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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야쿠츠크 -이상하고 추운, 그들의 낙원

  • Editor. 함희선
  • 입력 2020.02.0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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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40도의 출근길, 사람들의 발걸음이 바쁘다
영하 40도의 출근길, 사람들의 발걸음이 바쁘다

존재조차 몰랐던 도시에서의 일주일. 처절하게 시렸던 그 겨울을 천천히 곱씹어 보고 있다. 
안개처럼 자욱한 눈보라 속에서 웅크리며 보낸 날을 왜 그리워하게 된 걸까. 

오페라 극장 앞 버스 정류장
오페라 극장 앞 버스 정류장

●세계에서 가장 추운 도시 

오후 2시. 러시아 동부 사하공화국(Republic of Sakha)의 야쿠츠크(Yakutsk)시. 현재 기온 영하 35도. 나갈 채비를 하며 날씨 앱을 켠다. 어차피 춥거나 혹은 더 춥거나 그뿐인데, 외출 전 숫자 확인이 하나의 의식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강박증 환자처럼 내복부터 울양말까지 하나하나 체크한다. 그래야 문밖을 나설 용기가 비로소 생기니까. 삼중으로 된 호텔 유리문을 밀고 나갈 때도 마찬가지. 특히, 심혈을 기울이는 건 호흡이다. 자칫해서 들숨과 날숨의 리듬이 깨지면 매서운 공기가 목구멍으로 잘못 넘어가 기침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콧속이 얼어붙는 건 막을 수가 없는데, 코딱지처럼 거슬려도 그럭저럭 참을 만하다. 도대체 무슨 호들갑이냐고 하겠지만, 여기는 ‘세계에서 가장 추운 도시’라는 타이틀을 꿰찬 러시아 야쿠츠크다. 겨울이 장장 8개월이나 지속되고, 가장 춥다는 12월 중순부터 2월 초까지 평균 기온이 영하 50도에 이르는 곳. 앞자리가 6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기가 막힌 건 곰이랑 늑대들이 사는 문명과 동떨어진 야생이 아니라, 사람 사는 ‘도시’란 사실이다. 높은 건물이 들어서 있고, 도로 위에 시내버스가 달리는, 30만 명 이상이 집이라 부르고 있는 도시.

겨울이 야쿠츠크를 꽁꽁 얼려 버렸다
겨울이 야쿠츠크를 꽁꽁 얼려 버렸다

“여행자들이요? 아무래도 극한을 시험해 보고 싶은 특이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현지인은 나 같은 이방인을 이렇게 판단한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세계에서 가장 추운’, 그 간단한 수사 하나만을 쫓아오는 괴짜들. 나쁜 의미는 전혀 아니다. 이 도시를 방문하는 외국인 중 대부분이 야쿠츠크가 ‘얼마나 추운지 궁금해서’ 영상 20도를 웃도는 선선한 여름이 아닌, 살 떨리는 겨울에 방문하고 있으니. 그러니까, 이전까지 여행의 개념이 ‘날씨 따위가 무슨 상관이야’의 마인드였다면, 여기에서는 날씨가 여행의 전부가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다.

매머드 벽화 덕분에 주택가 분위기가 활기차다
매머드 벽화 덕분에 주택가 분위기가 활기차다

야쿠츠크에 머무는 동안 ‘추워서 죽겠다’는 말을 차마 농담으로도 내뱉을 수 없었다. 혹시라도 진짜 죽을까 봐서. 그러나 야쿠츠크 사람 중 열에 아홉은 “당신도 춥나요?”라는 말에 피식 웃어 보였다. “물론 춥지만, 이 정도면 아주 추운 건 아니죠.” 이들에게 영하 30도쯤은 상쾌한 수준. 공식적으로 영하 55도나 돼야 휴교령이 떨어지고, 거리가 한산해진다는 것이다. 단, 대학생과 직장인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라며 투덜대기도 했다. 실제로 도심의 레닌 광장에 놓여 있는 미끄럼틀 2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노는 아이들로 북적거렸다. 충격이었다. 강력한 추위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진화한 걸까? 매일같이 영하 40도를 맴돌았던 지난해 11월 말. 야쿠츠크에 겨우 일주일간 점 찍고 가는 방문자인 주제에 나는 이들의 삶을 진심으로 걱정했다. 이토록 혹독한 환경에서 누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인가. “여러분들, 그냥 다른 곳으로 이사 가면 안 되나요?” 이 무례한 질문이 입술에서 꿈틀거렸지만, 우선 추위 불평은 묻어 두고 이들의 일상을 경험하며 하루하루를 지내 보기로 했다.

