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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여행자 사이 나, 박준

  • Editor. 천소현 기자
  • 입력 2020.05.01 18: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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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듣고 싶은 말만 들었네요

나는 지금 몹시 애매한 기분이 든다. 그를 알고 지낸 16년이 인터뷰를 진행한 2시간으로 인해 희석되어 버렸다. 딱히 그를 안다, 모른다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아주 긴 인터뷰 질문서를 작성하고 ‘꽤, 안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었다. 그는 여행작가들 사이에서도 ‘책 많이 판’ 작가로 꼽히고, 여행과 책을 좋아하는 30~40대 사이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여행작가로 각인돼 있다. 그가 쓴 <On the Road-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은 장기 배낭여행자들의 필독서였고, 많은 여행의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그런 박준 작가의 30대 중반을, 여행 매체의 첫 기고글을, 첫 출장을 목격한 인터뷰어로 나는 최선을 다해 도발했다. 유행곡이 하나밖에 없는 가수처럼 당신도 그런 것이 아니냐고, 벌이가 많지 않다면서도 언제나 여행 중이라면 뭔가 뒷주머니가 있는 건 아니냐고, 당신의 글은 ‘잡지적’이진 않다고…, 세상의 시선이라는 핑계로 잔뜩 꼬인 생각들을 무례하게 쏟아 냈다. 


그 모든 괴이한 질문들을 이해하려 애쓰며 성실하게 헤쳐나가는 그는, 새삼 낯설었다. 이 사람은 누구인가? 나는 지금껏 그의 말을 전혀 듣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이메일 닉네임이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오래전부터 ‘여행은 삶’이었고, 그는 줄곧 한목소리로 스스로를 여행자라고 말하고 있었는데, 나는 16년 내내 그를 여행작가라고 부르며 듣고 싶은 말만 골라서 들었던 것이다. 둘 중 누구의 고집이 더 센 것인가. 

그랬다. 그는 탐욕스러운 여행자다. 엊그저께 막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그다음 주로 예정된 출장 제의를 마다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오래 머물 수 없겠냐고 요청해 와서 종종 복잡한 절차를 만들기도 했다. 그런 그의 여행 욕심이 여행글이라는 환금 수단을 향해 있다고 생각한 것이 나의 패착이다. 그에게 ‘여행은 삶’이라는 단어는 미사여구가 아니고, 그는 실제로 여행 외에 다른 것을 추구한 적이 없으며, 그 시간을 조곤조곤 기록한 결과물이 그의 책이라는 사실을. 


솔직히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누군가가 진정한 여행자로 산다는 일, 말이다. 그러나 한 사람의 가능한 예가 있다면, 그가 바로 박준이다. 

모로코 탕헤르, 호텔 옥상에 올라가니 마티스가 그린 탕헤르 그림이 생각났다
모로코 탕헤르, 호텔 옥상에 올라가니 마티스가 그린 탕헤르 그림이 생각났다

세간의 오해도 풀리면 좋겠다. 사람들은 그가 사교적이지 않다고 하지만, 사실 그는 아주 섬세한 커뮤니케이터이자 타고난 인터뷰어이다.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여행자를 인터뷰한 그의 책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이 10만 부나 팔린 것은 운이 좋아서가 아니다. 그의 관심사는 남과 달라서 종종 어느 누구에게도 들어본 적 없는 질문을 해 온다. 일례로 그는 며칠 전 죽음에 관한 삽화가 실린 책의 한 페이지를 톡으로 전송하며 물었다. ‘종교가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항상 궁금했어요.’ 그 며칠 전 아주 세속적인 질문들을 모아서 쏟아 부은 내게 말이다.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만나 차를 나누는 사이일 뿐인데, 기이하게도 그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솔직함의 의무를 지운다. 그는 몰랐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내가 늘 긴장했다는 것을. 하지만 그래서 그와의 대화를 오래, 귀하게 기억했다는 것을. 

