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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상상은 그림이 된다

일러스트레이터 곽명주

  • Editor. 강화송 기자
  • 입력 2020.07.01 1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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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복잡할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간단한 그녀의 대답.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고 싶은 대로.

 

●눈을 감고도 보이는 것 

 

언제부터 그림을 그렸나요?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건 대학교 2학년 때부터였어요.

아, 미술을 전공?

대학교 입학은 화학공학과로 시작했어요. 그때는 ‘화학 선생님’을 꿈꿨었거든요.

어쩌다 그림을 그리게 된 건가요.

공부하다 보니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싶었던 게 아니라 스승님처럼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걸 깨달았어요. 다시 말하면 화학이 적성에 안 맞았다는 뜻이에요(웃음). 그래서 전과를 했어요, 시각디자인과로.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었죠.

어릴 적부터 미술에 관심이 있었나 봐요.

그냥 그림 그리는 시간을 좋아했어요. 언니가 미술 전공자라 집에 놓인 도구들의 영향을 받은 거 같기도 해요.

서울 연희동에 자리한 그녀의 작업실. 따뜻한 온기가 그녀를 닮았다
서울 연희동에 자리한 그녀의 작업실. 따뜻한 온기가 그녀를 닮았다

시각디자인과를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시 미술이 필요하잖아요.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었을 텐데요.

맞아요. 입시 미술을 전혀 배워 본 적이 없어요.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단점이라면 무엇인가를 똑같이 묘사하는 것을 못 해요. 또 미술의 통상적인 과정을 잘 모르죠. 반면 장점은 그 덕분에 제 맘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 스스로 그리며 터득한 방법으로 그려요.

스스로 터득한 방법이 뭔가요?

그리는 것에는 순서가 없다는 것이에요. 스케치 후 채색을 하기도, 채색 후 스케치를 하기도 해요. 그림은 정해진 것이 없어요. 도화지가 그래서 하얀 거잖아요. 내키는 대로, 느끼는 대로.

보통 영감은 어디서 얻나요?

모든 그림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나온다고 생각해요. 여행을 가서 본 것을 그리기도, 여행 중 보고 싶었던 장면을 상상해 그리기도, 어떤 생각을 하다 떠오른 것을 그리기도 해요. 눈을 감고도 보이는 것들을 그려요.

제가 느끼는 작가님 그림의 포인트는 곡선인 것 같아요. 부드러우면서도 강해요.

그런가요, 저는 자연을 좋아해요. 특히 사람의 손이 정말 닿지 않은 대자연이요. 자연에서는 직선을 찾기 힘들잖아요. 그래서 곡선이 특별해 보이는 게 아닐까요? 도시, 건물, 자동차 같은 것을 그릴 때는 직선을 사용해요. 정말 반듯한 느낌을 주고 싶어서 자를 대고 천천히 그릴 때도 있죠.

인물에 사용되는 곡선은 무척 강렬하고, 꽃이나 잎처럼 식물에 사용되는 곡선은 무척 세심한 것 같아요.

맞아요. 자연의 곡선은 최대한 세심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해요. 그런 것들이 전부 다 성격이랑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왜 좋아하는 것에는 세심해지고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지잖아요. 

 

●파란색 

 

가장 좋아하는 색은 뭔가요?

파란색. 아주 진하고 차분한 파란색.

실제로 작가님의 이상에 가까운 파란색을 본 적이 있나요?

대략 40일 정도 일정으로 남미를 여행했어요. 페루를 시작으로 칠레, 아르헨티나를 둘러보는 코스였죠. 칠레 북부를 여행하며 ‘산 페드로 아타카마’라는 마을을 들렀어요. 거기서 차를 타고 대략 4시간 정도 이동하면 ‘라구나 미스칸티(Laguna Miscanti)’라는 호수에 도착해요. 무려 해발 4,140m에 위치한 호수인데 너무 맑아 모든 것이 반영되어 보였어요. 민둥산, 들판,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한 하늘. 눈앞에 존재하는 모든 풍경이 호수에 반영되어 보였던 그 순간은 아직도 잊지 못해요. 가장 이상에 가까웠던 파란색이었어요.

남미의 대자연에 빠졌다
남미의 대자연에 빠졌다

아, 남미 여행 정말 제 버킷리스트에요.

