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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용’한 여행, 순천 용오름마을

  • Editor. 김예지 기자
  • 입력 2020.09.01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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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마당에서 새 소리를 듣고 길고양이와 알 수 없는 밀당을 하며 물 좋은 계곡에서 꾸밈없는 시간을 보냈다. 
대단한 무언가를 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귀한, 그것은 유독 가족의 특성이기도 했다.

고추 재배가 한창인 용오름마을의 여름날
고추 재배가 한창인 용오름마을의 여름날

●순천의 순한 기운


기분 탓일까. 순천에 가까워질수록 한결 온순해지는 것 같다. 언젠가 순천에 다녀온 누군가가 ‘순하다’고 말했던 기억 때문일지도 모른다. 곤두서 있던 날도 뾰족했던 성미도 조금은 잠잠해지고 있었다. 순천역에 도착해서도 목적지까지는 차로 40분을 더 가야 했다. 꽤 굽이진 도로가 이어졌고 창문 사이로 드는 뙤약볕이 팔뚝 아래 마구 내리쬐었다. 이 모든 게 그저 순하고 연하게 느껴진 건 순전히 기분 탓이었겠지. 순천의 첫 기운이 그랬다.

시골길을 걷다 보면 머리가 가벼워진다
시골길을 걷다 보면 머리가 가벼워진다
고추가 특산물이라는 건 벽화에서부터 알 수 있다
고추가 특산물이라는 건 벽화에서부터 알 수 있다

용오름마을은 사실상 순천시내보다는 화순과 곡성 가까이에 있었다. 그러니까 거의 순천의 끝에 다다랐을 때, 그제야 ‘운룡리’, ‘용오름’이 쓰인 표지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떤 바위는 거북이가 되고 어떤 산은 호랑이가 되는 것처럼 이 마을은 용과의 인연이 깊다. ‘운룡리(雲龍里)’라는 지명은 위에서 마을을 바라보면 마치 용이 구름을 안고 하늘로 날아가는 모습이라 해서 붙여졌다.

돌담이 매력적인 운룡2길
돌담이 매력적인 운룡2길

인구 총 106명. 이중 60%가 노인, 초·중학생은 9명. 마을 사람들의 3분의 2 가량이 고추 농사를 짓고 살아간다. 작은 마을이지만 도서관, 보건소, 돌봄센터, 마을회관, 노인정, 교회 등 용오름마을에는 필요한 시설이 살뜰히 갖춰져 있었다. “서울에서 왔는가? 더운데 여까지 왔누?” 새빨간 고추 벽화 앞에서 만난 동네 어르신이 정겹게 건넨 말씀. 계곡물과 새 소리, 길 고양이의 울음소리까지 더해지고 나니 도시와는 영락없이 동떨어져 있었다.

 

●함께한 기억이 무르익는 시간


어르신의 말씀대로 이 ‘깊은 곳’까지 온 데는 이유가 있다. GKL사회공헌재단이 운영하는 ‘꿈희망여행’에 동참한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서. 이번 순천 여행에는 광주에서 온 8팀이 참가했다. 첫 만남은 ‘체험관’에서 이루어졌다. 아빠와 아들, 할머니와 손녀, 엄마와 딸 모두 아직은 서로 데면데면한 사이. 그 어색한 공백을 깬 건 모두의 배꼽시계다. 때마침 점심시간. 푸짐한 마을 인심이 푹푹 담긴 밥상으로 두둑하게 배를 채웠다. 그리고는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됐다. 

에그캔들 만들기 체험. 완성된 캔들은 계란 상자에 담긴다
에그캔들 만들기 체험. 완성된 캔들은 계란 상자에 담긴다

체험 프로그램은 저마다 마을과 관련이 있는 것들로 채워졌다. ‘농촌체험휴양마을’ 용오름마을은 고추, 꿀, 율무 등 특산물을 이용한 체험을 운영 중이다. 꿀고추장 만들기, 꿀 밀랍을 사용한 에그캔들 만들기, 율무 팔찌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은 몇 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다져졌다. 시작은 난이도 ‘하’부터. 동그란 틀에 밀랍 초 액체를 붓고 원하는 색소를 넣으면 끝.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에그 캔들이다. 만드는 건 어렵지 않지만 기다림이 필요하다. 틀 안에서 캔들이 굳어 가는 동안 어느새 난이도 ‘중’으로 진입할 차례다. 

