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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지형의 아프리카에서 온 편지 10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6.0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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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겨운 모뎀 소리, 아프리카의 느림에 길들여지기

 

‘잠보(Jambo)’


아프리카에 있다 보면 하루에도 수십 번 ‘잠보(안녕하세요)’와 ‘카리부(환영해요)’라는 낭랑한 스와힐리 인삿말을 듣게 됩니다. 물론 저도 ‘잠보(안녕하세요)’와 ‘아산떼 사나(고마워요)’라고 꼬박꼬박 답하곤 하는데요. 


스와힐리어로 인사를 한다고 해서 스와힐리어를 꼭 알아야 아프리카를 여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의외로 아프리카는 영어가 잘 통하는 곳이거든요. 몇 년 전 친구가 아프리카로 어학연수를 간다고 했을 때 무척 의아해했는데 막상 아프리카에 와 보니 십분 이해가 가더군요.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영어는 외국어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상적으로 쓰여요. 나미비아나 짐바브웨 같은 경우는 공식 언어가 영어일 정도입니다. 한 나라 안에도 수십 개의 부족이 있어서, 아프리카 사람들끼리 이야기하는 데도 영어를 이용하는 경우가 태반이거든요. 그래서 북미와 오세아니아를 제외하고 아프리카는 영어가 가장 잘 통하는 대륙이라고 할 수 있죠.  


아프리카에 와서 놀란 것 중 하나가 이들의 언어 감각입니다. 영어와 스와힐리어는 기본이고 각 부족 언어를 추가로 2~3가지 구사합니다. 나미비아처럼 독일 영향을 많이 받은 곳은 독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이들이 많구요. 몇 개 언어를 할 줄 아냐고 물어 보면 천연덕스럽게 보통 “5~6가지 정도?”라는 답이 돌아올 정도랍니다.


일단 언어가 통하면 여행은 쉬워지는 법! 영어가 통한다는 장점 때문에 아프리카 여행이 중국 오지나 남미, 러시아를 여행하는 것보다 수월하게 느껴지더군요.


그러나 의외의 복병은 숨어 있었습니다. 복병은 다름아닌 인터넷과 유선전화 통신상황이었습니다. 여행 초기 한동안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되는 ‘모바일 프리’의 자유를 만끽했었는데요, 막상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드리려고 하니 이것 참 힘든 일이더군요. 국제전화 연결이 잘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가격 또한 배낭 여행자에게는 엄청난 부담이더라구요. 1분에 2,000원은 저렴한 편이구요, 어느 호텔에서는 1분에 10달러를 받기도 하더군요.


짐바브웨나 말라위를 비롯한 대부분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전화를 걸기 위해 ‘폰샵’이라는 곳에 갑니다. 폰샵이 뭐냐구요? 말 그대로 전화를 이용할 수 있는 상점인데요. 길거리에서 전화기 한 대 놓고 전화 걸어 주는 장사를 합니다. 가끔은 두 사람 들어갈 정도의 키오스크를 만들어서, 점잖게 넥타이까지 맨 주인이 앉아 비즈니스를 하는 곳도 있습니다. 이름도 폰샵보다 멋진 ‘텔레폰 뷰로(Telephone Bureau)’더군요.


인터넷 이야기를 시작하면, 할 말이 많아집니다. 나미비아나 짐바브웨를 여행하실 분들은 다음이나 싸이월드에 접속하실 생각을 아예 하시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전화 모뎀 연결 소리에 90년대 초기 통신을 시작하던 때의 향수가 떠올라 반갑다 생각했는데, 그런 반가움도 잠시, 사이트 첫 페이지 뜨는 데 5분이 넘게 걸립니다. 그나마 사이트가 열리면 다행이구요. 시간 초과로 중단되기 일쑤거든요. 한 마디로 답답하기 이를 데가 없답니다. 


‘아프리카에서 온 편지’를 보내기 위해 인터넷과 사투를 벌였지만, 결국 사진을 보내는 데는 실패해 부랴부랴 CD로 구워 EMS로 보내는 대소동을 피웠야 했구요. 


한참을 이렇게 전화에 인터넷에 안절부절 하다 보니, 제 자신이 좀 안타깝더군요. 분주함과 정신 없음에서 해방되기 위해 아프리카로 떠나온 것인데, 저도 모르게 또 그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더군요. 결국 결단을 내렸습니다. 부모님과 편집장님께는 인터넷 사정이 나은 케냐에 갈 때까지 연락을 못 드리더라도 걱정 마시라고 메일을 올리고, 앞으로 전화와 인터넷은 버리기로요.
얼마 남지 않은 아프리카에서의 소중한 시간들, 인터넷도 잊고 전화도 잊고 다시 한번 아프리카의 한없는 느림 속으로 깊이 빠져 봐야겠습니다.

 

글+사진/ travie writer 채지형 pinkpuck@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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