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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이 만만하니?

  • Editor. 손고은 기자
  • 입력 2021.05.26 09:55
  • 수정 2022.05.24 1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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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강에 서 있는 소양강처녀상과 춘천 소양강 스카이워크
소양강에 서 있는 소양강처녀상과 춘천 소양강 스카이워크

그렇다. 춘천은 만만하다. 
나쁜 뜻이 아니다. 
부담스럽지 않게 대할 만하다는 의미다. 
가깝고도 충분한 여행이 춘천에 있다.  

 

청평사로 올라가는 길 풍경
청평사로 올라가는 길 풍경

●청평사에 진심


청평사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머릿속이 어지러운 날, 가볍게 걷고 싶은 날, 그냥 좀 별 뜻 없이 시간을 때우고 싶은 날과 같이, 언제든 잠시 환기가 필요할 때면, 곧잘 청평사에 간다고 했다. 그는 청평사의 사계절 풍경마저 속속 꿰고 있는, 청평사에 꽤 진심이었다.

공주와 상사뱀 설화를 구현한 동상
공주와 상사뱀 설화를 구현한 동상

청평사는 973년, 그러니까 고려시대 광종 24년에 창건된 절이다. 처음 백암선원에서 보현원, 문수원 그리고 조선 명종 때 청평사로 수차례 이름이 바뀌었다. 수많은 학자들과 문인들이 청평사를 둘러싼 기암괴석과 폭포, 연못 등 아름다운 풍경에 반해 이곳에 머무르며 학문을 쌓았고, 고려시대 대표 귀족이었던 이자현 선생도 권세와 부를 버리고 이곳에서 37년이라는 시간동안 마음을 다스리며 지낸 것으로 기록돼 있다. 천 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 그가 종종 청평사를 찾는 이유도 비슷했다. 뛰어난 경치, 조금은 신비로운 듯한 사찰의 분위기에 중독된 것 같다고 했다. 서울에서 약 2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적당한 거리도 적당한 이유였다.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청평사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청평사

그는 청평사로 가는 뱃길을 알려줬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사력식댐인 소양강댐의 인공호수 소양호에서 청평사로 가는 배가 있다. 아침 10시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하루에 한 시간 간격으로 8차례 배가 오간다. 오봉산을 돌아 차량으로 곧장 갈 수도 있지만 탁 트인 소양호의 풍경에 잠시 퐁당 빠지는 쪽을 추천한다. 물, 햇빛 그리고 바람. 모든 생명체에게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세 가지가 사방으로 흐른다.

구송폭포는 주변에 아홉 개의 소나무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구송폭포는 주변에 아홉 개의 소나무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선착장에서 청평사까지는 그다지 서두르지 않아도 30~40분 안에 닿을 수 있다. 사찰로 향하는 여느 길처럼 산자락에는 막걸리와 도토리묵, 각종 모듬전과 같은 음식을 파는 식당들이 자주 발걸음을 붙잡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청평사로 가는 길은 심심하지 않다. 졸졸졸 물소리를 BGM 삼고 이 나무는 어떤 나무인지, 저 꽃은 어떤 꽃인지 유추해보다가 가끔 돌탑 위에 돌맹이 하나를 올리고 소원을 비느라 걸음을 종종 멈추게 된다. 공주와 상사뱀 설화가 담긴 공주탕을 지나 거북바위와 구송폭포까지 차례대로 만나고 나면 청평사다.

4월말, 청평사에는 꽃잔디가 활짝 폈다
4월말, 청평사에는 꽃잔디가 활짝 폈다

봄이 오면 예쁜 꽃잔디가 청평사를 뒤덮는다는 그의 말이 맞았다. 화사한 진분홍색 꽃잔디로 단장한 청평사는 새색시처럼 고왔다. 관음전과 나한전, 대웅전을 거쳐 가장 안쪽의 극락보전까지 오르는 길은 고즈넉하다. 곳곳에는 수많은 이들의 소망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기도, 돌탑에 차곡차곡 쌓여 있기도 했다. 꾹 참고 아껴둔 작은 돌맹이를 꽃잔디 속 스님상 근처 돌탑 위에 하나 올리고 발걸음을 돌렸다. 마당 의자에 잠시 앉아 아무 생각 없이 배 시간을 기다리는데 판매점 스피커에서 스님의 가르침이 흘러나왔다. 이런 구절이 있었다. “가진 것을 잃지 않기 위해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가.” 그가 청평사에 진심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소양강처녀는 소양강에 있다


소양강하면 할머니가 생각난다. 내가 어릴 적 할머니의 애창곡은 <소양강처녀>였던 걸로 기억한다. 1970년대 가수 김태희씨의 노래로 1992년에는 노래방 인기 차트 1위였던 것으로 기록돼 있으니, 내 기억이 틀리진 않은 듯하다.

