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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 낯설던 그섬이 애틋해지기까지

  • Editor. 김민수
  • 입력 2020.12.01 0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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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긴 여행에서 백령도는 첫 섬이었다. 낯설고 두려웠다. 실수와 아쉬움도 있었다. 그래서 더 다시 가고 싶은 것을 보면, 섬은 좋은 사람과 같다. 올근볼근하면서도 늘 애틋하고 가끔 그리워지는 것을 보면. 

해 질 무렵 두무진 선대암의 위용
해 질 무렵 두무진 선대암의 위용

●다시 백령도로

여객선 예매사이트인 ‘가보고싶은섬’의 서해 5도에 대한 50% 여객운임 지원프로그램은 대단히 매력적이다. 예년 같으면 진즉에 예산 소진으로 혜택을 받기 어려웠을 테지만, 코로나19의 여파로 지난 10월 하순 백령도행 여객선은 빈자리가 눈에 띌 정도로 많았다. 좌석표의 번호를 무시하고 2층 객실 뒤편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쾌속선은 운항시 갑판 출입을 통제한다. 4시간의 긴 항해가 지루해 눈을 감고 잠을 청해 봤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정신은 또렷해 갔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창바위와 사곶해변
전망대에서 바라본 창바위와 사곶해변

●어설픈 첫 섬의 추억


3년 전, 백령에서 울릉까지 20개 섬 장기여행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적이 있었다. 백령도는 타이틀 그대로 첫 섬이었다. 왕복 15만원에 달하는 뱃삯에 하루에 1만원씩 하는 인천항여객선터미널 주차요금이 부담스러웠지만, 긴 여행을 위한 어쩔 수 없는 비용이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평일임에도 백령도 용기포항은 관광객들과 군인들로 붐볐다. 백령도의 중심지인 진촌마을 입구의 롯데리아와 카페베네에 신기해하고 심청각에 올라 불과 12km 거리에 지나지 않는 북한 땅 용연반도를 눈앞에 두었을 때만 해도 여정에 대한 자신감은 차고 넘쳤다. 그만큼 백령도는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 여행의 소재들을 넉넉하게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걸음이 계속될수록 짊어진 배낭의 무게가 자신감의 영역을 대체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두무진 포구의 옛 모습
두무진 포구의 옛 모습

20개 섬을 연속으로 돌아보는 장기여행은 백패킹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있었기에 먹고 자는 데 필요한 장비는 물론 카메라 렌즈와 삼각대까지 배낭을 채우고 있었다. 채 몸이 풀리지 않았던 오랜만의 트레킹은 체력을 급속도로 소진시켰다. 급기야 양쪽 허벅지까지 올라온 근육경련에 갈 지(之)자로 걷는 우스꽝스러운 모습까지 연출하게 되었다. 해가 진 후에야 겨우 두무진에 도착했고, 군인들의 도움으로 폐장된 수련원 운동장 바닥에 매트리스와 침낭을 펼쳐 놓을 수 있었다. 라면을 끓이고 소주 한 잔을 들이켰을 때 유난히 뜨거웠던 위의 반응 덕에 그것이 그날의 첫 끼였음을 깨달았다. 두무진 포구에 늘어선 횟집들은 오래돼 보였지만 그래서 더욱 운치가 있었다. 바닷가 아주머니의 능숙한 솜씨에 껍질이 벗겨지던 어마어마한 크기의 장어들을 보면서 먹고 싶은 욕구를 얼마나 삼키고 삼켰는지. 그래도 그 삭막한 운동장 하늘에는 별이 흘렀고 따뜻하게 전해 오는 침낭의 온기에 행복했다. ‘그래, 이런 게 여행이지.’

젊은 군인들이 많은 백령도의 단면
젊은 군인들이 많은 백령도의 단면

●설마 그런 이유로?


깜박 잠이 들었나 보다. 조금 있으면 소청도라는 안내방송이 있었다. 소청도, 대청도, 그다음이 백령도다. 여객선이 잠시 머무를 때마다 갑판에 나가서 반가운 마음을 섬에 전한다. 


다시 백령도를 찾은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첫 번째는 백령도 냉면이다. 3년 전 여행은 섬 하나하나에 집중하기보다는 울릉도까지 이어지는 긴 여정에 의미를 두었기에 충분히 돌아보고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늘 머릿속을 맴돌곤 했다. 당시 걸음을 재촉해서 유명하다는 사곶냉면을 찾아갔지만 오후 3시까지만 영업한다는 사실은 몰랐던 것이다. 

