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지형의 달콤 쌉싸름한 라틴아메리카 여행일기 12
채지형의 달콤 쌉싸름한 라틴아메리카 여행일기 12
  • 트래비
  • 승인 2006.05.2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2. 태양보다 밝게 빛나던 리우데자네이루

'연일 강추위가 몰아치고 있는 가운데, 지구 반대편에서는 작열하는 태양 아래 지상 최대의 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중략) 브라질 리우에서 000 특파원이었습니다.'

매년 2월이 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뉴스를 보면서 언젠가 그곳에 꼭 가보리라 다짐했었습니다. 지난 30여 년간 이름만 들어오던 그곳에 내가 있다니!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삼바 퍼레이드를 보러 가던 날 몸속의 피들이 높이뛰기를 하는 양 마구 뛰더군요. 

코파카바나 해변 부근에서 만난 친구들과 삼바 퍼레이드 표를 사기 위해 야외 공연장, 삼바 드로모에 갔습니다. 스타디움 주변은 의외로 살벌하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현지인 한 명이 함께 가던 친구의 목을 조르는 것이 아닙니까! 모두들 달려가 별 탈 없이 끝났지만 어찌나 놀랐던지요. 하늘을 붕붕 날던 마음도 일순간 정지되었습니다. 역시 리우는, 특히 축제기간의 리우는 조심, 또 조심해야 할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우울하던 마음도 잠시. 막상 삼바 드로모에 들어가 눈앞에 펼쳐지는 삼바 춤의 행렬을 맞이하니 다시 180도 변하더군요. 몇 조각 되지 않는 무대 의상과 형형색색의 깃털 모자로 한껏 치장한 삼바 댄서들의 행렬, 야광 빛을 번쩍거리며 등장하는 갖가지 주제의 무대들. 세상의 미녀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인 것 같았습니다. 농구공처럼 튕길 것만 같은 엉덩이, 세상을 모두 삼킬 것 같은 미소,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삼바 춤까지! 

사탕수수를 키우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온 흑인들이 배고픔의 고통과 슬픔을 잊기 위해 만들었다는 삼바. 슬픔은 화려함으로 승화되는 것인지. 삼바의 안타까운 기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이, 그저 퍼레이드를 펼치는 팀 하나하나 독창적이고 눈이 부신 연기와 춤을 그려 내고 있었습니다.  

저녁 8시에 시작한 퍼레이드는 한 팀에 한 시간이 배정되어 있는데, 새벽 2시가 되어도 퍼레이드와 관중들의 열기는 그대로더군요. 새로운 팀이 나올 때마다 열광하는 관객들. 다리가 아프지도 않은지 연신 서서 목청껏 노래를 따라 불렀습니다. 

제 앞에 앉아 있던 사이좋은 게이 커플은 찬찬히 시간표를 뜯어보며, 열심히 품평을 하더군요. 퍼레이드가 끝나는 시간은 아침 7시. 아무리 열정적인 사람들이지만, 정말 체력 좋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삼바보다 더 멋있었던 리우 시민들의 흥겨움 

퍼레이드의 화려함보다도 더 제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카니발 기간의 리우 거리였습니다. 

각자 집에서 만들어 온 기괴한 옷을 입고(혹은 아예 입지 않고) 맥주 캔을 하늘 높이 흔들어 대고 있었습니다. 미니스커트를 입은 남자들은 물론이고 공상 과학 영화에서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괴상한 괴물로 변장 한 아저씨들,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온 사람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춤을 추며 지구의 최대 축제를 온몸으로 즐기고 있더군요.  

아마, 누군가 제게 세계의 맥주 중 어떤 맥주가 가장 맛있었냐고 묻는다면, 저는 주저 없이 리우 카니발에서 마셨던 맥주라고 대답할 겁니다. 해가 중천에 떠 있는 그 열기와 그 소란함 속에서 마신 시원한 맥주는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답니다. 

저는 축제를 위해서 일년을 기다린다는 브라질 사람이라도 된 양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그들과 함께 리우 거리에서 허우적거렸습니다. 그때야 진정 이해할 수 있겠더군요. 이들이 일년을 기다리는 이유를요. 그 느낌이 어렴풋이 2002년 월드컵 때를 기억나게 하더군요. 그때의 그 신명과 미치도록 행복했던 그런 기분 말이죠. 

그리곤 조금 속상했습니다. 왜 우리에게는 이런 축제가 없는 것일까. 미인들로 가득 찬 퍼레이드가 아니더라도, 모두를 신명나게, 아니 미치게 만드는 축제가 왜 없는 것일까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오월이 되면 축제로 온 나라가 들썩이기는 하지만, 왜 숨쉬고 있음이 행복한 느낌을 주는 축제는 없을까요. 서울에 돌아가면, 아무래도 좀더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채지형 pinkpuck@dreamwiz.com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 중구 무교로 16, 5층 (주)여행신문
  • 대표전화 : 02-757-8980
  • 팩스 : 02-757-8983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전홍렬
  • 법인명 : (주)여행신문
  • 제호 : 트래비 매거진
  • 등록번호 : 서울 라 00311(2009-10-13)
  • 발행일 : 2005-05-30
  • 발행인 : 한정훈
  • 편집인 : 김기남
  • 트래비 매거진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1 트래비 매거진. All rights reserved. mail to tktt@traveltime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