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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 이재용 - 생방송보다 짜릿한 생생 여행담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6.03.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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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래비

그는 여행을 계획하는 일뿐 아니라 회상하는 일에도 재주가 있는 사람이다. 다 아는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풀어가는 재능은 그가 MBC의 내노라하는 아나운서임을 다시 한번 각인시켜 주었다. 여행사 직원들은 물론이고 세계일주를 다녀온 사람이나 한달에도 서너번씩 가방을 꾸리는 여행작가가 주변엔 수두룩하지만 그만큼 여행의 추억을 즐겁게 풀어내는 경우는 많지않다.


내방객 접견실의 코코아 한잔과 함께 이뤄진 이재용 아나운서와의 만남은 빡빡하게 짜여져 있는 그의 스케줄 사이를 뚫고 어렵게 이뤄진 것이었다. 예정에는 있었지만 각본에는 없는 인터뷰를 그는 마치 작가가 써 준 대본이라도 있는 것처럼 막힘없이 리드해 갔다. ‘아주 특별한 아침’과 ‘찾아라! 맛있는 TV’를 각각 4년, 5년씩 진행한 중견 아나운서답게 NG 한 번 내지 않고 달변으로 일관한 특별한 ‘생방’이었다. 

이날 ‘생방’의 하이라이트는 단연코 학생 시절 여행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가 여행한 곳이 몽골의 사막이나 티베트의 고원인 것은 아니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가보게 되는 제주도, 설악산이었지만 그래도 그의 이야기는 특별하기만 했다.  
“예전엔 용산에서 목포까지 가는 12시간 완행열차가 있었어요. 그걸 타고 목포에 도착하면 아침이 되거든요. 노숙자처럼 목포항 화장실에서 세수하고 라면을 끓여 먹고 나서 가야호의 3등칸에 타요. 그 칸이 바로 피스톨 옆이거든요. 곳곳에 토사물통이 놓여 있어요. 그걸 타고 제주도까지 가는 거예요. 거의 12시간을 가다 보면 바닷물이 까매지기 시작하는데, 제주도가 가까워지는 거예요. 제주도는 화산섬이잖아요. 그래서 바다 속이 검어요. 비행기 타고 가는 사람들은 그걸 절대 모를 걸요.” 

사람들이 절대 모를 것은 이뿐이 아니다. 만장굴 입구로 들어가는 길 양쪽이 온통 산딸기 밭이라는 사실을 버스를 타고 들어가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놓치고 만다. 그 산딸기가 얼마나 달콤하고 부드러운지도 짐작조차 할 수 없으리라. 여비를 아끼느라 잼 대신 그 산딸기를 따서 빵 사이에 넣어서 먹어 본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게 지지리 궁상으로 다녀온 여행을 세월이 흐른 뒤 ‘럭셔리 모드’로 다시 가보는 재미는 또 뉘라서 알 수 있겠는가. 

“항상 여행을 꿈꾸며 산다”

그가 특히 좋아했던 여행은 겨울 산행이었다. 겨울 설악산의 추억은 배낭 한가득 채운 소주와 함께였다. 물론 자신만을 위한 술은 아니었다. 그 술은 봉정암 부근에서 석청(石淸)을 채집하는 사람들을 위한 최고의 보급품이었던 것. 비축했던 알코올이 바닥난 겨울 산중의 인부들에게 소주는 꿀보다 달콤하고, 그 보물을 이고 온 청년들은 마누라보다 반가웠을 것이다. 그들이 노릇하게 누워 내는 개구리 다리를 안주 삼아 홀짝이던 소주 맛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겨울 설악산의 백미는 봉정암에서 소청 사이의 풍경이에요. 온통 키가 작은 나무들이 펼쳐져 있거든요. 거기에 눈이 쌓이면 하얀 산호밭 같아요.” 

3만원으로 다녀온 제주도 버스 일주여행이나 배낭 가득 소주를 메고 갔던 설악산 여행은 그가 젊은 시절 감행했던 무모한 여행의 아주 일부였음이 분명했다. 허락된 시간이 더 있었다면 그는 시간에 비례하여 남자 냄새가 물씬 나는 모험담들을 잔뜩 풀어놓았을 것이다. 

생각해 보니 그는 여행을 계획하는 일뿐 아니라 회상하는 일에도 재주가 있는 사람이다. 다 아는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풀어 가는 재능은 그가 MBC의 내로라하는 아나운서임을 다시 한번 각인시켜 주었다. 여행사 직원들은 물론이고 세계일주를 다녀온 사람이나 한달에도 서너 번씩 가방을 꾸리는 여행작가가 주변엔 수두룩하지만 그만큼 여행의 추억을 즐겁게 풀어 내는 경우는 많지 않다.   

아쉬운 것은 이 모든 것이 대부분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아침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로기준법에 위배되는 12시간 초과 근무를 하면서, 매일 두 차례의 생방송을 치러 내는 그에게 여행은 항상 결핍된 필수 영양소다. 새벽에 주요 조간을 체크하고, 오후에는 다시 석간신문을 스크랩한다는 그가 가장 신나서 들여다보는 지면은 여행상품 광고란이다. “혼자서 이리저리 여행 계획을 짤 때가 가장 행복하다”거나 “항상 여행을 꿈꾸며 산다”는 멘트는 다소 상투적이긴 하지만 큰 따옴표가 한치도 부끄럽지 않은 그의 증언임을 밝혀 둔다. 


ⓒ 트래비

“여행은 나의 필수 영양소”

매일 아침 어김없이 진행되는 ‘아주 특별한 아침’과 매우 오후 4시5분에는 시그널송을 울려야 하는 ‘이재용·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를 진행하는 그에게 지금은 여행을 감행하는 시간보다는 꿈꾸는 시간이 더 많다. 

물론 머릿속에서 수없이 예행연습을 거쳤던 계획이 현실이 될 때도 많았다. 10년 근속 때 얻은 휴가에는 가족과 함께 캘리포니아 여행을 다녀왔다. 그는 카멜비치의 모래사장, 나파밸리의 와인 디너, 샌프란시스코의 털게 요리, 아들과 함께 거리를 쏘다녔던 라스베이거스 여행까지 즐거웠던 순간을 포도씨 뱉어내듯 툭툭 꺼내 놓았다. 남자 세 명이서 동행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인상적인 도쿄 여행에서는 로망스 기차를 타고 하꼬네에 가서 온천욕을 즐겼다. 자신이 진행하는 ‘찾아라! 맛있는 TV’에 소개됐던 횟집에 가서 식사를 한 것도 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내친 김에 그는 가장 최근의 여행까지 업데이트를 했다. 그는 지난 연말에 얻은 일주일의 휴가 동안 금강산, 설악산, 지리산, 한라산을 정복했다. 그리도 좋아했던, 그러나 참으로 오랜만의 겨울 산행이었다. 그런 흉악한 ‘한반도 산 정복’ 프로젝트에 동행자가 있었던 것일까. 역시 예상대로 12살 아들을 동원하기도 했고 친구도 불렀다가, 또 어느 산은 홀로 다녀왔다. 담배도 끊고, 매일 2시간씩 운동으로 몸을 다지는 그지만 지난 산행을 통해 그는 더 건강해져서 돌아왔다. 여행은 그가 항상 가장 필요로 하는 영양소이자 삶의 비타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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