심청각의 효녀 심청상
심청각의 효녀 심청상

이번에는 재빨리 움직이기 위해 아예 렌터카를 선택했다. 용기포항에서 1일 5만원에 넘겨받은 렌터카는 경차라서 비교적 저렴했다. 백령도 냉면을 사람들은 사곶냉면이라고도 부른다. 그래서 그 이름을 상호로 사용하는 식당을 다시 찾았다. 최근 TV 예능프로그램에 나온 후 식당을 찾는 관광객이 부쩍 많아졌단다. 물냉면과 수육을 시켰다. 기대가 컸던 탓일까? 먹는 내내 담담하게 전해지던 육수와 면발에서 진주냉면을 떠올렸다면…. ‘내 입맛에 분별력이 없기 때문일 거야.’ 공공근로차 해변에 나오셨다는 섬 어르신들을 만나 여쭤봤다. “백령도 분들이 자주 가시는 냉면집이 따로 있나요?” “진촌에 인천강화옹진축협이라고 있는데, 그 뒤편에….”

백령도 냉면을 먹을 때는 까나리액젓이 필수
백령도 냉면을 먹을 때는 까나리액젓이 필수

다음날 그 주변을 한참 뒤졌다. 냉면이라고 쓴 입간판 말고는 정작 식당에는 간판 하나 붙어 있지 않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침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이유로 물냉면 하나만 시켰다. 식당 한쪽에 쌓인 메밀 포대가 눈에 들어왔다. 테이블 위에는 열무와 무김치 그리고 까나리액젓이라 쓰인 양념 병이 놓여 있었다. 이윽고 냉면이 나왔다. 면발에 메밀면임을 증명하는 무수한 검은 점들이 박혀 있었다. 침착하게 육수에 계란 노른자를 으깨 풀고 까나리액젓을 몇 방울 떨어뜨렸다. 의도치 않게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 “맛있다!” 손님의 대부분은 군인이거나 주민으로 보였고 점심시간 이전이었지만 자리는 이미 만석이 돼 가고 있었다.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는 콩돌해안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는 콩돌해안
백령흰나래길은 총 9개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백령흰나래길은 총 9개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두무진을 원 없이 보다


두무진 포구에 대한 아련함은 백령도를 다시 찾은 두 번째 이유다. 다시 찾아본 사곶해변, 콩돌해안, 용틀임바위는 여전한 모습이었다. 2019년 두무진, 진촌리 현무암과 더불어 세 곳 모두 백령, 대청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증되었다. 차량이 있으니 엄두를 내지 못할 곳이 없었다. 장어탕에 소주 한두 병 비우고 야영이 아닌 민박이나 펜션을 얻어 편안하게 하룻밤을 보낼 계획이었다. 그런데 웬걸, 투박하지만 정겨웠던 포구의 횟집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미끈한 조립식 건물들이 들어서 장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간판은 낯이 익었지만, 바라던 옛 포구의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래도 두무진 선대암 절경을 다시 만나니 아쉬움이 많이 상쇄되었다. 

아침 빛을 받은 두무진 선대암의 투명한 모습
아침 빛을 받은 두무진 선대암의 투명한 모습

이곳까지 오는 동안 때때로 마주치고 스쳤던 관광버스 두 대가 마침 들어오고 단체 여행객들이 내렸다. 그들에게 오늘은 두무진을 처음 만나는 날이다. 해가 지기까지 짧은 시간이 남았지만, 그들 역시 최선을 다해 사진을 찍어가며 두무진을 마음에 담았다. 시간이 흐르면 사람 사는 동네야 변하게 마련이지만 자연은 늘 한모습을 하고 있으니 든든하고 반갑다. 수평선 위로 가득했던 해무 때문에 마지막 해가 어찌 사라졌는지 알 수 없었다. 

해안 전망대에서 바라본 두무진 포구
해안 전망대에서 바라본 두무진 포구

성수기가 지난 평일 날의 두무진은 또다시 낯설게 느껴졌다. 진촌으로 나와 숙소를 잡고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들렀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단돈 3만원에 자연산 우럭회를 먹을 수 있었다. 홀로 찾아온 여행객을 위해 양을 좀 줄인 채 코스 그대로 배려한 것이다. 소심한 여행자에게 여행은 먼저 손을 내밀기도 한다. 

깔끔하게 단장한 두무진 포구 횟집 타운
깔끔하게 단장한 두무진 포구 횟집 타운

다음날, 아침 두무진을 다시 찾았다. 햇살에 반짝이는 바다와 선대암의 또 다른 모습을 여유롭게 즐겨 보기 위함이었다. 마침 유람선이 나타나고 덩실거리며 사라졌다.  

 

▶Travel to 백령도

할인 받고 백령도 가기  
옹진군은 서해 5도(백령, 대청, 연평 외)와 근해 도서(덕적, 자월 외)를 1박 2일 이상 방문하는 관광객에게 여객운임의 50%를 할인해 준다. 왕복 배편이 동일해야 가능하다.  
가보고싶은섬(여객선 예매) island.haewoon.co.kr

백령도 렌터카예약
백령도는 펜션이나 모텔 등의 숙박시설이 렌터카를 함께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숙소를 예약할 때 렌터카를 포함하면 할인을 받을 수 있다. 비용은 소형차 기준으로 6~7만원이다.

