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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마의 땅, 아홉 겹의 추억- 가평 아홉마지기마을

  • Editor. 곽서희 기자
  • 입력 2020.11.02 0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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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 아홉마지기마을의 옥수수 미로밭, 구불구불 길 찾기가 꽤 어렵다
가평 아홉마지기마을의 옥수수 미로밭, 구불구불 길 찾기가 꽤 어렵다

“살 빠져서 가시면 안 됩니다, 아셨죠?” 조건 없이 푹 쉬고, 양껏 먹고, 한껏 즐기시라는 마을 사람들의 말. 
그 유쾌한 명령에 9팀의 가족들은 흔쾌히 순응했다. 더하고 뺄 것 없이 편안한 꿈희망여행이었다.

가평의 산맥은 길고 시원하게 뻗어 있다
가평의 산맥은 길고 시원하게 뻗어 있다
벼만 그런가, 차조도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벼만 그런가, 차조도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차조가 필 무렵 


길가에 꽃 대신 차조가 피었다. 샛노란 빛깔의 차조가 알알이 맺혀 있는 모습을 보면 아무래도 ‘익었다’ 대신 ‘피었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가평 아홉마지기마을에서는 길에서 들풀보다 차조를 더 흔하게 볼 수 있다. 마을의 자랑이자 대표 특산품인 차조는 지금의 마을을 있게 해 준 귀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아주 오래 전, 천주교인들은 아홉마지기 넓이의 가평 땅에 화전민터를 형성해 차조를 뿌려 먹고 살았다. 마을의 이름도 여기서 유래됐다. 차조가 주인공이니만큼 매해 차조를 테마로 한 축제도 열린다. 차조밭 축제에서는 직접 조와 수수를 수확해 볼 수 있고 차조를 넣은 각종 음식도 맛볼 수 있다.

레크리에이션 시간에 얻은 작은 불꽃은 최고의 경품이다
레크리에이션 시간에 얻은 작은 불꽃은 최고의 경품이다

계절별로 특색 있는 체험활동은 마을의 또 다른 자랑거리다. 여름에는 용추폭포부터 잣나무 숲까지 이어지는 구간에서 숲 해설이 이뤄지고, 가을에는 사과 수확과 옥수수 미로 체험, 겨울에는 잣찐빵 만들기, 그리고 따스한 봄에는 사계절 프로그램을 모두 즐길 수 있다. 이번 꿈희망여행에 참여한 9팀을 위해 9가지의 다채로운 체험이 준비됐다. 수상보트 체험이 여행의 포문을 열었다. 부릉부릉 소리를 내며 북한강 물살을 시원하게 가르는 수상보트는 일정의 시작부터 아이들의 기대감을 극대화시켰다. 보트에 오르니 운항사가 능숙하게 방향키를 잡고 이리저리 방향을 튼다. 잔잔한 파도의 공백을 뚫고 보트가 빠른 속도로 헤엄친다. 엔진 소리보다도 더 청량한 웃음소리가 보트 안을 한가득 메운다. 웃음이 꿈희망여행을 물들인다.

남이섬의 메타세쿼이아길은 가을이면 더 시원해진다
남이섬의 메타세쿼이아길은 가을이면 더 시원해진다

남이섬을 관광하는 재미도 놓치지 않았다. 유니세프나눔열차로 남이섬의 깊숙한 곳까지 이동하는 동안, 열차는 가을이 더디게 온 초록빛 숲길을 뚫고 덜커덩 지나간다. 약 1시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지자 가족들은 메타세쿼이아길을 걷고, 자전거를 대여하고, 커피숍에서 잔뜩 여유를 부리며 저마다의 추억을 만든다. 저녁은 레크리에이션 시간으로 꾸며졌다. 간단한 게임으로 가볍게 시작하나 했더니, 이내 응원 열기가 뜨겁다. 목이 터져라 ‘엄마, 파이팅!’을 외치는 아이들 사이로 트로트 음악이 경쾌하게 울려 퍼진다. 내내 과묵했던 한 아이가 드디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격렬한 춤사위를 보인다. 바야흐로 흥겨운 가을밤이다. 

맑다 못해 투명하기까지 한 용추계곡
맑다 못해 투명하기까지 한 용추계곡

●때로는 화가, 때로는 요리사로


첫째 날의 꿈희망여행에 걷고 뛰고 춤추며 몸을 썼다면, 이틀째는 손이 분주해질 차례다. 오전의 햇살이 점차 따스해질 즈음, 아이들은 한인수 위원장이 운영하는 펜션의 마당으로 삼삼오오 모였다. 고사리 같은 손에는 나무 도마가 하나씩 들렸다. 아무런 무늬도 없는 텅 빈 도마였다. 이 도마들은 차츰 다듬어지고, 칠해지고, 새겨지면서 아이들의 고유한 도마로 재탄생할 운명이었다. 