메마른 눈송이에 뒤덮인 도시
메마른 눈송이에 뒤덮인 도시

●여행자의 눈에 비친 이상한 광경 


안개처럼 비처럼, 먼지 같은 눈보라가 멈추지 않는다. 극심한 대륙성 기후. 바싹 마른 눈송이가 마치 밀가루처럼 공중에 흩날리고, 자동차 뒤꽁무니에서 피어오르는 배기가스가 도로를 덮쳐 시야가 뿌옇다. 오전 9시를 넘기고도 어둑어둑하기만 한 아침. 늑대인지 사슴인지 아니면 여우인지, 어마어마한 털로 덥수룩한 코트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잰걸음으로 바쁘게 움직인다. 그리곤 흐릿한 풍경 속으로 서서히 사라져 간다. 하나같이 무표정한 얼굴로, 오로지 목적지만을 향해 뚜벅뚜벅. 거리는 기이하리만큼 고요하다. 출근길이 아니라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인 것처럼 등골이 서늘해진다.

제대로 기괴한 광경은 노천 시장에서 마주했다. 이런 날씨에 ‘야외’에 시장이 들어선 것부터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일. 눈 쌓인 공터에 덩그러니 펼쳐져 있는 노점이라니, 마땅히 왁자지껄해야 할 시장 분위기가 을씨년스럽다 못해 섬뜩하다. 주홍색 천막 아래 정체불명의 붉은 고깃덩어리들이 벽돌처럼 쌓여 있고, 죽은 채로 박제가 되어 버린 새하얀 토끼가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모습이 서스펜스 영화의 스틸컷이 따로 없다. 주인 역시 마네킹처럼 꼼짝 않고 그 앞을 지키고 있으니 참으로 괴이하고 이상하다. 내가 가판대 위에 시선을 고정하자 한 남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허리춤에서 날카로운 칼을 꺼내 고기를 잘라 쓱 내밀어 보였다. 맛을 보라는 뜻. 망아지 고기였다. 꽁꽁 얼어 있는 새빨간 생고기. 야쿠츠크 스타일의 시식인 셈이다. 망설이다가 호의를 거절해 버렸지만, 무뚝뚝해 보였던 그가 새하얀 이를 내보이며 말을 걸었을 때, 나를 위해 고기를 싹둑 자르며 미소를 지었던 순간, 잠시 품었던 선입견이 사그라지는 듯했다. 비록 찬 바람이 쌩쌩 불지언정, 이곳 또한 이들에게는 평범한 시장과 다름없음을 깨닫고서. 

노천 시장은 혹한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제대로 보여 준다
노천 시장은 혹한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제대로 보여 준다

노천 시장 한쪽이 고기 판매대라면, 반대쪽 골목은 생선 판매대로 운영된다. 어른 장딴지만큼 크고 굵은   생선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는 모양새가 딱 바게트 빵집, 물고기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진열 방식이 퍽 인상적이다. 잠시 지켜본 결과, 구매부터 계산까지가 순식간이더라. 손님이 손가락으로 물건을 가리키면, 상인은 생선을 몽둥이 쥐듯 양손에 들고 탕탕 부딪혀 쌓인 눈을 털어 낸 후 비닐봉지에 푹 집어넣어 건넨다. 그러면 끝. 불필요한 흥정이나 잡담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전 8시에 나와 오후 7시에 하루를 마무리하는 상인도, 장 보러 온 손님도 추위를 못 느끼는 게 절대 아니므로. “아무래도 고기랑 생선만큼은 시장에서 사야 신선하죠. 우리 도시에서는 굳이 냉동 창고가 필요 없잖아요. 하하.” 다들 입을 모아 말하길, 시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단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가혹한 환경에 노천 시장이 운영되는 것에 큰 의미는 없다. 그저 예부터 시장 가판대에 오르는 물건이라면 산지에서 직접 공수해 온 것이 건강한 식재료라는, 우리가 아는 뻔한 상식이 통할 뿐이지.