모로코 사하라, 하실라비드 마을에 머무는 동안 매일 사하라 사구에 올랐다
모로코 사하라, 하실라비드 마을에 머무는 동안 매일 사하라 사구에 올랐다

P.S. 
인터뷰를 마치고, 나는 다시 당황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백지 지면, 아무런 제약도 두지 않고 요청한 기고글의 주제를 ‘여행작가로 산다는 것’으로 하겠다고 했다. 나는 약속대로 이의를 달지 않았다. 하지만 우려했던 대로, 우리가 나눈 인터뷰의 내용 대부분이 그의 원고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자기 삶(=여행)을 성실히 살아가는 한 사람의 여행가가, 여행작가라는 ‘부질없는 바람만 가득한 직업’의 굴레에 갇혀 받았던 숱한 오해를 해명하는 기회를 누리는 것이니, 나는 그를 기꺼이 돕겠다. ‘나’로 인해 걸러진 인터뷰보다 박준 작가의 담백하고 솔직한 이야기로 직행하셔도 좋다. 아니, 가시라. 같은 이야기다. 

캐나다 앨버타, 언제나 나를 매혹시키는 말, ‘길 위에서’
캐나다 앨버타, 언제나 나를 매혹시키는 말, ‘길 위에서’

●박준 작가의 50문50답
페이스북  @menvoyage

01    출생년도_  1968년
02    출생지_  서울
03    별명_  없다.
04    전공_  법학, 영화학
05    좌우명(혹은 굳게 믿고 있는 진리)_  인생은 한 번뿐이고 순식간에 흘러간다.
06    어렸을 적 장래희망_  변호사, 정치가, 파일럿
07    주로 입는 옷 색깔_  없다.
08    선호하는 주종_  없다. 거의 안 마신다.
09    챙겨 먹는 영양제_  없다.
10    좋아하는 음식 3가지_  평양냉면, 스테이크, 치즈
11    감명 깊게 읽은 책 3권_  <인도방랑>,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한번은> 
12    생애 최고의 영화 3편_  <수영장>, <카날라의 바느질>,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 잔>
13    가장 좋아하는 작가_  후지와라 신야, 잭 캐루악, 호시노 미치오
14    지금껏 가장 오래 체류했던 장소_  방콕
15    살면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_  다큐멘터리 <On the Road-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을 만든 것.
16    가장 후회되는 순간_  1994년 첫 여행지였던 시드니에서 체류를 연장할 방법을 찾아보지 않은 것.
17    의외로 집착하는 것_  좋은 커피
18    무의식적인 습관_  아침에 일어나면 93.1을 틀고 커피를 마신다.
19    아침에 눈 뜨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_  햇볕이 좋구나. 흐리구나.
20    새벽 2시와 오후 2시에 각각 주로 하는 일_  요즘 새벽 2시엔 바이크 용품 검색, 요즘 오후 2시엔 날이 좋아 바이크 타기
21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 일_  요즘엔 바이크 타기, 바이크 스터디
22    최근 가장 많이 검색한 검색어_  바이크
23    최근 가장 달라졌다고 느끼는 것 _ 이제는 제주도로 이주해도 괜찮겠다.
24    꼰대라고 느끼는 순간_  20대 여행작가들의 책을 펼쳐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때
25    한 번쯤은 해 보고 싶은 일탈_  슈퍼바이크로 시속 200km로 달려 보기.
26    생애 첫 여행지_  시드니
27    지금껏 다녀온 모든 여행지들_  그걸 다 나열하는 게 내겐 의미 없다. 특별히 기억나는 곳을 쓰자면,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보스니아 사라예보, 코소보, 런던, 파리, 뉴욕, 포르투갈 라구스, 이스라엘, 사모아, 쿡아일랜드, 캐나다, 나미비아, 사하라 사막, 남아프리카, 독일, 일본 하코다테 등
28    가장 많이 간 여행지 5곳_  독일, 런던, 방콕 등
29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 3곳_  나미브 사막, 사하라 사막, 로키산맥
30    다신 가고 싶지 않은 여행지_  모로코 마라케시, 돈밖에 모르는 인간시장 같았다.
31    여행 중 가장 맛있게 먹었던 음식_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 호텔의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먹은 스테이크
32    죽기 전에 가 보고 싶은 곳_  파타고니아와 남극
33    여행을 앞두고 걱정하는 것_  발리에서 한 번 크게 아프고 나선 아플까 봐.
34    여행갈 때 꼭 챙겨 가는 것 3가지_  맥북 외 특별한 물건은 없다.
35    사용 중인 카메라 기종_  파나소닉 미러리스 ZS 110
36    여행 기록법(노트, 어플 등) _ 틈날 때마다 페이스북에 끄적인다.
37    여행 중 가장 잘 잃어버리는 물건_  선글라스
38    여행 후 가장 먼저 하는 일_  없다.
39    매체 근무 및 기고 전력 모두_  <여행신문> 객원기자, 트래비 라이터 / <주간조선>, <경향신문>, <조선일보>, <한겨레>, <좋은생각>, <론리플래닛> 등
40    가장 어렵게 쓴 글_  다 어렵다.
41    스스로 생각하는 본인의 대표 여행기_  <책여행책>(개정판 <떠나고 싶을 때 나는 읽는다>)
42    작가라고 불리게 된 결정적 계기_  첫책 <On the Road-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
43    자주 쓰게 되는 단어 혹은 문장_  언젠가 페북 통계를 보니 : 나는, 내가, 나를
44    강연자로서 본인의 ‘말빨’을 평가한다면_  별로
45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강의 주제_  우리와 다른 세계의 차이
46    강의할 때마다 느끼는 감정_  강의는 어려워
47    여행작가로 살기 버거운 순간_  여행을 팔아 돈 벌려고 할 때
48    ㅇㅇ한 여행작가, 탐나는 수식어_  자기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작가
49    여행의 목적_  다른 세상에 대한 순전한 호기심
50    글을 쓰는 이유_  내가 본 낯선 세상을 알려 주고 싶다.

