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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포토그래퍼의 필름 한 롤

  • Editor. 곽서희 기자
  • 입력 2021.09.01 0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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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모니카 피어의 대관람차
산타 모니카 피어의 대관람차

할리우드, 베니스 해변, 라라랜드. 
듣기만 해도 가슴 뛰는 그곳에서
필름 한 롤과 함께 도착한 니콜의 이야기.



하이, 니콜!
Hello from LA! 시작부터 뜬금없는 ‘덕밍아웃’이지만, 케이팝의 오랜 팬이다. 샤이니 사랑해요(웃음). 지난해 한국 여행을 계획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무산되어 아쉬웠다. 이렇게나마 한국과 연이 닿게 되어 반갑고 기쁘다. 


필름 사진을 찍게 된 계기는?

어릴 때부터 히치콕 감독의 영화와 흑백 탐정 영화를 즐겨 봤다. 시가를 피우며 35mm 빈티지 카메라로 촬영하는 감독들의 모습이 어찌나 쿨해 보이던지. 대학 입학 후 용돈을 모아 필름 카메라를 샀고, 책과 영상으로 사진을 독학했다. 요즘은 유튜브에 훌륭한 필름 카메라 튜토리얼 영상이 많아서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다.

산타 바바라(Santa Barbara)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커플
산타 바바라(Santa Barbara)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커플

 

필름 카메라는 다루기가 영 까다롭던데. 실수담이 있는지.

My first few rolls were terrible! 나름 잘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노이즈에 빛 과다노출에, 도저히 눈 뜨고 못 봐 줄 지경이었다. 모든 필름 카메라는 제각기 특성이 다 다르다. 처음 필름 촬영을 시작할 땐 매뉴얼을 정독해서 내 카메라의 기능과 정보에 대해 정확히 배우는 게 중요하다. 지금부턴 뼈아픈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충고다. 한 달 내에 사용하지 않을 필름은 냉장보관하는 게 좋다. 필름의 주성분이 화학물질이다 보니 온도에 민감하다. 카메라는 부디 젠틀하게 다뤄 줄 것. 오래된 필름 카메라는 부품을 구할 수 없어 수리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노출계가 정상 작동할 수 있게 배터리는 항상 가지고 다니면서 수시로 교체해 줘야 한다. 카메라 뒷판을 열어서 빛에 노출시켜 사진을 몽땅 날리는 것도 초보자들이 흔히들 하는 실수다. 


여행갈 땐 캐리어에 넣나.

중요한 질문이다. 필름은 기내에 들고 타는 게 좋다. 여행지에서 애써 찍은 사진을 망치고 싶지 않다면 공항 검색대에서는 반드시 수기 검사를 요청하자. 검색대의 엑스레이 투사 장비가 필름을 손상시킬 수 있다. 

영화 속 한 장면 같던 친구의 모습. 산타 바바라의 바다는 그녀의 카메라에 담겼다
영화 속 한 장면 같던 친구의 모습. 산타 바바라의 바다는 그녀의 카메라에 담겼다
동네에 있는 스케이트 공원
동네에 있는 스케이트 공원

 

디지털 카메라와 필름 카메라를 모두 사용한다고 들었다.

둘다 장단점이 있지만, 하나만 고르라면 역시 필름 카메라다. 미학적으로 나는 필름 사진을 항상 더 좋아한다.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필름 특유의 빈티지한 터치감이 좋다. 무엇보다 필름 카메라는 의도적인 촬영을 할 수 있게 한다. 하나의 롤은 보통 24~36숏이어서 단 한 장도 허투루 찍을 수 없다. 그래서 오히려 촬영에 대해 더 고민하게 되고 정확한 카메라 세팅을 위해 힘을 들이게 된다. 물론 디지털 카메라도 장점이 분명하다. 조도가 낮은 상황에서도 쉽게 찍을 수 있고, 많은 양의 사진을 빠르게 찍어야 할 땐 디카만 한 게 없다. 망한 사진은 언제든 후보정으로 만회할 수 있기도 하고. 그래도 역시 나는, 필카다. 


주력 카메라는?

