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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서면 숲이 생긴다, 플러스마이너스1도씨

  • Editor. 곽서희 기자
  • 입력 2022.02.01 1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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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벌레, 버섯, 이끼. 생명은 나무를 키운다. 그리고 나무는 울창한 숲을 이룬다.
서울 양천구 목2동에서 나무를 키우는 플러스마이너스1도씨를 만났다.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숙영원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숙영원

 

●역사는 수다에서 시작됐다


용왕산이 감싸고 안양천이 흐른다. 서울 양천구의 작은 동네, ‘모기동(목2동의 애칭)’. 고요해 보이는 골목에 뜨겁게 살아 숨 쉬는 문화가 있다는 사실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모기동의 수많은 모습 중 하나다. 

나무공방 ‘그날의 나무’
나무공방 ‘그날의 나무’
제로웨이스트숍 ‘지구살림터’
제로웨이스트숍 ‘지구살림터’

지금까지 모기동에서 일어난 문화 행사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가장 규모가 큰 행사인 모기동 마을축제부터 인문예술축제 ‘별 헤는 밤’, 마을공동체인 ‘협동조합 카페마을’과 주택협동조합, 크고 작은 소모임들까지. 이 모든 활동들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모기동 문화의 토대를 세워 가고 있다. 모기동에 지역문화가 꽃 피울 수 있었던 데에는 배산임수의 지형 덕도 있지만, 비옥한 토양을 일찍이 알아본 문화예술단체 ‘플러스마이너스1도씨(이하 플마)’의 역할이 컸다.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공공미술을 했던 플마는 2010년, 모기동에 카페 겸 작업실 ‘숙영원’을 오픈했다. 작은 카페였던 숙영원은 이웃들이 스스럼없이 드나드는 마을 사랑방으로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공동의 공간이 생기자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한곳에 모여들었고, 공간을 거점으로 관계성도 넓어졌다. 활동가, 기획가, 도자기 공방 주인, 학부모, 교사, 미디어지원센터 직원, 지역아동센터 운영자…. 이웃이자 지역민인 그들은 이곳에서 개인의 욕망과 필요, 고통과 불만을 나눴다. 수다를 떨고 커피를 마시면서. 

모기동 골목엔 다양한 공방들이 보석처럼 박혀 있다. , 손뜨개 공방 ‘프롬어스’
모기동 골목엔 다양한 공방들이 보석처럼 박혀 있다. , 손뜨개 공방 ‘프롬어스’

수다는 곧 활동으로 이어졌다. 이번 달 월세 걱정에 주거문제 스터디 모임체가 형성됐고, 스터디가 주택협동조합으로 발전하면서 공동주택 ‘함께사는 집, 뜨락’이 문을 열었다. 영화 토론에 대한 욕구는 독립영화 감독들을 초청해 영화 토론의 장을 마련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도예 체험에 대한 상상은 동네의 나무 도예공방 클래스에서 현실이 됐다. 마을축제는 ‘심심한데 뭐라도 해 볼까’와 같은 사소하고 개인적인 필요로 탄생했다. 그렇게 조용하던 골목엔 생명력이 짙어졌다. 인류의 역사는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상상력에서부터 출발했다는데, 모기동의 역사 역시 다르지 않다.

 

●‘나’의 문화를 만드는 일


문화는 생성되긴 쉬워도 유지되긴 어렵다. 한시성보단 영속성의 무게가 더 무거운 법. 세월의 부침을 견뎌 낸 문화가 ‘전통’으로 대접받아 마땅한 이유다. 지역문화의 뿌리가 단단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토양을 딛고 사는 지역민들의 자기 주체성이 중요하다. 플마가 공공미술의 주체로서 오랜 고민을 거듭해 내린 결론이다. 


플마는 여러 동네에서 공공미술을 진행하는 동안 지역 예술 프로젝트, ‘그 후 이야기’를 읽게 됐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으나 꼭 알아야 했던 이야기. 프로젝트에 막대한 예산이 투자되면 유명한 작가들이 대거 참여해 지역 곳곳에 벽화를 그리고 조형물을 만들었다. 그러나 썰물처럼 모든 것이 빠진 뒤, 지역은 관광객들의 포토존 정도로만 치부됐을 뿐, 뒷책임은 현장에 사는 지역민들이 고스란히 짊어지게 됐다. 그 모습을 보고 플마는 사람들이 모두 자기만의 문화를 꺼내는 ‘주체’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플마가 없다고 해서 모기동의 문화가 사라져 버린다면 그건 문화가 아니죠. 문화는 그 지역의 토양이자 계속해서 형성되는 사람들 사이의 관습이니까요. 자기 동력과 자기 의지가 결여된 형태라면 문화는 유지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플마는 모두가 자신의 문화를 기획할 수 있는 구조와 풍경을 ‘디자인’하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플마 유다원 대표의 말처럼 누군가의 부재가 지역문화의 흥망을 결정짓는다면, 그건 문화가 아닌 ‘현상(現狀)’이다. 지역의 문화예술단체는 주민들의 불편사항이나 의견을 수렴해 지역환경을 개선해 주는 공공기관이 아니다. 그들의 아이디어를 대리수행 해 주는 서비스 제공업체는 더더욱 아니다. 지역민들이 지역문화의 활동주체가 되어 자기 주체성과 자기 기획력을 발현시킬 수 있을 때, 지역문화는 비로소 단단하게 뿌리 내리고 성장할 수 있다.  