스카이워크는 156m 구간이 투명한 유리바닥으로 만들어졌다
스카이워크는 156m 구간이 투명한 유리바닥으로 만들어졌다

할머니의 소양강처녀는 정말로 소양강에 있다. 소양강 스카이워크와 소양2교 사이에 말이다. 소양강처녀를 상징하는 동상으로 2005년 이곳에 세워졌다. 소양강처녀는 다시 돌아온다고 맹세하고 떠난 이를 기다리며 애타는 마음을 담은 노래다. 그 아련한 마음이 홀로 우뚝 선 동상에서도 사뭇 느껴진다. 머리칼과 옷고름이 바람에 흩날리는 와중에 한 손에는 치맛자락을, 또 다른 한 손에는 갈대를 움켜쥐고 선 소양강처녀다.

소양강처녀상과 스카이워크
소양강처녀상과 스카이워크

소양강처녀 옆에는 춘천 소양강 스카이워크가 있다. 입장료가 2,000원인데 입장권과 함께 춘천사랑상품권 2,000원권을 준다. 춘천시 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지역 화폐다. 춘천에서 종종 ‘춘천사랑상품권 환영’이라는 문구를 만날 수 있었던 걸 보면 아마도 관광객의 혜택이 지역 내 상인들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으로 돌아가는 듯하다. 코로나19가 없었던 2019년에만 해도 연간 방문객이 약 64만명에 달했다고 하니 모두가 상품권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소양강댐 근처 춘천 물박물관의 포토존
소양강댐 근처 춘천 물박물관의 포토존

스카이워크는 174m에 달하는 시원하게 뻗은 교량이다. 그중 156m는 투명 유리바닥 구간으로 발 아래 소양강이 흐르는 모습이 아찔하다. 가뜩이나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여 어지러운데 강바람이라도 잠시 불면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게 된다. 한 발, 한 발 스카이워크 끝에 다다르면 원형 광장 앞 ‘쏘가리 상’이 입을 벌리고 있다. 쏘가리 상은 소양호에 살며 물에서 튀어 오르는 쏘가리를 형상화한 동상이다. 소양강처녀 노래 발상지인 이곳의 관광 명소화를 위해 진행된 공모전에서 당선된 작품이라고. 국민 애창곡을 대하는 춘천시의 노력이 꽤 직관적이다.

소설가 김유정 생가. 소설 속 장면을 동상으로 구현한 모습
소설가 김유정 생가. 소설 속 장면을 동상으로 구현한 모습

●김유정역 옆 김유정역


경춘선 김유정역 옆에는 김유정역이 있다. 경춘선 김유정역은 2012년 수도권 전철이 개통하면서 새로 태어난 역이고, 김유정역 옆 또 다른 김유정역은 이제 기차가 오가지 않는 폐역이다.

김유정 생가안에는 작가의 일생과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관도 있다
김유정 생가안에는 작가의 일생과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관도 있다
지금은 폐역이된 김유정역 역사 내 대합실 풍경
지금은 폐역이 된 김유정역 역사 내 대합실 풍경

김유정역은 2004년 12월, 국내에서는 최초로 사람의 이름을 딴 역이다. 1939년 당시 신남면(지금의 신동명)을 따와 개통한 신남역은 2004년 이 지역 출신의 소설가 김유정의 이름을 붙여 김유정역으로 변경됐다. 경춘선 개통에 새 역사로 이전하며 구 역사는 폐역이 됐지만 작고 아기자기한 간이역 모습을 간직한 채 열려 있다. 경춘선 김유정역에서 녹이 슨 옛 철길을 따라 조금만 걷다 보면 미색 외벽 위에 얹은 초록색 지붕의 구 역사가 나온다. 실제 기차역의 역할을 했던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소박한 규모다.

