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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담 말고 믿음으로, 여기는 파티마니까!

Fatima Pilgrimage

  • Editor. 김선주 기자
  • 입력 2020.03.02 1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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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마 인근의 바탈랴 수도원. 포르투갈 왕실의 권력과 신앙이 만나 탄생했다
파티마 인근의 바탈랴 수도원. 포르투갈 왕실의 권력과 신앙이 만나 탄생했다

오래전 냉담해진 가톨릭 신자인 주제에 세계적인 가톨릭 성지를 순례했다. 포르투갈 파티마(Fatima), 세계 3대 성모 발현지다. 그게 전부는 아니었으므로 죄스럽거나 불편하지는 않았다. 파티마를 중심에 둔 포르투갈 중부 지역 여행 이야기다. 

파티마 대성당 앞의 예수상
파티마 대성당 앞의 예수상

성모 마리아를 보았네 


가톨릭 국가 포르투갈의 신심 두터운 신자여서 그랬는지 성모마리아 발현을 설명할 때 가이드 마가레트는 더욱 열정적이었다. “1917년 5월부터 10월까지 매월 13일에 성모마리아가 이곳 파티마에 살던 3명의 목동 앞에 나타나셨어요. 8월에만 다른 날짜 다른 곳에서 나타나셨는데, 성모마리아를 봤다는 목동들의 말을 믿지 않은 지방 정부 관리가 목동들을 끌고 가 심문하는 바람에 목동들이 나올 수 없었기 때문이었어요. 성모마리아는 대신 8월19일에 목동들의 마을 인근인 발린호스(Valinhos)에서 발현하셨어요.” 


냉담한 마음을 걷고 성모 출현 이야기를 진실로 받아들였다. 성모마리아는 죄를 회개하고 묵주 기도를 올릴 것을 요청했고, 공산주의의 몰락 등을 예언한 ‘파티마의 비밀’도 남겼다. 교황이 고통을 당할 것이라는 메시지도 전했는데, 실제로 1981년 5월1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암살 시도가 벌어졌다. 총알을 피해 기적적으로 살아난 교황은 미리 경고 메시지를 준 성모를 향해 이듬해 5월 파티마로 감사 순례를 가기도 했다. 성모가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발현 1년 전에 이미 세 차례에 걸쳐 천사들이 목동들에게 나타났다. 세 목동들은 자신들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믿을 수 있도록 성모에게 기적을 행해 달라고 부탁했고, 성모는 10월13일 마지막 발현 때 7만명의 군중에게 태양이 춤추는 기적을 선사했다. 


이후 파티마로 가톨릭 신도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1930년에는 포르투갈 주교들이 파티마의 성모 발현을 공식 인정했고 바티칸 교황청도 이곳을 성지로 명명했다. 그렇게 파티마(Fatima)는 프랑스 루르드(Lourdes) 그리고 멕시코 과달루페(Guadalupe)와 함께 세계 3대 성모 발현 성지가 됐다.


●파티마 가톨릭 성지순례
무릎 기도의 간절함이 향하는 곳

파티마의 가톨릭 성지를 순례했다. 
연간 수백만 명의 신자가 찾는 성스러운 장소들을 직접 거닌다는 것은 믿음에 회의적인 ‘냉담자’에게도 축복이었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크다는 성삼위성당 입구에서 바라본 파티마 대성당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크다는 성삼위성당 입구에서 바라본 파티마 대성당

이른 아침 광장은 아직 텅 비었던 터라, 무릎걸음으로 한 무릎 한 무릎 내디디며 기도하는 신자의 뒷모습은 더욱 간절해 보였다. 도대체 어떤 소망이기에…. 예전에 세례를 받았지만, 이제는 믿음에 냉담해진 이의 눈에는 그저 고통스러워만 보였는데, 신자는 꿋꿋했다. 믿음의 궁극으로 이어지는 길이니 그랬으리라! 100여 년 전, 무릎걸음 길이 끝나는 곳에서 성모마리아가 발현했다. 