2020라이프가드닝위크 현장
2020 라이프가드닝위크 현장

이상적인 지역문화의 모습에 가까이 다가간 축제로 플마는 ‘라이프가드닝위크(라드닝)’를 꼽는다. 플마가 가장 애정하는 축제이기도 한 라드닝은 올해로 3년째를 맞는다. 대도시 안에서 높은 월세 등 공간의 무게를 감당해 내면서 자신의 공간을 묵묵히 꾸려 가는 이들을 조명하는 팝업축제다. 나무 공방에서는 나무 책장을 만드는 행사가, 카페에서는 재즈 공연이, 선술집에서는 막걸리 담기 일일 클래스가 다채롭게 열린다. 초창기에는 모기동 중심이었지만 두 번째에는 양천구, 올해는 사단법인 마을예술네트워크와 연결해 송파, 동대문 등 서울시 곳곳에 있는 공간들과 닿게 됐다. 삶을 경작하듯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축제를 통해 자기 고집이 깃든 공간에서 자신만의 문화를 만든다. 그렇게 하나하나의 독립된 ‘점.점.’의 문화, ‘나’의 문화는 축제라는 장 안에 모여 그 자체로 하나의 지역문화가 된다. 

‘별 헤는 밤’축제 드로잉
‘별 헤는 밤’축제 드로잉

이제 플마는 모기동에서도 자연스레 문화발전소의 중추 인력이 아닌, 동네의 작은 구성원 중 한 명이 됐다. 힘써서 움직이지 않아도 각자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동네에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의 모습대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누구나 자기 안의 욕망을 꺼내어 실현시킬 수 있는 감각을 열어 주는 것, 잃어버린 자신의 언어를 찾아 주는 것. 그것은 나아가 예술의 역할이기도 했다.

 

●나무를 보는 시선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플마가 놓지 않는 일이 있다. 바로 ‘식구를 만드는 일’이다. “모기동에서 활동하면서 일상적인 관계 맺음의 중요성을 알게 됐어요.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외롭지 않았죠. 아마 그들이 없었다면 진작 포기했을지도 몰라요.” 라드닝을 기획한 이유도 동료와의 협업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사람들이 경험해 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거시적인 거버넌스 네트워크가 아닌, 미시적인 관계를 맺으며 사는 것 역시 지역문화를 유지하는 데 있어 중요하다고 플마는 강조한다. 

코로나 타격도 플마를 빗겨 갔다. 달라진 거라곤 밤마다 마을 사람들과 마시던 와인 병의 수가 조금 준 것밖에 없다고 말할 정도로. 모기동의 행사는 대부분 이동 거리가 멀지 않은, 작은 골목 안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모기동에선 아주 작은 단위의 프로그램도 ‘행사’다. 2018년 ‘별 헤는 밤’ 축제만 해도 그렇다. 용왕산 잔디공원에 예술가들이 각자 3~4인용 텐트 한 동을 설치해 그 안에서 주민들과 만나며 노는 축제였다. 소소하나, 가까웠다. 다른 축제도 마찬가지다. 내 집 앞 주차장에서 안 쓰는 물건을 팔며 벼룩시장을 여는 식. 그런 것이 모기동에선 행사고, 축제고, 삶이다. 

요즘 플마는 틀을 깨는 방법을 찾고 있다. 플마의 정체성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사업을 하며 달려왔지만, 10년쯤 지나니 자신들만의 색이 너무 짙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기 시작했다고. 플마만의 기준을 지키되 관습의 껍데기를 벗어 내는 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고민이자 숙제다. 이럴 때 필요한 것 역시 사람의 힘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다 보면 각자가 지닌 틀이 깨지며 서로 성장하기도 한다고. 틀이 깨진 플마의 모습은 또 어떨지 궁금하다. 플마 탄생 11주년째. 비결을 물었더니 사람이라 답한다. 더하고 뺄 것 없이 알맞은 답이다.  

 

글·사진 곽서희 기자  사진제공 플러스마이너스1도씨  드로잉 조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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