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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없이 사는 사람들의 땅, 전남 강진

최갑수의 탐식도시

  • Editor. 최갑수
  • 입력 2021.05.02 10:10
  • 수정 2022.05.24 0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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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의 봄. 벚꽃이 어느 집 마당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강진의 봄. 벚꽃이 어느 집 마당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봄 가는 게 아쉬워 강진으로 갔다. 한정식도 먹었고 주꾸미, 바지락도 먹었다. 다산초당과 백련사에도 갔다. 나와서는 맑은 차 한 잔을 마셨다. 
어느 것 하나 부러울 것 없는 봄. 다만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간다는 게 아쉬울 뿐이었다.

 

●강진이라는 곳


벚꽃, 매화, 산수유가 이 땅의 봄을 밝히며 한바탕 요란하게 피고 졌다. 나무들은 옅은 초록 잎을 물고 있다. 이 초록이 점점 진해지고 곧 여름이 시작될 것이다. 노루 꼬리처럼 짧기만 한 이 땅의 봄이 안타까워 강진으로 갔다. 백련사와 영랑생가 뒷마당에 낭자한 동백이라도 볼 요량이었다. 봄 햇살이 잠자리 날개처럼 투명하게 빛나고 찰진 개펄에는 바지락, 낙지가 쑥쑥 자라는 그런 때였다. 

탐진강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만들어진 강진만 생태공원. 탐방로를 따라 다양한 습지 생물을 관찰할 수 있다
탐진강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만들어진 강진만 생태공원. 탐방로를 따라 다양한 습지 생물을 관찰할 수 있다

강진은 남쪽 끝, 해남과 장흥 사이에 있다. ‘편안한 나루(康津)’라는 이름 그대로, 사람들은 예로부터 별걱정 없이 살았다. 기름진 개펄과 넓은 들판에 기대 풍요로운 삶을 누렸다. 강진 땅에 들어서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바람은 잔잔했고 바다는 배부른 고양이처럼 순했다. 마른 오이처럼 오그라들었던 마음은 반듯하게 펴졌고 날카롭게 날이 섰던 정신도 한결 누그러졌다. 마량으로 향했다. 목포 IC를 빠져나와 강진으로 가는 2번 국도를 따라 1시간 정도를 가면 강진 읍내. 다시 23번 국도에 올랐다. 23번 국도는 국내에서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해안도로다. 도로 주변에는 예쁜 바다 마을도 여럿 놓여 있다. 마음에 드는 곳이 있다면 핸들을 살짝 돌리기만 하면 된다. 23번 국도는, 어떤 때는 눈부시게 푸른 바다를 보여 주고 어떤 때는 기름진 햇살이 내려앉는 개펄을 보여 준다. 어떤 때는 월출산 위로 둥실 떠오르는 달을 보여 주기도 한다.

전남 강진 마량포구
전남 강진 마량포구

마량포구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무렵, 붉은 햇덩이가 바다 너머로 막 사라지려 할 때였다. 포구는 파도 출렁대는 곳에 환한 창이 있었고, 골목 어딘가에서는 김칫국 냄새가 번지고 있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아마도 이런 풍경에 기대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지나가지 않아야 할 것들이 지나가고 있는 안타까운 마음을, 풍경에 기대 우리네 스산한 마음을 위로받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풍경은 아무 말 없이 생채기를 어루만져 주는 묘한 힘을 지녔다.


포구를 걸었다. 배들이 서로 어깨를 묶고 파도에 흔들린다. 방파제 끝에 등대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수평선 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따뜻하고 평화로웠다. 강진은 예로부터 바람이 없기로 유명하다. 지도를 보면 못질을 한 듯 땅속 깊숙이 들어와 있다. 원래 만(灣)은 파도가 잔잔한데, 강진에 유독 파도가 없는 까닭은 천불산과 만덕산 등 강진을 둘러싼 산들이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길도와 소안도, 대모도, 청산도 등 먼 섬이 한 번 파도를 걸러 주고 고금도와 완도, 신지도, 조약도, 생일도, 금일도 등 작은 섬이 다시 한 번 막아 준다. 강진 앞바다가 워낙 편안한 바다인 까닭에 물고기들도 몰려든다. 산란을 위한 장소로 찾는다. 강진 바다의 어부들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면 그물이 터질 정도로 고기를 잡는다. 돔과 우럭, 광어뿐만이 아니라 강진 앞바다에는 남해안에서 나는 모든 물고기가 다 있다. 낚시꾼들도 사시사철 찾아든다.