미놀타 x700과 올림푸스 XA. 둘 다 필름 카메라 초보자들에게 최고의 카메라라고 정평이 나 있다. 솔직히 미놀타는 올 블랙에 시크한 외관에 반해서 샀지만(웃음). 올림푸스 XA는 크기는 손바닥만 한데 내가 써 본 카메라 중 가장 해상도가 뛰어난 렌즈를 가지고 있다. 가끔은 이 작은 카메라가 어떻게 이렇게 영화 같은 사진을 만들어 내는지 놀랄 때가 많다. 여러 카메라를 대여해서 써 보고 출사도 여러 번 나가 보니 나에게 가장 맞는 카메라가 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더라. 

부모님이 멕시코에서 LA로 막 이민 왔을 때 사셨던 글렌데일(Glendale)의 집 앞
부모님이 멕시코에서 LA로 막 이민 왔을 때 사셨던 글렌데일(Glendale)의 집 앞
빈티지 자동차는 필름 카메라로 찍었을 때의 색감이 가장 예쁘다
빈티지 자동차는 필름 카메라로 찍었을 때의 색감이 가장 예쁘다

 

나 같은 ‘필린이’들은 필름 고르는 것도 일이다. 즐겨 쓰는 필름이 있나?

코닥 엑타 100을 사랑한다. 조도가 낮은 상황에서도 색감이 환상적인데, 최근엔 구하기가 좀 힘들어졌다. 그래서 보통은 포트라 400이나 울트라맥스 400을 사용한다. 지나치게 밝거나 어두운 곳에서도 좋은 컷을 찍을 수 있다. 한 번은 한밤중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이 두 필름으로 촬영을 했는데 결과가 진짜 어메이징했다. 단점이라면 역시 구하기 어렵고 비싸는 것? 사실 지갑 사정을 고려해 저렴한 필름을 살 때도 많다. 그래야 많이 찍을 수 있으니까. 필름 구매에 있어 꽤 중요한 포인트다(웃음). 


좋은 현상소를 찾는 방법도 있을까?

가깝고 빠르고 싼 곳. 아무리 필름 사진이 기다림의 미학이라지만, 현상과 스캔, 인화까지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면 오히려 사진에 흥미가 떨어질 수도 있다. 간혹 현상 실력이 부족해 사진을 망치는 현상소들도 있다. 마음에 드는 곳이 나타날 때까지 다양한 곳을 찾아가 보는 게 좋다. 카메라 고를 때와 똑같다.

산타 모니카 피어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포토 스폿
산타 모니카 피어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포토 스폿
해가 뜨기 전, 날개를 아직 펴지 않은 녀석
해가 뜨기 전, 날개를 아직 펴지 않은 녀석

 

사진 색감이 무척 따뜻하다.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몽글몽글해진달까. 보정 팁이 있다면?

모든 사진은 어도비 라이트룸으로 보정하는데, 주로 컬러 톤 곡선을 가지고 놀면서 사진에 색감을 불어넣는 작업을 한다. 따스한 느낌을 내기 위해 일몰과 일출 시간에 자주 촬영을 하고, 차가운 톤의 후지보다는 따뜻한 톤의 코닥 필름을 사용한다. 작업을 마치면 영화 특수효과 관련 일을 하고 있는 친언니에게 사진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편이다. 내 사진은 내가 볼 때 가장 객관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사진 실력이 늘려면 타인의 냉철하고 가혹한(!) 시선이 필요하다. 영감을 얻기 위해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많이 참고한다. 자극을 받을 때도, 좌절할 때도 많지만 결국엔 도움이 된다. 


최근 한국에서는 레트로 열풍이 불면서 필름 카메라의 인기도 덩달아 높아졌다. 미국도 그런지.

YES! 요즘 동네를 산책하다 보면 꼭 한 명씩은 필름 카메라를 손에 들고 있다. 넷플릭스 영화 <키싱부스>의 노아 플린 역으로 나온 제이콥 엘로디(Jacob Elordi)도 우리 동네에서 자주 강아지를 산책시키면서 필름 카메라로 촬영하고 다니더라. 미국의 셀럽들이 필름 카메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고취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사라져 버릴 수도 있었던 오래된 카메라가 사람들에 의해 재사용되고 있다니. 필름 사진가로서는 너무 기쁘다. 결국은 사진의 역사를 유지 및 지속시키는 일 아니겠나.