파티마 대성당 안에는 성모를 만난 목동들이 잠들어 있다
파티마 대성당 안에는 성모를 만난 목동들이 잠들어 있다

파티마 성지순례의 시작과 끝은 성모 발현 예배당(The Chapel of Apparitions)이다. 성모가 나타났던 자리에 만들어진 작은 예배당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소박하고 작은 규모에 이곳이 맞나 싶은 의구심이 들었지만, 무릎걸음으로 드넓은 광장을 거슬러 온 신자들이 이곳에 이르러 비로소 간절한 소망을 토해 내는 모습을 보고 거뒀다. 신에 대한 경건함과 믿음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찬 그곳에서는 침묵만이 답이었다. 100여 년 전 성모가 발현한 바로 그 자리에는 성모 조각상이 평화롭고 거룩하게 내려다봤다. 


예배당 뒤로는 파티마 대성당(Basilica of Our Lady of Fatima Rosary)이 우아하게 앉아 있다. 새하얀 자태로 두 팔을 벌린 성모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1928년 짓기 시작해 1953년 완성된 신고전주의 양식의 성당 안에는 성모를 만난 세 명의 목동이 잠들어 있다. 성모 발현 당시 10살이었던 루시아(Lucia dos Santos), 그리고 그녀의 사촌남매였던 9살 프란치스코(Francisco Marto, 1908~1919년)와 7살 자신타(Jacinta Marto, 1910~1920년)다. 프란치스코와 자신타는 스페인 독감으로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루시아는 수녀의 삶을 살다 2005년 선종했다. 루시아는 수녀원에서 다시 한 번 성모를 만났고 성모의 메시지를 들었다. 

목동들의 생가도 순례코스다
목동들의 생가도 순례코스다

목동들의 생가가 있는 알주스트렐(Aljustrel)은 소박하고 조용했다. 당시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탓인지, 목동들의 집은 비좁아서 순례자들은 순서를 지켜 들어가고 나오기를 반복해야 했다. 루시아의 집에는 수녀로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대화하는 사진들이 더해져 전시돼 있었다. 마을 아래로 내려가니, 성모 발현 이전에 천사가 나타났다는 곳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얀색 조각상이 당시의 순간을 재현했다. 8월19일 성모마리아가 발현한 발렌호스(Valinhos)는 ‘십자가의 길(Way of the Cross)’로 이어져 있어 순례자들이 빼놓지 않는다. 8월19일 성모 발현지에서부터 천사 발현지에 이르는 십자가의 길에는 14개의 작은 성소들이 만들어져 있어, 순례자들은 종종 그 성소 앞에서 기도를 올렸다. 올리브 나무 사이로 이어진 길은 호젓한 산책로이기도 했다.

십자가의 길
십자가의 길

운 좋게도 파티마 대성당에 딸린 성물 박물관(Peace and Light Museum of Fatima)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일반인 출입이 제한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생명을 노렸던 암살 총탄이 그대로 박혀 있는 교황관을 비롯해 역대 교황들이 파티마 성모에게 봉헌한 성물, 세계 각국에서 보내온 기념품 등 각종 성물들을 보관하고 있어서다. 

성모 발현 전설이 있는 오르티가(Ortiga) 성당
성모 발현 전설이 있는 오르티가(Ortiga) 성당

신도들은 신심을 가득 품고 연중 파티마를 찾아오는데, 성모마리아 첫 발현일인 5월13일과 마지막 발현일인 10월13일에 특히 많다고 한다. 파티마는 다국어 미사와 야간 촛불 행진 등으로 전 세계 순례자들을 축복한다. 성모 발현 100주년이었던 2017년 5월에는 프란치스코 교황도 파티마를 찾았다. 당시 50만명이 성당 앞 광장을 가득 메웠다. 성모 발현 90주년이었던 2007년에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크다는 성삼위성당(Church of the Most Holy Trinity)도 완공됐다. 믿음의 공간이 한층 확대된 셈이다. 총 공사비 8,000만 유로(약 1,040억원)를 순례자들이 전액 기부해 지어졌다고 하니 믿음의 힘을 가늠할 수 있었다. 성삼위성당은 현대미술관 같은 ‘젊은 감각’이 인상적이었다.  


