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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상의 항공 이야기] 달걀은 한 바구니에 담지 말자

  • Editor. 유호상
  • 입력 2020.10.02 13: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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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격언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으려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효율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격언이 만들어진 데에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달걀은 한 바구니에  담지 말자
*1981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제임스 토빈이 남긴 주식투자 격언으로 여러 종목에 분산 투자해 리스크를 줄이고 수익률을 유지하라는 뜻이다. 

성공신화의 주인공. 사우스웨스트항공과 그 창업자 허브 켈러허 ©SouthwestAirlines
성공신화의 주인공. 사우스웨스트항공과 그 창업자 허브 켈러허 ©SouthwestAirlines

●737MAX 사태 


누구나 한 번쯤 타 보게 되는 보잉 737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기종이다. 보잉에서는 이 기종의 최신 버전인 737MAX(맥스)를 출시했는데 오래전 개발한 기종의 수명을 연장하려다 보니 설계 때 공기역학적 문제를 소프트웨어로 커버해 줄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이 소프트웨어가 오류를 내는 바람에 비행기가 비정상적으로 작동하면서 연이은 추락사고를 낸 것이다. 결국, 이 기종의 비행이 전면 금지되고 인증허가도 취소되고 말았다. 이것이 2019년 초 전 세계를 강타한 보잉 737MAX 사태다. 워낙 널리 쓰이는 기종이라 일부 항공사가 아니라 전 세계 모든 항공사가 타격을 입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치명타를 입은 곳은, 저비용 항공사(LCC)의 교과서로 불리는 미국의 사우스웨스트항공(Southwest Airline)이었다. 미국 <포춘(Fortune)>의 여론조사에서 매년 가장 존경받는 미국 회사로 선정되었고, 지난해 작고한 창업 멤버 허브 켈러허 역시 ‘저비용항공의 개척자’로 통하는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700대가 넘는 보유 비행기가 전부 737 ©CNBC
700대가 넘는 보유 비행기가 전부 737 ©CNBC

●전설적 저비용 항공사의 탄생


일단 1960년대 텍사스로 가 보자. 인구가 늘고 경제가 급성장하던 때였다. 먼 도시 간에 물자 이동과 인적 교류가 늘어나면서 비행기가 필수였지만, 매우 비싸고 불편했다. 이를 경험한 조종사 출신 사업가 롤린 킹과 은행가 존 파커 그리고 변호사 허브 켈러허는 이곳에서 새 항공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사우스웨스트항공은 1971년 6월 텍사스 주내 저비용 항공사로 첫 운항을 시작했다. 1978년에 미국의 항공사 규제완화법이 제정되면서부터는 운임, 노선 등에서 완전 자유경쟁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이는 과열경쟁으로 이어져 많은 항공사가 경영난과 파산을 겪게 된다. 팬암, 이스턴항공, TWA 같은 대형 항공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오늘날에도 비슷한 사업 모델의 저비용항공사가 많지만 낮은 수익성과 높은 고정 비용으로 운영이 절대 만만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도 사우스웨스트항공은 반세기 가까이 성공신화를 써 오고 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단거리 비경유 노선의 여행지에게 최저 수준의 항공료와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라는 명확한 사업전략이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환승이 시간과 비용을 늘리고 연착을 유발한다고 여겨 경유 없는 노선에 집중했다. 비행시간이 짧아 자연스레 기내식도 제공할 필요가 없었다. 비행기 연착이 줄자 승객들의 만족도도 올라갔다. 여기까지는 뭐 특별할 게 없다. 특별히 사우스웨스트항공이 달랐던 점은 한창 승승장구할 때도 ‘일탈’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항공사는 수익이 늘면 새로운 국제선에 취항하거나 대형 기종을 들여오는 게 일반적 행태다. 하지만 사우스웨스트항공의 확고한 실행 원칙은 비용을 낮추는 것이었다. 이를 위한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것은 기종의 통일이었다. 


사실 기종을 하나만 운용하면 승객 입장에서는 딱히 좋을 게 없다. 노선에 따라 다양한 기종을 타는 것도 나름 즐거움일 뿐 아니라 노선에 따라 편리함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공사 입장에서는 비용과 기타 효율성 면에서 큰 장점이 있다. 우선 비행기 구입시 ‘큰손’이 되니 유리하다. 가격 협상에서 유리한 것은 물론, 비행기 설비 옵션을 요구할 때도 원하는 대로 협상하기 쉽다. 들여온 비행기를 운용할 때도 부품이나 소모성 설비의 재고관리 및 안정적 공급에 유리하다. 또 조종사, 승무원, 운항관리원 그리고 정비사들이 한 가지 비행기만 다루면 되므로 교육 및 관리 비용도 절감된다. 기계뿐 아니라 사람 관리도 쉬워진다. 기종마다 자격증도 다른 상황에서 기종을 통일하면 조종사나 승무원들의 자격증 관리, 교육 그리고 교체 근무 등이 쉬워진다. 특히 한 번 획득으로 끝이 아니라 지속해서 갱신해 줘야 하는 조종사 자격증의 경우 기종이 다양할수록 비용이 커진다. 실제 비행은 물론, 그게 여의치 않으면 시뮬레이션으로라도 비행시간을 이수해 줘야 하는데, 이 시뮬레이터 역시 항공기 값 못지않게 비싸다. 기종이 다양하면 그만큼 여러 종류의 시뮬레이터를 보유해야 하므로 역시 큰돈이 들어간다. 그래서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창립 이래 오로지 737 단일 기종만 운용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세계 최대 규모다. 적어도 작년까지는 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다.

달걀 한 바구니. 보기에도 불안하다 ©Wikipedia
달걀 한 바구니. 보기에도 불안하다 ©Wikipedia

●역시나 한 바구니는


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세기의 베스트셀러 비행기인 보잉 737에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을.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지금 매우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 어쩔 수 없이 그동안의 단일 기종 전략을 포기하고 에어버스에서 요즘 잘나가는 비슷한 급의 기종을 조용히 알아보고 있다는 후문이다. 물론 진짜 기종을 갈아타려는 건지, 병행할 건지, 혹은 보잉으로부터 협상 때 유리한 조건을 얻어 내기 위한 제스처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다시 확인된 교훈은 오랜 성공신화에도 불구하고 언제 어디서나 통하는 정답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점이다. 선택은 그저 서로 다른 결과를 얻는 것일 뿐, 옳고 그름의 기준이 될 수는 없는 듯하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으면 빠르게 한 번에 옮길 수 있지만 역시나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라도 하면 한번에 다 잃는 것이다. 

 

*유호상은 어드벤처 액티비티를 즐기는 여행가이자 항공미디어 에디터로 활동 중이다. 인스타그램 oxenholm

글 유호상  에디터 천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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