모두가 율무 팔찌 만들기에 집중한 순간
모두가 율무 팔찌 만들기에 집중한 순간

모두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율무 팔찌 만들기는 집중력을 요했다. 색색의 비즈와 율무를 번갈아 한 땀 한 땀 실에 꿰는 동안 할머니와 손녀도, 아빠와 아들도, 엄마와 딸도 하나같이 초집중 모드다. 애초에 하나씩만 만들자던 규율은 어긴 지 오래다. 완성된 팔찌를 서로 끼워 주며 일말의 성취감을 맛보고 나자, 자꾸만 더 꿰고 싶어진다. 복잡한 머리엔 단순 노동이 답이기도 하다. 

꿀고추장의 윤기는 꿀이 책임진다
꿀고추장의 윤기는 꿀이 책임진다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프로그램은 용오름마을에서 자란 태양초 고추와 벌꿀을 넣은 꿀고추장 만들기. 고춧가루에 준비된 재료를 넣고 주걱으로 부지런히 젓다가 꿀을 적당히 넣으니 윤기가 자르르한 고추장이 짠, 하고 완성됐다. 내친 김에 쌈장까지! 남은 고추장에 된장을 넣어 섞으니 쌈장 한 그릇이 뚝딱 만들어졌다. 그럴싸한 결과에 흡족한 가족들은 각자 만든 고추장과 쌈장을 곱게 포장하는 것으로 체험을 마무리했다. 아직 풋내가 나는 고추장은 며칠간의 숙성을 거쳐 더 깊어질 것이다. 함께한 기억 또한 그렇게 점차 무르익을 것이다. 

 

●용오름마을에서 소원을 빌자면


대체로 고요한 용오름마을은 여름이면 부쩍 활기를 띤다. 마을 전체를 타고 흐르는 용오름계곡의 물이 그야말로 깨끗하기로 소문이 났기 때문. 캠퍼들 사이에서도 알음알음 알려지며 용오름계곡은 매년 1만명 이상이 찾는 여름 피서지로 거듭났다. 계곡 물이 참 좋기도 좋거니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또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용이다.

여름 피서지로 인기인 용오름계곡. 물 안이 투명하게 들여다보인다
여름 피서지로 인기인 용오름계곡. 물 안이 투명하게 들여다보인다

전설에 따르면 용오름계곡에는 여전히 용이 산다. 옛날 옛적, 계곡에 있는 구름다리 밑에서 용이 승천하려던 순간 누군가 “용이다!” 하며 소리를 치는 바람에 용이 미처 하늘로 올라가지 못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 주민들의 제보에 의하면 마을 중에서도 계곡 주변이 유독 ‘기가 쎈 곳’인 건 확실하단다. 입대를 앞둔 마을 청년들이 계곡 앞에 막걸리를 떠 넣고 안전을 기원했던 것도, 중요한 시험을 앞둔 외지인들이 일부러 이곳을 찾아오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지금은 고등학생 수련원으로 쓰이고 있는 재천사
지금은 고등학생 수련원으로 쓰이고 있는 재천사

기(氣)에 관한 거라면 당산제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정월대보름, 용오름마을에서는 마을의 수호신인 당산신에게 제를 지낸다. 마을회관 뒤에서는 할머니 당산을 위한 제를, 용오름계곡에서는 할아버지 당산을 위한 제를 지내는데 그 방식이 좀 다르다. 할머니 당산제는 짧고 굵게, 말하자면 비교적 점잖게 지내고 할아버지 당산제는 밤새 술을 마시며 거하게 치른다고. 조용한 할머니 당산과 시끄럽게 놀기 좋아하는 할아버지 당산의 서로 다른 성격을 고려한 거란다. 예전만큼은 못해도 약식으로나마 여전히 당산제를 고수해 온 것은 마을의 오랜 전통을 잃지 않고자 하는 주민들의 뜻에 의해서다. 한 마음으로 마을의 무사와 평화를 빈다. 

