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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익명 넋두리

  • Editor. 강화송 기자
  • 입력 2021.02.01 0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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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이 왔다. “별일 없지?” 
별일은 없는데 큰일이 문제다.
여행이 멈춰 있는 지금을 사는 이들로부터 넋두리를 들었다.
슬퍼하다 그리워하다, 
결국 현실을 체념한 3인의 이야기.
인터뷰는 익명이다. 
그래서 더 솔직담백하다.


●외장하드에 옮겨 붙은 랜섬웨어
여행작가 K의 이야기


별일 없지?  
가장 마지막 출장이 작년 2월. 이제 일자리를 잃어버린 지 1주년을 맞이했다. 대략 10년을 가까이 여행작가로 활동하며 40개국이 훌쩍 넘는 나라를 여행했다. 나의 세상을 넓혀 가는 데 10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했는데 세상이 좁아지는 데는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았다. 너무너무 좁다. 좁고 춥다. 가끔 차를 타고 국내 여행을 간다. 잠시 괜찮아지는가 싶기도 하다가도 채워지지 않는 허한 기분이 있다. 일이 줄어든 것보다 새로운 것을 보고, 찍고, 느낄 수 있는 여행이 줄어든 것이 슬프다. 그냥 그러려니 그러다가 말겠지. 그러다가 말아야 한다 정말.

수입은 아예 없는 것인지?  
대부분의 기존 프리랜서 작가들이 출장으로 돈을 벌진 않았을 거다. 콘텐츠가 있는 한 돈은 번다, 조금 줄었을 뿐이지. 요즘은 글과 사진보단 영상으로 돈을 벌고 있다. 그나마 기술이 있어서 유지할 수 있는 케이스. 아마 글만 써 온 여행작가분들은 힘든 시기를 겪고 있을 거다. <트래비>에서 유독 기억나는 인터뷰가 있다. 최갑수 작가를 다룬 내용이었는데 거기서 강화송 기자가 최갑수 작가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여행업계 원고료는 짜다. 대접받지 못하는 여행작가 후배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최갑수 작가는 이렇게 답했다. ‘솔직히 말하면 없지 않을까? 이제 누구나 글을 쓰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수요보다 공급이 더 많은 시장이다. 최근에 독립서점에 갔더니 여행 에세이가 너무 많아 이젠 받지 않는다더라. 좋은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스스로 차별화된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 깊이 공감한다. 여행업계가 줄면서 확실히 일거리가 줄어들었지만, 그렇다고 없는 것은 아니니 코로나만 탓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무엇이 가장 그립나? 명확하게.  
이맘때의 태국 어느 야시장. 이쯤 태국은 긴 셔츠에 반바지를 입으면 딱 좋을 날씨다. 저녁이 되면 살짝 선선하기까지 하다. 땀을 흘리지 않고 돌아다니는 태국 야시장이라니. 얌꿍 냄새도 기온에 따라 다른 것을 알고 있나. 신기하게도 더울 때는 그 냄새가 습기를 머금어 정말 무겁게 느껴진다. 선선할 때의 얌꿍 냄새를 맡으면 꽃 냄새가 뒤섞인 어느 화원에 온 것처럼 느껴진다. 여행을 한동안 못 갔더니 감성이 늘어서 그런지 몰라도, 정말 그렇다. 정말 오래 비행기를 안 타 보니 드디어 알았다. 태국은 김치 같은 존재였다. 여행을 갈 수 있을 때는 유럽이 그렇게 가고 싶더니만, 지금은 오로지 태국 생각뿐이다. 솔직히 공감하는 사람들 많을 거다, 인정?


지난 2020년의 감정을 표현한다면.
외장하드에 옮겨 붙은 랜섬웨어

 

●지연, 연착 
마침내 결항
승무원 J의 이야기


별일 없지?  
외항사 승무원으로 일한 지 7년 차. 해외 생활에서 돌아와 고향에 내려와서 쌀밥에 김치를 먹는 중이다. 이곳저곳 드라이브 삼아 국내를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낸다. ‘어떻게 지내나’라는 질문에는 항상 ‘안 잘렸다’고 먼저 대답한다. 무급휴직 기간이다. 작년 코로나가 막 시작됐을 때 여행업계는 여름쯤 끝날 거라 예상했다. 여름이 지나서는 겨울, 한 해가 지나서는 올해 안에 끝날 거라고 예상한다. 빠르게 진정된다면 좋겠지만, 한편으로 이 상황이 결국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할 때쯤 괜찮아질 거 같다. 신생 항공사들도 엄청 고생하고 있다고 들었다. 지인이 에어프레미아에 다니고 있는데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보잉사 항공기 제작이 지연돼 1호기 도입조차 못하고 있단다. 모두가 안쓰러운 지금이지만 내 코가 석자다. 월수입이 ‘0’이다.