정말 추천해요. 거대한 자연을 마주해 보니 인간은 자연의 아주 작은 일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남미 여행에 관심이 있고 걷는 걸 좋아하면 파타고니아 W 트레킹도 생각해 보세요.

파타고니아 W 트레킹
파타고니아 W 트레킹

파타고니아 W 트레킹이요?

파타고니아는 남미 아래쪽 삼각 부분을 뜻하는 안데스 산맥을 기준으로 서쪽은 칠레, 동쪽은 아르헨티나로 나뉘어 있어요. 그중 W 트레킹은 파타고니아의 코스를 W자 모양으로 걷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에요. 보통 3박 4일, 4박 5일로 계획해서 가는데 6~8kg 정도 되는 캠핑 장비를 메고 다녀야 하니 강인한 체력이 필수죠. 제가 갔을 때는 바람이 어찌나 불던지, 바람에 휩쓸려 날아간 적도 있어요. 사막지형에 가면 바닥에 가시덤불 같은 게 많거든요. 넘어지면서 거기에 찔려 아찔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네요. 이렇게 회상하니 힘든 추억만 가득한데, 정말 다시 가고 싶어요. 깨끗한 자연을 향한 여행자들의 의식 역시 아주 매력적이었어요.

40일간의 남미여행을 함께한 그녀의 반쪽
40일간의 남미여행을 함께한 그녀의 반쪽

●사라지지 않는 것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요.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고 싶은 대로 그려 보세요. 아이들에게 스케치북을 하나 주고 그림을 그려 보라고 하면 계획 없이 순수한 자세로 임해 열중하잖아요. 그림을 ‘잘’ 그린다는 의미는 그런 것 같아요. 멋지게 그리고 싶은 욕심이 아니라,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즐겁게 그리는 것.

그림은 배움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닌가요?

그림에 필요한 기능은 배울 수 있죠. 붓은 어찌 사용하는지, 연필은 어찌 사용하는지. 나무를 보세요. 다 다르게 생겼잖아요. 또 바람에 흔들리는 매 순간이 다르잖아요. 내게 보이는 대로, 우선은 스케치북에 표현해 보세요.

문득 궁금해요. 작가님이 그린 가장 첫 작품은 무엇이었을까요?

글쎄요. 정확한 대답은 아닐지 몰라도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그려 왔어요.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소요되나요.

다 달라요. 스스로 정말 재밌다고 생각하는 작품은 금방 완성하죠. 반면 제가 잘 모르는 것을 그릴 때는 오래 걸려요. 그림은 취미이자 직업이기 때문에 항상 아는 것만 그릴 수 없답니다(웃음).

신기해요, 작가님 그림은 어디서 봐도 작가님 그림인 걸 알 수 있어요.

아, 그런가요? 그 포인트가 뭘까요. 생각해 보면, 색감 어쩌면 해석일 수도 있겠네요. 저는 기본적인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것을 똑같이 그리지 못해요. 그래서 스스로 해석하고, 상상을 더해 그림을 그리죠. 저만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인 거 같아요.

요즘은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요?

7월부터 서촌에 위치한 소품숍 ‘원모어백’에서 작은 전시회를 계획하고 있어요. 또 책 삽화 작업과 카카오톡 이모티콘 작업 등등.

작가님에게 그림은 뭔가요?

가수는 음악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잖아요. 저는 그림으로 감정을 표현해요. 감정은 매번 다르잖아요, 그리고 무한하고. 그림도 같죠. 가끔 지금까지 흘러온 수많은 나와 그림들의 기억을 돌아보면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만은 집 같은 곳에 있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곳에서 오래오래 머물고 싶어요. 

on a train journey |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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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로 가는 길 |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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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y to Atacama |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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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agonia |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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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 |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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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no,Peru |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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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마음 |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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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명주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은 사실적이라기보다 자신의 눈을 통해 해석한 고유의 감각이 담겨 있다. 거친 터치, 세심한 표현, 자연을 닮은 색을 사용해 일상에 마주치는 마음을 기록한다. 눈을 감고도 보이는 것, 사라지지 않는 것, 아무것도 아니어서 특별한 것들을 표현한다. 인스타그램 mengju
 

글·사진 강화송 기자  일러스트 곽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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