●언제나 여행, 오직 그것뿐  

일단 근황부터. 요즘 절망적인가?

왜 절망을 하나? 못 가서? 상황은 바뀔 텐데? 누가 그러더라. 어제도 전생이라고. 내일은 알 수 없다.

뭘 하면서 지내나. 답답하긴 하다. 바이크를 탄다.

여행작가 인터뷰를 하자니까, 첫 마디가 ‘나 여행작가 아닌데’였다. 진심인가?

여행은 삶의 방식! 여행작가라는 말 별로 안 좋아한다. 부질없는 바람만 가득한 직업이다. 부럽다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로 하는 사람은 없잖나.

못하는 거 아닌가?

그럴 수도 있겠는데…, (곰곰이 생각하다) 여행은 그냥 놀러 가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나. 좀 다른 얘기지만, 일간지의 여행 취재라는 것이 부서 상관없이 돌아가면서 마치 포상처럼 그러지 않나. 여행 기사를 쓰는 것이 그렇게 쉬운가 싶다. 그게 우리나라의 여행 기사의 수준인 거다.

그럼 본인이 돈을 버는 ‘업’은 무엇인가?

돈은 근근이 번다. 여행을 매개로 한 일들로. 이 질문에 대해서는 내가 유익한 답을 못하겠다. 직업으로서의 여행작가를 성실하게 하신 분들이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옳고 그른 것은 없다. 나는 그냥 내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럼 이제부터 여행가라고 부르겠다. 근데 장래 희망은 변호사였다는?

고시를 볼 생각도 있긴 했지. 장래 희망을 생각하기가 어려운 시대였다. 87년이었으니까. 후배, 선배, 동기 다 전과자 아닌 친구가 없었다. 그때는 그게 특별한 일도 아니었고.

어떤 장면이 기억나나.

박종철 치사 사건, 후배가 최루탄에 한쪽 눈이 실명하고, 법정에서 판사한테 큰소리치다 끌려나간 선배도 생각난다.

우울했겠다.

대학원에서 영화를 공부하다 94년에 시드니로 어학연수를 갔는데, 그 햇볕 가득하고 평화로운 풍경이 너무너무 낯설더라. 해외여행에 대한 갈망이 있었는데, 당시만 해도 소비적인 행위로 생각하는 분위기라 그냥은 못 가고 영어공부를 핑계로 편도 티켓을 끊었다. 첫 번째 해외여행이었다. 

<On the Road-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은 원래 영상 다큐였다.

카오산에 갈 때마다 수많은 나라에서 온 여행자를 만났는데, 여행 기간을 물어보면 6개월, 1년, 이런 식이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고, 그 의문에 대한 답이었다.

책으로 나와서 이례적으로 10만 독자를 기록했다. 한마디로 설명한다면? 사람들을 꿈꾸게 하는 책!

책이 성공했다. 영상보다 글에 더 재능이 있었나?

당시엔 영상 작업에 많은 장비가 필요하고 기술적인 제약이 많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다 했으니 조악할 수밖에.

후속작 <내 멋대로 행복하라>는 아무래도 주목받지 못했다.

