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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마케팅 황정태 사장 - 카리스마 황사장 ‘섬 도사’ 되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6.0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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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래비

‘거부할 수 없는 카리스마’라는 말이 ‘딱’이다. 12년 동안이나 음악의 길을 걷던 황정태 사장이 87년 친구의 소개로 여행사(그것도 국내부)와 연을 맺기 시작한 이후 스스로는 ‘Enjoy'였다고 표현하지만 그 누가 보기에도 그가 쌓아 온 업적이란 ‘열정’을 뛰어넘는 ‘카리스마’의 결과였다. 

“원래 나는 딴따라에요. 배는 고팠지만 즐겁게 음악하는 것에 만족하며 살았죠. 그러다 27살에 우연히 <10 years after>라는 노래를 듣는데 갑자기 암담해지는 거에요. 내 10년 후의 모습은 어떨까….” 

그 당시만 해도 음악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가난’이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마땅히 짊어져야 하는 운명이었다. 당시 좋아하는 일과 미래에 대한 고민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는, 여행사 대리를 하고 있던 친구의 부탁으로 제주도에 여행 인솔자로 나서게 됐다. 처음이었지만 반응이 좋았고 여행업에 매력을 느끼게 됐다.

그렇게 제주도를 드나들며 짜여진 숙박과 교통 그리고 일정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됐다. 그래서 당시 일명 ‘목카’, ‘완카’(목포, 완도에서 제주로 카페리로 이동하던 여행 상품의 약자)로 여행하던 제주도 일정을 교통편은 항공으로, 숙박도 리조트로 업그레이드해서 판매했다. 가격 차이는 두 배였지만 호응이 대단했다. 기실 그의 ‘고급 시장’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은 이때부터 시작이었던 셈이다. 

지금이야 리조트나 풀빌라 중심의 허니문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지 않고, 이것저것을 보지 않는 ‘휴양 여행’에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저돌적으로 밀어붙이고 좋아하는 일을 즐기면 그만이라는 그의 철학은 한국의 허니무너를 비롯한 많은 여행자들에게 반얀트리라는 고급 리조트 브랜드와 몰디브 힐튼, 필리핀 7,107개의 섬들 중 숨은 보석 보라카이, 이사벨, 엘니도까지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꿈’ 같은 섬과 리조트들을 소개했다. 

“88년에 해외부 업무를 맡게 되면서 보라카이에 갔어요. 그 붉은 핏빛 석양을 보며 눈물이 날 정도였어요. 일하던 현지 사람들도 석양이 질 때는 다들 우두커니 멈춰 서 석양을 바라볼 정도니까. 와 이걸 한국에 가서 어떻게 보여 주나… 미치는 거죠.” 

ⓒ 트래비
그가 느낀 들뜬 기분, 아름다운 석양, 하얀 산호 모래, 바다의 다채로운 모습들을 온전히 전하고 싶었다. 말로는, 글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어디든 출장을 나가면 수전증이 걸릴 정도로 사진을 찍어 온다. 생생히 여행의 감동을 전하는 방법은 사진만한 게 없다. 무형의 여행을 유형으로 만들려는 노력의 시발점이었다. 하지만 현지에 가야 사진도 찍고 리조트 관계자들과 미팅도 갖는데 회사에서 지원을 해주지 않았다. 

“그러니까 ‘빨간 날’에는 무조건 자체 출장을 나갔어요. 돈이 없으니 집에 있는 악기를 내다 팔아 항공료를 마련한 거지. 시간이 지나니 투자한 값어치를 알겠더라고요.”

남들은 5대양 6대주 완전 석권을 부르짖었지만 그렇게 새로운 섬과 리조트를 발굴하며 섬에 관한 한 ‘도사’가 됐다. 

1인 다역을 도맡으며 생생히 사진을 통해 보게 해주고, 현지에서 공수한 다양한 물건들을 만지게 해주고, 장단점을 상세히 설명하는 그의 열성은 손님들이야 믿고 좋아했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독불장군’이라며 멀리했다. 여행 지역을 꿰뚫고 손님의 편한 여행을 지키려는 그의 고집 때문에 가이드들에게는 미움을 넘어 ‘증오’를 샀다고 표현한다. 

“저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엔터테이너에요. 하지만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는 할 수 없는 거죠. 모두를 만족시키려고 욕심을 갖다 보면 오히려 가까운 사람들에게 소홀할 수 있잖아요.”

마침내 96년 클럽 아일랜드 센터(CIC)라는 이름으로 섬 전문 여행사를 차렸다. 당시 몰디브에서 힐튼을 비롯해 11개 리조트의 GSA를 체결하고 97년 반얀트리 등 고급 허니문 시장을 급속도로 발전시켰다. 5~6년 후 CIC의 영업실적이 최고에 달했을 때 이제 한계라고 생각했다. 

“역으로 생각해, 내가 나의 적이 돼 보자, 내 손님을 뺏어 보자고 매일 비 맞은 중처럼 중얼거리며 다녔어요. 남들보다 열 걸음, 스무 걸음이 아닌 반보만 앞서 나가자고 결심했죠.”  

그래서 2001년 일종의 ‘소매상’인 CIC 여행사의 경영권을 넘기고 아일랜드 마케팅이라는 ‘도매상’ 격의 리조트 독점, 총판매 여행사를 만들어 마케팅 전문가로 새로운 도약을 시작했다. 현재 아일랜드 마케팅은 다양한 섬 여행지의 고급 리조트로 히트에 히트를 거듭하고 있다. 

“이제 아일랜드 마케팅도 새 길을 찾을 때에요. 저는 더 이상 용량이 안 돼요. 그래서 욕심도 없어요. 18년 동안 여행업을 하며 정말 최선을 다해 재밌게 살았으니 이제 다른 계획을 실행해야죠.”

넌지시 그의 비밀 프로젝트의 운을 띄웠다. 힌트만 달라고 졸라대도 꿈쩍하지 않는다. 거부할 수 없는 카리스마에 ‘특급 프로젝트에 대한 힌트 얻기’를 거부당했다.  

“하루도 휴일 없이 한달에 19일은 외국에 나가니 와이프가 얼마나 싫겠어요. 이제 충성해야지요.”
허니문도 일로 가는 남편 때문에 결혼하고 신혼 기분도 못 내 본 아내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한다. 얼마 전 41살에 신의 계시를 받았는지 퀼트 공부를 하겠다고 뉴욕 FIT패션스쿨에 입학한 아내가 더 없이 자랑스럽다. 

친구들과 고스톱 판을 벌일 때에도 얼마를 따고 잃느냐를 개의치 않으며 시간을 정해 놓고 판을 벌렸다는 재밌는 비유처럼 그가 정해 놓은 ‘여행업’에 열중할 시간은 그리 길지는 않다. 4~5년 에너지를 한껏 모아 일에 전력투구한 이후에는 아내와 함께 헤이리 옆 영어마을 근처에서 작은 카페 겸 갤러리를 운영하며 또 다른 분야에 ‘행복을 주는 사람’이 되겠다는 황정태 사장. 그의 행복한 미래를 그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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