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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지형의 달콤 쌉싸름한 라틴아메리카 여행일기 10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6.05.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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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의 고독, 이스터 아일랜드

“거긴 파라다이스야. 꼭 가봐야 해”

볼리비아에서 우유니 투어를 함께 했던 스웨덴 친구 피터는 이스터 섬에 대해서 ‘진정한 파라다이스’라고 딱 잘라 말하더군요. 파라다이스라. 지구 곳곳을 돌면서도 ‘파라다이스’라고 극찬을 할 만한 곳이 그다지 많지 않았는데. 피터의 한 마디에 이스터를 향하는 저의 마음은 하늘만큼 붕붕 떴답니다. 단지 ‘모아이’만 있는 섬이 아니라 모아이도 있는 ‘파라다이스’라.

알록달록한 색, 비릿한 바다 내음

이스터로 날아가는 란칠레 LAN 841편. 홍콩에서 온 당찬 친구 맨을 만났습니다. 이름과 달리 앳되어 보이는 얼굴을 가진 이 아가씨는 홍콩에 있는 여행 사이트에 여행기를 올릴 거라며 사진 찍기에 열중이더군요. 

“일부러 꼭 창가 자리를 달라고 했지. 이스터에 갈 때는 왼쪽창가 자리에 앉는 게 좋아. 멋진 이스터를 한 방에 담을 수 있으니까.”

맨의 말처럼 어깨 너머로 본 이스터는 저도 모르게 '아'라는 탄식이 새어나올 정도로 매력적이더군요.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내려다본 이스터 섬은 조용하게,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둥둥 떠 있었습니다. 

칠레 공항을 출발한 지 무려 5시간30분 만에 이스터에 도착했습니다.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빨간 색 꽃을 귀에 꼽은 현지인들이 노란 색 꽃 목걸이를 가지고 관광객들을 맞아주더군요. 이스터 주민들은 폴리네시안이라더니, 이곳이 하와인지 타히티인지 잠시 착각할 뻔했답니다. 어디선가 ‘알로하’ 하며 달려올 것만 같더군요. 

1m쯤 뜬마음은 이스터에 온 지 1시간도 안 되어 가라앉았습니다. 십여 곳의 게스트하우스를 전전긍긍하며 돌았지만 숙소를 찾을 수가 없었거든요. 여행 중에는 언제나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납니다. 

결국 파라다이스라는 그곳에서 첫날 밤은 공항에서 만난 마리아 아줌마네 집 거실 신세를 져야 했답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넉넉해 보이는 몸매를 가진 마리아 아줌마는 숙소를 찾지 못한 채 난감해하고 있는 저를 데리고 동네 구석구석을 다니더니, 결국 거실을 내주더군요.

외로운 모아이 옆에서 엽서 한 장

이스터와의 본격적인 만남은 다음날 시작됐습니다. 깜깜한 새벽부터 부산을 떨면서 일출이 아름답다는 아후 통가리키(Ahu tongariki)로 갔습니다. 장엄하게 떠오르는 해를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는 모아이들. 왜 만들었는지, 어떻게 거대한 모아이를 이동했는지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는 않아 풀리지 않은 신비로 알려져 있지만, 저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그들의 시선이 더욱 신비롭더군요.

통가리키에 있는 모아이 중 하나는 '트래블링 모아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습니다. 이유인 즉 15구 중 유일하게 오사카에서 열린 엑스포에 다녀왔기 때문이라나요. 

해가 뜨고 난 후 쓸쓸해 보이는 뒷모습을 뒤로하고 모아이 팩토리인 라노 라라쿠(Rano Raraku)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곳의 모아이들은 석공들이 마치 잠시 점심을 먹으러 간 듯 작업 중인 채로 남아 있더군요. 어떤 모아이들은 화순 운주사의 와불처럼 누워 있었답니다. 

해변에 있는 모아이 아나케나(Anakena)를 찾아가는 길에는 제주도에 있는 '도깨비 도로'도 있더군요. 크고 작은 기생 화산들은 제주도의 오름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차곡차곡 돌담들도 제주도의 그것과 꼭 같았구요. 그러고 보니 이스터 섬은 제주도와 참 많이 닮아 있더군요. 

섬을 돌아볼수록 어찌 그리 우리 제주도가 그립던지요. 와락 그리움이 쏟아지더군요. 그저 육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섬이라고만 알고 있던 이스터 섬의 외로움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아, 도대체 나는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 것인지. 

책을 뒤적이니, 이스터는 칠레에서 3,780km, 타히티에서 4,300km, 가장 가까운 섬에서도 1,900km가 떨어져 있는 고립된 땅이라는군요. 그러면 우리나라에서는 무려 약 1만 6,000km가 떨어져 있는 겁니다. 

무한한 해방감이 끝없는 외로움으로 바뀌더군요. 이곳에서 나는 뭘 하고 있는 것인가. 까만 볼펜, 소박한 엽서 몇 장을 꺼내 놓고 모아이 옆에서 하염없이 바다를 보며 멍하니 앉아 있었답니다. 이스터에서 남은 시간들은 멀리 있는 지인들과 저를 이어 줄 엽서 쓰기에 열중해야겠습니다.

채지형 pinkpuck@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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