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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태진아 - 가족은 영원한 나의 '동반자'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6.02.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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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래비

지난 연말, 초등학교 시절의 그리운 친구들을 찾아 준다는 한 프로그램에 출연한 태진아를 보았다.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트로트계의 대스타로서가 아니라 친구들 속에서 장난기는 많지만 어려운 시절을 대견하게 딛고 일어선 소년의 모습으로 돌아가 감회에 젖어  옛시절과 옛사람을 추억하던  그의 모습을 친구 찾기 프로그램에서 본 그 다음날, 바로 그와의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조방헌이 본명인 태진아는 초등학교 시절 장난꾸러기에 촐싹거린다 하여 별명이 ‘조방울’이었다.” “친구와 함께 뽕나무 열매를 서리하러 나무에 올라갔다가 주인아저씨에게 걸리자 ‘하나라도 살아야지’라며 친구를 버리고 혼자 도망갔다.” 등등 친구들의 폭로성 발언과 40여 년 만에 만난 첫사랑 여학생과의 에피소드 등 그 프로그램을 보았던 방청객과 시청자들은 배꼽을 잡았다. 하지만 장난꾸러기, 말썽쟁이로서의 면모뿐 아니라 어린시절 태진아의 의젓하고 어른스런 면도 속속 드러난 시간이었다. 당시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집에 돌아갈 때면 감자나 고구마를 달라고 졸랐던 태진아. 나중에 알고 보니 집안 형편이 어려워 동생들을 먹이려던 것이었다고. 

“텔레비전에 나온 걔네들이 나 밥 많이 주던 친구들이에요. 걔들 없었으면 나도 없지.”
태진아의 역경과 성공 스토리는 이미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이다.
“1983년은 뉴욕에서 행상을 하면서 해 뜬 날에는 선글라스를 팔고 비가 오면 우산을 팔았어요. 그야말로 고생이었죠. 나도 내 자식한테 좋은 것들도 먹이고 싶었죠….” 

돈이 없어 교포들에게 사정을 해서 끼니를 때우고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빠듯한 형편이 아빠로서 너무 미안했다. 88년 가수가 되기 위해 태진아가 먼저 한국에 오고 이듬해 가족들이 뒤따라 들어왔을 때 6살배기 아들이 아빠 얼굴을 못 알아보자 서러운 눈물이 흐르던 그때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많은 이웃들의 도움을 받았고 그렇기 때문에 성공한 지금, 이웃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다. 중국집 배달원, 구두 닦는 학생, 식당 아주머니들에게는 잊지 않고 적은 금액이라도 팁을 건넨다. 

“내가 해봤으니까. 어려움을 겪어 봤던 사람이 어려운 사람 마음을 알거든요. 고생할 때 해본 직업만 37가지에요. 구두 닦이부터 식당 배달원, 포장마차 서빙…. 그런 사람들에게 가장 훌륭한 고객이란 교양이나 학식,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바로 팁 주는 손님이죠.”

대한민국에 등록된 가수가 2만 명 정도인데, 그중에 초등학교 학력은 태진아 한 명뿐이란다.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그는 그의 가난했던 시절을 누구에게든 자신 있게 얘기한다. ‘가난’은 지금의 그를 존재하게 하는 한 부분이고 대중 앞에 솔직하지 못하다면 ‘거짓말쟁이’가 될 뿐이다. 진실한 모습으로 나를 온전히 내보일 때 팬들 역시 진실한 사랑을 준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아버지의 길을 잇는 아들, 이루


ⓒ 트래비

그는 항상 어디에서나 ‘솔직함’과 동시에 ‘가족애’를 강조한다. 특히 그의 아내 옥경이(본명 이옥형)에 대한 사랑 표현은 그녀를 위한 노래 ‘옥경이’에도 여실히 나타나지만 실생활에서도 대단하다. 

“미국에서 옥경이를 만날 때만 해도 주머니에 한국 돈으로 13만원 정도밖에 없었어요. 그런 가난한 남자를 믿어 주고 노래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해주고 자식까지 바르고 예쁘게 키워 준 사람인데 내가 앞으로도 더 잘해야지 하는 생각이 항상 들어요.”

이렇게 가족 사랑이 지극한 그이기에 버클리 음대를 졸업한 재원이며 얼마 전에는 신인가수상을 수상한 아들 이루(본명 조성현)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었다. 

“저는 악기도 연주할 줄 모르고 못 하는 게 많은데 이루는 6년 동안 자신을 완벽하게 갖춰 놨어요. 드럼, 피아노, 색소폰, 건반까지 완벽하게 연주하고 작사, 작곡, 편곡까지 하니까. 날 닮은 건 별로 없지만 포기할 줄 모르는 거, 그거 하나는 닮았어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가수가 되겠다는 아들을 태진아의 아내 이옥형씨는 끝내 마뜩치 않아하며 크게 반대했다. 어릴 때부터 남달리 총명한 아들이 공부의 길로 가길 내심 바랐던 것. 하지만 태진아는 작곡가가 되겠다며 자신의 습작곡을 가다듬는 아들을 보며 ‘그래 피는 못 속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정적으로 가수가 되겠다고 가족들에게 선언했을 때에 그는 ‘신’이 났다고 표현한다. 

“선배로서 제가 결정적인 걸 가르쳐 줄 수 있거든요.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 결정적인 것은 못 가르쳐 줘요. 우선은 스스로 부딪혀 보고 좌절도 하고 성취감도 느끼면서 체험해 보는 게 중요하죠. 음반이 3장 정도 나왔을 때는 그 비법을 알려 줄 생각이에요.” 

아들 이루의 신인가수상 시상 장면을 촬영한 사진을 뿌듯하게 바라보고 있던 그때, 대기실에 들어온 후배가수 현숙씨가 사진을 들여다보며 말한다. 

“태진아씨 스물 세 살 때랑 현재 이루 모습이랑 정말 똑같아요. 아빠도 지금 이루 나이인 스물 세 살에 신인상을 탔는데…. 이루도 이제 가요계에 획을 긋는 큰 가수가 될 일만 남았네요.”

가족과 함께라면 언제든지 ‘콜’이죠!

‘즐거운 여행은 생명의 연장이다’라는 여행철학을 가진 태진아. 그에게 있어 여행도 지극한 가족 사랑의 연장선이다. 너무도 어려웠던 시절 신혼여행도 못 가본 이들 부부라지만 달랑 두 내외만의 여행보다는 가족 모두가 함께하는 가족여행이라면 언제든지 ‘콜’이란다. 거리상으로도 가깝고 공연으로도 1년에 7~8차례 방문할 기회가 있는 일본은 그의 가족들의 주무대다. 앞으로도 모두 함께 여행을 간다면 일본 온천여행을 다녀오고 싶다. 특히 이번 2006독일월드컵 때에는 온 가족이 한국에서의 활동은 모두 멈추고서라도 다같이 독일에서 축구경기를 관람할 계획이다.

대한민국의 트로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가수. 그뿐 아니라 먼저 고생을 겪어 본 인생의 선배로서 어디선가 누군가에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달려 나가는 선행에 앞장서는 연예인. 자나깨나 가족 우선주의를 몸소 실천하는 패밀리맨…. ‘고통 없이는 성숙할 수 없다’는 말처럼 어떤 궂은 상황에서도 ‘포기’를 몰랐던 악바리 태진아의 고생과 노력 뒤에는 더욱 끈끈한 가족사랑과 이웃사랑, 그리고 대한민국 최고의 트로트 가수라는 영예가 진주처럼 영롱하게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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