재천사에 있는 400년된 보호수. 혹을 떼기는 커녕 닿기조차 쉽지 않다
재천사에 있는 400년된 보호수. 혹을 떼기는 커녕 닿기조차 쉽지 않다

영험한 기운이 절실한 이에게 전하는 마을 산책 비법 하나. 계곡 뒤편에 있는 재천사에 오르는 것이다. 과거 절이었던 이곳(지금은 전남여자상업고등학교 학생 수련원으로 쓰이고 있다)에 400년 된 보호수가 있다. 이 소나무에 커다란 혹이 붙어 있는데, 그 혹을 떼서 달면 부자가 된다는 ‘썰’이 전해져 내려온다. 부자가 되기는 여간 쉽지가 않다. 웬만한 장신이 아니면 까치발을 들어도 닿기 버거울 정도로 혹의 높이가 퍽 높다. 만지작만지작. 쓰다듬는 것만으로도 조금의 효험이 있길 바랄 뿐이다.  

순천만국가정원에 오면 꼭 올라 봐야 한다는 ‘봉화언덕’
순천만국가정원에 오면 꼭 올라 봐야 한다는 ‘봉화언덕’

▶mini  interview  
우리 마을은요  
순천용오름마을 강순구 위원장

순천용오름마을 강순구 위원장
순천용오름마을 강순구 위원장

작은 마을이지만 필요한 시설을 잘 갖추고 있다.
마을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발전하려 노력하고 있다. 과하게 다듬기보다는 갖고 있는 자연을 잘 지키고 싶은 마음이다.

 

계곡에 사람이 많이 보이는데.
물이 워낙 깨끗하고, 다른 계곡들처럼 평상 비용을 받는다거나 하는 규정이 없다 보니 입소문이 난 것 같다. 젊은 학생들이나 아이가 있는 가족 단위로 주로 찾고 있다.

 

농촌체험휴양마을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2007년부터다. ‘체험’마을이라는 타이틀을 달기는 어렵지 않지만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마을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체험 프로그램과 운영 인력 등이 지속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올해로 14년째 운영해 온 용오름마을도 이제야 자리를 잡아 가는 것 같다. 마을의 자립과 활성화, 관광객들의 재방문율을 높이는 것이 목표다.

 

용오름마을만의 특별함이 있다면.

‘관광지’스럽지 않은 수수한 멋. 대단한 즐길 거리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것이야말로 농촌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함이라고 생각한다. 동네 어르신들이 남은 방을 꾸려 내놓은 민박에 묵으며 마을 여기저기를 천천히 돌다 보면 도시에선 찾을 수 없는 고요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농촌여행을 더 현명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조인나우(JOINNOW)’라는 앱을 이용하면 스탬프투어를 할 수 있다. 용오름마을뿐 아니라 전국에 있는 농촌체험마을을 다니며 스탬프를 찍는 방식이다. 방문하는 마을의 스탬프를 인증하면 체험비 할인 등의 혜택이 제공된다. 

▶가족의 의미를 다시금 다지다  
전남 순천 꿈희망여행 

뜨거운 여름날, 전남 순천 ‘꿈희망여행’에는 광주에서 온 여덟 가족이 1박 2일을 함께했다. 용오름마을 어르신들이 운영하는 소박한 민박집에 묵으며 건강하고 푸짐한 끼니를 먹고 깨끗한 용오름계곡에서 오후를 보냈다. 체험 프로그램으로 다진 가족의 팀워크는 저녁 레크리에이션 시간에 정점을 찍었다. 이튿날, 순천의 대표 명소인 순천만국가정원을 둘러보는 것을 끝으로 뜻 깊은 여행을 마쳤다. 

 

▶꿈을 만들고 희망을 나눕니다.
꿈희망여행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익법인 GKL사회공헌재단의 후원으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전국 각지의 농촌, 산촌, 어촌 마을로 떠나는 가족여행 프로그램이다. 지난 6월20~21일 진행된 꿈희망여행에서는 광주에서 온 가족 8팀이 1박 2일 동안 순천 용오름마을에서 다양한 체험을 통해 가족의 화합을 다졌다. 한편 GKL사회공헌재단은 공기업 GKL(그랜드코리아레저)의 100% 출연으로 2014년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공익법인으로 관광문화 생태계 조성, 국제사회 동반자로서 책임을 이행하는 해외 공헌사업,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 및 문화지원 등 활발한 사회 공헌사업을 펼치고 있다. 여행 참가 신청은 꿈희망여행 홈페이지에서 받고 있다.  
GKL사회공헌재단 꿈희망여행 www.gklfund.org/gkl_tour

 

글·사진 김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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