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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표와 마침표, 사이판

  • Editor. 강화송 기자
  • 입력 2021.08.01 14:52
  • 수정 2021.08.02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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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사이판을 다시 여행할 수는 있겠다.
그런데 아쉽게도 아직 여행기는 아니고, 
걱정 섞인 기대, 기대 섞인 걱정.
갈 수 있어, 마침표와 물음표. 
그 사이를 고민하는 이야기. 

●라떼, 사이판

 

라떼는, 그러니까 여행을 다녀도 안전했을 때, 정확하게 넉넉히 3년 전쯤 사이판은 거의 대한민국시 사이판군이었다. 인천을 출발한 비행기가 사이판까지 도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고작 4시간 남짓이었고, 제주도 여행과 비교하면 여권 한 장 더 챙기는 수고로움뿐이었다. 국내에서 사용하던 운전 면허증 하나 들고 사이판에 도착하면 무려 한 달에 가까운 차량 렌트가 가능했고 올 인클루시브 리조트들이 많아 거의 모든 연령층이 편안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던 곳이었다. 

인천에서 사이판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전, 항상 옆 좌석에 노부부가 앉기를 빌곤 했다. 우선 아이들이 1인 여행객인 내 옆에 앉을 확률은 정말 낮았다. 보통 엄마, 아빠, 아이, 가족 단위로 좌석에 줄지어 앉기 때문이다. 그런데 뭐, 사실 아이는 멀리 있어도 가까이 있는 거다. 이착륙시 한 번은 운다. 고라니처럼 목 놓아 소리 지르는 아이를 타이르다가 지쳐 버린 초보 부부는 사이판에 도착하면 한껏 늙어 있었다. 절반의 확률로 옆 좌석에는 신혼부부나 커플이 앉았다. 그래서 여행 시작도 전, 이유 없이 화가 나곤 했었다. 사이판은 효도 여행지로 워낙 정평이 난 곳이니, 나머지 절반의 확률은 노부부 승객이었다. 보통 아버님은 근엄하게 창밖만 바라보고, 어머님은 그런 아버님을 보다 한숨을 쉬셨다. 사실 ‘그나마’ 조용한 했던 것이지 사이판으로 향하는 비행기는 항상 만석이었고, 시끌벅적했다. 수학여행 버스처럼 들떠 있었고 그 자체가 여행이었다.

사이판은 굳이 ‘일정’이 따로 필요 없는 여행지기도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리조트는 시간마다 밥을 챙겼고, 바다를 보는 것만으로 여행인 곳이었다. 거의 모든 여행객들은 꼭 하루 정도 시간을 내어 배 타는 수고를 감수했다. 마나가하섬을 들르기 위함이다. 낮은 수심 덕분에 산호초를 가까이 볼 수 있고 열대어를 볼 수 있고, 무엇보다 사이판에서 3번째로 예쁜 바다색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이판에서 가장 예쁜 바다색은 경비행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로타섬에 있다. 그 색이 워낙 예뻐 ‘로타 블루’라는 색이 따로 있을 정도다. 두 번째로 예쁜 바다는 로타 옆에 위치한 티니안섬에 있다. 지극히 주관적인 순위이니, 믿지 않아도 좋다. 늦은 밤에는 버드아일랜드나 만세절벽으로 차를 타고 이동해 별자리를 구경하다가 새똥을 밟기도 했다. 그 시절 걱정 없던 사이판은, 불과 얼마 전까지 이처럼 무용담으로나 상상할 수 있는 곳이었다.

●트래블 버블, 사이판

 

입맛만 다시던 얼마 전보다는 많이 좋아졌다. 지금 사이판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콧구멍을 바쳐야 한다. 사이판 트래블 버블(Travel Bubble, 여행안전권역) 초기 협정에 따르면 여행객은 총 6번의 PCR 검사가 필요했다. 지금은 총 3회. <트래비>의 구독자라면 이미 다 알고 있겠지만 트래블 버블은 방역 우수 지역 간에 안전막을 형성해 두 국가 이상이 서로 여행을 허용하는 협약을 뜻한다. 최근 사이판 트래블 버블 시행을 앞두고 여행사들의 상품 준비를 위한 사전 답사 차원에서 사이판 팸투어가 진행되었다. 그러니까 우선은 한동안 막혔던 사이판에 다시 갈 수는 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것을 여행이 시작되었다고 표현하기에는 아직 낯선 느낌이다.