야쿠츠크 노천 시장 
주소: Block A. St. Lermontova, 62/2, Sakha Republic, Russia

겨울왕국 같은 북동연방대학교 캠퍼스
겨울왕국 같은 북동연방대학교 캠퍼스

●영원한 겨울 왕국 


러시아 극동부, 40%가 북극권에 속하는 사하공화국의 수도인 야쿠츠크는 단순하게 춥기만 한 게 아니라, 일 년 내내 얼어 있는 ‘영구 동토층’에 세워진 도시다. 얼음 위에 지은 것과 다름없는, 진정한 겨울 왕국. 야쿠츠크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세르게이의 말에 따르면 불변의 규칙은 하나다. ‘땅을 절대 파지 않는 것.’ 건물은 반드시 지면에서 떨어지도록 기둥 위에 짓고, 온갖 파이프와 난방을 위한 열선은 지상에 설치하기. 모두 영구 동토층이 녹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법인 셈이다. 이들은 표면적으로는 따뜻하게 살기 위해 애쓰는 것 같아 보여도, 오히려 영구 동토층을 지킬 수 있는 저온의 기후를 감사히 여기며 산다. 당연히 생존을 위해 매일 싸워야 할 대상이기도 하나, 이 땅에서 추위란 구름 흘러가듯 자연스러운 일이라 여겨진다. 

동물 털과 은으로 장식한 전통의상을 입고 있는 야쿠트인
동물 털과 은으로 장식한 전통의상을 입고 있는 야쿠트인

솔직히 고백하면, 맨 처음 소름이 돋는 걸 참을 수 없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피로 휘감은 이들이 경악스러워서. 얼핏 야생동물이 두 발로 걸어 다닌다고 착각이 들 만한 코트를 입는다. 늑대, 사슴, 곰, 여우, 소, 다람쥐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물론, 극한의 겨울을 직접 겪어 본 이상 윤리적 잣대를 함부로 들이댈 수는 없다. 수천만원에 이르는 밍크코트를 사면 평생을 입고, 백만원쯤 하는 순록 부츠는 대대로 물려받아 신는다고도 하니 그들의 선택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 짐작해 본다. 한편, 이들은 나와 아주 많이 닮았다. 특히나 쌍꺼풀이 없는 두툼한 눈덩이가. 원주민이라고 할 수 있는 야쿠트(Yakut)인이 도시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니 야쿠츠크에서 느끼는 동질감이 묘하다. <시베리아 타임스>에 올라오는 뉴스는 남다르다. 종종 헤드라인을 차지하는 사건이 사냥꾼의 매머드 시체 발견. 심지어 2015년 매머드의 혈관에 온전하게 남아있는 피를 찾아낸 후 영화 <쥬라기 공원>처럼 매머드를 부활시킬 수 있을 거란 대화가 현지인들 사이에서 아무렇지 않게 오간다. 당시 황우석 박사팀이 러시아 북동연방대학교의 연구자들과 함께 매머드 발굴을 도왔고, 이후 한국에서 후속 연구가 이어지고 있으니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두꺼운 외투와 털모자 없이 외출은 불가능하다
두꺼운 외투와 털모자 없이 외출은 불가능하다

●신성한 자연의 품으로


“일행 중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이 신에게 알리는 겁니다. ‘저희 지금 들어갑니다’ 하는 뜻으로요.” 새벽부터 출발한 흰색 승합차가 울퉁불퉁한 눈길을 2시간쯤 달렸을 때였다. 운전기사가 차를 세우더니 나무 밑에 쭈그려 앉아 팬케이크처럼 납작한 빵 조각 몇 개를 내려놓는다. 우리의 발걸음에 대한 허락을 구하는 일이라고 했다. 땅의 신에게, 숲의 신에게, 불의 신에게. 사하공화국 사람들에게 자연은 살아있는 영혼이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결국 자연의 힘에 기대는 것이 최선이다. 오랜 전통을 따르는 주술사를 만나는 일도 흔하다. 그들은 불을 피워 신을 부른 후, 빵과 말의 젖, 사슴 털 등을 태우며 나쁜 기운을 쫓는 의식을 행하곤 한다.