LA 토박이가 알려주는 LA의 숨겨진 로컬 포토 스폿이 궁금하다.

앳워터 빌리지(Atwater Village), 하이랜드 파크(Highland Park), 실버 레이크(Silverlake), 에코 파크(Echo Park) 그리고 패서디나(Pasadena). 이중 내 최애 장소는 패서디나다. 고요하고, 나무와 공원이 어디든 있고, 빈티지 건물들이 반짝이는 곳이라서. 영화 <라라랜드>의 리알토 극장(Rialto theatre) 장면도 패서디나에서 촬영했다. 이미 유명한 관광지이지만, 산타 모니카 피어(Santa Monica Pier)와 베니스 비치(Venice Beach)는 해변 풍경이 너무 멋져서 추천을 안 할 수가 없다. 좀 더 조용하고 남캘리포니아 정서가 물씬 느껴지는 곳은 맨해튼 비치(Manhattan Beach)와 허모사 비치(Hermosa Beach). 특히 허모사 비치엔 <라라랜드>에 등장한 재즈바 라이트하우스 카페(The Lighthouse cafe)가 있다. 모두 촬영하기 더없이 좋은 곳들이다. 아, LA에 왔다면 인 앤 아웃 버거는 필수다.

LA에서 뉴욕까지 로드트립을 하던 중 불꽃놀이를 만났다
LA에서 뉴욕까지 로드트립을 하던 중 불꽃놀이를 만났다

 

듣고만 있어도 좋다. ‘LA 앓이’가 (또) 시작될 것 같다.

LA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지만, 이 도시엔 설명하기 힘든 뭔가가 있다. 특히 8월 중순인 요즘은 해변 부근의 날씨가 정말 사랑스럽다. 해가 쨍쨍한 날에도 결코 더운 법이 없다. 바다가 가까이 있어 가끔 해무가 낄 때도 있지만. 잠깐, 이거 왠지 특파원이 된 기분인데(웃음). 아무튼, 해변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부러울 정도로 그쪽은 날씨가 좋다. 반면, LA의 동쪽은 어마어마하게 덥다. 8월은 1년 중 가장 더운 달이다. 매일매일이 사막처럼 건조하다. 작년엔 기온이 46도까지 오르기도 했다. 거짓말 같겠지만 사실이다. 나중에 LA에서 여름 휴가를 보낼 계획이라면 참고하시길. 

여행 도중 기차 레일 위를 걷던 친구
여행 도중 기차 레일 위를 걷던 친구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LA에는 너무도 재능 있는 예술가들이 많다. 그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잡지를 언젠가 만들어 보고 싶다. 여행과 사진으로 생계를 유지할 만큼의 돈을 버는 것도 장기적인 목표 중 하나다. 콘서트나 페스티벌 사진을 찍는 이벤트 포토그래퍼도 꿈꾸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I really hope we can all travel soon one day without restrictions. I also hope you can come to LA soon and take lots of pictures. There is SO much to see here, I grew up here and I am still discovering new places. Oh, don’t forget to bring your film cameras!  


▶필린이를 위한 10가지 팁


1 처음 필름 카메라를 시작할 땐 비싼 장비가 필요 없다 
2 카메라와 빛, 노출에 대한 이해를 돕는 유튜브 튜토리얼 영상을 참고할 것 
3 노출계를 너무 믿지 말 것
4 촬영 과정을 서두르지 말 것 
5 지나치게 고민하고 생각하지 말 것 
6 밖으로 나가 최대한 많이 찍어 볼 것 
7 작업물을 남의 것과 비교하고 좌절하지 말 것 
8 다른 작가들에게 영감을 얻되, 자기만의 스타일을 창조해 낼 때까지 계속 찍을 것 
9 번아웃 되지 않게 가끔은 쉬어가기 
10 ‘좋아요’를 위한 사진이 아닌,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진을 찍을 것 

*니콜 메히아(Nicole Mejia)는 미국 LA에서 나고 자란 필름 포토그래퍼다. 코로나로 일자리를 잃은 후 사진에 마음을 다 바치기로 결정했다. 해 질 녘이면 차를 타고 산타 모니카 해변에 가서 물든 하늘을 필름에 담는다. 인스타그램: bynicolemejia


글 곽서희 기자  사진 니콜 메히아(Nicole Mej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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