어둠이 깔린 밤, 성모 발현 예배당 미사와 촛불 행렬에 참여했다. 사전에 신청을 한 여러 나라 신도들이 차례로 각자의 언어로 기도문을 외웠고 마지막에는 모두들 성모상을 받들고 촛불을 쥔 채 광장을 행진했다. 완전히 잊은 줄 알았던 기도문이 나지막이 읊조려졌고 성호를 긋는 손이 어색하지 않았다. 


●유네스코 유산 수도원 순례
신앙과 권력의 동거는 화려했으니

유네스코(UNESCO)도 인정한 유서 깊은 수도원 세 곳이 파티마를 감싸고 있어 자연스레 수도원 순례로 이어졌다. 
하늘을 향한 신앙의 장소로서는 물론, 세월의 결을 켜켜이 간직한 건축물로서도 매혹적이었다. 신앙과 권력의 동거는 그렇게나 화려했다. 

고딕 양식과 마누엘 양식이 혼재된 바탈랴 수도원. 미완성 예배당도 볼거리다
고딕 양식과 마누엘 양식이 혼재된 바탈랴 수도원. 미완성 예배당도 볼거리다

바탈랴 수도원(Monastery of Batalha)은 겨울비에 젖어 고색이 더 깊었다. 1385년 포르투갈의 주앙 1세(1357~1433년)가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해 짓기 시작해 후대 왕들에게까지 이어졌다. 포르투갈 왕권의 상징이자 왕실의 묘지로서는 물론 고딕 양식과 마누엘 양식으로 지은 15세기 포르투갈의 건축물로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유네스코도 198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페드로 왕과 그의 연인 이네즈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는 알코바사 수도원
페드로 왕과 그의 연인 이네즈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는 알코바사 수도원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외관에 빠져 들기도 잠시, 내부로 들어가자마자 하늘에라도 닿으려는 듯 높디높게 치솟은 원기둥들이 뿜어내는 장엄함에 감탄했다. 이 수도원은 ‘왕실의 묘지’로 유명하다. 입구 오른편 ‘창설자의 예배당’에 주앙 1세와 왕비 등 왕실 가족의 석관이 안치돼 있어 경건함이 흐른다. 마침 현장수업에 나온 어린 학생들 무리가 수도승 복장을 한 해설사의 설명에 빠져 들고 있었다. 

마누엘 1세(1495~1521년) 때에는 마누엘 양식이 더해져 건축물로서 가치를 더 높였다. 여기서 시작된 마누엘 양식은 리스본 제로니무스(Jeronimos) 수도원에서 꽃피었다. 마누엘 양식의 대표적인 특징은 해초나 어구 등에서 모티브를 얻은 장식들로 대항해시대를 상징한다. 마누엘 1세가 짓다가 말아 천장이 뚫려 있는 예배당은 미완이어서 오히려 여운이 깊었다.

페드로 왕의 석관
페드로 왕의 석관

알코바사 수도원(Monastery of Alcobaca)은 셰익스피어의 비극 같은 사랑 이야기로 애잔했다. 페드로 1세(1320~1367년)와 그의 연인 이네즈(1325~1355년)의 러브스토리다. 페드로 왕은 왕비의 동생 이네즈를 더 사랑했고 비밀리에 결혼식까지 올린다. 나쁜 소문들이 돌고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아버지 아폰소 4세 국왕은 결국 암살자를 보내 1355년 1월 당시 29세였던 이네즈를 죽인다. 비참한 이별을 맞은 페드로는 2년 뒤 아폰소 4세 왕이 죽자 왕위에 올라 이네즈를 정식 왕비로 공표하고 이네즈 암살자들을 처형한다. 복수에서 그치지 않는다. 죽어서도 이네즈와 함께하기 위해 대리석 석관 두 개를 만들고 서로 마주보게 배치하라는 명을 남긴다. 


