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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다,산 모두 푸른 청산도

  • Editor. 김민수
  • 입력 2020.09.01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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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靑山)이라는 이름이 전혀 버겁지 않다. 이곳저곳이 실로 푸른 섬이다. 
다섯 번째 청산도 여행에서는 그 푸름에 조금 물들었다. 느긋하고 풋풋해졌다. 

초분 모형과 하트 모양의 독살이 묘한 대조를 이루는 당리 언덕과 도락리 앞바다
초분 모형과 하트 모양의 독살이 묘한 대조를 이루는 당리 언덕과 도락리 앞바다

“오늘은 배가 안 뜬다네요.” 완도 민박집 아주머니가 말했다. 그녀의 표정에 걱정이 없는 것은 하루 더 묵어갈 손님이 생겼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섬으로 갈 때 일기예보를 보지 않은 지도 꽤 되었다. 미리 살피고 대처하던 여행이 언제부터 이리 느슨해진 걸까? 


대중교통에 의지했던 여정이 차를 운전하고 다닌 후부터 많이 달라졌다. 계획대로 해야 한다는 부담도 없어지고 시간에 대한 개념도 희미해졌다. 오늘 하루는 민박집 밖으로 나가지 말고 반성이나 해야겠다. ‘내키는 대로’란 자유를 빙자한 게으름의 발로가 아닐까? 아무튼, 섬은 정성이다.

해풍에 꾸덕꾸덕 반 건조된 생선은 튀겨 먹어도 좋고 쪄 먹어도 맛이 그만이다
해풍에 꾸덕꾸덕 반 건조된 생선은 튀겨 먹어도 좋고 쪄 먹어도 맛이 그만이다

●맘 편한 도청리


다음날 느지막이 완도항 여객선터미널로 나갔다. 평일이라 여객선은 한산한 편이었고 차량도 어렵지 않게 실을 수 있었다. 완도항에서 청산도항까지는 50분, 바다 위를 날아온 바람이 거셌지만, 승객들 대부분은 마스크를 한 채 갑판 벤치에 머물러 있었다. 코로나 시대의 슬기로운 여행법이다. 

아무 생각 하지 말고 쉬어 가라 토닥이는 신흥리 앞바다
아무 생각 하지 말고 쉬어 가라 토닥이는 신흥리 앞바다

여객선이 청산도항에 닿았다. 어떤 이유로든 이곳에 발을 디디면 시간이 지체된다. 방문자센터에 들러 관광지도도 얻어야 하고 내친김에 화장실도 다녀와야 한다. 전복, 갑오징어, 소라가 유혹하는 수산물센터를 기웃거리다 어느 식당으로 들어가 섬백반이나 먹어 볼까 고민도 해 본다. 도청리에는 면사무소, 한의원, 약국, 주유소, 마트 등 웬만한 편의 시설은 다 있다. 그래서 늘 북적이고 또 여행자의 발목을 잡아 멈추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당리 언덕은 사계절 다양한 꽃이 피어나는 청산도의 첫 번째 포토 스폿이다
당리 언덕은 사계절 다양한 꽃이 피어나는 청산도의 첫 번째 포토 스폿이다

청산도는 2007년 담양 창평, 장흥 유치, 신안 증도 등과 함께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에 지정되었고 2018년에 재인증을 받았다. 코로나 때문에 올해는 취소가 됐지만 매년 봄에 슬로시티 걷기 축제를 개최한다. 슬로길은 테마별로 짧게는 2km에서 길게는 6km까지, 11개의 코스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두를 합치면 100리나 된다. 청산도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자차를 이용해도 좋지만, 관광객이 붐비는 봄, 가을철 성수기와 주말에는 간편하게 배낭만 메고 들어와 순환 버스로 돌아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주중 10회, 주말 12회 운행하는 버스는 5,000원만 내면 청산도항을 출발, 주요 관광 포인트를 거쳐 원점으로 회귀할 때까지 얼마든지 내리고 타기를 반복할 수 있다. 또한, 투어버스는 단돈 7,000원에 해설가가 탑승해 150분간 함께 섬을 돌며 재미있는 이야기까지 전해 준다. 