강진의 기름진 갯벌. 바지락, 낙지 등 온갖 맛있는 것들이 이 속에서 쑥쑥 자란다
강진의 기름진 갯벌. 바지락, 낙지 등 온갖 맛있는 것들이 이 속에서 쑥쑥 자란다

●어느 하나 맛없는 것 없는 한정식 한 상


포구 앞에서, 배가 고팠다. 예전엔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음식을 생각한다는 게 뭔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요즘은 음식부터 생각난다. 고백하자면, 브라질 이과수 폭포의 장엄한 풍경 앞에서 나는 함께 간 동행에게 “어디 가서 커피라도 한 잔 하러 가자”고 말했고, 터키 카파도키아의 기묘한 풍경을 내려다보는 새벽 열기구 안에서 얼른 호텔로 돌아가 바삭한 크루아상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이가 드니까 먹는 게 좋고 점점 음식 앞에서 진심이 된다. 솔직히 말해, 아무리 좋은 풍경도 20분을 바라보고 있기가 어렵다.


뭐라도 먹어야 하지만, 강진에서는 아무 음식이나 먹기 싫었다. 왜냐면 강진이니까. 대한민국에서 음식으로 둘째가라고 하면 서러운 곳이니까. 그래서 한정식을 먹어 보기로 했다. 한정식은 말 그대로 음식이 한 상 가득 차려져 나오는 음식이다. 접시가 2층, 3층으로 쌓여 나온다.

청자골종가집의 한정식. 초록색 도자기 접시 위에 강진에서 난 재료로 만든 맛깔난 음식이 올려져 있다
청자골종가집의 한정식. 초록색 도자기 접시 위에 강진에서 난 재료로 만든 맛깔난 음식이 올려져 있다

강진에서 유명한 집은 ‘청자골종가집’이다. 한옥으로 멋지게 지어진 집이다. 여행을 떠나오면 가끔 이런 집엘 간다. 여행길이 아니고서는 이런 집에 갈 일이 없으니까. 강진에는 한정식집이 많은데 언제부터 많아졌는지는 알 길이 없다. 유홍준 선생의 책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우리나라 3대 한정식집으로 이름을 올린 ‘해태식당’도 이곳 강진에 있다. 2000년대 들어 한정식 인기는 예전만 못하지만 한 상 푸짐하게 차리는 남도식 한정식은 여전히 누구나 한 번쯤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이다.

한정식 이야기가 나오면 “대체 그런 음식은 왜 먹느냐”며 언짢은 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다. 음식은 반드시 서민들이 가는 허름한 집이 진짜라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6시 내고향>, <맛있는 녀석들>, <골목식당>, <백반기행> 등등에 나오는 집은 무조건 피하고 본다. 나야 뭐, 그런 집도 괜찮다는 입장이다. ‘방송에 나올 만하니까 나오는 거고 사람들이 많이 가는 데는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간다. 들어가서 맛없으면 다음부터 안 오면 그뿐인 것이고.

 

청자골 종가집은 으리으리한 집이다. 자리를 잡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상이 나왔다. 연초록색 도자기에 담긴 반찬들이 상 가득 올라가 있다. 홍어삼합, 생선회, 전복회, 생고기, 새우치즈구이, 주꾸미와 홍어무침, 대구찜, 완자전 등이 먹음직스럽다. 접지 여기저기를 젓가락이 옮겨 다닌다. 조금 있으니 돼지고기와 표고 탕수가 또 나왔다. 돼지고기에서는 불 맛이 연하게 나고 탕수는 식감이 좋다. 잡채도 맛있다. 음식을 거의 다 먹어 갈 때쯤, 보리굴비와 꽃게 무침, 갓김치와 함께 밥과 국이 나온다. 20만원 상차림에는 산낙지, 생선찜, 해삼, 육전, 오분자기 등이 더 나온다고 한다.

청자골종가집 한정식 한 상에 올려진 먹음직스러운 육회
청자골종가집 한정식 한 상에 올려진 먹음직스러운 육회

한정식 앞에서는 맛에 대해 조금은 관대해지는 것 같다. 아마도 압도적인 비주얼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반찬의 ‘인해전술’ 앞에서 이 음식은 맛이 어떻고, 저 음식은 맛이 어떻고 하면서 따지는 일이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가 본 한정식집 중에서 맛이 크게 떨어지는 집은 만나지 못했다. 식재료의 수급이나 조리, 종업원 유지나 고용 등에 있어 아무래도 일정 수준의 솜씨와 경험, 내공이 있어야 이런 집을 계속 유지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정식은 시스템인 것이다. ‘이 음식도 맛있고 저 음식도 맛있고…, 먹다 보니 숨쉬기도 힘드네. 아무쪼록 잘 먹었다.’ 아마도 대부분 사람들은 한정식집을 나오며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청자골종가집
주소: 전남 강진군 군동면 종합운동장길 106-11
영업시간: 매일 11:00~21:00, 명절 휴무
가격: 한정식 2인 8만원, 4인 12만원

