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로드리고의 여행의 순간] 장소와 시간보다도 중요한 것

  • Editor. 박 로드리고 세희
  • 입력 2019.11.01 09:40
  • 수정 2019.11.07 09: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스페인 바르셀로나

기댈 것 없는 밋밋한 풍경만이
눈앞에 놓여 있다 해도 절망하기엔 이르다.

 

사진은 선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수평선과 수직선을 어떻게 배치하고 배열하느냐에 따라 사진의 운율과 운동감이 달라진다. 풍경을 촬영할 때, 선을 다루는 가장 탁월한 방법이자 고전적인 방법은 ‘3분할법’이다. 3분할법은 르네상스 시대의 과학자 겸 종합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자연의 피조물에 깃든 아름다움에서 발견한 황금비율을 사진에 적용시킨 것으로, 화면의 가로와 세로를 3등분한 선이나 교차점에 주요한 피사체를 배치하는 구도법이다. 3분할법을 잘 지키면 구도가 안정적이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데, 그래서 반대로 동감(Dynamic)과 긴장감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3분할법을 어기기도 한다. 그렇다고 항상 3분할법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구도에 대한 감각이 몸에 익으면 얼마든지 안정감과 몰입감의 정도를 조절해 본인만의 구도를 만들 수 있게 된다. 


풍경 사진을 찍을 때 구도 이전에 필요한 것은 ‘밴티지 포인트(Vantage Point)’다. 풍경을 담기 위한 가장 탁월한 장소, 밴티지 포인트는 한 번의 방문으로 단박에 찾아내기 어렵다. 같은 장소를 여러 번 방문해 몇 번의 실패를 거치며 그곳을 온전하게 이해하게 될 때쯤 최적의 포인트는 비밀스럽게 드러난다. 밴티지 포인트와 관련한 일화가 있다. 영국의 풍경 사진가 마이클 케나(Michael Kenna)가 강원도 삼척의 어느 모래톱 위의 소나무 군락을 촬영한 적이 있다. 한 폭의 수묵화와 같은 흑백사진 ‘솔섬’은 그 몽환적인 아름다움으로 회자되며 이후 많은 사람들이 케나가 촬영한 장소로 가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급기야 몇 년 전 국내 한 항공사가 케나의 솔섬이 연상될 수밖에 없는 비슷한 사진을 광고에 사용했고, 케나는 이에 소송을 제기했다. 자연은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고 특정한 촬영 스폿을 독점할 수도 없지만 그 풍경을 담는 가장 탁월한 장소를 누구보다 앞서 찾아낸 저작권을 요구한 것이다. 


법원은 끝내 항공사의 손을 들어 주긴 했으나, 어쨌든 풍경 사진에는 소송을 걸 만큼의 만만치 않은 품이 들어간다. 밴티지 포인트를 찾은 후에도 알맞은 계절에 다시 찾아오거나, 하루 중 가장 빛이 좋은 시간대를 기다려야 하는 수고로움이 따른다. 하지만 잠시 머무는 여행자가 밴티지 포인트를 찾기란 아주 어렵고 촬영에 좋은 시간대를 무한정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만, 언덕 혹은 계단 어딘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며 적절한 때를 기다려 볼 수 있다. 대부분의 밴티지 포인트는 풍경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높은 곳에 있지만 대단히 높지 않아도 좋다. 육교만 올라가도, 3층 정도의 건물에만 올라도 세상의 풍경은 꽤 많이 달라진다. 또 해가 기울었을 때 좋은 풍경 사진을 얻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동선을 계획할 때부터 낮에는 실내 위주로, 늦은 오후엔 풍경이 있는 야외 위주로 할애하는 것도 방법이다.

시리아 다마스쿠스
시리아 다마스쿠스

이마저도 기댈 것이 없는 밋밋한 풍경만이 눈앞에 놓여 있다 해도 절망하기엔 이르다. 창의적인 구도를 찾아 카메라를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면 여태 보지 못한 장면이 보이기도 하고, 카메라를 기울여 일부러 수평이 맞지 않게 해 사진에 작은 재미를 줄 수도 있다. 낯선 해외라면, 꼭 밴티지 포인트나 최적의 시간대가 아니어도 풍경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신선하다. 바람을 맞고 공기를 흠뻑 들이키며 주변을 천천히 거닐어 보자. 여행지에서 만난 풍경은 어디까지나 사진보다는 감상이 먼저여야 하기 때문이다. 사진에는 마음이 묻어난다. 여행자가 눈앞에 펼쳐진 풍경 하나하나를 사랑할 때 진정한 여행 사진을 얻을 수 있다. 나만이 기억하는 냄새, 시간, 기억들이 한 장의 사진에 오롯이 담긴다. 

에스토니아 탈린
에스토니아 탈린

 

*박 로드리고 세희는 영화와 드라마, 다큐멘터리를 넘나드는 촬영감독이다. 틈틈이 여행을 하며 사진을 찍는다. <트래비>를 통해 여행사진을 찍는 기술보다는, 여행의 순간을 포착하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글ㆍ사진 박 로드리고 세희

저작권자 © 트래비 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최신기사
트래비 레터 요즘 여행을 알아서 쏙쏙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