한적하게 해송 숲을 거닐고 야영도 할 수 있는 지리청송 해변
한적하게 해송 숲을 거닐고 야영도 할 수 있는 지리청송 해변

●물 건너간 낙조


청산도에는 3개의 해수욕장이 있다. 그중 항에서 가장 가까운 지리청송 해수욕장을 찾았다. 1km가 넘는 백사장 뒤로 수령 200년 이상의 해송이 들어서 있고 그 아래에서 캠핑도 할 수 있게 배려되었다. 게다가 섬의 대표적 낙조 포인트 중 하나다. 하지만 텐트와 지는 해를 사진에 함께 담으려면 해송 숲을 벗어나야 했다. 우람한 나무 굵기에 사이사이의 간격이 좁고 울창하게 뻗어난 가지가 시야를 가리기 때문이다. 지난 네 번의 청산도 여행에서도 제대로 된 낙조를 촬영한 기억이 없다. 결국, 해송 숲을 조금 벗어난 해변의 우측 초입에 텐트를 치고 해가 저물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해변 옆 지리마을에서 색소폰 소리가 들려왔다. 적막함에 감성이 더해지니 제법 그럴싸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청산도는 바람이 많이 부는 섬이다. 야영할 때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청산도는 바람이 많이 부는 섬이다. 야영할 때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항구의 마트에서 사 온 건해초모듬을 넣어 코펠 밥을 지었다. 톳, 세모가사리, 꼬시래기 등이 들어간 밥은 향은 물론 식감도 괜찮았다. 영양식이 별거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콧노래가 나오려는 순간, 하루해가 저물어 갈 방향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근데 웬걸, 방향을 잘못 잡았다. 나뭇가지에 가리더라도 해송 숲 안에 설영을 해야 했던 것이다. 오늘도 실패라 생각하니 괜한 심술이 났다. ‘오늘 낙조는 별거 없을 거야, 차라리 구름에나 가려져 버리길.’

달팽이는 슬로시티 청산도를 상징한다
달팽이는 슬로시티 청산도를 상징한다
가을이 깊어 가면 붉은색으로 뒤덮일 국화리 단풍길
가을이 깊어 가면 붉은색으로 뒤덮일 국화리 단풍길

●청산도 민박의 이유


지리에서 국화리로 넘어가는 길은 단풍나무가 양옆으로 늘어서 터널을 이룬다. 깊은 가을의 청산도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초록의 싱그러움이 남아 있는 초가을의 단풍길도 좋아 보였었다. 진산리 갯돌해변은 캠핑했던 경험이 있어 낯이 익고 반가운 곳이다. 파도에 실려 가는 갯돌 소리도 평화롭고 방파제가 바닷바람을 막아 줘서 생기는 오붓함도 있다. 게다가 이곳은 신흥리 해변과 더불어 해돋이 명소로도 유명한데, 그런 이유로 청산도 최고의 야영지로 꼽힌다. 고풍스러운 옛 돌담을 따라 동천리 마을을 산책하던 중, 바닷장어 수십 마리를 들고 있는 어르신을 보았다. 알고 보니 동촌리와 신흥리 앞바다가 장어 산지로 유명하다는 것, 잡아 온 장어들은 배를 갈라 손질 후 높은 장대에 매달아 해풍에 건조한단다. 어르신이 운영하는 민박에서는 장어탕이 1인분에 1만원, 숯불구이는 1만5,000원을 받는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앞으로 청산도 여행은 무조건 민박이라고 굳게 다짐했다. 

동천리는 꼭 한번 머물고 싶은 예쁜 마을이다
동천리는 꼭 한번 머물고 싶은 예쁜 마을이다

상서리는 옛 청산도의 자취가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오래전 사람들은 돌담을 쌓아 집과 밭의 터를 만들고 그 경계로 삼았다. 그 위로 내린 담쟁이덩굴은 돌과 한 몸이 되었고 담장을 더욱 단단하게 조였다. 세계중요농업유산인 구들장논과 함께 마을 전체가 등록문화재인 옛담장길로 이어져 있는 상서리는 현재 명품마을로 꼽히고 있다.