역사 안은 대합실과 역무실이 여전히 보존돼 있다. 기차가 오가던 그 때 그 시절 시간표와 요금표도 시간이 멈춘 채 그대로. 작고 소중하다는 건 김유정역을 두고 하는 말 같다. 철길에 멈춰선 기차 두 량은 유정 북 카페와 관광안내소로 변신했다. 누구나 앉아 책을 읽거나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열차 내 선반에는 강원문인협회가 기부한 2,000여 권의 책과 옛 김유정역 사진 등으로 채워졌다.

옛 무궁화호 열차를 유정 북 카페로 개조했다
옛 무궁화호 열차를 유정 북 카페로 개조했다

1908년 춘천 실레마을에서 태어난 김유정은 <봄봄>과 <동백꽃> 등을 펴내며 왕성하게 활동한 소설가다. 지금도 실레마을에는 복원한 김유정 생가와 그의 옛 작품들을 모은 전시관이 있다. 특히 그의 작품에는 실레마을이 자주 등장했다. 그래서 김유정 생가 주변으로 <동백꽃>의 배경이었던 마을 뒷산이며 <산골나그네>의 그 물레방아, <봄봄>의 장인 김봉필의 집까지, 소설 속 주인공들이 누비고 다녔던 공간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소설을 쓰고 소설 같은 삶을 살았던 김유정 작가의 짙은 흔적이다. 그의 생가에서 키 작은 점순이를 만나 보니, 29세의 나이에 요절한 그가 왠지 애틋하다.

 

●생각 없이 살고 싶다 


나는 요즘 자주 걷는다.  경의선 숲길과 홍제천, 남산 둘레길이 요즘 주요 무대다. 초록초록한 길을 아무런 생각 없이 한바탕 걷고 돌아오면, 그날 밤엔 깊은 잠에 들 수 있다. 그러니까 내가 많이 걷는다는 건 스트레스 지수가 높다는 의미며, 자꾸 걷는다는 건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경기도 잣향기 푸른숲은 경기도 내에서 피톤치드 농도가 가장 높은 곳이다. 산책하기 좋은 코스가 여러 개다
경기도 잣향기 푸른숲은 경기도 내에서 피톤치드 농도가 가장 높은 곳이다. 산책하기 좋은 코스가 여러 개다

이왕이면 초록 길이 좋다. 춘천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길, 빌딩 숲으로 다시 들어가기 전 가평에 잠시 멈췄다. 경기도 잣향기 푸른숲. 치유의 숲이라고도 했다. 축령산과 서리산 자락, 해발 450~600m에 위치한 잣향기 푸른숲은 수령 80년 이상의 잣나무가 국내 최대 규모로 분포하고 있는 숲이다.

2014년 경기도 내 15개 산림휴양지의 피톤치드 농도를 측정했는데 잣향기 푸른숲의 피톤치드 농도가 가장 높았다고. 피톤치드가 스트레스 완화, 쾌적한 수면, 공기 정화 등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익히 유명하지 않은가. 걷기 좋은 길이자, 말 그대로 치유를 위한 길이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퀴즈 프로그램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퀴즈 프로그램

치유 방법은 여러 가지다. 피톤치드길, 꽃향기길, 하늘호수길, 잣향기길, 산책길, 둘레길 등 마음에 드는 탐방로를 여유롭게 걸으며 온몸에 맑은 공기와 피톤치드를 공급하는 것이 기본 치료다. 어떤 코스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짧게는 30분, 길게는 2~3시간이 필요하다. 조금 더 강도를 높이고 싶다면 친환경 치유센터에서 운영하는 명상이나 목욕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해도 좋고, 아예 조금 더 시간을 보태 숲속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깊이 호흡해도 좋겠다. 


가끔은 생각을 멈추는 연습도 필요하다. 머리와 마음도 쉬어야할 필요가 있으니까. 여기에 은은한 피톤치드를 더해주니, 한동안 열심히 걷지 않아도 살 것 같았다.

 

춘천 글·사진=손고은 기자 koeun@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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