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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보다 깊은 사람아, 사람아

테마여행 10선-남도 인물기행

  • Editor. 천소현 기자
  • 입력 2021.09.01 15:31
  • 수정 2022.05.24 0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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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서정원, 담양 소쇄원의 광풍각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서정원, 담양 소쇄원의 광풍각

여행에서 사람을 만나는 건 즐겁지만, 그에 관해 쓰는 건 어렵다. ‘다 맡기면 되니’ 무척 편안했던 여행의 역습이다. 다행인 것은 설명하지 않아도 그들이 읽히는 공간이 있다는 것, 그곳에 당신을 위한 자리도 있다는 것이다.  

나주 3917마중 카페, 당신을 위한 빈자리도 있다
나주 3917마중 카페, 당신을 위한 빈자리도 있다

 

●나주의 마중물 
3917마중


나주 금성산 자락, 나주향교 서쪽에 자리한 몇 채의 가옥은 카페, 숙박, 공연, 워크숍 등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이다. 인스타그램뿐 아니라 드라마, 영화에도 단골로 등장할 만큼 아기자기하고 예스러운 분위기는 남우진, 기애자 부부가 공들인 오랜 빗질의 결과다. 풍부한 역사문화 자산을 갖추고 있지만 관광이 활성화되지 못한 나주에서 3917마중은 그 자체로 나주의 마중물이자 주목해야 할 성공사례다. 

주소: 전남 나주시 향교길 42-16

1939년 지어진 목서원 앞 금목서 둘레에 큰 평상을 만들었다
1939년 지어진 목서원 앞 금목서 둘레에 큰 평상을 만들었다

 

●남우진이 마중 나오다

첫 나주 방문에 덜컥 땅을 버린 남자는 몇 년 후, 나주의 마중물이 되었다.

 

복합적인 마중 의례


이번 여행의 시작이 나주역이어야 한다고 우긴 건 남우진 대표였다. 덕분에 광주도 아니고 목포도 아닌 나주역에서 KTX를 내리고 보니 의외로 역사가 번듯하다. 역의 규모로만 봐서는 남도 여행의 허브가 되고도 남겠는데, 나주가 아직 그렇지는 않다.

 

3917마중 남우진 대표
3917마중 남우진 대표

그 안타까움이 전주 출신 나주 남자 남우진 대표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다. 나주역이 얼마나 좋은지 보라며, 역까지 마중 나온 남대표가 우리를 안내한 곳은 ‘마중’이었다. 3917마중은 지금 나주에서 가장 ‘핫’한 복합문화공간이다. 이름에서 힌트를 얻자면 ‘39’는 1939년에 지어진 가옥이란 뜻이고, ‘17’은 2017년에 ‘마중’으로 문을 열었다는 뜻이다. 목서원(난파고택), 난파정, 시서헌 등 7채의 가옥과 너른 마당에 우물, 지하 방공호, 정원까지 있는 1만3,000m2(4,000평)의 공간이다. 4년 전만 해도 공가로 방치되던 목서원은 한식, 일식, 양식을 두루 갖춘 절충식 가옥이라 원형 그대로 복원했고, 인근의 가옥, 쌀 창고 등을 하나씩 추가로 구매해 고쳐 가면서 지금의 규모에 이르렀다. 공사는 아직도 진행 중인데, 건축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남은 목재는 벤치나 그네로, 땅에서 나온 바위는 정원의 오브제 등으로 쓸모를 부여하고 있다. 

