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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홍차 로드- 실론티 한 잔에 담긴 것들

  • Editor. 천소현 기자
  • 입력 2020.06.01 17:10
  • 수정 2020.06.01 17: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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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디에서 출발한 기차는 차밭 사이를 시속 23km로 달린다
캔디에서 출발한 기차는 차밭 사이를 시속 23km로 달린다

●Tea Road
스리랑카 홍차 로드 
실론티 한 잔에 담긴 것들

Kandy캔디 - Nuwara Eliya누와라엘리야


홍차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잘 알든, 모르든, 스리랑카에서 마시는 홍차는 맛있다. 에티오피아에 다녀온 사람들이 갑자기 커피 예찬을 시작하는 것처럼 말이다. 다 오리지널의 힘이다. 한국의 비싼 티숍에서 마셨던 영국 홍차보다 스리랑카의 언덕 휴게소 홍차가 더 인상 깊었음을 고백한다. 이런 ‘홍차알못’이 짧은 여행으로 홍차 마니아가 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스리랑카 홍차여행은 예찬할 수 있다. 역사, 문화, 사람, 자연이 모두 한 잔에 담기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홍차 로드. 

영국 식민 시대부터 달려온 기차는 그 자체로 앤티크다
영국 식민 시대부터 달려온 기차는 그 자체로 앤티크다

●그들이 기차를 타는 이유 


출발지는 캔디다. 이곳에서 여행자들은 기차를 탄다. 빠르고 편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느리고 불편하다. 그런데도 기차표가 동나는 이유는 기차 밖에 있었다. 캔디를 떠나 스리랑카 최대의 홍차 산지인 누와라엘리야(Nuwara Eliya)까지 가는 여정은, 온통 몽글몽글한 차나무의 연속이라 내내 장관이었다. 에어컨이 빵빵 터지는 대신 창문을 열 수 없는 1등석을 예매한 것은 실수였다. 동행한 여행작가는 4시간 내내 객차와 객차 사이에 매달려 있었으니 말이다. 녹색 언덕을 가르며 달려가는 파란 기차와 기차가 보일 때마다 손을 흔들어 주는 산악마을 사람들의 일상 풍경이 그의 카메라를 놓아 주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홍차가 생산되고 있는지 똑똑히 보라는 듯 기차는 내내 시속 23km를 고집했다. 여기에 ‘리틀 잉글랜드’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영국인들의 노스탤지어였을 것이다. 

기차는 풍경을 꼼꼼히 훑고 지나간다. 갈보다역을 지나면 곧 폭포가 나온다
기차는 풍경을 꼼꼼히 훑고 지나간다. 갈보다역을 지나면 곧 폭포가 나온다

나누 오야(Nanu Oya)역에 내리니 공기부터 달랐다. 해발 1,500~2,000m 산지이니 연평균 기온이 11~20C° 사이라 객실에 들어가자마자 히터를 틀기 바빴다. 하지만 높은 고도 덕분에 낮이 되면 태양은 다시 뜨거워졌고, 여인들은 뙤약볕 아래에서 찻잎을 따 내고 있었다. 몇 시간을 달려도 펼쳐지는 차밭이 모두 잘 가꿔진 정원처럼 보인다는 것은, 그 모든 한 그루마다 일일이 여인들의 손이 가 닿았다는 뜻이다. 스리랑카에서 커피와 차의 상업재배가 시작된 1800년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이마에 자루 끈을 걸고 여린 찻잎을 따 내는 여인들의 모습이다. 