봄이 온 것 같더니 어느새 가고 있다. 동백이 낭자하다
봄이 온 것 같더니 어느새 가고 있다. 동백이 낭자하다

●동백 밟고 다산의 흔적을 찾아가는 길


다음날, 배부른 잠을 자고 다산초당부터 찾았다. ‘강진’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가 ‘다산 정약용’이다. 경기 남양주 출신인 다산은 천주교를 믿었다는 죄로 강진으로 유배를 와 18년을 살았다. 1801∼1818년, 40세에서 57세에 이르는 시기였다. 유배지에서 홀로 남겨진 그를 찾아온 건 ‘외로움’이었다. 물도, 바람도, 기후도 낯선 먼 마을. 서울에서 귀양 온 ‘폐족’을 아무도 반겨주지 않았다. 다산은 “7년 동안 유배지에서 문을 닫아걸고 지내다 보니 노비들조차 나와는 함께 서서 이야기도 하려 하지 않는다”고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그가 얼마나 외롭고 먹먹한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강진의 봄은 온통 동백이 붉게 물들인다
강진의 봄은 온통 동백이 붉게 물들인다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 그는 공부에 매달렸고 유배 생활 동안 600여 권의 저서를 쏟아낸다. ‘보이는 것은 하늘 빛깔뿐이고, 밤새도록 들리는 것이라고는 벌레 울음소리뿐’인 외로움을 안고 <경세유표>, <흠흠신서>, <목민심서> 등을 펴냈다. 모두 정약용의 역작으로 꼽히는 작품들이다. 개인에게는 불행하기 그지없는 시간이었지만 이 땅의 학계에는 축복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다산의 위대함은 그가 남긴 수백 권의 저서나 그의 학문이 갖춘 위엄 이전에, 유배라는 고립된 환경과 18년이라는 미지의 시간을 버텨 낸 그의 의지에서 먼저 찾아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산은 강진에 처음 유배 와 4년 동안은 강진읍성 동문 밖 주막집 바깥채 사의재((四宜齋)에 머문다. 사의재는 ‘생각, 용모, 언어, 동작이 올바른 이가 사는 집’이라는 뜻이다. 이곳에서 그는 주막집에서 일하던 표씨부인과 인연을 맺고 홍림이라는 딸까지 낳게 된다. 그러다 그를 곤궁히 여긴 해남 윤씨 일가가 초당을 지어 주어 거처를 옮기게 되는데 그것이 다산초당이다. 다산은 거처를 옮기며 ‘이제야 생각할 겨를을 얻었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다산초당 가는 길은 기분 좋은 숲길이다. 대숲이 울창하다. 숲에서는 맑은 바람 소리가 흘러나온다. 대숲을 지나면 다산초당이다. 다산이 ‘정석(丁石)’이라는 글자를 직접 새긴 정석바위와 차를 끓이던 약수인 약천, 연못 가운데 조그만 산처럼 쌓아놓은 연지석가산 등 다산사경과 다산이 시름을 달래던 장소에 세워진 천일각이라는 정자가 있다. 

다산초당에 동백이 피었다
다산초당에 동백이 피었다

사람들은 다산초당을 휘휘 돌아보고 다시 내려가지만, 백련사까지 이어지는 오솔길은 놓치기 아름다운 코스다. 600m는 오르막길, 200m는 내리막길. 하지만 올라가는 길도 험하지 않아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걸어도 30~40분이면 백련사에 닿을 수 있다. 오솔길의 풍광만으로도 산길을 올라온 값을 하지만, 이 길의 유래를 알면 감흥은 한층 더 깊어진다. 다산은 유배지인 강진에서 당대의 학승 혜장선사와 교류를 나누었다. 혜장선사가 해남 대흥사의 말사인 백련사에 머물 때 다산은 그에게서 다도를 배우고 심취했다. 다산이 백련사의 혜장을 찾아 담론을 벌이고 차를 마시기 위해 오갔던 길이 바로 이 오솔길이다. 아마도 다산에게는 백련사와 이 오솔길이 있어 강진이 척박한 유배지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백련사는 7,000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자생하는 곳. 천연기념물 151호로 지정되어 있다. 11월부터 동백꽃이 피기 시작해 4월 중순에 만개한다. 4월 말이 되면 떨어지기 시작해 바닥을 물들인다. 예로부터 동백꽃은 세 번 핀다고 한다. 나무에서 한 번, 땅에 떨어져서 한 번, 그리고 당신의 마음속에서 또 한 번. 지금 백련사에는 땅에 핀 동백이 낭자하다.