나주배 한상세트. 배를 갈지 않고 썰어 넣었다
나주배 한상세트. 배를 갈지 않고 썰어 넣었다

다다미가 깔린 난파고택에는 나주 소반이 먼저 턱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다. 소반 위에 아내 기애자씨가 개발한 나주배 한상세트가 올랐다가 빈 그릇이 되기까지 남대표의 마중식은 끝나지 않았다. 방문객에게는 사진 찍기 좋은 한옥 카페, 아늑한 한옥 숙소이지만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나주의 문화적 도시재생에 관심이 있는 청년 크리에이터들에게는 엄중한 사무공간이어서, 나주의 역사와 향토 스토리를 아카이빙하고, 특산물을 이용한 음식도 개발하고, 체험과 콘서트 등 문화관광 콘텐츠도 기획한다. 그래서 복합문화공간이라 부른다는 것이 ‘외지에서 온 투기꾼’이란 오해를 벗은 남대표의 이야기다. 


사람 모이는 일이 조심스러운 시기지만 조촐한 야외 연주회를 열어 광주 전남의 젊은 연주자로 구성된 앙상블 올(Ensemble All)의 첫 무대를 지원하기도 했다. 마당 가운데 금목서를 파라솔로 활용하는 대형 평상을 설치했더니 기가 막힌 관람석이 되어 주었다. 둘러보면 마중 사람들의 순발력, 추진력, 뚝심, 열정들이 낮은 담이 되고, 평상이 되고, 지붕이 된 것 같다. 

한여름 밤 ‘앙상블 올’의 첫 데뷔 무대
한여름 밤 ‘앙상블 올’의 첫 데뷔 무대

오늘밤 MT와 TMI 사이


여름밤 마중은 적당히 활기찬 축제장이었다. 남성들은 난파고택에, 인원이 적은 여성들은 난파정에서 여장을 풀었으니 밤이 깊어도 마음이 급하지 않다. 낮에는 시서헌(1927년에 지어진 한옥)에서 누가 더 배양갱을 잘 만드나 겨루며 시끌벅적했고, 밤에는 나주표 수제맥주 ‘트레비어’를 들이키며 나주배의 미래를 밤늦도록 이야기했다. 마중은 스몰웨딩, 워크숍 등에도 맞춤한 곳이다. 별안간 MT 같던 그 느낌이 몇 주 후에 방송에 고스란히 보이더라. JTBC 드라마 <알고 있지만>에서 미대생들이 MT를 떠났던 바로 그 장소다. 바로 옆 나주향교에서 촬영했던 <성균관스캔들> 속 유생들의 연애와 비교하면, 세상은 천지개벽한 것이 맞다. 

금목서 평상 위에서 올려다본 밤하늘
금목서 평상 위에서 올려다본 밤하늘

연애 말고, 세상의 천지개벽을 꿈꾸었던 동학 농민군의 이야기에 나주를 대입하면 애정보다 깊은 애증을 피할 길이 없다. 나주에서 동학농민군이 막히지 않았더라면…, ‘만약’이 없는 역사라 하지만, 현장에 가면 현실감이 조금 더 생긴다. 수성군의 수장이었던 난파 정석진은 1894년 나주 동학군을 막아낸 공로로 2년 뒤 해남 군수가 되었지만 그해 말 을미사변과 단발령이 떨어지자 의병을 일으켰고, 주동자로 체포되어 나주에서 효수된 인물이다. 맞섰던 동학군과 수성군이 의병으로 힘을 합쳐 나라를 지켰던, 아이러니한 시대의 일이다. 

마중 중 으뜸은 꽃마중. 그중에서도 능소화
마중 중 으뜸은 꽃마중. 그중에서도 능소화

지난밤을 보낸 난파정은 아들 정우진이 난파를 기리기 위해 1915년 지은 제당이었고, 목서원은 손자 정덕진이 어머니를 위해 1939년에 지어 난파고택이라고 불렸던 곳이다. 어디 동학운동뿐일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300명 목사들이 거쳐 간 천년 목사골 나주에는 아주 두터운 이야기의 지층이 쌓여 있다. 남대표가 말하는 ‘시간의 터무니’다. 나주향교는 왜 정문을 통해 들어갈 수 없는지, 벼락 맞은 팽나무, 용을 닮은 소나무 등에 얽힌 이야기는 그에게 물으시라. 나주 TMI(too much information)가 흥미롭다. 마중의 스토리는 많은 영상으로도 소개되었으니 유튜브로 먼저 눈 마중하면 편하다. 

