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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신경숙 - 새로운 길위에서 귀기울이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6.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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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래비

미술가 전수천의 7박8일의 ´Moving Drawing´ 프로젝트 기차 안, 그랜드 캐년으로 향하는 열차에서 신경숙을 만난다. 오래 전 예술사진을 공부할 때부터 만나 보고 싶었던 그녀. 인천공항에서 소개를 받고 인사를 하니 수줍은 미소를 날린다. 첫날 뉴욕 첼시와 소호, 시내 탐방길에 같이 만난 데다 달리는 열차 안에서 함께하는 시간 덕에 점차 누이처럼 편안하다. 기차의 맨 뒤 칸에서 햇살과 바람을 즐기는 그녀를 카메라에 담으며,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 여행은 낮설고 새로운 것을 만나러 가는 길"

여행은 ‘낯선 것, 새로운 것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며 여행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여행지에서 받은 강한 인상이 마음속 깊이 오래도록 남아 있으면 쉽게 작품이 된다”며 마음속에 아주 오랫동안 강렬하게 남았던 페루 여행 이야기를 들려 준다. 이 페루 여행에서의 생각과 상념을 토대로 탄생한 작품이 <오래 전 집을 떠날 때>이다.

“페루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사진작가가 여행 중 경험과 여러 가지 상념들을 정리한 내용이죠. 모든 여행이 다 작품으로 남는 것은 아니지만 이 작품은 페루 여행을 다녀와서 쓴 소설이에요. 그때 다른 작품을 쓰고 있었는데 페루 여행에서의 인상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고 깊이 남아 있었어요. 그곳의 느낌이 너무나 강렬해서 쓰던 것을 잠시 접어 두고 이 소설을 썼어요. 누가 불러주듯이 이야기가 술술 나오는 거예요. 이 작품을 끝내고 나니까 비로소 다른 작품이 되더라고요.”

편안한 운동화를 신고 여행지의 낮선 거리와 시장을 배회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그녀. “잊혀진 익명의 존재들이 끊임없이 걸어 오는 말에 귀기울이고 그들이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을 이끌어내는 것이 영화나 노래, 소설이 아니겠어요.” 소설 <바이올렛>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작고 여리고 미미한 것들의 존재를 보듬는 마음 따뜻한 그녀에게 이제까지 다녀 본 여행지 중에 인상 깊었던 곳을 물어 보았다. “남미 페루에 있는 마추픽추 유적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너무나 멀어 피곤에 절어 있었는데도 마추픽추를 보니까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마치 오래 전 내가 이곳에 와 본 것 같은 느낌도 들었고요.” 기자가 그 이유를 묻자 “한때 찬란했던 문명의 사라짐에 대한 연민과 전해 오는 많은 이야기” 때문이란다. 여행지에서 많은 생각에 빠진다는 그녀. 아주 오래도록 작가의 마음에 남았다는 페루 여행 이야기가 이어진다. “어느 날 작은 자동차를 빌려서 페루 여행을 하고 있는데, 황야에 아기를 업은 인디오 여인이 걸어가고 있는 거예요. 그 사람을 보면서 ‘저 사람들은 한 번이라도 여기를 떠나 본 적이 있을까’ 하는 연민과 함께 또 ‘그것이 무슨 대수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녀. 물기 어린 목소리로 여행의 기억을 떠올려 준다. 

1년에 보통 서너 번의 해외여행과 틈틈이 자동차로 국내여행을 즐긴다는 그녀. 여행 갈 때는 아직 읽지 못한 후배 작가들의 책을 준비해 간다고 한다. 시차로 잠이 안 올 때나 혼자 있을 때를 위해서란다. 또 하나 빠트리지 않고 챙겨 가는 것이 운동화. 언제 어디서든 길을 걷고 시장 돌아보기 위한 필수품이란다. “그 지역을 상징하는 곳도 챙겨 보지만 거리를 걷는 것을 좋아해요. 또 그곳 사람들 속에서 그네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장에도 가보죠. 시장에서 파는 야채와 과일, 고기와 물고기를 보는 것이 참 재미있어요. 맛있는 것이 있으면 사 먹기도 하구요.” 이런 여행의 경험은 그녀의 소설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훈훈한 사람 사는 이야기 말이다.
 