레나강을 따라 늘어선 수십 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암석 기둥 중의 일부분
레나강을 따라 늘어선 수십 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암석 기둥 중의 일부분

신께 허락까지 구하며 향하는 목적지는 레나(Lena) 강가. 시내를 벗어나 남쪽으로 200km 남짓을 달려가는데, 4시간을 한참 넘겼으니 황량한 평야와 숲을 뚫고 쭉 이어지는 도로 상황이 어떤지 짐작할 수 있을 테다. 고난을 헤치고 나서야 레나 필라스 자연공원(Lena Pillars Nature Park)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을 따라 불연속적인 띠처럼 둘러쳐진 절벽 지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도 이름을 올린, 사하공화국의 자랑이다. 

스노모빌에 썰매를 연결한 설상차
스노모빌에 썰매를 연결한 설상차

한겨울 거친 강가의 향기는 비 내린 후의 새벽 공기처럼 알싸했다. 가까이서 보려면 다시 설상차 ‘부란’으로 갈아타고 얼어붙은 빙판을 건너야 한다. 사방이 뚫려있는 설상차로 30분쯤 달리자 온몸이 볼품없이 웅크러지고, 유일하게 노출했던 광대는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이 아팠다. 공중으로 삐죽삐죽 솟구쳐 오른 웅장하고 거친 돌기둥이 반겨주지 않았다면 눈물이 왈칵 쏟아졌을지도 모르겠다. 그 높이가 무려 200m까지 치솟는 절벽 앞에서 말문을 잃었다. 

얼어붙은 강가 옆 작은 마을
얼어붙은 강가 옆 작은 마을

암석의 나이는 자그마치 6억 년이 넘는다고 했다. 칼에 베인 것처럼 예리한 석회암 형상은 전부 40만 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고. 환상의 비경을 창조해 낸 것 또한, 나를 미치도록 괴롭히고 있는 호된 추위라고 했다. 바위 덩어리 사이에 수분이 침투했다가 얼고 녹기를 반복하는 ‘동결 융해 작용’으로 인해 갈라지고 부서지면서 난 깊은 상처. 바라볼수록 처연해 보였던 이유가 상흔이었기 때문일까. 

주술사가 불을 피우고 빵, 말의 젖, 사슴의 털 등을 신에게 바치고 있다
주술사가 불을 피우고 빵, 말의 젖, 사슴의 털 등을 신에게 바치고 있다

금세 해가 뉘엿뉘엿 질 시간이 찾아오자 날 선 봉우리들 아래로 축축한 그림자가 드리운다. 바로 눈앞에 두고도 카메라는 두말할 것 없고 두 눈에도 제대로 담아내기가 불가능한, 장엄한 대자연. 예상대로 추위와의 싸움이기도 했다. 카메라를 꺼내 셔터라도 누를라치면 양손의 모세혈관이 얼다 못해 쪼그라드는 기분이 드는 거다. 나의 날숨에 속눈썹까지 얼어 버리니 뷰파인더를 들여다보기도 쉽지 않고, 사진 한 장 남기는 일조차 고역이었다. 사하공화국이 숨겨 놓은 대자연의 속살이란 이런 것이었나 보다. 주술사가 읊었던 고요한 기도처럼. 자연 앞에서는 보잘것없는 작은 인간에 불과하단 걸 깨닫게 하는 그윽한 힘. 도시의 흐릿한 불빛을 쫓아 다시 돌아오는 고된 길, 왕복 10시간쯤을 도로 위에 쏟아부은 하루가 느릿느릿 평온하게 흘러갔다.

레나 필라스 자연공원(Lena Pillars Nature Park)
주소: Pokrovsk, Sakha Republic, Russia lenapillars.ru


