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김혜자 - 당신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유
탤런트 김혜자 - 당신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유
  • 트래비
  • 승인 2006.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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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래비

나는 김혜자에게 감히 ‘여행’을 물었다. 특유의 소녀 같은 표정으로 촉촉한 눈망울을 반짝 빛내며 말한다. “나는 여행이 좋아서 다니는 게 아니야.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다니는 거지.”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자기 자신의 오감을 충족시키고자 이 곳 저 곳을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곳’이라는 타이틀로 욕심을 내던 한 여행자의 얼굴을 붉힌다.

자애로운 어머니에서 귀여운 황태후 마마까지

김혜자를 만난 건 지난 3월 드라마 <궁>의 촬영이 진행 중이던 마카오에서였다. 극중 손자인 신과 채경의 사랑이 삐걱거릴 때마다 사랑의 메신저로 귀여운 황태후 마마를 연기하는 김혜자.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을 키득거리며 보다가 누군가 들어오자 금세 근엄한 표정으로 돌변하고 ‘대략난감’, ‘열공’ 등 채경이의 인터넷 용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귀여운 할머니는 두 주인공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촬영 중간 중간에도 그녀 특유의 자상함은 빛이 난다. 소품으로 나오는 자스민차의 향을 주변 사람들 한명 한명에게 맡아보라며 건넨다. 후배의 헝클어진 머리나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만져주는 모습은 영락없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그의 배려심과 고운 마음은 스텝들 사이에서도 칭찬이 자자했다. 김혜자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상은 그녀가 던지는 눈빛, 행동, 말투 하나하나에서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하지만 내 진짜 모습은 ‘한국의 어머니상’이기만 한 건 아니지. 솔직히 ‘전원일기’를 통해 가정교육을 받고 아내 노릇을 배웠어요. 현실에서 저는 드라마 속 어머니처럼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는 아니었으니까 남편과 아이들에게도 상처를 줬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은 김혜자에게 다른 엄마가 줄 수 없는 더 많은 것들을 줬다며 그녀를 자랑스러워했다. 


ⓒ 트래비

‘일’은 꼼꼼하게, ‘선행’은 조건 없이!

<전원일기>의 ‘전통적인’ 어머니 이미지가 워낙 강했지만 김혜자는 다양한 어머니 상을 연기해 왔다. <사랑이 뭐길래>와 <장미와 콩나물>에서 보수적인 남편에게 기도 못 펴지만 ‘궁시렁 거리기’와 ‘뒷담화’로 시청자들의 배꼽을 잡으며 대한민국 주부들의 답답한 속을 대변해 주기도 했다. 또 ‘가족’에 파 묻혀 ‘자기’를 잃고 산 40대의 평범한 주부 역할로 분한 모노드라마 <셜리 발렌타인>. 인생의 권태에 찌든 셜리 발렌타인이 친구의 권유로 그리스 여행을 나서며 겪는 로맨스로 자신이 정말 누구인지 알게 된다는 연극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여행 이야기를 꺼냈다. 

“여행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찾는 이야기에요. 마지막 장면에서 그 동안 불행했던 것이 그녀 자기뿐 만 아니라 남편도 불행했다는 사실을 깨달아요. 그 현명한 결론이 마음에 와 닿아 선택했던 작품이었죠.” 

하지만 그녀 자신은 ‘여행’이라는 주제로는 그닥 할 말이 없다고 말한다. <사랑이 뭐길래>의 촬영을 모두 끝내고 대학생이었던 딸과 유럽 배낭여행을 준비하던 차에 자선단체인 월드비전에서 아프리카로 한 번 가보는 게 어떻겠냐는 연락이 왔다. 평생 아프리카를 언제 또 가보겠냐는 생각에 딸만 혼자 유럽으로 보내고 목적지를 바꿨다. 그렇게 순전히 우연으로 시작된 출발이 그녀의 인생을 완전하게 바꿔놓을 줄이야. 

내전 중 강간을 당해 반군 대장의 아이와 정부군 대장의 아이를 낳아 키워야 했던 열여덟 살의 소녀. 낯선 사람만 나타나면 무서워 숨어버리는 아프가니스탄의 아이들. 먹을 것이 없어 6개월 동안 독초를 씹던 아이들까지.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갔던 아프리카에서 하루 종일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울고 다녔어요. 눈물샘이 터져버린 것처럼." 

배역을 고르고 연기에 임하는 데 있어 꼼꼼하고 까다로워 ‘완벽주의자’로도 유명한 그였지만 그 이후에 그녀는 ‘여행’이 아닌 순전히 세계의 어려운 아이들을 보기위해, 그녀의 손길이 필요하면 조건 없이 어디든 달려갔다. 그렇게 시작해 인도와 에티오피아를 비롯해 소말리아, 르완다, 방글라데시, 라오스 등 여러 빈곤국을 찾아다니며 지금은 50명도 넘는 아이들의 후원자가 됐다. 

그간 만나고 겪었던 아이들의 모습을 ‘진심으로’, ‘정성을 갖고’ 책으로 엮은 것이 지난 2004년 출간된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다. 그녀에게 주어진 책의 수익은 모두 월드비전을 통해 아이들에게 보내졌다.

“천원의 행복 실천해 보세요”

질의응답식 대화가 싫어 인터뷰를 거부한다는 그녀. 하지만 아이들에 대해 물으면 촉촉한 눈물을 그렁거리며 조곤조곤 아이들 이야기를 술술 풀어 나간다. 

“제 손이 죽어가는 아이들의 손을 잡았을 때 그 아이들의 손의 감촉을 기억하고 있어요. 그런 아이들의 손을 오래오래 꼬옥 잡아주고 싶어요.” 

다음에는 또 어느 곳에서 아이들의 손을 잡아줄 것인지를 물었다. 월드비전에서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나라가 있다면 어디든지 갈 생각이다. 많은 아이들이 굶주리고 죽어가고 있는 지구상의 곳곳에서 앞으로도 그는 친어머니의 마음으로 손을 뻗을 것이다. 

“1,000원이면 아이 1명이 사흘 동안 넉넉하게 밥을 먹을 수 있어요. TV만 틀어도 수백억 수천억이 아무렇지도 않게 오가는 혈실 속에서 단돈 1,000원이 없어 굶어 죽는 아이들을 볼 때면 내 삶이 너무 사치스러워 창피하기만 해요.” 김혜자의 그 말이 목구멍에 가시처럼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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