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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에서 느긋하거나 짜릿하거나

  • Editor. 손고은 기자
  • 입력 2019.11.21 1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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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문경에서의 시간은 한 박자 느려졌다가
또 빨라졌다. 문경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터널 어느 즈음인 것 같았다. 

문경새재는 영남지역에서 한양으로 가는 고갯길 중 가장 빠른 길이었다
문경새재는 영남지역에서 한양으로 가는 고갯길 중 가장 빠른 길이었다

●흙길 따라 당신과는 천천히


첫 번째 목적지는 ‘길’이었다. 조선시대, 영남지역과 한양을 잇는 중요한 관문이었던 문경새재. 높고 험한 고개였지만 한양으로 향하는 가장 빠른 길이자 선비들이 과거길에 오를 때 고집할 만큼 의미가 깊었던 길이다. 문경새재는 1981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됐고, 지금은 걷기 좋은 길 위로 수많은 인파가 모인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걷기 여행에 나선 이들을 따라 부지런히 걸어보기로 한다. 비포장 고갯길 위로 은은한 흙냄새가 좋다. 나무도 새도, 개울도 있다. 단풍이 아름답기로 소문났다지만 사계절이 모두 예쁜 모습일 것만 같다.

선비들이 과거를 치르기 위해 한양으로 올라갈 때 꼭 문경새재 고갯길을 이용해 문경새재 과거길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선비들이 과거를 치르기 위해 한양으로 올라갈 때 꼭 문경새재 고갯길을 이용해 문경새재 과거길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조선시대 마을을 재현해 놓은 오픈 세트장. 어느 기와집 앞마당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열렸다
조선시대 마을을 재현해 놓은 오픈 세트장. 어느 기와집 앞마당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열렸다

6.5km의 길은 많은 것들을 품고 있다. 옛길박물관부터 생태문화갤러리, 오픈 세트장 등이 볼거리를 더한다. 특히 지난 2000년, 사극을 촬영하기 위해 만들어진 오픈 세트장이 <태조왕건>, <광개토대왕>, <광해> 등 각종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 얼굴을 알리면서 사람들의 발걸음은 더욱 많아졌단다.

제1관문 지나야 만날 수 있는 세트장에는 초가집이며 기와집, 왕궁 등 마을이 형성돼 있는데, 규모도 어마어마하거니와 어느 기와집 앞마당 감나무까지 꽤 현실적으로 재현됐다. 과거로 툭 돌아간 듯한 마을을 몇 발자국 걷다보면 괜히 이런저런 전생을 상상하게 될지어다. 

문경새재 제1관문 주흘관 옆으로는 천이 흐른다
문경새재 제1관문 주흘관 옆으로는 천이 흐른다

수더분한 흙길만큼, 문경에서 만들어진 도자기도 꾸밈없이 소박하다. 투박해 보이지만 순수한 멋이 있다. 문경에서는 화려한 작품보다는 서민들이 일상생활에 필요한 생활자기가 주로 생산됐다. 이곳에서는 대접과 접시, 찻사발, 종지 등이 ‘주류’다. 문경 도자기는 11~12세기 동로 청자가마터가 발견된 것을 시작으로 수많은 도요지가 발굴됐다. 도자기 제작에 필요한 흙과 땔감 그리고 물이 풍부한 곳에서는 도자기가 발달하기 마련인데, 문경은 한양으로 향하는 길목, 교통의 요충지라는 지리적 조건까지 갖췄던 것. 문경에서 도자기 부문 무형문화재로 등재된 명인이 여럿인 이유다. 특히 넉넉한 크기의 찻사발이 많이 제작됐다. 문경 도자기 박물관에 전시된 찻사발을 둘러보다 생각한다. 제대로 된 하나의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땀이 필요했을까. 전혀 서두를 것이 없어 보인다.

무형문화재이자 문경 도예 명인인 도천 천한봉 선생의 작품이 전시된 도천 도자기미술관
무형문화재이자 문경 도예 명인인 도천 천한봉 선생의 작품이 전시된 도천 도자기미술관
문경 도자기 박물관. 문경에서 활동한 도예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문경 도자기 박물관. 문경에서 활동한 도예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문경새재 도립공원
주소: 경북 문경시 문경읍 새재로 932
운영시간: 매일 상시개방
전화: 054-571-0709

문경 도자기박물관
주소: 경북 문경시 문경읍 문경대로 2416
운영시간: 화-일요일 09:00-18:00
전화: 054-550-6416

 
●이토록 아찔한 유혹


탕- 탕- 탕. 한적한 숲속, 적막을 깬 건 다름 아닌 총성이다. 총기 규제가 엄격한 땅인지라 익숙지 않은 소리에 다소 어깨가 움츠러든다. 문경시가 운영하는 문경관광사격장 앞. 이곳에서는 흙으로 만든 주황색 접시를 쏘아 맞추는 클레이 사격은 물론 권총 사격과 공기소총 사격을 체험할 수 있다.

