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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지형의 아프리카에서 온 편지 7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6.0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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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영업 시간은 ‘일출부터 일몰까지’

저는 지금 살랑거리는 바람을 온몸 구석구석으로 느끼면서 눈을 지긋이 감고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아, 멀리서 아프리카의 흥겨운 음악이 간간이 들리네요. 그리고 눈앞에는 그야말로 그림 같은 ‘아프리카 일출’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세계 최빈국 중 하나로 꼽히는 말라위(Malawi). 말라위 전체 면적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말라위 호수는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림 같은 일출을 바다 같은 호수 위에 펼쳐놓고 있군요.

말라위 호수에서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대부분의 지역에서 만나는 일출과 일몰은 특별합니다. 우리나라 서해안 꽂지 해수욕장의 일몰과 동해안의 일출, 그리고 제주도의 일출과 일몰도 아름답지만, 아프리카의 그것은 한낮에 내리쬐던 태양의 강렬함과 대지의 광활함이 묻어나서 그런지 또 다른 느낌을 선물하죠.

그래서 누군가 제게 아프리카의 이미지를 하나만 대라고 한다면 저는 ‘일출과 일몰’을 꼽습니다. 이곳에서 매일 일출과 일몰을 보는 것은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예요.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과연 신은 오늘의 작품을 어떻게 그려내실까 기대를 하게 될 정도랍니다. 그러다가 구름이 잔뜩 끼여서 일출을 못 보게 되면 하루를 시작하는 의식을 거르는 것 같은 허전함이 든다니까요. 

‘영업 시간: 일출부터 일몰까지’
처음 이 간판을 케이프타운의 한 카페에서 봤을 때 주인이 참 위트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여행을 다니다 보니, 상당수의 카페나 서점, 슈퍼마켓들의 업무 시간이 이렇게 적혀 있더군요. 다들 일출과 일몰에 맞춰서 일상을 살아가고 있더라구요. 

아프리카에 온 지 한 달이 지난 후부터는 저도 모르게 모든 시간의 기준이 일출과 일몰이 되더군요. 아프리카 사람들처럼 동이 틀 때쯤 눈을 떠서 돌아다니고 해가 지고 나면 숙소에서 저녁을 먹고 간단히 맥주 한잔을 마신 후 10시쯤 잠이 듭니다. 세상의 생명들과 자연이 깨고 일어나는 리듬에 맞춰서 생활을 바꾸니, 한결 자연과 가까워진 느낌이 들더군요.  

매일 보는 일출과 일몰 중에서도 유독 뇌리에 깊이 박힌 신의 작품들이 있습니다. 나미비아의 나미브 사막에서 본 일출과 나미비아 스피츠콥제에서 본 일몰, 그리고 보츠와나 오카방고 델타에서 모코로(나무로 만든 조각 배)를 타고 보았던 일몰, 보츠와나 초베 국립공원에서 코끼리들을 배경으로 본 일몰과 말라위 호수의 일출…생각해 보니 끝없이 나오는군요. 

이 중에서도 나미브 사막에 있는 듄45(Dune45)의 일출은 특히 가슴에 꽂혀 있습니다. 새벽에 땀 흘리며 사막 위에 올라서서 수천년을 살아 온 사막의 바다 위로 잘 익은 사과처럼 새빨간 해가 둥실 떠오르는 것을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더군요. 

듄45에서는 오른쪽에는 새로운 해가 솟고 왼쪽에는 그 해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물러나는 아름다운 달의 퇴장도 함께 볼 수 있었습니다. 일출도 일출이지만 달이 지는 모습이 그렇게 고고한지 사막에 가서야 처음 알았답니다. 

보츠와나의 오카방고 델타는 모코로라는 작은 배를 타고 움직이는데요. 그 모코로가 어깨높이의 풀들을 슥슥 헤쳐 가는 동안, 뒤로 펼쳐지는 인디고 핑크와 코발트 블루 색으로 어우러진 하늘을 보다 보면 무아지경에 빠질 정도입니다.  

그렇게 일몰을 보고 나면 새로운 힘이 솟습니다.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그 힘이 제 세포와 혈관 속에서 새로운 화학작용을 하는 게 느껴지거든요. 아마 이 여행을 마칠 때까지 저의 일출과 일몰 감상은 계속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번 주 주말에는 일출과 일몰을 찾아, 떠나 보시면 어떨까요? 오늘 서해안에서 지는 해를 보시면, 그 해를 제가 내일 아침에 받아 볼 수 있겠지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해 편에 고추장 한 동아리 부탁드려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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