 

첫 트래블 버블 사전답사객이 전해 온, 사이판에 대한 감상에 따르면 지금 사이판은 우기라고 한다. 공항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나름 여행객을 격하게 환대해 줬다고 한다. 현지에서 진행되는 5일에 걸친 자가격리는 갑갑할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리조트에는 본인들만 있어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고, 마침내 모두 음성이 나와 안도했다고 한다. 흐려졌다가, 한바탕 비가 내렸다가, 노을이 졌다가 별이 나왔고 다시 흐려져 달이 가렸고 아침은 다시 환한 바다였다고 한다. 리조트의 음식은 여전히 맛있고, 버드아일랜드에 가득 묻은 새똥도 그대로라고 전했다. 콧구멍 깊숙한 곳을 찔렸지만, 여전히 사이판은 지상낙원이란다. 그런데, 그때의 여행이 지금의 여행과 같은지는 잘 모르겠단다. 설렘보다 긴장이 더 큰 여행,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행을 바라는 우리.

●애매한 마무리

 

기사를 쓰고 있는 시점(7월 말), 서울은 거리두기 4단계가 진행 중이다. 오후 6시 이전에는 4인까지 모일 수 있고, 그 이후에는 놀랍게도 2인까지 사적 모임을 허용한다. 학교는 전면 원격수업에 돌입했다. 옆집, 윗집 어머님들의 얼굴이 점점 피폐해져 간다. 대부분 회사도 재택근무에 돌입했다. 옆집, 윗집 어머님들의 얼굴에 화가 가득하다. 운동 강도 조절을 위해 러닝머신은 시속 6km로 속도제한을 했고, 그룹 댄스 운동이나 에어로빅, 스피닝 등 움직임이 과도한 운동을 할 시에는 음악속도가 100~120BPM으로 제한되었다. 아이유 ‘너랑 나’가 134BPM이다. 

최근 싱가포르는 코로나19 확진자수 집계, 동선 파악, 집단검사나 격리 등에 초점을 맞춘 기준 방역 체제를 중단하기로 했다. 중증 환자 치료와 주기적인 백신 접종 등에 집중하여 독감과 같은 방식으로 치사율을 낮추는 방역 체제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영국도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을 대부분 해체하고 방역 조치를 완화하기로 했다. 오스트리아 정부도 이와 비슷한 방역 체제 도입을 검토하는 중이다. 꾸준히 변이 바이러스가 나오고는 있지만, 백신 접종률이 증가하면서 사망률이 낮아지고 있다. 달라진 환경에 맞는 지속 가능한 방역 체제. 중증 환자 치료에 집중하며, 치명률을 낮추는 데 집중하는 방역. 반면 네덜란드나 캐나다는 방역의 고삐를 바짝 쬐고 있고 아시아에는 백신이 부족한 상황이다. 20대와 30대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는 나는, 아직도 백신을 구하지 못했다. 현재 상황에 지속적으로 대응하고, 확산을 파악하고, 방지하는 방역. 

어쨌든 사이판, 그러니까 낙원은 다시 열렸고(언제 닫힐지는 모르겠지만) 백신 접종자라면 일부 지역이지만 태국 여행도 가능하다. 몰디브는 올해 상반기 50만명의 관광객을 맞이했다고 한다. 여행 콘텐츠를 만드는 인플루언서들은 서서히 해외로 떠나고 있다. 나는 아침마다 지옥의 1호선과 2호선을 오가며 출퇴근을 한다. 제주도는 가는 곳마다 여행객으로 북적이고 강릉 경포해수욕장의 첫 개장 후 주말에는 피서객이 해변 가득 몰렸다. 확진자는 계속 늘어가고 있다. 이제 여행 갈 수 있어, 마침표와 물음표, 마무리가 애매하다 애매해. 

 

글 강화송 기자  사진 강화송 기자, 트래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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