석탄을 실어 나르던 철로 위로 자전거가 다닌다. 문경 레일바이크는 진남역, 가은역, 구랑리역에서 만나볼 수 있다
석탄을 실어 나르던 철로 위로 자전거가 다닌다. 문경 레일바이크는 진남역, 가은역, 구랑리역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일단 마음을 먹었으니 여기선 클레이 사격에 도전하기로 한다. 전국에 클레이 사격을 경험할 수 있는 장소가 열 군 데가 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디서든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액티비티가 아니라는 이야기. 총은 3.8kg으로 꽤 무겁고 반동도 크다. 하지만 총성으로 인한 귀를 보호하기 위한 귀마개와 반동으로 인한 충격 완화를 위한 어깨 보호대를 착용하고 전문가의 설명에 따르니 어렵지 않다. 공중으로 떠오른 접시가 산산조각 깨져 흩어지는 순간, 스트레스는 단번에 날아가는 기분이다. 처음 쏘는 총인데 명중이라니, 어쩌면 전생에 잘 나가는 무사였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어깨가 으쓱하다. 하지만 클레이 사격에 사용되는 총알이 산탄이라는 이야기는 사격이 끝난 후에야 들을 수 있었다.

문경시가 운영하는 문경관광사격장. 국내에서는 몇 안 되는 클레이사격장이기도 하다
문경시가 운영하는 문경관광사격장. 국내에서는 몇 안 되는 클레이사격장이기도 하다

지척에는 짚라인과 레일바이크도 있다. 짚라인은 높은 지대에서 낮은 지대로 줄을 타고 내려오는 아찔한 레포츠로 문경 짚라인에서는 총 1.3km의 9개 코스를 운영한다. 국내 짚라인 중 최장 코스다. 그러니 9개를 모두 타려면 최소 1시간은 염두하고 시작해야 한다고. 코스마다 속력과 길이, 타는 방법, 풍경 등이 달라 각각의 매력을 찾아보는 것도 묘미다. 문경 레일바이크에도 ‘국내 최초’라는 최상급 수식어가 붙는다. 과거 석탄을 실어 나르던 폐쇄된 옛 철로를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자전거 길로 다시 태어나게 만든 것. 진남역과 가은역 그리고 구랑리역으로 가면 삼삼오오 철로 위로 자전거를 타고 씽씽 달리는 이들을 볼 수 있다. 역시 영강을 끼고 있는 기찻길 풍경은 혼자 보기 아까운 게다.

문경새재 옛길이며 도자기 장인들의 이야기에서 눈을 돌리니 문경의 또 다른 매력이 펼쳐졌다. 문경은 이렇게 활기차고, 짜릿하다.

 

●구미 당기는 빨간맛


문경에서 자꾸만 마주치게 되는 음식 세 가지가 있다. 약돌 먹고 자란 한우와 돼지고기, 사과 그리고 오미자다.
약돌은 문경에서만 생산되는 특수 광물질인 ‘거정석’으로 인체의 재생 능력을 돕는 미네랄 성분이 함유돼 있다. 소와 돼지에게 거정석을 섞은 배합사료를 먹여 사육하는데 육즙이 풍부하고 고기 누린내가 없다. 게다가 불포화지방산과 필수아미노산을 다량 함유하고 있으니 어찌 사랑받지 않으리. 문경새재 도립공원 입구 앞으로 약돌한우와 약돌돼지를 다루는 식당가가 형성돼 있다. 간단한 식사메뉴도 육회비빔밥이나 고추장약돌삼겹살, 쌈밥정식, 불고기 등 워낙 다양해 고르는 재미가 심각하다.

미네랄 성분이 풍부한 약돌을 먹고 자란 한우와 돼지고기가 문경 특산물이다
미네랄 성분이 풍부한 약돌을 먹고 자란 한우와 돼지고기가 문경 특산물이다

문경의 또 다른 맛은 ‘빨간 맛’이다. 단풍처럼 빨갛게 물든 감홍 사과와 오미지가 문경을 대표한다. 오미자는 단만, 신맛, 쓴맛, 매운맛, 짠맛까지 다섯 가지 맛이 난다하여 붙은 이름으로, 전국에서 생산되는 오미자의 약 40%는 문경에서 나온다. 높은 일조량과 큰 일교차 등 문경이 오미자를 재배하기 알맞은 기후를 가졌기 때문이다. 주로 한약재로도 쓰이지만 설탕에 절여 채에 거른 원액으로 차를 만들어 마시거나 즙을 내 건강음료로도 즐기기도 한다. 특히 문경 오미자 테마터널에 가면 오미자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한 테마로 들을 수 있다. 오미자로 만든 와인부터 과자, 청, 빵 등 매력적인 음식도 가득하다.

문경 오미자 테마터널에는 오미자에 대한 효능과 식용법 등에 대한 설명과 함께 다양한 벽화와 조형물로 꾸며져 재미를 더한다
문경 오미자 테마터널에는 오미자에 대한 효능과 식용법 등에 대한 설명과 함께 다양한 벽화와 조형물로 꾸며져 재미를 더한다

국내 사과 중에서도 가장 높은 당도를 자랑하는 귀한 품종으로 대접받는 감홍이 문경에는 지천으로 널려 있다. 문경을 찾은 11월 초, 사과 수확을 끝낸 과수원들이 길가로 나와 감홍과 부사를 쌓아놓고 판매한다. 그냥 돌아가면 유죄일 것 같아 종일 사과며 오미자청, 주전부리를 하나둘 담았더니 양손이 깨나 무거워졌다.


글·사진 손고은 기자 koeun@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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