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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껏 곡성 담기

  • Editor. 이은지 기자
  • 입력 2021.02.19 10:18
  • 수정 2021.02.19 1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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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기차마을 초입, 증기기관차를 타러 가는 부자
섬진강기차마을 초입, 증기기관차를 타러 가는 부자

여행지에서의 하루는 유난히 짧다.
가진 게 두 발뿐인 뚜벅이에게는 더욱 그렇다. 
관광택시에 올라 곡성을 마음껏 담았다.

곡성역에서 차로 2분 거리에 위치한 메타세콰이어길
곡성역에서 차로 2분 거리에 위치한 메타세콰이어길

●멋쟁이 빨간 넥타이 기사님 


뚜벅이는 괴롭다. 가고픈 곳은 많은데 막상 갈 수 있는 곳은 적다. 아쉬운 듯 돌아서고 다시 찾는 게 여행의 묘미라고 하지만, 어쩐지 늘 아쉬움을 감출 수는 없다. 곡성역 앞에서 푸른색 니트에 빨간 넥타이를 한 기사님을 만나자마자 마음이 놓였던 이유다. “어디 가실 거예요?” 기사님께 형광펜을 친 추천 코스 목록을 내밀었다. “성륜사는 다른 관광지들이랑 너무 멀고….” 아뿔싸. 가고 싶은 곳을 가득 담았더니 이번에도 역시나 욕심이 과했나 보다. 기사님 입에서 척척 나오는 코스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언제나 최적의 코스는 토박이의 익숙한 발길에서 나오는 법이었다. 

곡성역에서 출발하자마자 메타세콰이어 길을 만났다. 메타세콰이어 나무가 2차선 도로를 둘러싸고 하늘을 향해 높이 뻗어있었다. 약 800m 길이로 차를 타고 지나도 좋지만, 잠시 여유를 즐기며 자박자박 걸어도 좋다. 겨울을 나고 있는 앙상한 가지를 바라보며, 어쩌면 사계절을 제일 잘 아는 건 나무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도인들이 모여든 도림사
도인들이 모여든 도림사

다음으로 향한 곳은 도림사였다. 맑은 계곡에 오토캠핑장까지 갖췄으니 여름이면 발 디딜 틈조차 없다고. 남들보다 한 발 먼저 방문한 그곳엔 채 녹지 않은 눈들이 소복이 땅을 덮고 있었다. 현대를 사는 우리들이 사진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담는다면, 선조들은 시 한 구절을 읊으며 마음속에 새겼을 테다. 옛 시인들이 앉았을 법한 반석마다 한문으로 된 시가 남아있었다. 한자에는 까막눈이라지만 자꾸만 호기심이 가까이 다가가보라 재촉했다. 혹여 다칠까 망설이는 사이에 기사님께서 먼저 계곡 아래로 발을 딛고는 손을 내밀었다. 장갑 너머로 느껴지는 체온이 따뜻했다. 

도림사 계곡 곳곳에는 한시 구절이 새겨져있다
도림사 계곡 곳곳에는 한시 구절이 새겨져있다

도림사는 화엄사에서 이주한 원효대사가 창건한 절이다. 도선국사, 사명대사 등 도인들이 모여들었다 하여 도림사라 이름 붙여졌다고. 모자이크를 한 듯 눈이 듬성듬성 내려앉은 계단을 성큼성큼 올랐다.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에 합장하고 경내로 들어섰다. 알록달록 단청 너머로 아이만 한 고드름이 거꾸로 자랐다. 

안개가 자욱한 침실습지
안개가 자욱한 침실습지

●안갯속 도깨비나라 


탐험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이를테면 습지, 동굴, 정글과 같은 조금은 멀게 느껴질 수도 있는 자연에 대해서. 행선지를 곡성으로 정하자마자 침실습지를 가장 먼저 지도에 표시했다. 섬진강은 곡성천, 금천천, 고달천과 만나 거대한 습지를 이룬다. 203만㎡에 달하는 넓은 습지에 멸종위기 야생동물인 수달과 삵, 남생이, 흰꼬리수리 등 665종의 생물이 서식하고 있다. 일교차가 큰 가을과 봄에는 물안개가 피어올라 출사지로도 소문이 자자한 곳이다. 침실습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고달리잠수교를 건너 퐁퐁다리로 향했다. 다리 유실을 방지하기 위해 표면에 동그랗게 구멍을 냈는데, 강이 불어나면 구멍 사이로 퐁퐁 물이 솟아오른다고.

섬진강도깨비마을 입구에 있는 그림책 카페
섬진강도깨비마을 입구에 있는 그림책 카페

섬진강에는 도깨비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조선시대 마천목 장군은 섬진강에서 돌로 변한 도깨비 대장을 줍게 된다. 대장을 돌려 달라는 도깨비들의 간청에 장군은 돌을 제자리에 돌려놓았고, 도깨비들은 어살을 만들어 은혜에 보답했다고 한다. 섬진강 도깨비마을은 19만8,000㎡ 부지에 도깨비공원, 도깨비 숲길, 도깨비 전시관, 체험학습장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인형극, 동화 구연, 숲 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자연 속에서 도깨비와 어울리는 거대한 놀이터로 자리매김했다. 

