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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춘 도시, 필리핀 비간

시간을 여행했다, 비간을 걸었다

  • Editor. 이은지 기자
  • 입력 2022.02.18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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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그리워하던 시간은 이제 안녕. 필리핀이 무려 2년만에 문을 열었다. 2월 10일부터 백신 접종을 완료한 외국인 관광객의 입국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안전한 관광지 구축에도 한창이다. 필리핀관광부에 따르면, 마닐라 인근 지역과 보라카이 등 주요 도시 관광업계 종사자들의 2차 백신 접종률이 90%를 돌파했고, 현재 오미크론 변이에 대응하기 위해 부스터샷 접종에도 집중하고 있다.

코로나로 여행이 어려운 시간 동안 ‘ASMR로 필리핀 즐기기’ 랜선여행 프로젝트 등을 통해 필리핀의 이야기도 꾸준히 들려주었으니 몸은 한국에 있어도 마음만은 이미 여행 채비를 마친 터. 필리핀의 색다른 매력을 느끼고 싶다면 조금은 생소한 비간(Vigan)을 들여다 보자. 바로 지금, 비간에서의 보석 같은 하루가 여행자들을 기다린다.

플라자 살세도
플라자 살세도

●16세기로 시간을 항해하는 곳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불변에 대한 갈망은 반작용처럼 곳곳에 씨를 뿌린다. 비간은 시간이 멈춘 듯 옛 무역 도시의 모습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다. 어쩌면 이 세상에도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 것이 있지 않을까. 비간에서는 작은 소망이 작은 놀라움으로 치환된다.

필리핀은 제국주의가 팽배하던 16세기 에스파냐(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다. 비간은 당시 중국과 직접 교역하던 무역의 중심지이자 마닐라와 멕시코 아카풀코(Acapulco)를 잇는 범선무역의 무대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배에 실은 상품은 더 멀리 항해하며 유럽까지 뻗어 나갔다. 비간은 필리핀, 중국, 에스파냐, 북아메리카에 터전을 둔 이들이 끊임없이 왕래하는 생동감 넘치는 도시였다.

건축 양식에서도 다양한 문화적 요소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스페인의 전통적인 바둑판 모양 도시 계획이 드러난다. 중앙광장을 두 부분으로 나눈 형태로, 살세도(Salcedo) 광장과 부르고스(Burgos) 광장을 중심으로 의사당, 대성당이 높이 솟아 있다. 마치 유럽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면서도 필리핀 고유의 정서가 묻어난다. 그 덕에 유네스코는 일찍이 비간의 역사를 높게 평가했다. “아시아 건물 설계와 유럽 식민지 건축 양식 및 계획이 독특하게 결합한 형태”,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 건설된 유럽식 무역 도시 중 이례적으로 온전하게 보존된 사례”라는 점을 들어 1999년 도시 전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칼레사
칼레사

●마차에서의 마법 같은 시간


비간 역사 마을은 루손(Luzon)섬 북동쪽 끝, 중국해의 연안 평야에서 떨어진 아브라(Abra)강 삼각주에 있다. 현재 9개 도시 구역과 30개 시골 마을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체 면적의 절반가량은 여전히 농업 지역이다. 역사적 중심 지역(Historic Core Zone)은 코반테스(Govantes)강과 메스티소(Mestizo)강에 의해 두 지역으로 나뉜다.

오감이 반응하는 체험은 여행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비간의 특별함은 칼레사(Kalesa)를 탈 때 배가 된다. 칼레사는 과거 스페인 귀족들이 탔던 전통 마차로, 현재 비간 곳곳을 알차게 둘러볼 수 있는 시내 투어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타박타박 경쾌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비간의 중심인 살세도 광장이 보인다. 스페인 정복자인 후안 데 살세도(Juan de Salcedo)의 이름을 딴 곳으로, 비간의 공식적인 행사 장소로도 쓰인다. 광장 중앙에 위치한 분수대에서는 밤마다 화려한 분수쇼가 펼쳐진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찰나의 순간도 빼놓을 수 없다. 필리핀 대중교통수단인 지프니와 마차가 나란히 달리는 경험은 꽤나 흥미롭고, 사람 냄새 나는 가정집들은 비간에서의 삶을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부르고스 박물관
부르고스 박물관

●독립을 외치다


언제 들어도 심장이 뛰는 말, 아마 독립이 아닐까. 스페인 식민지 시절에도 독립을 외친 이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순교한 3인의 신부 중 하나인 호세 부르고스(Jose Burgos)의 생가는 박물관으로 재탄생했다. 파드레 호세 부르고스 국립박물관(Padre Jose Burgos National Museum) 1층에는 전통 방식으로 짠 직조물과 전통의상 등 일로카노(Ilokano, 일로코스 지역에 거주하는 부족민)의 유물이 전시 중이다. 앤티크 가구로 가득한 2층은 당시 중산층의 생활상을 온전히 보여주고, 지역 유명 화가인 에스테반 피치 빌라누에바(Esteban Pichay Villanueva)가 1807년 바시 반란(Basi Revolt)을 묘사한 그림 14점도 만날 수 있다.

●비간의 역사를 빚다


비간에서 꼭 해봐야 할 체험은 바로 도자기 체험이다. 스페인이 필리핀을 점령하기 전, 먼저 터를 잡은 중국인들은 ‘불나이(Burnay)’라고 불리는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훌륭한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원료가 필요하다. 비옥하기로 소문난 비간 시티 서쪽의 흙을 가져와 약 4시간 동안 밟고 다지며 부드럽게 만드는 것이 첫 단계다. 물레를 돌리며 능숙하게 빚어내는 장인의 손길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한 때 많은 양을 수출할 정도로 번성했던 제작 공방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현재 몇 군데만 남아 명맥을 잇고 있다.

그 중 하나인 파그불나얀(Pagburnayan)에서는 직접 불나이를 만들어 볼 수도 있다. 부드럽고 차가운 흙이 손에 닿는 느낌은 다소 생경한데, 긴장해서 힘을 주게 되면 모양이 움푹 찌그러지고 만다. 도자기를 빚어내는 과정은 마음을 다스리는 일 일까. 심호흡을 하고 몸에 힘을 빼면 물레가 돌아가는 동시에 도자기가 점차 모습을 찾아간다.

 

▶Mini Interview
대표적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비간
필리핀관광부 마리아 아포 한국지사장

필리핀은 지속 가능한 관광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필리핀관광부는 ‘More Fun Awaits’ 캠페인을 통해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여행지를 소개하고, 필리핀만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코로나 시대 각광받고 있는 자연 콘텐츠가 주를 이루는데, 유서 깊은 역사 유산도 빼놓을 수 없다. 필리핀에는 다수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루손(Luzon) 지역 북쪽에 자리한 16세기 역사 도시 유적지인 비간(Vigan)이다.

필리핀관광부 마리아 아포 한국지사장
필리핀관광부 마리아 아포 한국지사장

비간은 약 300년간의 스페인 식민지 역사가 그대로 보존된 도시로, 오래된 건물들이 대부분 손상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마치 영화 세트장 같은 거리 곳곳에서 인생사진을 찍고 기념품을 구매하는 것도 필수! 랜드마크인 성 바오로 대성당(St. Paul Cathedral)이 위치한 살 세도 광장(Plaza Salcedo)에서는 매일 저녁 눈부신 빛과 신나는 음악이 어우러진 분수쇼가 펼쳐진다. 밤이 되면 감성적인 버스킹이 이어지고, 칼레 크리솔로고(Calle Crisologo) 거리에서는 야외 테이블에서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유럽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글 이은지 기자,  사진 트래비(Tra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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