700년 세월이 흐른 지금도 두 사람은 알코바사 수도원에서 서로 마주하고 있었다. 대리석 석관의 일부 훼손된 부분은 1810~1811년 사이 나폴레옹 군대의 짓이라고 하는데, 그 부분을 제외하면 둘의 석관은 원형에 가깝다. 유네스코는 ‘시토회 종교 건축물의 전형이자 고딕예술의 걸작’이라며 알코바사 수도원을 198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토마르 그리스도 수도원은 다양한 건축기법의 경연장이기도 하다
토마르 그리스도 수도원은 다양한 건축기법의 경연장이기도 하다

토마르 그리스도 수도원(Convent of Crist in Tomar)은 다양한 시기의 다양한 건축기법들이 서로 경연하는 건축의 향연장이나 다름없었다. 시작은 템플기사단(Knight Templar)이었다. 유럽 기독교 세력이 이슬람 세력과 벌인 십자군 전쟁 때 기독교 순례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생겨난 기사단으로 1160년 템플기사단이 토마르에 요새를 지으면서 수도원의 역사도 시작됐다. 새로운 건물이 건축됐고 또 다른 회랑이 증축되는 과정이 반복됐다.

초기에 템플기사단이 지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채에 15세기 고딕 양식이 더해졌고 대항해 시대의 해양 장식이 풍성했던 마누엘 양식까지 더해지며 규모를 키우고 화려함을 더했다. 거대한 팔각기둥이 위로 솟아오르고 그 주위를 다시 16면의 외벽이 감싸면서 퍼져 나가는 구조의 예배당은 화려하다 못해 위압적이기까지 했다. 예배당을 두어 바퀴나 돌며 벽화와 부조를 감상했는데, 질리지 않았다. 걸음을 또 옮기면, 마치 바닷속에라도 온 듯 건물 외벽 전체가 물결처럼 흐르고 선박처럼 항해했다. 이런 마누엘 양식의 바다 해양 장식은 수도원 곳곳에서 뚜렷했는데, 리스본의 제로니무스 수도원에 견줘도 뒤지지 않을 것 같았다. 1983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토마르 수도원을 올린 이유일 것이다.

 

●파티마 주변 매력 순례
동굴에서 중세로, 바다로!

파티마 위로 가면 중세 대학도시 코임브라(Coimbra), 아래로 가면 수도 리스본(Lisbon)이다. 좌우로 움직이면 비록 작지만 뚜렷한 색채를 지닌 매력을 만날 수 있다. 

나자레는 넓고 긴 해변과 거침없는 파도로 유명하다
나자레는 넓고 긴 해변과 거침없는 파도로 유명하다

신자의 성지, 서퍼의 성지
나자레 Nazare

나자레는 아래쪽 시가지 프라이아와 언덕 위 시티우 지역으로 나뉜다. 성지순례자들이라면 고민 없이 언덕 위 시티우로 먼저 향한다. 성모가 발현한 가톨릭 성지인 데다가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됐을지도 모를 성모마리아 조각상이 있어서다. 이곳 언덕의 절벽은 아찔하다. 전설에 따르면, 안개 자욱한 날 사냥에 나갔던 귀족들이 정신없이 사슴을 쫓았는데 절벽에 다다른 순간 순식간에 사슴이 사라지고 타고 있던 말은 낭떠러지로 떨어질 위기에 처했다. 추락 위기에서 어느 순간 성모마리아가 나타나 말을 세웠고, 극적으로 생명을 건진 귀족들은 그 자리에 ‘메모리아 소성당’을 세웠다. ‘기억의 사원’이라는 뜻이다.

나자레 마을의 아기자기한 건물
나자레 마을의 아기자기한 건물

지금도 소성당은 절벽 끝에서 순례자들을 맞이한다. 순례자들이 점점 늘자 1377년 페르난두 왕이 그 옆에 큰 성당을 짓도록 지시해 현재의 ‘나자레 성모성당’이 탄생했다. 이 성당의 제대 위 작은 공간에는 ‘검은 성모상’이 모셔져 있는데, 이스라엘 나사렛에서 예수의 양부이자 목수인 요셉이 예수가 어릴 적에 직접 조각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오랜 세월의 더께인지 원래부터 그랬는지, 유리벽 안의 성모 조각상은 검은빛으로 순례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 성모상’이 안치된 나자레 성모성당
‘검은 성모상’이 안치된 나자레 성모성당

나자레는 서퍼들에게도 성지다. 긴 해변과 높은 파도를 찾아 서퍼들이 몰려든다. 2017년 11월 브라질의 한 서퍼가 높이 24.4m의 파도를 타 기네스북에 오르면서 더욱 유명해졌단다. 절벽 위 소성당 옆에 서서 내려다보니, 넓고 기다란 해변으로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몰려드는 파도가 거침없었다. 