10만 부를 팔고 나면 그 이후에 모든 책들은 더 이상 주목을 받을 수 없다.

이유가 그것?

잘 모르겠다. 자기 책이 잘 팔리면 다 알 것 같은데, 책이 안 팔리면 그다음부터는 다 모르겠더라. 그리고 그 책, 3만 부 이상은 팔렸다.

어, 그럼 많이 팔린 거다.

10만 부에 비교해서 그렇지 괜찮게 팔렸다. 그 책은 심지어 계약금이 1,500만원이었다.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문 예였다.

<방콕여행자>를 쓰게 된 계기는?

방콕을 좋아해서 7개월 정도 살았다. 그 시간을 정리한 것이다. 책이 안 팔리면서부터, 내 인생을 기록하는 의미로 책을 쓴다. 물론 팔고 싶지만, 출판사에 피해 안 주고, 나도 의미를 찾아야 한다. 내가 글을 쓰는 의미를. 그런 의미에서 내 인생의 기록이다. 누구나 내 인생의 기록은 필요한데, 누가 해 주겠나.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돈 이야기다. 진짜 인세로 수억을 벌었나?

누구나 계산할 수 있다. 책값의 10퍼센트 곱하기 팔린 부수. 초기 책들만으로 2억은 넘는다. 근데, 이것도 참 영세하지 않나? 어떤 분야의 톱이었다면서 그 정도라니.

부자인가?

(정색하며) 부자인 적이 없습니다! 아, 기억은 부자다. 죽을 때까지 할 이야기는 많다. 내가 떠올릴 기억이 많으니까. 여행을 하면서 배운 것도 많고. 배운 것을 누리기 때문에 부자일 수 있다. 돈이 없어도 럭셔리 라이프는 누릴 수 있다.

유명해지면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는 소문도 있었다. 인정하나?

나는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런 소문이 있을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아무튼 그때가 전성기?

돈이 기준이라면 그렇다. 돈이 아니라면 전성기라는 말은 잘 모르겠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없지 않나. 사는 게 대단하지 않다. 꽃피우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하루하루 사는 거다.

히트곡이 한 곡뿐인 가수 같은 느낌이 있다. 평가절하되었다고 생각하는가?

좀 아쉽긴 한데,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독자들에게 내 책을 왜 안 읽느냐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작가로서 자신의 글을 설명한다면? 명료하고 실체가 있는 글.

명료하지 않은 글이란?

감정의 과잉, 희망만 이야기하거나, 사랑만 이야기하는 것에는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는다. 세상이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 여행을 하면 할수록 실감한다. 세상이 그렇게 아름답지 않고, 인간은 그렇게 평등하지 않다.

여행의 실체라면?

여행자는 경계를 넘는 건데, 그 경계를 넘었을 때 안 좋은 일도 생긴다. 그런데 사람들이 생각하는 여행작가에는 그런 게 없다. 늘 좋은 데 가서 좋은 음식 먹고, 예쁘고 아름다운 것만 보고 온다고 생각한다.

여행작가의 글은 소설가, 시인, 에세이스트, 비평가, 기자의 글과 어떻게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아, 이건 어렵다. 여행작가의 글은 나머지 장르들의 장점들을 포괄할 수 있는 글이어야 한다. 여행기를 특정 장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여행글이 시적일 수도 있고, 다큐적일 수도 있다.

영화, 미술, 책 등을 다룬 여행책을 냈다. 지적 허세가 있나?

내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생각할 뿐이다. 여행은 물론이고! 영화, 책, 그림, 이 세 가지는 내게 3부작의 의미가 있었다. 역시나 내 인생을 정리한 것이다. 

박준 작가의 글은 잡지보다는 출판에 더 어울린다. 그래서 잡지 많이 안 쓰잖나.

그래도 <트래비>와 15년 동안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소심하게) 혹시 팸투어(출장) 때문인가?

물론이다. 여행작가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었던 혜택 같은 거다. 그런데 팸투어 기사 글이라고 해서 무작정 옹호하는 식으로 글을 써 오지는 않았다. 협찬을 받아서 다녀온 취재 원고가 거의 대부분 내 책에 들어갔으니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쓴 것이다.

개인 여행을 많이 가지 않나.

압도적으로 많다. 비교의 대상이 안 된다.

팸투어와 여행은 다르다는 건가?