편안하고 소박한 향토사 전문 책방 이목구심서
편안하고 소박한 향토사 전문 책방 이목구심서

●기획자를 위한 작은 도서관 
이목구심서


담양 담빛길 뒷골목에 위치한 향토사 전문 책방이다. 베스트셀러와는 거리가 먼 지역의 향토, 지리 관련 책들이 적임자를 기다리는 곳이다. 문화관광기획자로 일하며 수집한 자료들이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전고필 대표가 2019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관광기획자를 위한 인문학 강의와 답사 모임의 거점이기도 하다. 

주소: 전남 담양군 담양읍 객사3길 12

이덕무를 흠모하여 그의 수필집 제목을 빌렸다
이덕무를 흠모하여 그의 수필집 제목을 빌렸다

●전고필의 담양 다시 쓰기

시간, 공간, 인간을 모두 알아야 가능한 
남도 인문학 여행의 선구자를 책방에서 만났다. 

이곳은 전고필 대표의 방 겸 연구실 겸 강의실 겸 아지트다
이곳은 전고필 대표의 방 겸 연구실 겸 강의실 겸 아지트다

책방에서 시작하는 남도 여행


입구가 어딘고 하니, 벽화로 치장된 ‘담빛길’ 골목 안쪽이다. ‘눈 밝은 사람’만 찾아오라는 듯 향토사 전문책방 ‘이목구심서’의 위치가 살짝 은밀하다. 서점 주인이자 문화관광기획자인 전고필 대표가 입을 열었다. “하루에 한 명도 안 올 때가 많아요. 한 달 매출은 3만 원 정도.” 귀하게 모은 책과 자료가 꼭 필요한 사람에게 쓰이기를 원해 책쾌(서적 매매상)를 자처했지만, 사실은 소중한 책을 팔고 싶지 않은 간서치(책만 아는 바보)라 아쉬울 건 없다.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는 스스로를 ‘간서치’라고 했던 조선 후기의 학자 이덕무(李德懋, 1741∼1793년)의 수필집이다. 귀로 들은 것, 눈으로 본 것, 입으로 말한 것, 마음으로 생각한 것을 적었다는 뜻이다. 이덕무를 흠모한 전고필 대표는 고향 담양에 책방 이목구심서를 열었다. 

발품으로 수집한 자료들이라 팔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발품으로 수집한 자료들이라 팔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다른 서점에서는 찾을 수 없을 향토사, 지리인문, 문화기획 관련 자료는 그가 직접 발품을 팔아 수집한 것이다. 가격은 주인 맘대로. 죽세품 공장이었던 공간의 기억을 엮어 홀 가운데 너른 대나무 평상을 놓았다. ‘언어(말)의 기술’이 필요한 문화관광기획자를 위해 한 달에 한 번 ‘말술학교’가 열릴 때에는 책상 겸 술상이 된다. 작은 서점이지만 남도 여행의 산실로 불린다. 광주북구문화의집, 광주문화재단, 광주 대인예술시장 감독 등 15년 이상 행정대리직을 거치고 난 지금, 그의 생각은 지역에 천착해야 한다는 것, 자생적인 민간 문화공간이야말로 문화적 도시재생의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그가 이목구심서를 연 또 다른 이유다. 

‘비 갠 날 청량하게 부는 바람’을 뜻하는 광풍각
‘비 갠 날 청량하게 부는 바람’을 뜻하는 광풍각

소쇄원에서 보낸 1년 


2017년부터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8권역 PM을 맡고 있는 그는 <광주드림>에 꾸준히 ‘터무늬를 찾아서’ 코너를 연재하는 여행작가이기도 하다. 인문지리, 조경, 민속, 문학, 철학 등을 두루 꿰고 있는 그가 남도 최고의 해설사임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1997년 고향집 근처 소쇄원(瀟灑園)에서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만났다. 서울 말씨로 소쇄원의 숟가락까지 꿰는 이세영 선생의 답사 해설에 충격을 받아 1999년 1년 동안 소쇄원에 살다시피 하면서 소쇄원 공부를 했다는 이야기는 전 대표가 여러 글에서 소상히 밝혀 두었다. 그와 함께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민간 정원’인 소쇄원 걷기를 놓칠 수는 없었다.