오우렘의 중세 고성
오우렘의 중세 고성
오우렘시 뮤지엄
오우렘시 뮤지엄

고성 품은 중세 마을의 운치
오우렘 Ourem

오우렘은 파티마가 속한 자치구다. 성모를 만났다는 세 명의 목동들의 말을 믿지 못한 이곳의 정부 관리가 목동들을 오우렘 감옥에 가두고 심문했다. 당시 행정관의 집(Administrator’s House)이 있던 자리는 현재 오우렘시 뮤지엄(Municipal Museum of Ourem)으로 운영되고 있다. 오우렘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산 위에는 중세 오우렘 마을(Medieval Village of Ourem)이 있다. 고성과 옛 교회, 감옥 등이 고풍스럽고, 마을 박물관과 운치 좋은 레스토랑이 한없이 푸근하다. 이 중세마을의 대표적인 레스토랑인 카사 도 카스텔로(Casa do Castelo)의 아늑한 분위기에 취해 포르투갈 전통음식과 와인을 한없이 탐했다.

동전동굴이라는 뜻의 석회동굴인 그루타스 다 모에다
동전동굴이라는 뜻의 석회동굴인 그루타스 다 모에다

사슴이 안내한 은밀한 동굴
그루타스 다 모에다 Grutas da Moeda

‘동전동굴’이라는 뜻의 그루타스 다 모에다(Grutas da Moeda)는 파티마에서 자동차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석회동굴이다. 옛날 이 지역의 부자가 강도들에게 쫓기다가 동전으로 가득한 가방과 함께 이 동굴에 떨어졌다고 해서 동전동굴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고 한다. 1971년, 쫓던 여우가 땅속으로 도망치는 것을 본 사냥꾼이 동굴을 발견했다. 1974년 일반에 개방됐으며, 현재 지하 45m, 길이 350m까지 관람할 수 있다. 수만년의 세월에 걸쳐 형성된 석주와 석순, 종유석이 기기묘묘한 모습으로 관람객을 맞이했다. 


▶travel  info

AIRLINE
한국과 파티마를 연결하는 항공노선은 없다.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 북쪽으로 자동차로 2시간 정도 달려야 닿을 수 있다. 한국과 리스본간 정기 직항노선은 개설돼 있지 않아, 헬싱키·프랑크푸르트·파리·이스탄불 등 유럽 내 주요 도시를 경유하는 게 일반적이다. 아시아나항공이 2019년 10월28일부터 2020년 4월13일까지 매주 월·수요일 주 2회씩 인천-리스본 직항 전세기를 운영한다.


HOTEL
에스디바인 파티마호텔 Sdivine Fatima Hotel 

선교신학원과 2성급 호텔이 있던 건물이 4성급 호텔로 변신해 탄생했다. 건물의 역사는 1954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지금도 호텔 곳곳에서 그 흔적을 읽을 수 있다. 도보로 10분 정도 거리에 성모 발현지와 파티마 대성당이 있고, 고속도로 입구도 가까워 토마르(Tomar), 바탈랴(Batalha), 나자레(Nazare) 등 인근 소도시로 향하기에도 편리하다. 객실은 총 134개다.
홈페이지: www.sdivinefatimahotel.pt

SHOPPING
올리브 오일 뮤지엄 Olive Oil Museum

파티마는 올리브 오일 산지로 유명하다. 수령 수백년의 올리브 나무가 줄지어 선 농장 풍경도 쉽게 만날 수 있다. 파티마의 올리브 오일은 향기와 질감, 색감이 훌륭하고, 산도가 0.2~0.6%로 매우 낮아 소화가 잘 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파티마 올리브 오일 뮤지엄(Olive Oil Museum of Fatima)’에서는 전시물을 통해 옛날에 어떻게 올리브 오일을 생산했는지 체험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질 좋은 올리브 오일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도 있다. 
홈페이지: www.azeitefatima.pt

 

글·사진 김선주 기자 
취재협조 파티마 비즈니스 협회(ACISO, Business Association Ourem-Fatima) www.aciso.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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