" 여행을 통해 식었던 열정을 되살린다"

 ⓒ 트래비

여행지에 겪은 에피소드를 주문하자 페루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 준다. “페루에서 마추픽추로 가는 길이였죠. 새벽에 쿠스코를 출발해서, 4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갔었죠. 차창 밖 풍경도 좋았어요. 기차에서 내려 마추픽추로 올라가는 버스를 타고 가는데 엄청나게 큰 배낭을 멘 일본여성을 만났죠. 그녀는 15일 동안 페루를 여행하고 있는데 쿠스코에서 이곳까지 4일 동안 걸어서 왔답니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내 안에서 사라지고 있던 열정이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에요.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의 시간이랄까요.”

기자도 한동안 식었던 예술에 대한 열정이 문화와 예술의 도시 산타페에서 타올랐던 기억이 새롭다며 고개를 끄떡였다.

그녀는 여행지의 현지 음식을 굉장히 즐긴다고 한다. 현지에서는 철저하게 현지식을 고집하는 그녀지만 오랜 여행에서는 고추장을 먹어야 힘이 난다고 한다. “보름 이상의 장기 여행이면 고추장 볶음 정도는 준비하지만 유명한 관광지나 호텔 말고 재래시장에 있는 음식점에 가는 걸 좋아해요. 베트남에 가면 그곳 재래시장에서 파는 쌀국수를 꼭 먹고 와요.”

프로젝트 ´Moving Drawing´의 초대 손님이기도 한 신경숙. 미국 중부 중앙평원의 작은 도시 가든시티에서 알부쿼키로 달리는 기차안에서 ‘신경숙의 문학 속으로’ 라는 프로그램이 열렸다.  <풍금이 있던 자리> 소설집 맨 마지막 꼭지 ‘멀리, 끝없는 길 위에’ 를 낭독하는 시간이었다. 피아니스트 노영심의 아코디언 연주가 배경으로 깔린다. “어둡고 황량한 고속도로, 머리에 스치는 바람. 아득한 곳에 희미한 불빛, 머리가 무겁고 시야가 흐려지면 하룻밤의 안식처를 찾아 차를 멈춘다….” 그녀가 서른 즈음에 쓴 소설의 한 자락이 독백처럼 들려온다. 달리는 열차 안 사람들은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 여행에 빠져든다.

여행지에서 돌아오면 그곳의 문진(文鎭)과 양초를 꼭 사온다고 한다. 집에 돌아와서 지인에게 선물하기도 좋고 기분 좋을 때나 분위기를 내고 싶을 때 사용한단다.

이번 전수천의 ´Moving Drawing´에 대한 소감을 물어 보았다. 이번 여행을 “미국 대륙을 캔버스 삼고 흰색 천의 열차를 붓 삼아 대륙을 횡단하는 이번 프로젝트는 선로 위의 모든 존재를 끌어안는 종합예술”이라며 “이번 여행을 통해 그동안 글쓰기의 벽에 갇혀 인식하지 못했던 감성을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되었단다. 때로는 긴장으로 때로는 편안함으로 다가온 열차에서 만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작품을 써 보고 싶다며 미소를 짓는다.   

* 지난 9월 13일부터 7박 8일간 문화예술계 인사 70여명이 동승한 가운데 진행됐다.

*´Moving Drawing (움직이는 선)´은 설치미술가 전수천 씨가 13년 동안 구상해온 미대륙 횡단 프로젝트로 흰천을 씌운 기차가 뉴욕을 출발, 클리블랜드, 시카고, 켄시즈시티, LA에 이르는 5500Km를 달리며 세계평화, 한민족의 통일 등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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