©트래비
©트래비

정말 불안하겠다.  
처음에는 기본급에서 ‘자발적인 신청’을 통해 25% 정도 기본급 삭감 신청을 받았었다. 소문으로는 외항사에 다니는 외국인 승무원이 삭감 신청을 거절할 경우 구조조정 대상자로 선정될 수 있다고 들었다. 소문이겠거니 했는데 정말 정리해고를 하더라. 참 착잡한 심정이었지만 아직 잘리진 않았다. 승무원의 월수입은 거의 비행수당에서 발생하는데 비행 스케줄 자체가 없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다. 고향집에서 머물고 있어 특별한 생활비가 필요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불안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체념하게 된다. ‘그냥 쉬어 간다고 생각하자’라고 항상 되새긴다. 이 일이 참 좋다.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는 일. 그러나 개인 홀로는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그저 업계가 버텨 주길 바랄 뿐이다. 그게 가장 불안하다. 

©트래비
©트래비

무엇이 가장 그립나?  
그냥 코로나 이전의 상황이 모두 그립다. 특히 공항으로 향하는 길, 크루들과 수다 떠는 일, 공항에서 스탠바이 하는 일, 그런 평범했던 상황들. 아, 아침마다 메이크업하던 일상도 그립다. 특히 립. 외항사 메이크업의 가장 포인트는 역시 강렬한 레드립 아니겠나. 항공사마다 다르지만 내가 있던 외항사는 네일아트도 메이크업 규정에 포함되어 있었다. 한동안 방치된 내 입술과 손을 볼 때마다 코끝이 시큰해진다. 그런데 그리워해서 뭐할까. 이미 지나간 일인 것을. 코로나 이전의 세상은 다시 오지 않을 거라는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의 말. 그립다기보다 아쉽다. 왜 그때 더 즐겁지 못했을까.


지난 2020년의 감정을 표현한다면.  
지연, 연착 마침내 결항


●근손실
퍼스널 트레이너 
S의 이야기


별일 없지?
넷플릭스 <스위트홈> 봤나. 줄거리를 대략 설명하면 자신의 욕망에 잠식되어 괴물로 변해 가는 과정을 담은 드라마다. 거기서 근육에 집착해 거대 근육 덩어리로 변해 버린 괴물이 나온다. 대사는 오직 ‘프로틴’이다. 만약 내가 욕망에 잠식되어 괴물이 된다면, 딱 그 모습일 거다. 신나게 운동하고 싶다. 빠른 비트의 음악, 후덥지근한 열기, 시원하게 마스크 벗고 ‘흐읍’ 소리 내보는 게 소원이다. 몸만 얇아지면 다행이지, 지갑도 얇아졌다. 이유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알지 않나. 심적으로 어렵다. 한편으로는 후회도 된다. 운동을 제외하고는 사실 할 줄 아는 게 그리 많지 않더라.

지금은 무엇이든 찾아 배우려고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지금의 시기를 진화의 과정이라 생각하며 보내고 있다. ‘장장근’이라는 것이 있다. 아래팔 앞 칸에서 아주 얕은 층을 이루는 근육이다.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을 마주 대면 손목에서 튀어나오는 그 부분. 예전에는 수렵 활동이나 위협을 피하기 위해 나무를 올라타는 일이 많았는데, 이때 주로 사용하던 근육이 바로 장장근이다. 현대사회에서 장장근을 쓸 일이 뭐가 있나. 뭐 손목을 굽히거나 손바닥을 오목하게 만들거나 할 때 사용되긴 한다. 삶의 방식이 변하면서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이 나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지금 내 처지가 장장근이다. 대퇴사두근 같은 일을 찾고 있다.

 

잠시 제한된 것뿐인데, 굳이 다른 일을 찾을 필요가 있을까?
나의 일이 단 한 번도 즐겁지 않은 적이 없다. 사람들과 운동 방식을 공유하고, 그 공유된 방식으로 변화되는 사람들의 몸을 보는 것이 즐겁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 있는 삶이 자랑스러웠다. 헬스장이 문을 닫으며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졌고, 생활이 확실히 어려워졌다. 다시 생각하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있었던 그러한 상황이 참 위태로웠던 것처럼 느껴진다. 그 위태로움이 나를 자꾸 재촉한다. 삶에 안주하지 말고 계속해서 계획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떠오른다. 처음에는 많이 낙담했다. 그렇지만 이제 낙담할 시간이 없다. 실질적인 생활이 나를 재촉한다. 

운동 말고 그리운 건 없나?  
왜 없겠나. 잘 만든 몸, 시원하게 까고 다닐 수 있는 해변이 특히 그립다. 보라카이 같은 곳.


지난 2020년의 감정을 표현한다면.  
근손실 

 

글·사진 강화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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