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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상의 항공 이야기] 오해하지 말고 들어, 승무원은 원래…

  • Editor. 유호상
  • 입력 2020.03.02 0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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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실서비스는 승무원의 임무 중 일부일 뿐 ©픽사베이
객실서비스는 승무원의 임무 중 일부일 뿐 ©픽사베이

비행기 승무원은 마냥 멋져 보이기만 한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바쁘고 또 고되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그들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저 돈 많이 냈거든요?

유럽의 모 항공사 취재 중 기자들을 안내하던 은퇴한 승무원. 그는 1등석 객실에 들어서자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이 항공사에는 1등석 승객들로부터 농담인지 진담인지 애매한 불평이 종종 올라왔다고 한다. “우리는 일반석 승객보다 몇 배나 많은 돈을 내는데 나이 든 승무원만 있고, 젊은 승무원은 죄다 뒤쪽(일반석)에만 있냐?”라고. 이렇게 노골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겠지만, 어쨌든 그들의 좌절감에는 공감이 된다.

재미있는 건 승무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고참급 승무원들만 일등석에서 근무할 수 있다는 것에 나름의 불만이 있었다고 한다. 일리가 있었는지 이후 이 항공사는 주니어·시니어 승무원의 비율을 적당히 조정하게 됐다고 한다. 하긴 어느 나라, 어느 문화에서든 ‘기왕이면 다홍치마’인 것은 인지상정일 터.

남녀 승무원 구분 말고 이젠 캐빈크루  ©유호상
남녀 승무원 구분 말고 이젠 캐빈크루 ©유호상

●승무원이 존재하는 이유

문득 궁금해진다. 항공 여행 초기는 어땠을까? 기록에 의하면 최초의 승무원은 1912년 독일의 하인리히 쿠비스다. 어라, 그는 남성이다! 그랬다. 초창기에는 오직 남성 승무원만이 탑승했다.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여성 승무원, 즉 스튜어디스는 1930년 미국에서 등장하는데 그가 바로 보잉(당시엔 보잉이 항공사를 소유했다)에서 채용한 엘렌 처치다.

하지만 처치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스튜어디스는 아니었다. 처치는 조종사이자 공인 간호사로 처음엔 비행기 여행을 두려워하는 승객들을 위해 고용됐다. 여성 승무원의 업무 수행능력이 인정받자 이후 본격적으로 여성을 채용하게 됐다. 1950~60년대 항공산업이 성장하자 서비스 경쟁이 본격화됐다. 항공사 입장에서 손님 끌기 쉬운 좋은 방법은 스튜어디스 내세우기였다. 한때 많은 항공사 객실은 섹시한 여종업원으로 유명한 레스토랑, 후터스와 비슷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1970년대 말 모든 것이 변한다. 1978년 미국에서는 항공산업 규제 완화법이라는 게 생겨났다. 쉽게 말해 누구나 다 항공사를 운영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자유 경쟁 체제로 서비스가 더 좋아져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찬물만 끼얹어졌다.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많은 항공사가 망하고, 승무원들의 처우는 떨어져 서비스는 되려 퇴보하게 된다. ‘섹시한 스튜어디스’들도 대부분 사라졌다.

1980년대 들어서자 스튜어디스라는 말조차 중성적 느낌의 캐빈크루(승무원)란 말로 바뀌었다. 버블이 꺼졌다고나 할까. 이후 미국에서 승무원은 그저 안전요원이라는 느낌이 강해졌다. 스튜어디스에서 승무원(Cabin Crew)이라는 용어로 바뀌었을 때 이미 느낌이 오지 않는가? 이들의 업무 초점이 어디에 맞춰졌는지. 

세계 최초의 여승무원, 엘렌처치 ©WikimediaCommons
세계 최초의 여승무원, 엘렌처치 ©WikimediaCommons

●서비스보다는 안전제일 

1980년 8월19일,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 공항. 관제탑에서는 긴박한 교신이 이어졌다. 사우디아항공(Saudia Airlines) 163편이 기내 화재로 비상착륙을 요청한 것이다. 모두가 숨죽이며 비행기가 착륙하는 것을 지켜봤다. 천만다행으로 몇 분 후 비행기는 무사히 착륙했고 활주로에 대기하던 소방차와 구급차들은 이 비행기가 멈추길 기다렸다.

그런데 조종사와 승무원들은 즉각적으로 비상시 규정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비행기는 바로 멈추지도 않았고, 연료 밸브와 엔진을 바로 끄지 않아 구조대가 접근하지도 못했다. 또 객실 승무원들도 통보한 바와 달리 즉각 탈출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다.

결국 승객들은 객실에 갇힌 채 연기를 흡입해 전원 사망했다. 이후 조사에서 조종사와 승무원들이 일산화탄소 흡입으로 정상적인 대응을 못한 건지, 대응이 미숙했는지 정확히 밝혀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잘 착륙하고도 승무원들이 제 역할을 못해 대참사로 이어졌다는 점이었다. 승무원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일깨워 준 사례였다.

무사히 착륙하고도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 사우디아항공 163편 ©Wikipedia
무사히 착륙하고도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 사우디아항공 163편 ©Wikipedia

한국인의 국적기 사랑은 남다르다. 언어 장벽과 기내식 등이 그 주된 이유라고 한다. 하지만 요즘엔 국내 취항 외국항공사에서도 한국인 승무원과 한식이 제공되고 있다. 승객들의 요구 사항을 최대한 수용하려는 ‘친절한 서비스’인 것인데, 때론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도 발생한다. 기내에서 위급한 환자가 발생하는 바람에 기내식을 제때 공급하지 못했는데, 한 승객이 무조건 기내식을 달라며 항의했고, 해당 승무원은 사람을 살리고도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해야 했다는 경험담을 들었다. 항공사의 서비스 지상주의 때문에 승객의 부당한 요구나 행동에도 승무원들이 소신껏 대처하지 못한다면, 다른 승객의 안전에도 해를 끼치는 일이 되지 않을까? 최초의 승무원들을 떠올리자니, 다시 한번 승무원 본연의 소임에 대해 곱씹게 된다. 

 

*유호상은 어드벤처 액티비티를 즐기는 여행가이자 항공미디어 에디터로 활동 중이다.

글 유호상  에디터 트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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