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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에서 여수까지, 드라이빙 아일랜드

다리가 놓인 여수의 섬
적금도, 낭도, 둔병도, 조발도

  • Editor. 김민수
  • 입력 2020.10.03 20:5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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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뭍을 향한 섬사람들의 바람으로 놓인 고흥 득량만의 우도 노두길
오래전 뭍을 향한 섬사람들의 바람으로 놓인 고흥 득량만의 우도 노두길

2020년 초 고흥과 여수 사이에 4개 다리가 개통되면서 적금도, 낭도, 둔병도, 조발도는 양방향에서 차량으로 오갈 수 있는 섬이 되었다. 
섬에 다리가 놓이면 많은 것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우리가 알고 있던 과거의 섬을 기억하는 일, 누구의 몫일까? 

 

●밧줄의 미학
적금도


적금도는 2016년 팔영대교 개통으로 고흥반도와 연륙된 최초의 여수 섬이다. 적금도란 이름은 ‘금을 쌓아둔 섬’이라는 뜻이다. 오래전부터 금맥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일제 강점기부터 수차례 채광을 시도했지만 성공한 예는 없었다고. 

낡은 밧줄이 거친 해풍으로부터 지붕과 울타리를 보호해 준다
낡은 밧줄이 거친 해풍으로부터 지붕과 울타리를 보호해 준다

적금도는 외형적으로는 평범한 어촌마을의 인상을 주는 섬이다. 과거 화양면 벌가항에서 도선으로 왕래할 때부터 여행객들에게 관심을 받던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금도 주민들은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묵묵히 내실을 쌓아 왔다. 그 결과 전국 최초의 ‘어민주식회사’를 탄생시켰고 바지락 양식장, 해조류 채취장 등의 어업권을 마을 공동체에 귀속해 운영했다. 지금 팔영대교 아래 적금도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적금리 휴게소가 자리하고 있는데 휴가철이 지난 후라 식당과 편의점은 철시한 상태였다. 팔영대교 건너편 고흥 쪽 들머리에 ‘스마트복합쉼터’가 들어서면 경쟁력을 유지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2016년 개통된 고흥과 적금도를 잇는 연륙교 팔영대교
2016년 개통된 고흥과 적금도를 잇는 연륙교 팔영대교

적금도 마을 내에는 작은 포구가 있어 어선이 들어와 잡은 물고기들을 내어놓고 있었다. 여행자의 시선을 눈치챈 아주머니가 팔뚝보다 굵은 생선 한 마리를 큰 웃음으로 들어 보였다. 여행의 본질은 그곳을 만나는 것이다. 아주머니의 웃음으로 적금도가 조금 더 정겹게 느껴졌다면 일단 기본은 한 셈이다. 


마을 길을 걷다 보니 바닷일에 쓰이는 굵은 밧줄이 쉽게 눈에 띄었다. 그것은 지붕 위에, 담벼락에 마치 예술 작품인 양 올려지고 또 걸려 있었다. 심지어 섬 내 도로의 과속방지턱도 밧줄을 두껍게 꼬아 설치했다. 이쯤 되면 적금도엔 ‘밧줄의 섬’이란 별명을 붙여도 좋을 듯했다. 


마을 앞을 지나는 해안도로를 독섬대팽길이라 한다. 독섬은 섬의 북쪽 끝에 있는 작은 바위섬으로 본래 이름은 소당도다. 약 1.5km의 해안 길에는 섬 바다의 애틋한 정서가 있다. 이런 길은 차를 세우고 직접 걸어 봐야 한다. 다리가 생겼다고 무조건 차를 타고 여행하는 것은 옳지 않다. 스쳐 지나는 순간 많은 것을 놓치게 될 테니까.

 

●막걸리 때문에도 머물고 가야 할 섬
낭도


낭도는 다리가 놓이기 전부터 세간의 관심이 모였던 섬이다. 현재까지 여수항이나 화양면 백야도에서 여객선을 타고 낭도로 들어오는 여행객들은 이 섬이 가진 세 가지 테마 중 하나 이상에 기대를 품고 있다. 