●별난 요리로 차린 풍성한 식탁 


놀랍도록 풍성하게 차려 먹는 야쿠츠크의 밥상. 채소류가 다소 빈약한 것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이 둘러앉은 식탁 위는 수많은 접시로 채워져 배고플 틈이 없었다. 끼니마다 사하공화국 사람들의 주식인 고기, 생선, 유제품이 골고루 차려졌다.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경험은 단연 대망의 첫 식사다. 전통 요리를 프렌치 스타일로 선보이는 고급 레스토랑에서였다. 싱그러운 봄을 연상시키는 연둣빛 실내에 들어서자 입구에서 직원이 두꺼운 외투부터 받아 줬다. 야쿠츠크에서는 식당, 학교, 박물관 할 것 없이 코트룸에 겉옷을 맡기는 게 먼저다. “레스토랑의 이름은 ‘레카 오제로 레스(Reka Ozero Les)’, 즉 러시아어 그대로를 해석하자면 ‘강, 호수, 숲’이에요.” 헤드 셰프 니콜라이 가비셰브(Nikolai Gabyshev)의 설명대로 자연에서 얻은 신선한 재료로 요리한 근사한 메뉴가 차례로 식탁에 올랐다. 소금과 후추와 레몬즙으로 상큼하게 무친 얼린 민물고기 치르, 얇게 저며 살짝 구워 낸 사슴 고기와 루꼴라 샐러드, 큼지막하고 투박하게 자른 말고기 스테이크, 민물 새우 볶음밥을 곁들인 하얀 연어 덮밥, 사슴 육포를 올린 부드러운 감자 퓌레, 그리고 디저트인 블루베리 케이크까지. 

구운 채소를 곁들인 말고기 스테이크
구운 채소를 곁들인 말고기 스테이크
낚시 후 곧장 얼어붙는 생선을 그대로 얇게 잘라 먹는다. 붉은색 고기는 말고기와 사슴 간
낚시 후 곧장 얼어붙는 생선을 그대로 얇게 잘라 먹는다. 붉은색 고기는 말고기와 사슴 간

반전은 있다. 메인 메뉴로 시킨 연어는 예상했던 맛이 전혀 아니었고,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독일인은 말고기 스테이크를 몇 입 먹지도 못하고 포크를 내려놓고 말았다. ‘맛있다’, ‘맛없다’를 말할 수 없는 그런 식사라고 할까. 배는 불렀으나 단점이 뭐라고 꼽지도 못하는 애매모호한 식사 말이다. 이후로도 야쿠츠크에서 즐겼던 식사는 변함없이 그대로였다. 링곤베리와 크랜베리로 만든 붉은 주스 모르스(Mors)를 물 대신 마셨고, 마땅히 보드카도 빼놓지 않고 곁들였다. 사슴고기, 말고기, 망아지 고기는 절대 빠지는 법이 없었다. 굽거나 말리거나, 혹은 생으로 먹거나 등 방식만 달라졌을 뿐. 단단하게 얼린 생선을 얇고 길게 자른 스트로가니나(Stroganina)와 뜨거운 생선 수프도 여러 번 시켜 먹었는데, 익숙해진 탓인지 아니면 생존을 위한 변화인지 조금씩 맛있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레스토랑 ‘레카 오제로 레스’에서의 저녁 식사
레스토랑 ‘레카 오제로 레스’에서의 저녁 식사

대부분의 모험이 그렇듯, 첫 며칠간의 두려움은 금방 사라졌다. 절대 이겨 낼 수 없을 거라고 여겼던 추위도 견딜 만해졌고, 얼린 치르를 안주 삼아 마시는 보드카 한 잔의 풍미에도 눈을 뜨게 됐다. 그건 곧 떠날 시간이 됐다는 의미. 여행자는 익숙해질 만하면 떠나야 하는 운명이니까. 일주일을 차근차근 곱씹어 보니 한 일이 별로 없다. 밥을 먹거나 사람들을 구경하고, 날씨 앱을 수시로 확인하며, 이따금 영하 40도에서 산책을 했을 뿐. 그런데도 해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존재조차 몰랐으면서, ‘세계에서 가장 추운 도시’라는 타이틀만 쫓아간 여행. 시리도록 찬 바람이 불 때마다, 이상하고 추웠던 이 도시가 그리워질 것 같다.  