 

▶FOOD

실향민을 위로하는  
백령도 냉면

백령도는 과거 황해도에 속해 있었다. 분단 이후 실향민들에 의해 전해져 내려온 황해도 냉면이 바로 사곶냉면이다. 냉면의 특징은 돼지 뼈를 우려 육수를 만들고 메밀면을 사용하며 까나리액젓으로 간을 한다는 것이다. 섬 내에는 이름난 냉면집이 많은데 그중 관광객들에게는 ‘사곶냉면’이, 현지 주민들에게는 간판 없는 ‘그린파크식당’이 유명하다.  
전화: 사곶냉면 032 836 0559 , 그린파크식당 010 4814 5549 

홍합밥이 맛있는  
뚱이네맛집

본래 홍합밥 맛집으로 알려진 곳이지만 그 외에도 굴밥, 멍게밥, 해삼밥 등의 식사와 각종 매운탕류, 생선회를 메뉴로 제공한다. 특히 1인 여행객도 자연산 회를 먹을 수 있도록 양을 조절하여 곁 반찬, 매운탕과 함께 저렴하게 서비스한다. 백령도에서만 30년 가까이 식당을 운영했던 사장님의 손맛이 일품이다. 깔끔하고 고소한 홍합밥도 강추.  
가격: 1인 자연산우럭회 3만원, 홍합밥 8,000원  
전화: 032 836 9303

메밀면과 굴 육수  
장촌칼국수

용틀임바위를 찾아가다 배낭을 맡겼다는 이유로 돈 주고는 절대 사 먹어 본 적이 없는 칼국수를 주문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뚝뚝 끊어지는 면발과 국물의 얼큰, 시원함이 상상 이상이었다. 메밀면과 굴 육수를 사용한다는 이 식당은 지역민들과 맛집 애호가들에게 유명한 장촌칼국수였다.  
전화: 032 836 7009

 

▶PLACE

가장 해가 늦게 지는  
두무진

바다 위로 솟은 기암의 모습이 장군들이 회의하는 모습과 흡사하다 해서 두무진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국가 명승 8호이며 10억년 전의 퇴적구조가 그대로 남아 있다. 가거도의 섬등반도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해가 늦게 지는 지역으로 꼽히며 두무진관광영어조합법인에서 해상 유람선을 운영한다.

단단한 모래의 힘  
사곶해변

폭 200m, 길이 2km의 광활한 면적을 자랑하는 해변으로 천연기념물 391호이다. 이탈리아의 나폴리 해안과 더불어 실제 이착륙 기록(한국전쟁)이 남아 있는 전 세계 단 두 곳의 천연비행장 중 하나다. 해변의 남쪽 끝 창바위 앞 전망대에 오르면 해변 전체의 웅장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

아직도 승천 중  
용틀임바위

모래와 진흙이 쌓여 만들어진 10억 년의 해식주로 용이 몸을 뒤틀며 승천하는 모습을 절묘하게 닮았다. 오랜 세월 침식작용을 받으면서도 이암이 포함된 암석의 구조 때문에 뾰족하고 꼬불꼬불한 모양이 되었다. 주변에 천연기념물 507호인 남포리 습곡구조가 있다.

콩닥콩닥  
콩돌해안

남포리 오군포 남쪽 해안을 따라 1km 이어져 있으며 자갈의 크기가 매우 작아 콩돌해안으로 불린다. 백령도의 지질을 구성하고 있는 암석(규암, 이암, 사암, 현무암 등)이 침식, 풍화작용으로 부서진 후 풍파에 의한 마찰로 작고 둥글게 되었다. 천연기념물 392호다.

북한을 찍자  
용기원산 전망대

용기원산은 백령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다. 사곶해변, 담수호, 하늬해변 등의 수려한 풍광과 10km 거리의 황해도 장연군을 관찰할 수 있는 2층 규모의 전망대가 세워져 있다. 끝 섬 전망대로도 불리는 이곳은 자율 운영되며 사진 촬영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 용기포신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으니 백령도 여행의 시작이나 마지막에 방문하는 것이 좋다.

북한과 가까운  
심청각

백령도는 고대소설 <심청전>의 무대다. 심청각은 심청이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몸을 던진 인당수와 환생했다는 연봉바위가 바라보이는 산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 황해도 용연반도까지의 거리는 불과 12km밖에 되지 않는다. 전망 망원경을 여러 대 설치해 좀 더 가까이 관찰할 수 있도록 했다.

 

글·사진 김민수(아볼타)  에디터 천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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