나무 도마가 다듬어지려면 섬세한 손길이 필요하다
나무 도마가 다듬어지려면 섬세한 손길이 필요하다

애정의 손길은 사포질부터가 시작이다. 까쓸한 사포로 도마의 표면을 두어 번 쓸어내리자 한겨울의 눈처럼 새하얀 가루가 폴폴 떠올랐다 이내 내려앉는다. 정성을 쏟는 만큼 도마도 예뻐진다는 말에 아이들은 그야말로 ‘초집중 모드’에 돌입. 고도의 집중력으로 사방이 고요한 가운데, 갖가지 의성어가 귀를 간질인다. 작업장 곁으로 흐르는 용추계곡의 졸졸 물소리, 도마에선 사각사각 사포소리. 새들은 피욕피욕 지저귀고, 마당엔 밤송이가 통통 떨어진다. 

도마의 운명이 그녀의 손에 달렸다
도마의 운명이 그녀의 손에 달렸다

사포질이 끝났다면 본격적으로 우드버닝 작업에 들어설 때다. 우드버닝은 말 그대로 전기인두로 나무를 태워서 그림이나 글씨를 새기는 작업이다. 열을 다루는 만큼 부상을 입지 않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성공적인 우드버닝을 위한 또 하나의 팁. 바로 적당한 힘 조절이다. 도마에 인두를 너무 오래 대고 있으면 꼴사납게 나무가 타 버리고, 슬쩍 스치기만 하자니 무엇을 새긴 건지 형체를 알 수 없다. 까다로운 작업에도 아이들은 금세 적응했다. 인두를 붓 삼아 도화지 같은 도마에 각자 개성이 담긴 문구와 그림을 새겨 넣는다. 우드버닝이 끝난 도마는 여러 겹의 오일칠과 햇빛 건조를 거쳐 비로소 완성된다. 애정이 듬뿍 들어간 만큼 완성된 도마를 꼭 끌어안은 아이들의 손에도 힘이 실린다.

바삭바삭, 달콤한 전통강정
바삭바삭, 달콤한 전통강정

나른한 오후엔 달콤한 간식이 빠질 수 없다. 곧바로 전통강정 만들기 체험이 이어진다. 그런데 아홉마지기마을의 강정은 좀 특별하다. 쌀을 찐 다음 소금에 넣어 두 번을 구웠다. 기름에 튀기지 않아 아이들 간식으로도 더없이 좋다. 달큰하고 고소한 향이 퍼지자 모두들 손이 다급해진다. 너도나도 각자 만든 강정을 한 입씩 시식해 본다. 한 영리한 꼬마 요리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학원 가방에 숨겨 놓고 친구들 몰래 혼자 먹고 싶을 만큼’ 맛있다. 아홉마지기마을이 꿈희망여행처럼 달달해진다.

전나무 소원길에 매달린 가족들의 바람
전나무 소원길에 매달린 가족들의 바람

●잣 내음 퍼지는 숲속에서


강정은 시작에 불과했다. 다음 디저트는 잣아이스크림과 잣전병이다. 가평의 대표적인 특산품인 잣은 죽이나 막걸리를 해먹어도 맛있지만, 디저트에 첨가되면 고소한 맛이 더해진다. 잣아이스크림보다 잣전병 만들기가 집중력을 좀 더 요한다. 전병을 태우지 않고 고르게 구우려면 테프론시트에 전병 반죽을 숟가락으로 얇게 살살 펴야 하는데, 여기서 가족들의 힘이 합쳐져야 한다. 엄마들의 도움을 받아 아이들은 꼬물꼬물 부지런히 손을 움직인다. 엄마가 반죽을 펴면 그 위에 아이가 잣 토핑을 올리고, 두껍게 올라간 아이의 반죽은 엄마의 손길을 거쳐 다시 얇아진다. 

아이와 엄마의 힘이 합쳐지면 잣전병이 완성된다
아이와 엄마의 힘이 합쳐지면 잣전병이 완성된다

간식으로 그득해진 배를 소화시키기 위해서는 가볍게 축령산을 오르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 길쭉길쭉한 잣나무 숲 사이를 오르고 오르다 보면 잣 까기 체험장이 나타난다. 맛있게 먹은 잣을 이제는 직접 까 봐야 할 때. 먹을 땐 몰랐지만 까는 건 쉽지 않다. 나무 방망이로 잣송이를 두들기면 송이에 박혀 있던 잣이 하나씩 튀어나오는데, 이 중 물에 가라앉는 잣들만 먹을 수 있다. 힘겹게 얻은 탓일까. 펜치로 어렵게 깨 먹은 몇 알의 잣이 배로 향긋하게만 느껴진다.