진산리는 청산도에서 일출이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마을이다
진산리는 청산도에서 일출이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마을이다

●아리랑과 왈츠


영화 <서편제>의 마지막 장면은 당리 언덕에서 촬영됐다. 유봉 일가가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덩실덩실 춤을 추고 내려오는 5분 20초의 롱테이크는 청산도를 상징하는 최고의 장면으로 남아 있다. 당리 언덕 안쪽에는 TV 드라마 <봄의 왈츠> 세트장이 세워져 있다. 윤석호 감독의 계절 시리즈(<가을동화>, <겨울연가>, <여름향기>)의 완결편인 <봄의 왈츠>는 애초 만재도로 정했던 주 무대를 청산도로 옮겼다. 청산도에는 행운이었다. 누구라도 애정하는 유럽풍의 하얀 세트장은 봄 유채꽃, 여름 해바라기, 가을 코스모스 등 계절마다 꽃을 바꿔가며 관광객을 유혹한다. 종영 15년이 지난 지금도 청산도에서 봄의 왈츠가 들려오는 까닭이다.

파도가 전해주는 청아한 갯돌의 울림 진산리갯돌해변
파도가 전해주는 청아한 갯돌의 울림 진산리갯돌해변

하늘, 바다, 산 모두가 푸르러 ‘청산(靑山)’이라는 이름이 전혀 버겁지 않은 섬. 이곳저곳을 돌아보고 채웠으니 다음번 청산도 여행에선 조금 비워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한적하고 평화롭던 동촌마을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장어 때문일까?  

 

▶PLUS+ 
청산도 가볼 만한 곳 

척박한 땅과 거친 바다를 일구며 살았던 청산도 사람들의 이야기는 역사로 새겨져 있다.

배편 | 완도 여객선터미널에서 매일 7회 운항 
여행정보 | www.cheongsando.net

활력 충전소
범바위

범의 형상을 닮았다는 청산도 남쪽에 있는 바위로 바위 앞에서는 강한 자기장이 발생해 나침판이 무력해지거나 휴대전화 배터리가 눈에 띄게 줄어드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자연상태의 음이온이 가장 많이 방출되는 바위로 알려져 기와 활력을 받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찾아든다. 

내려서 보거라  
고인돌(하마비)

읍리마을에 보존되고 있는 청동기시대의 무덤 양식 지석묘는 밑에 기둥이 없는 남방식 고인돌로 3기가 원형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하마비 뒷면에는 음각 마애불이 새겨져 있는데 재래신앙과 불교가 융합된 것으로 풀이된다. 지위가 높은 사람도 하마비 앞에서는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속설이 전해진다.

건물부터가 역사  
향토역사문화전시관

향토역사문화전시관은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옛 면사무소 건물을 리모델링한 건축물로 ‘2012 제7회 한국농어촌건축대전’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특히 청산도의 돌을 사용한 외벽은 그대로 유지하고 천장은 제거해 목조 지붕 구조물을 고스란히 드러나게 했다. 이곳에서는 청산도의 자연과 생활상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주로 전시된다.

온돌을 닮았네!  
구들장논

구들장논은 바닥에 돌을 온돌 구들처럼 깔고 그 위에 흙을 덮어 만든 자투리 논이다. 논바닥 아래에 통수로를 만들어 흘려보낸 물로 아래 논을 채우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구들장논은 국가중요농업유산 1호로 지정되었는데 급한 경사지나 물 빠짐이 심한 토양 등 척박한 자연환경을 극복한 역사적 사례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삼치의 내습  
청산파시문화거리

청산도항은 193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삼치와 고등어 파시가 열려 여름철이면 수십 척의 어선이 몰려들어 성황을 이루었다. 안통길로 불리는 청산도항의 뒷골목은 그 시절의 생활문화를 재현 기록해 두고 있다. 골목 벽면에 붙어 있는 1937년 <동아일보> 기사가 눈길을 끈다. ‘청산도 근해안 고등어, 삼치 내습’.


글·사진 김민수(아볼타)  에디터 천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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