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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지형의 달콤 쌉싸름한 라틴아메리카 여행일기 1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6.02.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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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와 캐나다를 거쳐 라틴아메리카 여행에 접어든 Travie writer 채지형의 라틴아메리카 여행일기를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달콤 쌉싸름한 여행길에 함께 동행해 보실까요?

올라(Hola)! 제브라의 아름다운 눈에 빠졌던 아프리카, 정 많은 이들에 감동했던 중동과 아름다운 자연에 황홀했던 북미를 거쳐 드디어 정열이 넘쳐나는 땅 라틴아메리카에 와 있습니다. 라틴아메리카는 1년이라는 긴 여정의 마지막 여행지입니다. 이제 3개월 정도 남았는데요, 남은 기간 동안 욕심 부리지 않고 느리게 걸으면서 라틴의 달콤 쌉싸름한 맛을 야금야금 맛볼 생각입니다. 어떤 맛들인지, 조금씩 보여 드릴께요. 그럼, 일단 쿠바로 떠나 볼까요?

음악의 달콤함이 가득한 나라, 쿠바

쿠바의 호세 마르티 공항 입국 심사대. 경직된 얼굴의 이민국 심사관이 한참 동안 제 여권을 훑어보더군요. 지은 죄도 없는데 왜 등줄기에 식은땀이 나던지요. 긴장한 제 얼굴을 보던 심사관은 ‘웰컴 투 쿠바’라며 결국 미소를 보내 주더군요. 그제서야 굳게 닫혀 있는 쿠바의 빗장이 열렸습니다. 아, 그 문이 음악의 달콤함 속에 허우적거리게 만드는 문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쿠바는 기대하지 않았던 즐거움을 맘껏 누릴 수 있는 곳이었어요. 외벽이 다 벗겨진 썰렁한 골목을 돌다가 만나는 흥겨운 음악. 새벽 2시에 살사 바를 꽉 메운 사람들. 파도가 철썩대는 낭만적인 말레꼰을 걷다가 만나는 쿠바의 젊은이들, 거리 곳곳에서 풍겨나는 시가 향 속을 흐르는 브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불후의 명곡 ‘찬찬’. 

쿠바에 도착한 첫 날, 쿠바 모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는 올드 아바나(Old Havana)로 향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흐르던 음악! 올드 아바나에 있는 오비스포(Obispo) 거리는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귀를 호사스럽게 만들 수 있는 곳이더군요. 

# 다이내믹한 살사로 채워진 새벽 2시

밤 11시. 오비스포 거리에 있는 ‘금비(La lluvia de oro)’라는 낭만적인 이름의 바를 지나 살사로 밤을 달군다는 호텔 플로리다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과연 어디에 살사 바가 있는 것일까 싶을 정도로 조용한 로비를 지나 종업원이 알려 주는 곳의 문을 열었더니, 로비와는 180도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더군요. 아프리칸 리듬이 강하게 풍기는 쿠바 음악의 흥겨움 속에 너나 할 것 없이 신나게들 살사를 추고 있었거든요. 

살사를 추는 사람들의 건강한 미소, 경쾌한 스텝, 넓지 않은 공간을 폭발시킬 것 같은 열기. 쿠바의 칵테일 '쿠바 리브레'를 한잔 시켜 놓고 그 광경을 황홀하게 바라보고 있었더니, 레게 머리에 하얀 색 옷으로 멋지게 차려 입은 쿠바노가 다가와 ‘떼 구스타 바일라르(너, 춤추는거 좋아하니?)’ 하며 손을 내밀더군요. 물론 저는 ‘메 구스타 무쵸(물론 좋아하지!)’라며 일어나 처음으로 실전에서 스텝을 밟아 보았습니다.   

쿠바에서 살사를 즐겨 보겠다고 과테말라에서 살사 레슨까지 받았는데, 실전과 레슨은 어찌나 다르던지요. 흰 옷 입은 선수의 스텝을 따라 하느라 땀을 뻘뻘 흘려야 했답니다.  