독도의 사계절을 만날 수 있는 김종권독도사진전시관
독도의 사계절을 만날 수 있는 김종권독도사진전시관

일생을 바칠 정도의 열정이란 어떤 것일까. 택시투어 마지막 행선지는 김종권 독도사진전시관이었다. 김종권 작가는 1992년 울릉도를 방문했을 당시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독도 사진을 찍게 된다. 이후 독도를 수십 번 방문하면서 독도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았다. 폐교를 리모델링한 전시관 교실에는 김 작가의 작품이, 복도에는 독도 관련 소품과 작가의 손때 묻은 촬영 장비가 놓여있었다. 관람을 마치고 따뜻한 대추차를 마시면서 작가와 얘기를 나눴다. “이게 인생을 바꿔놓은 카메라야.” 광활한 자연을 담기 위해 작가가 직접 개조한 카메라에는 한 사람의 발자취가 담겨 있었다. 

장미공원 한가운데 위치한 여인 조형물
장미공원 한가운데 위치한 여인 조형물

●어디를 둘러봐도 기차


섬진강기차마을은 구 곡성역에서부터 시작된다.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멋스러운 역사는 훌륭한 포토존이다. 마음껏 기념사진을 찍은 후에 역 안으로 들어서면 어쩐지 기차를 타고 어디든 떠나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마을 내부는 온통 기차로 가득하다. 간간이 보이는 의자조차 기차를 닮았다. “기차 출발합니다. 뿌뿌.” 아이가 의자에 올라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아빠를 졸랐다. “뿌뿌.” 아빠가 뒤에서 아이를 끌어안고 화답하듯 기차소리를 냈다. 칙칙폭폭 한참을 달리고 나서야 아이의 기차는 종착역에 다다랐다.

기차모양 다리가 물결에 비춰진다
기차모양 다리가 물결에 비춰진다

여행지가 품고 있는 이야기만큼 추억은 배가 된다. 시간대별로 거대한 증기기관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승객을 태울 준비를 하고, 마을을 둘러싸는 레일 위로는 레일바이크가 힘차게 나아간다. 기차마을 깊숙이 자리한 드림랜드에서는 바이킹, 회전목마, 관람차 등 놀이기구가 기다리고 있다. 10개 남짓한 시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을 보고만 있자니 몸이 근질근질하다. 섬진강기차마을은 입장권 금액 일부를 곡성심청상품권으로 돌려주는데, 바로 이곳에 쓰기로 한다. 안전을 위해 일회용 장갑을 착용하고, 바이킹에 올랐다. 정점에서 힘껏 소리를 질러본다. 마스크 없는 여행에 대한 염원을 담은 함성소리가 마스크를 뚫고 나갔다. 

독립영화 한 장면 같은 드림랜드, 알록달록한 색감이 맞이한다
독립영화 한 장면 같은 드림랜드, 알록달록한 색감이 맞이한다
요술랜드를 지키는 도깨비
요술랜드를 지키는 도깨비

곡성의 다양한 면면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관도 가득하다. 증기기관차 모양의 치치뿌뿌 놀이터에서는 세계 기차의 역사가 펼쳐진다. 증기기관차의 첫 발명부터 현대의 고속 열차까지 연표와 모형으로 한눈에 들어온다. 기차 조종석을 재현한 방에 들어서면 철길 풍경이 기관사 시점으로 펼쳐진다. 좌석에서는 실감하지 못했던 기차의 속도에 머리가 어질해졌다. 요술랜드 역사체험전시관에 들어서면 도깨비 친구들이 맞이한다. 도깨비 설화를 곁들인 게임부터 거울 미로, 도깨비길까지 도깨비 마을을 탐험하다 보면 어느새 동심으로 돌아간다. 

기차마을을 뒤로하고 아쉬움에 곡성 읍내를 산책했다. 간판 곳곳에서 섬진강을 상징하는 물결 모양을  발견할 수 있었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정류장과 화장실도 평범하지 않다. 증기기관차, 레일바이크 모양 등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감성 골목여행이라는 문구에 홀린 듯이 골목길로 들어섰다. 낭만이 가득한 벽화를 바라보다 우연찮게 강아지와 만났다. 곡성에서의 모든 순간을 욕심껏 꾹꾹 눌러 담았다. 

때 묻은 외관도 정겨운 기차
때 묻은 외관도 정겨운 기차
골목을 누비며 만날 수 있는 벽화
골목을 누비며 만날 수 있는 벽화

*기자가 체험한 우수여행상품
코레일관광개발 [S-train&관광택시 자유여행 곡성편(광택열차)]


곡성 글·사진=이은지 기자 even@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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