잘 알지 않나. 여행작가라서 대접받는 여행은 드물다. 세상에 공짜가 없으니까. 하지만 팸투어를 통해 개별 여행자가 갖기 어려운 여러 소중한 경험을 했다. 감사하다.

팸투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팸투어라는 공간에서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따라 다른 것 같다. 나는 팸투어라고 해서 그걸 내 여행으로 만들지 않은 적이 없다. 따라만 가고 보여 주는 것만 보지는 않았다. 어떻게 하든지 뭔가를 찾으려고 했다.

팸투어에 초대받아야 인정받았다고 여기는 분위기도 있다.

진짜 그런가? 여행 산업 내에 들어간다면 돈을 벌기 위한 일이니까 뭐.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상황이 바뀌면 다른 일을 하지 않겠나.

다른 일을 생각해 본 적이 없나?

나는 변하지 않을 거다. 여행보다 더 좋은 것을 찾지 못했다. 

아직 미혼이다. 여행가라는 것과 관련이 있을까?

그렇다.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어딘가 낯선 곳을 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었으니까. 결혼보다는 여행이 좋다.

비혼주의? 전혀 아니다.

단지, 우선순위가 여행? 우선순위도 아니고, 그냥 비교할 게 아니다. 늘 여행이 중요했다. 여행이 삶이니까.

여자친구가 들으면 서운하겠다. 그 친구에게도 똑같이 이야기했다.

소통하는 팬이 있는가?

몇 년 전부터 페북을 하는 정도. ‘좋아요’를 잘 누르지 않는다. 팔로우를 늘리기 위한 거라면 공허하게 느껴진다. 시대가 바뀌어서, 네트워킹 툴을 지혜롭게 이용할 필요가 있는데, 여전히 관심이 안 가네.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있는데.

떨어지는 게 아니다. 그냥 없다. 그런데 또, 굉장히 능숙하기도 하다. 여행지에서 사람 만날 때는 그렇다. 내가 호기심이 있어서 접근하는 거니까. 

7kg 배낭에는 무엇이 들어 있나?

맥북, 속옷, 셔츠 한 장, 양말 한두 켤레. 미러리스 카메라 등 딱 저비용 항공기를 타기 좋게.

책은? 없다.

하나를 빼라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카메라. 그 순간에만 더 집중하고 싶다.

여행작가가 사진을 안 찍는다고?

핸드폰이 있으니까. 이젠 장면을 만들어내는 여행 사진이 나한테는 의미가 없다. 예전에는 나도 무심코 찍었지. 극단적인 인물 클로즈업 같은 것. 하지만, 과연 그 아이가 알까?

허락을 받는다면?

아이가 그 질문을 이해할까?

사진에 욕심이 없는 건가?

영화를 전공했는데 사진에 대한 욕심이 없겠는가? 여행을 방해할 정도로 무거운 카메라는 부담스럽다는 말이다. 실제를 왜곡하는 사진은 공허하고, 사진과 여행 중 선택해야 한다면 여행을 선택하겠다. 제주 방주 교회에서 20대 중반 청년이 사진을 찍어 달라면서 인스타그램의 특정 구도를 요청하더라. 이 명랑한 아이가 왜 자기만의 포즈를 취하지 못할까 싶었다. 내가 가서 한 행동이 ‘나’ 아닌가. 그렇다면 너는 어디에 있는 거니?

그럼 기록을 어떻게 하나?

하고 싶은 메모, 꼭 필요한 정보만 기록하는 정도다. 그러고 보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여행자네. 팔기는커녕 나누기도 싫어하는 거니까. 

여행 중에 죽게 된다면 어디에 묻히고 싶나?

대자연. 로키. 화장해서 날려 보내 주면 한국에 알아서 돌아오겠다. 좀 돌아다니다가.

450여 개의 스탬프라니, 여행을 많이 했다. 우월감을 느끼는가?

(웃음) 더 많이 찍은 사람들도 많을 걸. 우월감은 전혀 아니고 속지가 부족해서 사증 추가를 한 적이 있는데, 재미있다 정도.

450회의 여행 중 딱 하나만 다시 갈 수 있다면?

로키. 지금까지 2번을 갔다. 대자연, 다채로운 자연. 탐험할 게 많다. 자연이 단순하지 않다.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라고 느끼나?