느리고 불편해도 여행자들은 기차 여행을 고집한다
느리고 불편해도 여행자들은 기차 여행을 고집한다

실론은 스리랑카의 옛 이름이고, 차 중개업자들은 중국산 홍차를 대신할 요량으로 실론티를 양질의 홍차로 적극 홍보했다. 이렇게 명성을 얻은 인도의 아쌈과 다즐링, 스리랑카의 실론티는 유럽으로 건너가, 수천 종의 가향차로 상품화되어 립톤, 트와이닝, 로네펠트, 포트넘앤메이슨, TWG, 딜마 등의 브랜드로 전 세계에 유통되고 있다. 지금도 스리랑카 홍차의 대부분이 콜롬보로 운반되어 경매에 붙여진다. 스리랑카는 세계 2위의 차 수출국이고, 그 상대국은 영국이다. 

캔디시 외곽의 고원지대에서 찻잎을 따는 여인
캔디시 외곽의 고원지대에서 찻잎을 따는 여인

●싱글오리진 실론티의 맛 


홍차의 싱글오리진을 즐길 시간이다. 누와라엘리야 지역에 널린 게 다원이고, 대분의 다원에서 시음과 공장 견학, 차 판매를 한다. 우리가 찾아간 담로(Damro) 다원에도 직원들이 버거울 정도로 방문객이 넘쳐나고 있었다. 이 다원 하나가 경작하는 차밭이 저지대부터 고원까지 50km2가 넘고 15개의 공장에서 연간 800만 킬로그램의 차를 생산한다. 늦은 오후 꽤 지친 표정의 안내원은 기계적으로 홍차 제조 과정을 설명했다. 그녀의 목소리를 기계음이 집어삼키는 통에 함께 지쳐 버렸다. 위조(실내 또는 실외에서 바람으로 차의 수분을 날리는 과정), 유념(차를 비벼 말아 모양을 내는 과정), 산화발효, 건조 등의 단어가 빠르게 머릿속을 휘저었다. 

누와라엘리야의 세인트 클라라 폭포
누와라엘리야의 세인트 클라라 폭포
산악마을의 사람들은 대부분 차 산업에 종사한다
산악마을의 사람들은 대부분 차 산업에 종사한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달달한 홍자 한 잔이렸다. 티라운지로 돌아오자 뜨겁게 차 한 잔이 테이블로 급송되었다. 우유를 섞지 않은 홍차 한 모금이 목을 타고 넘어갔다. 정신이 맑아지면서 다가온 고민은 어떤 차를 구입할 것인가였다. 가지 끝의 새순인가(Tippy, Golden, Flowery) 더 큰 잎인가(Orange Pekoe), 그것을 분쇄했는가(Broken) 아닌가(Whole leaf)에 따라 다양한 등급의 홍차로 구분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등급에 따라 가격 차이가 꽤 나므로 가이드의 조언을 따랐다. 평소 그가 마시는 것과 같은 걸로! 지금도 꽤 만족하며 음미하는 중이다. 

제법 규모가 큰 다원 중 하나인 담로(Damro)
제법 규모가 큰 다원 중 하나인 담로(Damro)
다원을 방문하면 신선한 실론티를 음미할 수 있다
다원을 방문하면 신선한 실론티를 음미할 수 있다

▶페라데니야 로열 보타닉가든과 실론티 
Royal Botanic Gardens

싱할라왕국의 마지막 수도답게 캔디에는 왕족들을 위한 로열 보타닉가든이 있다. 처음으로 홍차가 재배된 곳도 바로 이곳이다. 첫 차나무는 1824년 중국에서 들어와 로열 보타닉가든에 뿌리를 잘 내렸고, 20여 년이 지난 1867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제임스 테일러가 캔디에 농장을 꾸린 것이 실론티 상업재배와 수출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막상 보타닉가든을 방문하면 차나무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각국에서 선물한 귀한 나무와 수백년 이상 자란 고목에 마음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4,000여 종의 식물 표본을 볼 수 있으며, 식물연구소와 농업국도 여기에 있다. 

주소: Peradeniya Rd, Kandy, Sri Lanka
홈페이지: www.botanicgardens.gov.lk
전화: +94 812 388 088
 

 

글 천소현 기자  사진 김민수(아볼타) 
취재협조 주한스리랑카대사관, 스리랑카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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