백운동 정원의 대나무숲
백운동 정원의 대나무숲
백운동 정원, 드넓게 펼쳐진 녹차 밭
백운동 정원, 드넓게 펼쳐진 녹차 밭
백운동 정원을 찾아, 봄산책을 즐기는 여행객들
백운동 정원을 찾아, 봄산책을 즐기는 여행객들

강진 봄 여행의 마지막 일정은 백운동 정원이었다. 조선 중기 선비 이담로가 지은 별서정원이다. 까마득히 잊혔다가 다산이 시를 짓고 초의선사가 그림을 그려 만든 ‘백운첩(白雲帖)’이 발견되면서 복원됐다. 백운동 정원 가는 길, 어둑한 숲길을 지나자 담장 옆 커다란 목련나무 한 그루가 여행자를 맞이한다. 목련은 세상의 모든 봄을 품고 있는 듯 환하게 피어 있었다. 찬란해서 눈부셨다.

영랑생가 뒷마당의 동백숲
영랑생가 뒷마당의 동백숲

 

●그리고 강진에서 먹은 음식들


강진에서는 주꾸미와 바지락을 더 먹었다. 모두 봄이 제철인 음식이다. 주꾸미는 산란기를 앞둔 4~5월이 가장 맛있다. 이때 주꾸미는 알이 꽉 차 있고, 샤브샤브로 먹는 것이 가장 좋다. ‘월미도식당’의 주꾸미 샤브샤브가 맛있다. 서울에서 맛보는 주꾸미와는 차원이 다른 알이 꽉 찬 주꾸미를 맛볼 수 있다.

월미도 식당의 주꾸미 샤브샤브
월미도 식당의 주꾸미 샤브샤브
왕성식당의 새콤달콤한 바지락 회무침
왕성식당의 새콤달콤한 바지락 회무침

영랑생가에서 가까운 ‘왕성식당’에서는 바지락 비빔밥을 먹었다. 강진만에서 캔 바지락에 미나리와 죽순을 넣고 새콤달콤한 양념으로 버무렸다. 한 젓가락 떠 넣자마자 입안 가득 봄으로 넘쳐났다.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맛이리라. 일어나자마자 달려간 곳은 ‘오케이식당’이다. 백반을 먹었다. 앉으면 반찬 14~15가지가 담긴 쟁반이 놓인다. 그러고도 7,000원이었다.

오케이식당의 7,000원짜리 백반. 아침 식사를 하기 좋은 곳이다
오케이식당의 7,000원짜리 백반. 아침 식사를 하기 좋은 곳이다

나이가 드나 보다. 예전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풍경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새삼 고맙다. 그것은 대부분 때맞춰 우리 곁으로 찾아와 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동백이며 목련, 주꾸미며 바지락 같은 것, 그것들은 잊지 않고 우리를 찾아와 우리 곁에 한동안 머물다 떠나간다. 당연한 일인데, 그 사실이 참 고맙다. 계절은 어떻게 때가 되면 우리 앞으로 어김없이 찾아오는가. 와서는 눈부신 풍경과 맛있는 음식을 펼쳐 놓는가. 강진, 봄빛 속을 천천히 걸었던 시간. 봄볕에 손등을 따스하게 데우며 돌담에 기대었던 시간. 목련 그늘은 점점 짙어져 발걸음은 오래도록 그 아래를 맴돌았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었다. 목련 꽃잎 몇 장이 엽서처럼 후드득 떨어졌다. 지금 만난 것들은 내년 이맘때 또 우리를 찾아와 줄 것이기에, 그것을 알고 있기에 보내 줄 수도 있는 것이다. 봄, 왔는가 싶었는데 어느덧 가고 있다. 

 

월미도식당
주소: 전남 강진군 강진읍 보은로안길 18

 

*최갑수의 탐식도시는 맛을 느끼고, 분석하고, 쓰는 사람의 여행 이야기입니다. 가끔은 술 냄새가 날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저히 그냥은 못 지나칠 먹거리들이 가득하니까요. 도시의 맛을 탐식하러, 지금 떠납니다.
 

글·사진 최갑수  에디터 강화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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