레카 오제로 레스(Reka Ozero Les)
주소: Ammosova, 6/2, S/C Milan, Yakutsk, Sakha Republic, Russia rekaozeroles

얼음낚시 축제가 열리는 야쿠츠크 북부의 호숫가
얼음낚시 축제가 열리는 야쿠츠크 북부의 호숫가

▶travel  info

AIRLINE 
야쿠티야항공에서 인천-야쿠츠크 직항 노선을 주 2회 운항한다. 비행시간은 약 4시간 30분. 출발편은 일요일과 수요일, 귀국편은 월요일과 수요일에 있다. 올해 3월23일까지 예정되어 있는 동계 운항 스케줄이기 때문에 이후의 항공 일정은 야쿠티야항공사에 확인하는 게 좋다.  www.yakutia.co.kr


ABOUT 
VISA 여행자의 경우 입국 일로부터 180일 이내에 연속 체류 최대 60일, 총 90일 무비자로 체류할 수 있다. 
TIME 야쿠츠크는 한국과 시차가 없다. 
CURRENCY 1RUB(루블)이 한화로 약 19원이다. 지폐 종류는 10, 50, 100, 200, 500, 1,000, 5,000루블 등이 있다. 

FESTIVAL 
뭉하 Munha

야쿠츠크 북부의 호숫가에서 열리는 얼음낚시 축제. 날짜는 정해져 있지 않고 매년 바뀐다. 2019년에는 11월29일에 개최했다. 주술사가 자연의 신에게 청원하는 의식을 거행한 후 동네 주민들이 함께 빙판에 구멍을 뚫고 큰 후릿그물을 던져 ‘까라시’라고 부르는 붕어를 낚는다. 단, 남자들만의 축제로 여자는 물고기를 잡은 후에만 호수에 접근할 수 있다.


▶RESTAURANT 

마흐탈 Makhtal
역사 중심지 ‘올드 타운’의 건물 2층에 위치한 마흐탈은 홈메이드 스타일의 푸근한 음식을 찾는 이에게 완벽하다. 일반적인 전통 요리부터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소혀, 망아지 소시지, 사슴고기 스테이크, 간 파이 등 다채로운 메뉴를 갖췄다. 
주소: Ulitsa Kirova, 2, Yakutsk, Sakha Republic, Russia

초추어 뮤란 
Chochur Muran 

숲속 산장 같은 아늑한 분위기의 레스토랑. 사냥의 트로피인 동물 박제와 정겨운 골동품으로 장식한 인테리어가 동화 속 그림 같다. 사하공화국의 전통 요리를 맛본 후, 설원에서 야쿠츠크의 개, 라이카(Laika)가 끄는 개썰매 체험도 가능하다.   
주소: Vilyuyskiy Trakt, 7 км, 5, Yakutsk, Sakha Republic, Russia  
홈페이지: arctic-travel.ru


▶MUSEUM 

매머드 박물관 Mammoth Museum
단 하나의 전시실에 불과하지만, 매머드의 완벽한 해골을 포함해 현재 멸종한 빙하기 시대의 동물과 관련된 소장품이 흥미롭다. 아쉬운 부분은 오로지 러시아어로만 설명되어 있다는 것. 박물관은 러시아 북동연방대학교 교정에 자리 잡고 있다. 
주소: Ulitsa Kulakovskogo, 48, Yakutsk, Sakha Republic, Russia  
홈페이지: www.s-vfu.ru

영구 동토 왕국 Permafrost Kingdom
일 년 내내 얼어 있는 ‘영구 동토층’ 언덕에 뚫려 있는 동굴은 야쿠츠크 관광의 필수 코스다. 테마에 맞춰 얼음조각으로 꾸민 수십 개의 방이 있으며, 얼음 잔에 보드카를 마실 수 있는 ‘예티 바’가 인기다. 기온이 줄곧 영하 5도,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비교적 따뜻하다.
주소: 7км, Ulitsa Gora Chochur Muran, 1, Yakutsk, Sakha Republic, Russia

호무스 박물관 Khomus Museum
사하공화국의 전통 악기 호무스의 매력을 엿볼 수 있는 박물관. 전 세계에서 수집한 다양한 호무스를 400여 점 전시한다. ‘구금’ 혹은 ‘마우스 하프’라고도 부르는 호무스는 금속의 얇은 판을 입에 물고 쇠막대를 튕기는 진동으로 소리를 낸다.
주소: Ulitsa Kirova, 31, Yakutsk, Sakha Republic, Russia 
홈페이지: rus.ilkhomus.com


글·사진 함희선  에디터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디스커버 야쿠티아 discover-yakut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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