으러 다니죠. 일정은 대부분 오이군의 취향을 고려해 제가 짜는 편이에요. 오이군은 가끔 여행 전날 ‘근데 우리 내일 어디로 간다고?’ 하고 묻는 경우도 있어요. 아마 오이군에게 일정 계획을 맡겼으면 벌써 여행이 끝났을 걸요(웃음)?

이스터 아일랜드의 점심 휴식시간
이스터 아일랜드의 점심 휴식시간

현직(?) 디지털 노마드로서, 디지털 노마드를 꿈꾸는 이들에게 해 줄 이야기가 있다면?

디지털 노마드는 재벌 백수가 아니에요. 여행 스타일에 따라 다르겠지만 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돈을 벌면서 여행해야 해요. 흔히 ‘한 달 살기’와 혼동하는데 정말 다른 개념이에요. 일도 하고, 여행도 하려면 참 부지런해야 하죠. 여행하는 삶을 살고 싶다면 직업은 꼭 컴퓨터로 일해야 하는 ‘디지털’ 노마드가 아니어도 상관없어요. 제가 여행하며 만난 노마드들은 스쿠버 다이빙 강사도 있었고, 영어 강사, 베이비 시터 등 정말 다양했어요. 직업에 의미를 두지 말고, 여행 경비 마련을 목적으로 그때마다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며 여행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노마드라고 꼭 죽을 때까지 여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인생의 한 부분을 색다르게 만들어 본다는 생각으로 일단 3달 정도를 잡아 보세요. 대부분 국가에서 무비자 입국을 허락하는 기간이기도 하죠. 조금 여유로워야 마음도 편하고, ‘이 나라에서 살아봤구나!’ 정도의 느낌이 들더라고요. 마지막으로 해외 생활이 마냥 천국은 절대 아니에요. 열대지방은 천국이지만 벌레들에게도 천국이고, 외국인이라 차별받을 때도 있고, 한국에 거주하는 이들 곁에 있어 주지 못한다는 단점도 있어요.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지만, 너무 즐거운 기대만 잔뜩 가지고 시작하면 분명 실망하는 부분도 생기기 마련이에요. 다양한 변수를 덤덤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해요.


디지털 노마드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3가지를 추천한다면?

꾸준한 운동, 큰 벌레에 익숙해지기. 빠른 포기와 생산적인 해결책 찾기. 별표 칠 곳은 큰 벌레에 담담해지기. 제가 열대지방에서 벌레 때문에 정말 고생하거든요. 아직 해결하지 못한 저의 숙제죠.

 

아 참, 지금은 어디쯤인가요? 그리고 다음은 어디서 지낼 예정인가요?

태평양 섬들을 여러 개 돌고, 빠른 인터넷과 도시의 편리함이 그리워 미국으로 건너왔어요. 로스앤젤레스와 라스베이거스에서 각 한 달씩 보내고, 그랜드 서클을 돌며 늦은 여름휴가를 보낼 예정이에요. 이후에는 마이애미로 건너가 바하마, 갈라파고스를 여행할 예정이에요. 그 뒤에는 가족 행사가 있어서 스위스로 들어가야 해요.


만약 부부의 긴 여행이 끝난다면, 최종 목적지는 어디일까요?

달을 가 보고 싶어요. 달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저의 꿈이거든요. 제 외국 이름도 ‘루나(Luna)’에요. 여행을 길게 하다 보니 목표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목표를 이뤄야만 행복한 줄 알았거든요. 목표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하다 보니 미래를 놓치는 경우가 생기더라고요.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미래의 목표보다는 현재에 충실하기로 했어요. 저희는 언제든 이런 삶이 힘에 부치거나 흥미롭지 않으면 멈출 계획이에요. 여행도 인생도 정확하게 정해진 최종 목적지는 없는 셈이죠. <트래비> 독자 여러분께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어느 음식점 벽에 붙어 있던 문구예요. ‘행복은 인생의 종착역이 아니다. 인생의 여정이다.’ 먼 미래를 위해 오늘의 행복을 희생하지 마세요. 소소한 행복은 우리 곁에 항상 있답니다. 

 

글 강화송 기자  사진제공 심상은 

저작권자 © 트래비 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최신기사
트래비 레터 요즘 여행을 알아서 쏙쏙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