공간마다 사물마다 직유와 은유가 숨어 있다
공간마다 사물마다 직유와 은유가 숨어 있다

고향집에 온 듯 편안해 보이는 그가 소쇄원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스승인 정암 조광조가 정쟁에 희생되는 것을 본 어린 제자 양산보(梁山甫, 1503∼1557년)는 고향으로 돌아와 소쇄원을 조영하며 공간마다 사물마다 ‘그가 바라는 임금과 세상’에 대한 직설과 은유를 심었다. 초입의 정자 대봉대는 어진 왕을 뜻하는 상상 속의 새, 봉황을 기다리는 곳, 그 옆 벽오동 나무는 봉황이 앉을 자리, 대숲은 죽순만 먹는 봉황의 식탁이고, 예천 단샘은 봉황이 목을 축이는 곳이다. 계곡을 끼고 있는 광풍각(光風閣)이 침습되지 않고 400년을 버티는 이유는 축대 속 재료에서 찾아지고, 맞은편 연못에 순채를 키웠던 이유는 도연명의 귀거래사, 진나라 장한의 순갱노회 고사에서 찾아진다. 그가 꼬박 1년을 공부한 소쇄원 이야기를 모두 담을 수는 없지만 하나만 기억해야 한다면 이것이라고 했다. “소쇄원의 모든 것은 물이 규정한다”는 것. 이름부터 소쇄(맑고 깨끗이 하다)가 아닌가. 계류를 따라 흐르는 공간을 다시 읽어야 한다. 소쇄원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던 벗, 하서 김인후가 1548년에 남긴 <소쇄원 48영>이 제월당(霽月堂)에 편액으로 전해진다. 계곡의 바위에는 김인후와 양산보가 술잔을 돌리며 놀았던 자리, 바둑을 두었던 자리, 목욕을 했던 자리가 뚜렷이 보인다. 

홈대에 구멍을 내 이끼가 마르지 않게 했다
홈대에 구멍을 내 이끼가 마르지 않게 했다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PM이 된 그는 소쇄원에 깃든 의미를 체험할 수 있도록 ‘소쇄처사 양산보와 함께 걷는 소쇄원’ 테마여행을 여러 형태로 추진했었다. 고증을 거친 1548년 당시의 복식으로 소쇄원을 걷고 남도 밥상까지 즐기는 여행이었다. 문화관광, 인문적 여행을 위한 그의 시도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원일 음악감독을 소쇄원으로 불러 국악관현악 <은일의 소쇄원>을 작곡하게 한 것은 오랜 꿈이었다. 지난 연말엔 온라인 콘서트를 열었다.

담양이 ‘대한민국의 대밭’임을 확인시켜 주는 죽녹원
담양이 ‘대한민국의 대밭’임을 확인시켜 주는 죽녹원

시간에 쫓겼지만 죽녹원, 관방제림도 함께 돌았다. 그는 담양을 이야기하며 자꾸만 담을 넘었다. 칠곡에 담양담이 있는 이유, 순천에 팔마비가 있는 이유 등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서울로 돌아와 젊은 관광기획자 전고필의 눈을 틔워 주었다는 종합인문지리지 <한국의 발견(뿌리깊은나무, 1983년)> 11권 중 첫 권, ‘서울’편을 구했다. 그러고 보니 1983년은 내가 40년 서울살이를 시작한 그 해다. 가까운 곳부터 시작이다.