다음 날 아침, 쿠바의 살사를 제대로 배워 보겠다고 살사 선생님을 찾아 나섰습니다. 길에서 만난 친구의 소개로 1시간에 5달러를 내고, 다시 ‘운, 도, 트레(하나, 둘, 셋)’를 외치며 스텝을 익혔습니다. 그러나 이미 과테말라에서 배운 살사가 몸에 익었는지, 쿠바의 살사를 다시 익히는 것이 쉽지 않더군요.  

# 브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연주를 배경으로 살사를!

비록 1시간이었지만 레슨을 받은 보람이 있었습니다. 왜냐면 전설적인 브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화려한 연주를 배경으로 쿠반 살사를 췄기 때문이죠. 브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공연을 보기 위해 일찍 가서 제일 앞자리에 앉아 있었더니, 흐르듯 살사를 추던 아저씨가 맨 앞자리에 있는 저에게 살사를 청하더군요. 고수와 한 스텝을 돌고 나니 어찌나 떨리던지요.  

쿠바 최고의 호텔인, 호텔 나시오날에서 브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멤버인 아마디토 발데스와 쿠바 음악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산티아고 데 쿠바에서 온 그룹 바르바리또 토레스의 열정적인 공연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화려한 공연은 앞에 놓인 스테이크의 맛을 잊게 할 정도였지요. 육중한 베이스 음은 한없이 가볍고 부드럽고, 신들린 기타 연주는 숨을 못 쉬게 할 정도였습니다. 

사회자는 쿠바 음악의 상당수가 먹는 것과 관련된 가사를 가지고 있다고 소개하더군요. 먹는 이야기는 언제나 흥겹고 재미있다면서요. 사랑과 열정을 담은 낭만적인 노래, 혁명의 의지를 담은 힘찬 노래, 생활을 담은 익살스러운 노래까지 쿠바 음악은 세상을 담고 있었습니다. 

# 인생은 아름다워라. 말레콘의 자유로운 영혼들

또 다른 행운은 아바나에서 열리고 있던 재즈 페스티벌 마지막 날 멜라(mella) 극장에서 열렸던 츄쵸 발데스의 피아노 연주를 들은 것이었습니다. 오래된 극장에서 풍기는 시큼한 곰팡이 냄새까지 날려버리는 그의 신들린 피아노 독주와 이어지는 아프리칸 타악기 봉고, 트럼펫과의 합주. 음악을 들으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지요. 

쿠바에서의 음악 이야기를 꺼내니 끝이 없네요. 아름다운 도시 트리니다드(Trinidad)의 까사 델 라 뮤지까(Casa del la Musica) 야외 무대에서 들었던 열정적인 연주, 쿠바 음악의 본고장 산티아고 데 쿠바(Santiago de cuba)의 까사 델라 트로바(Casa del la trova)에서 ‘찬찬’에 맞춰 신나게 살사를 추던 기억까지. 그리고 칵테일과 음식 메뉴까지도 ‘재즈 버거’, ‘아바나 재즈’ ‘재즈 플라토’ 등이었던 아바나의 라 소라 이 엘 꾸에르보 재즈 클럽(La zorra y el Cuervo Jazz club), 신나는 음악과 함께 양 많은 스파게티가 인상적이던 아바나의 재즈카페(Jazz cafe).  

뭐니 뭐니 해도 가장 가슴을 촉촉하게 만들었던 음악은 하바나의 자유로움의 상징, 말레콘의 무명 연주가들이 들려 준 ‘찬찬’이었습니다. 총총 박혀 있는 별 아래,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 어디선가 쿠바산 시가 코이바(coiba)의 진한 향이 흐르던 그날 밤. 마침 옆에 있던 멋들어진 쿠바 여인네의 옷자락도 흔들리고 있더군요. 무한한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그 분위기에서 들었던 낡은 기타와 봉고가 연주하는 어설픈 ‘찬찬’은 가난하지만 자유로운 그들의 영혼을 제 가슴 속에 깊이 심어 줬습니다. 


채지형 pinkpuck@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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