숲속 밧줄 놀이터에서 아이들의 표정은 유난히 밝았다
숲속 밧줄 놀이터에서 아이들의 표정은 유난히 밝았다
잘 따라 오고 있는지, 밧줄 구름다리 위에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던 아이
잘 따라 오고 있는지, 밧줄 구름다리 위에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던 아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숲속 밧줄놀이터도 준비됐다. 색색의 밧줄을 단단히 엮어 만든 놀이기구로 아이들이 앞다퉈 우르르 몰려든다. 구름다리를 건널 땐 발이 빠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그네를 탈 때는 하늘까지 발이 닿도록 힘차게 그네를 밀어야 제맛이다. 편안한 해먹 자리는 유난히 인기가 많다. 천진난만한 웃음소리가 아득한 숲속까지 널리 퍼진다. 거름망에 거르고 걸러져 아주 깨끗하고 투명한 결정들만 남은 듯한, 그런 순수한 표정들이 아이들의 얼굴에 번지자 어른들의 마음마저 은근해졌다. 

2박 3일간의 추억이 체험관 벽면에 하나 둘 대롱대롱 걸렸다
2박 3일간의 추억이 체험관 벽면에 하나 둘 대롱대롱 걸렸다

●짙어져 가는 꿈희망


꿈희망여행은 마지막 날까지 송편과 드림캐처 만들기 체험으로 알차게 구성됐다. 토끼를 좋아한다는 아이의 송편은 토끼 모양으로, 밤보다 깨가 좋다는 아이의 송편은 깨로 통통해졌다. 동글동글 귀엽게 빚은 송편이 꼭 아이들의 얼굴을 닮았다. 

먹는 건 쉽지만 만드는 건 퍽 어려웠던 송편
먹는 건 쉽지만 만드는 건 퍽 어려웠던 송편
토끼 모양의 송편은 예쁜데 맛도 좋았다
토끼 모양의 송편은 예쁜데 맛도 좋았다

알록달록한 드림캐처까지 완성됐을 무렵, 마을 체험관에서는 마지막 식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여행이 막바지에 다다랐다는 뜻. 숙소에서는 밤송이 떨어지는 소리만 들어도 평화롭고 행복했다는 부모들의 여행담이 정답게 오갔다. 직접 만든 도마, 드림캐처, 그리고 각종 간식으로 어른들의 양손은 묵직해졌다. 아이들은 덩달아 무거워진 발걸음 탓에 자꾸만 체험관을 돌아본다. 이제 가야 할 시간이라는 부모의 말에 가지고 놀던 훌라후프를 내려놓지만, 못내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다. 마을엔 가을도, 아쉬움도, 추억도, 아이들의 꿈희망도 그렇게 가을처럼 짙어져 간다.  

(왼쪽부터) 김나연 사무국장, 한인수 위원장, 유제순 사무장
(왼쪽부터) 김나연 사무국장, 한인수 위원장, 유제순 사무장

▶마을의 진솔한 모습을 전달합니다  


꿈희망마을에 참여한 지 올해로 2년째 되는 가평 아홉마지기마을의 매력은 2가지. 첫째는 차조, 둘째는 체험활동이다. 마을은 2006년에 녹색농촌 체험마을로 선정된 후로 계절별 체험활동들을 통해 농촌마을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소개하려 노력해 왔다. 배후에는 든든한 조력자들이 있다. 한인수 위원장, 김나연 사무국장, 유제순 사무장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특히 최근에는 한인수 위원장을 중심으로 목공 체험활동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우드버닝이 대표적이며, 단체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DIY 가구를 만들며 숲속에서 생활해 보는 ‘목공하며 숲에서 한 달 살기’도 진행 중이다. 올해 태풍의 영향으로 황폐화된 옥수수밭도 빠르게  복구되고 있다. 일시중단된 옥수수 미로 체험은 10월 중순부터 정상적으로 재개될 예정이다. 마을의 삶을 진솔하게 보여 주려는 그들의 노력이 있기에, 아홉마지기마을은 꿈희망마을로서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서 반짝일 것이다.
 

*꿈희망여행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익법인 GKL사회공헌재단의 후원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가족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전국 각지의 농산 어촌 마을로 떠나는 가족여행 프로그램이다. 2020년 9월23~25일에 진행된 꿈희망여행에서는 9팀의 가정이 2박 3일 동안 가평 아홉마지기마을에서 다양한 체험을 통해 가족의 화합을 다졌다. 한편 GKL사회공헌재단은 공기업 GKL(그랜드코리아레저)의 100% 출연으로 2014년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공익법인이다. 관광문화 생태계 조성, 국제사회 동반자로서 책임을 이행하는 해외 공헌사업,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 및 문화 지원 등 활발한 사회 공헌사업을 펼치고 있다. 여행 참가 신청은 재단 홈페이지에서 받고 있다.   GKL사회공헌재단 www.gklfund.org



글·사진 곽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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