노적봉에서 구 목포일본영사관으로 가는 길
노적봉에서 구 목포일본영사관으로 가는 길

●목포는 지금 
괜찮아마을


목포에서 사회적 실험이 진행 중이다. 새로운 형태의 청년공동체다. 하지만 ‘실패해도 괜찮아! 그러니 일단 살면서 뭐든 해 보라’는 응원의 메시지만으로는 부족하다. 문화기획사인 공장공장(空場共場)이 이끄는 ‘괜찮아마을’은 목포 구도심의 유휴공간을 고쳐 외지에서 온 청년들의 정착을 지원한다. 공간뿐 아니라 교육, 여행, 상담, 대화 등 가능한 모든 역량을 동원 중이다. 

구 목포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구 목포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홍동우씨 괜찮은가요?


목포는 여행해 보니 꽤 괜찮고 
살아 보니 더 괜찮다.
그는 지금 목포의 사위다.

구 목포일본영사관 앞 사거리 중앙 바닥에 국도 1, 2호선 도로원표가 있다
구 목포일본영사관 앞 사거리 중앙 바닥에 국도 1, 2호선 도로원표가 있다

지피지기 목포 여행


노적봉예술공원에서 만난 홍동우 대표는 익숙하게 이어폰을 나눠주었다. 목포의 구도심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그곳에서 홍대표가 전하는 목포 이야기는 입체적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지략에 아녀자들도 강강술래로 힘을 보태며 왜군을 막았지만 300년 후 강제합병으로 일본조계지가 들어서기까지, 목포의 역사가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에 녹아들었다. 조금 물때에 바다에서 돌아온 아버지들은 ‘조금새끼’들을 잉태하고 다시 바다로 나가 돌아오지 못하기도 하여, 동네에 유독 생일도 제삿날도 같은 이들이 많았다는 서산동, 온금동 이야기, 주민들은 흉하다고 숨기지만 중요한 다크투어리즘의 현장인 방공호들, 배우 허장강의 처가이자 아들 허준호에게는 외갓집인 적산가옥 등은 목포 사람이라고 저절로 알아지는 이야기가 아니다. 공간을 읽고 삶을 읽다 보니 그의 이야기는 서울로도 상경한다. 전라도 출신이라는 이유로 서울에서 사회적 차별을 받았던 목포 아버지들의 애환도 보인다. 그 모든 이야기를 타 넘으며 홍동우 대표가 일행을 안내한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마을, ‘괜찮아마을’이었다.  

조금새끼들이 나고 자란 서산동, 온금동
조금새끼들이 나고 자란 서산동, 온금동

그에 따르면 목포 구도심은 ‘기능을 상실한 도시’라고 할 만큼 공동화가 진행된 상태다. 하지만 이곳을 채우는 타지의 청년들이 늘어 가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120명의 청년들이 목포에서 지역살이를 경험했고, 그중 34명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홍대표는 2017년 문화기획사 ‘공장공장(空場共場)’을 함께하던 동업자(박명호 대표)와 함께 목포로 내려왔다. 20년 무상 임대가 보장된 사무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구 2바퀴 거리만큼 떠돌았던 그는 목포에서 쉬어도 괜찮고, 실패해도 괜찮은 삶을 선택했다. 목포의 사회적 실험, ‘괜찮아마을’의 시작이었다. 