사도와 추도가 오롯하게 내려다보이는 낭도의 프라이빗 차박지
사도와 추도가 오롯하게 내려다보이는 낭도의 프라이빗 차박지

첫 번째 테마는 트레킹이다. 3개의 코스로 나눠진 ‘낭만낭도 둘레길’과 ‘상산 등산로’ 4개 코스는 두 개의 마을과 숨겨진 해변 그리고 주상절리를 포함한 해안 절경을 따라 걷는 오밀조밀 예쁜 길이다. 두 번째는 캠핑장이다. 폐교가 캠핑장으로 탈바꿈하기 훨씬 전부터 백패커들은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낭도를 찾았다. 그들에게 매우 호의적이었던 섬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불편함이 없는지 살폈다. 그런 교류는 현재의 캠핑장을 탄생시켰다. 아름다운 낭도 해변을 전면에 펼쳐둔 캠핑장은 환경이나 시설 면에서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한다. 

밀 발효의 재래식 공법으로 만든 낭도젖샘막걸리
밀 발효의 재래식 공법으로 만든 낭도젖샘막걸리

낭도를 다른 섬과 구별짓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세 번째 테마, ‘막걸리’다. 여산마을 안에는 오래된 양조장이 있다. ‘백년도가’로 불리는 양조장은 4대째 가업으로 이어져 왔으며 그 역사가 100년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년도가에서 생산되는 ‘낭도젖샘막걸리’는 철분이 함유된 심층수를 사용하고 재래식 큰 독에서 밀을 발효시켜 만들기 때문에 노란빛을 띤다. 코로나 때문에 결국 개최되지는 못했지만 ‘2020 섬의 날’ 국무총리 만찬주로 선정되기도 했다. 다리가 놓이기 전까지 낭도막걸리는 소량 생산에 육지로 반출을 하지 않아 섬에서만 맛볼 수 있는 귀한 술이었다. 

낭도의 해안은 주상절리와 쌍용굴 등 해식애가 발달했다
낭도의 해안은 주상절리와 쌍용굴 등 해식애가 발달했다

낭도에 다리가 놓이자 여행객의 기대가 더욱 커졌다. 섬 곳곳에 관광객을 위한 카페와 간이식당들이 생겨 났고 차박을 하는 차량도 쉽게 목격되었다. 하지만 섬이 가진 관광 인프라는 접근이 쉬워진 대신 육지와 경쟁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머물고 싶은 섬을 만들기 위한 작업은 어쩌면 더욱 어려워졌는지도 모른다. 전통이 지켜지고 인심이 사라지지 않기를 소망한다. 적어도 낭도라면.

 

●유유자적, 섬 길에 차이는 감성
둔병도


낭도와 둔병도를 잇는 낭도대교는 다른 다리들과 비교해 구조가 단순하다. 이유는 운전하면서도 아름다운 주변 바다와 섬의 경관을 조망할 수 있도록 개방감을 확대한 형태로 설계됐기 때문이다. 둔병도로 진입하는 길가에는 언제나 많은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다. 차량의 주인들을 찾으려면 낭도대교 밑으로 가야 한다. 십중팔구 그곳에서 낚시 삼매경에 빠져 있을 테니까. 

둔병도 구선착장의 노전배
둔병도 구선착장의 노전배

마을은 다리에서 서쪽으로 1km가량 떨어진 해안에 있다. 섬 전체의 면적으로 보면 마을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농토가 부족했던 주민들은 마을 앞의 하과도란 무인도에 다리를 놓고 그 땅을 개간하여 농사를 지었다. 지도를 보면 적금도, 낭도, 둔병도, 조발도 모두 여자만의 맨 아래 관문을 지키고 선 섬들이다.

둔병도와 조발도를 잇는 둔병대교
둔병도와 조발도를 잇는 둔병대교

그중에서도 둔병도는 나머지 섬들에 둘러싸여 있어 마치 천혜의 요새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섬의 첫인상은 평온함이다. 노전배를 젓는 어르신이나 하과도로 밭일 나가는 아주머니에게도 조급함이란 찾아볼 수 없다. 여수항에서 하루 두 번 다니는 여객선은 하과도 선착장에 기항한다. 둔병도 본섬에는 여객선을 접안할 시설이 없기 때문이다.