물론! 여행작가가 그렇게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월감이라고 했는데, 나는 별로 그런 게 없다. 사는 게 그렇게 뭐 특별한가. 그냥 사는 거지. 근데 이걸 인정해야 살 수 있다. 삶은 아주 비루하기 때문에 여행지에 가서 특별한 사진을 남기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근데 그 사진에 내가 없는 게 문제지.

염세주의인가? 세상이 그렇게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행을 그만둬야 할 때가 됐다고 느낀 적은 없나? 없다.

작가는?

여행작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작가인데 여행을 하는 거다. 직업은 작가. 여행은 삶의 방식이다. 혼자니까 가능했던 것 같다. 부양가족이 있다면 달랐을 것이다.

바보 같다고 느끼는 질문은? 어디 가면 좋은가. 그걸 왜 나한테 묻나? 

원고에서 매 여행마다 살고 싶다고, 다시 꼭 가고 싶다고 말하더라. 여행기를 마무리하는 관성인가?

진심이다. 욕심이 많은 거지. 여행에 대한 탐욕. 대자연도 좋아하고 세련된 도시도 가 보고 싶고, 그게 바뀌지 않는다.

별로 치열한 스타일은 아닌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치열한 것 같기도 하고, 매우 덤덤한 것 같기도 하고. 발리에서 티푸스에 걸렸을 때, 의사 후배가 치사율이 10퍼센트라고 빨리 돌아오라고 했었다. 근데도 안 돌아가고 회복해서 한두 달 더 말레이시아를 여행했다. 나한테는 생사를 넘나드는 일이었지만, 계속 여행한 걸 보면 치열한 것 같기도 하고.

요즘 여행책, 여행잡지는 읽을만한가?

거의 읽지 않는다. 남의 여행에 크게 관심이 없다. 최근에 산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전율하면서 봤다. 그런 식으로 내가 몰랐던 세상을 보여 주는 것에는 환호한다. 그 다큐 꼭 봐라. <마운틴 콘체르토>.

책도 추천해 달라.

보통은 후지와라 신야 책을 좋아한다고 말하는데, 그 사람 운이 좋았다. 1960~70년대에 여행을 했기 때문에 그런 글을 쓸 수 있었다. 인터넷도 없는 시대, 히피들이 여행하던 시절. 여행의 황금시대를 누린 거다.

박준스러운 삶의 방식을 좋은 삶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내 삶인데, 누군가에게 이런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그런 말은 못 하겠다. 각자가 판단할 문제.

<트래비>에 뼈아픈 한마디를 한다면?

<트래비>뿐 아니라 모든 매체에 해당되는 말인데, 협찬 없이 뭔가 자체적으로 진행할 수는 없을까? 우리가 정말 하고 싶은 취재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수 있을까? 근데 뭐, 그런 걸 뭐 조중동도 안 하는데…. 여행 산업 내에 있고, 거길 벗어나서 존재할 수 없으니까 딜레마일 것 같기는 한데, 소현 팀장도 하고 싶은 취재가 있을 거 아닌가. 

 

*작가, 여행가. 낯선 세상의 자극이 좋아 세상을 떠돌며 글을 쓴다. 여행으로 인생을 기록한다. 월경자(越境者)가 되어 세상의 온갖 경계를 넘고 싶다. <영화가 우리를 데려다주겠지>, <여행자의 미술관>, <On the Road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 등 몇 권의 책을 썼다. 종종 <주간조선>에 글을 쓰고 <경향신문>에 ‘박준의 온더로드’를 연재 중이다. 4개의 여권에 450여 개의 스탬프를 찍었다. 두세 달씩 전 세계 어디를 가도 7kg 배낭 하나면 족하다.

저서
2018, 영화가 우리를 데려다주겠지 | 어바웃어북 
2016, 떠나고 싶을 때 나는 읽는다 | 어바웃어북 
2016, 여행자의 미술관 | 어바웃어북
2012, 뉴욕, 뉴요커 | 생각을담는집 
2012, 방콕여행자 | 삼성출판사  
2010, 책여행책 (휴가 없이 떠나는 어느 완벽한 세계일주에 관하여) | 엘도라도
2008, 언제나 써바이 써바이 | 웅진윙스 
2007, 네 멋대로 행복하라 (꿈꾸는 사람들의 도시, 뉴욕) | 삼성출판사
2006, On the Road (온더로드,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 | 넥서스BOOKS 


인터뷰 천소현 기자  사진 강화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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