목포 도심 곳곳에는 방공호가 많다
목포 도심 곳곳에는 방공호가 많다
공장공장 홍동우 대표
공장공장 홍동우 대표

홍동우 대표가 진행하는 목포투어는 말하자면 이 도시를 소개하는 오리엔테이션이다. 알면 사랑하게 되나니, 경비를 내고 6주, 혹은 1주간 입주 체험을 나눈 청년들은 목포와 공동체로부터 돈으로는 바꿀 수 없는 에너지를 얻는다. 목포 체류를 선택한 청년들에게는 괜찮아마을이 비빌 언덕, 누울 자리를 함께 고민해 준다. 창업을 하든 취업을 하든, 크리에이터로 살아가든, 그냥 쉬든, 다 괜찮다. 비어 있던 레스토랑 건물을 고쳐 공유사무공간 ‘반짝반짝 1번지’와 공유주방 ‘코옹코옹’을 각 층에 넣었고, 마을주민들이 조성한 ‘집ㅅ씨(커뮤니티 키친)’, ‘최소 한끼(채식 식당)’, ‘세종집(한식뷔페, 고깃집)’도 괜찮아마을의 일부다. 주소에 없는 마을의 면적은 가늠하기도 어렵다. 각자의 지역으로 돌아갔지만 괜찮아마을을 고향이라 여기는 청년들이 늘고 있으니 말이다. 

사슴슈퍼마켓은 공가(空家) 재생사업으로 전시공간이 됐다
사슴슈퍼마켓은 공가(空家) 재생사업으로 전시공간이 됐다
괜찮아마을 청년들의 ‘최애’ 카페 한마을떡집
괜찮아마을 청년들의 ‘최애’ 카페 한마을떡집

괜찮은 사람들의 목포 


사실 홍동우 대표는 ‘괜찮아마을’ 사업의 집행자이자 최대 수혜자로 보였다. 사람을 알려거든 주변을 보라고 했던가. 5년 전 ‘탈 서울’의 목적지가 목포였던 솔직한 이유는 20년 무상 임대 사무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섬 활동가 강제윤 시인이 개인 재산으로 40년이 넘은 옛 여관 우진장을 고친 후 타지의 청년들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외지인에 대한 텃세를 깨끗이 털어버린 사건은 그가 목포에서 가장 유명한 생선백반집 ‘오거리식당’의 사위가 된 것이다. 사위 찾아온 손님을 대접하는 상다리가 부러지기 직전인 걸 보니, 츤데레 장인어른 강성복씨의 사랑을 듬뿍 받는 것 같다. 

87세 크리에이터 강정숙 할머니
87세 크리에이터 강정숙 할머니

87세 목포의 최고령 로컬 크리에이터인 한마을떡집 강정숙 할머니도 홍대표의 손님들이라니 스스럼없이 인터뷰를 풀어내 주신다. 특히 할머니의 인생 교훈이 솔솔 뿌려진 팥빙수가 맛있는데, ‘힙’도 ‘트렌드’도 다 필요 없고 동네 사람들이 부담 없이 들르는 떡집 카페로 꾸린 것이 괜찮아마을 청년들의 ‘최애 카페’로 등극한 비결이다. 귀담아들을 이야기였다. 홍동우의 손님이라는 이유만으로 온 목포가 환대하는 기분인 건 착각이라고 해도 기분이 좋았다. 더 이상 청년이 아닌 설움은 조금이고, 응원하는 어른의 마음만 크다.  

푸짐하고 고소한 팥빙수
푸짐하고 고소한 팥빙수

▶‘인물’이 ‘인문’이다 


광주, 목포, 담양, 나주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개발연구원, 권역별 사업관리단과 39개 지자체가 2016년부터 추진해 온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중에서 8권역에 해당한다. 가깝다고 다 비슷할까. 개성이 강해 잘 꿰어지지 않았던 이 지역을 아우르는 테마로 기존의 ‘미식’보다는 ‘인물’을 선택한 이는 고재열 여행감독(트래블러스랩 대표 여행자)이다. “인문은 곧 사람이 그리는 무늬다. 그러므로 인물학이 곧 인문학이다”라는 것이 그의 생각. ‘어른들의 여행’ 콘셉트로 국내 고품격 여행시장을 개척 중인 고감독의 유니버설한 인맥 중에서 남도의 ‘선수’들이 나섰고, 남도의 미식은 기본이다. 이번 8권역 여행은 남도 원도심 일정을 추가하여 명품 한국 기행(3박 4일 99만원)으로 한국관광개발연구원, 투어비스를 통해 판매될 예정이다.

 

글·사진 천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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