보행용 유모차 두 대와 자전거가 놓인 낡은 방파제 너머로 팔영대교와 적금대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바다는 미동조차 없이 잔잔했고 크고 작은 섬들이 유유자적 오후 한때를 즐기고 있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윗부분이 납작하고 평편한 상과도가 눈길을 끌었다. 초지로 덮인 섬 위에 텐트를 치면 멋진 그림이 될 거라는 상상을 했다. 

마당 한편에 널린 소소한 섬의 삶
마당 한편에 널린 소소한 섬의 삶

마당 한편 돌 위에 널어놓은 빨간 고추 몇 알, 담벼락에 기대선 낡은 자전거, 폐창고 벽에 걸린 그물 망태기. 어쩌면 작은 감성 하나도 섬을 찾는 이유가 됨을 깨달았다.

 

●묵묵히 견뎌 온 인고의 세월
조발도


조발도 들머리의 전망대는 풍광이 좋기로 유명하다. 높은 곳에서 바라본 둔병대교의 모습은 수려했고 전망대 조형물과도 잘 어울렸다. 조발도에 있는 단 하나의 마을 역시 섬의 북서쪽 귀퉁이에 자리하고 있어 다리와는 꽤 거리가 있다. 그리고 마을 안으로는 차량 진입이 불가하다. 워낙에 경사진 터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발도와 화양면의 첫 글자를 딴 조화대교
조발도와 화양면의 첫 글자를 딴 조화대교

차를 세우고 마을로 내려가려는데 반대편에서 할머니 한 분이 올라오고 계셨다. 그 걸음은 저속 영상을 보는 것 같았다. 일정한 호흡과 움직임, 아마도 오랜 세월 비탈길을 왕래하며 터득한 익숙한 방식일 거라 생각된다. 마을에는 빈집이 많았다. 어떤 집은 지게와 농기구가 가지런히 놓이고 마당에는 곡식이 널려져 있었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풀숲이 돌담을 덮고 우물 안으로 무성히 자라났다. 섬에 다리가 놓이거나 말거나 연로한 주민들에겐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전망대가 있는 조발도 해오름언덕
전망대가 있는 조발도 해오름언덕

마을 담벼락에 적혀 있는 ‘조발도 일기’라는 글을 보았다. 지은이는 목수, 농부, 시인이라 소개되어 있었다. 익명의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어 허락을 받지 못한 채 여기에 옮겨 본다. 

지게 등 재래 농기구가 흔한 조발리 마을
지게 등 재래 농기구가 흔한 조발리 마을

조발도 일기
모진 비바람과 거친 파도 앞에
물러섬 없이 한 치 흔들림 없이
천년의 가난과 무관심
저마다의 온갖 슬픔과 기쁨을 품에 안은 채
묵묵히 바다에 떠 있는 섬.
조발도는 그런 섬이었다. 
-목수, 농부, 시인

조발도 포구의 낡은 어촌계 창고
조발도 포구의 낡은 어촌계 창고

마을 한쪽을 보니 다행히 차량이 드나들 수 있도록 도로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농어촌 버스라도 마을 안으로 들어오면 어르신들 여수 나들이가 조금은 편해질지도 모른다. 섬에 다리가 놓인다는 것이 무엇을 위한 일이고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여행자는 그저 섬을 잃어버리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런데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어떤 섬들은 차라리 다리가 놓이고 개발이 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리의 이름은 어떻게 지었을까? 
고흥에서 여수 방향을 기준으로, 지역명의 첫 글자를 따 다리 이름이 되었다. 고흥에서 적금도는 고흥의 팔영산의 이름을 따서 팔영대교, 적금도와 낭도 사이의 다리는 적금대교, 낭도와 둔병도는 낭도대교, 둔병도와 조발도는 둔병대교가 된다. 그런데 마지막 조발도 다음은 육지인 화정면(여수시)이다. 그래서 이곳 다리의 이름은 양 지역의 첫 글자를 따서 조화대교라 명명했다.


글·사진 김민수(아볼타)  에디터 천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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