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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 걸으며 사유하는 여행

  • Editor. 서진영
  • 입력 2022.05.20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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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례 감독, 김태리 주연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촬영 장소인 우보면의 ‘혜원의 집’과 산성면의 화본역 일대가 레트로 감성 여행지로 주목받으면서 경상북도 한가운데 위치한 군위가 대구를 비롯하여 구미, 상주, 영천, 포항 등 경북 주요 도시의 근교 여행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군위(614.32㎢)의 면적이 서울(605.2㎢)과 비슷하다. 그 말은 즉 가 볼 만한 곳의 선택지 역시 보다 많다는 뜻. 군위 여행자에게 추천하는 또 하나의 여행 테마는 ‘사유’다. 자연 속에서 우리네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여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군위 대율리 대청
군위 대율리 대청

●돌담 아름다운 부림 홍씨 집성촌

내비게이션 안내를 따라 한밤마을에서 도착하자 마음이 급해진다. 여기에다 주차를 해도 되나 싶을 만큼 멋들어진 대청 곁이 주차장이다. 얼른 차를 대고 정면 다섯 칸, 측면 두 칸 규모의 너른 대청에 폴짝 오른다. 처마 바깥으론 뙤약볕이 내리쬐는데 대청마루 위는 선선하기만 하다. 대자로 누워 있으면 까무룩 잠이 들 것만 같다. 그러나 이 대청의 유래를 알면 퍼뜩 잠이 깰지도 모르겠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62호로 지정된 군위 대율리 대청은 조선 초에 건립된 건물로 임진왜란 때 불 타 없어진 것을 1632년에 중창했는데 오랫동안 학사(學舍). 쉽게 말해 서당으로 사용했단다. 현재는 마을 노인정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설명이 덧붙지만 그보다는 마을 어르신들과 마을을 찾는 이들이 자유로이 이용하는 휴식터에 가까운 모양새다.

군위 대율리 대청
군위 대율리 대청

한밤마을은 고택 사이사이 돌담이 길을 만들어 정겨운 인상을 주는 부락이다. 고려 때인 950년경에 홍란이라는 선비가 이곳에 자리를 잡으면서 마을이 형성돼 천년 넘게 이어져오고 있는 홍씨 집성촌. 관광지로 조성된 여느 한옥마을과 달리 부러 멋을 내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느껴진다. 

남천고택
남천고택

대청과 면해 있는 담장 안은 문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남천고택이다.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164호로 지정되어 있는 남천고택은 조선 후기 주거 변천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일례로 대청과 헛간 위에 다락을 두어 한여름 식자재 창고 또는 피서용으로 사용한 것은 조선 후기 사회 경직되고 관념적인 성리학을 비판하며 대두된 실학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고택 스테이와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예약자에 한해 출입이 허용된다.

한밤마을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돌담이다. 이 돌담 때문에 ‘육지의 제주’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유독 돌이 많은 땅이라 집을 짓거나 농토를 개간하려면 돌을 골라내는 것부터 해야 했다. 그 돌을 멀리 치울 것도 없이 집터에 두르니 자연 담장이 되었다. 1930년 큰 홍수가 나면서 굴러온 계곡 돌도 보태어졌다고 했다. 있는 그대로를 삶의 테두리 안에서 품어온 사람들이 일군 마을답게 어른 어깨보다 낮은 돌담 너머 가가호호의 풍경이 마음을 뭉근하게 한다.

대율리 전통문화마을
주소 : 경북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군위 대율리 대청
주소 :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858

남천고택
주소 :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한밤5길 19


●물 흐르듯 시간을 보내게 되는 숲 속 계곡

팔공산 원시림을 따라 4km 남짓 물줄기가 흐른다. 동산 계곡이다. 계곡 중간중간 20여 개의 크고 작은 폭포가 있어 경치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수심이 깊지 않아 특히 여름철 물놀이 장소로 인기가 좋다. 참방참방 물에 몸을 담그지 않고 계곡 바위에 잠시 걸터앉아만 있어도 파란 하늘 아래 사계절 푸른 숲과 경쾌한 계곡 물소리가 온몸을 감싸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동산 계곡
동산 계곡

시원한 계곡 물에 몸을 맡기고 싶다면 무료 주차장 방면이, 음료와 디저트를 곁들이며 그저 보고만 있어도 괜찮겠다 싶다면 계곡가에 위치한 카페 우즈가 매력적이다. 

동산 계곡 무료 주차장
주소 :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동산리 319-1

카페 우즈
주소 : 경북 군위군 부계면 한티로 2036
영업시간 : 11:00~21:00, 매주 화요일 휴무


●완성되지 못한 산성, 이 땅을 지킨 건 사람이었다

강원도라면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경상도에서 고랭지 채소 재배라니 좀 낯설다. 해발 800m 화산 정상부 일대의 화산마을은 1960년대 초반 정부의 산지 개간 정책에 따라 180여 가구가 집단 이주하면서 형성됐다. 전기, 수도가 다 무언가. 무상으로 주어졌지만 산 아래 마을에서 7.6km 구불구불 산길을 올라야 닿을 수 있는 땅을 이주민들은 맨손으로 일구어야 했다.

마을에는 1709년 조선 숙종 때 병마절도사 윤숙이 외적의 침입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자 쌓기 시작한 화산산성 일부가 남아 있다. 병마절도사는 당시 각 도의 군사 책임자다. 당시 윤숙은 국가의 지원을 받지 않고 자신의 재산과 승려들의 시주로 축조를 진행했다고 한다. 그러나 흉년과 질병으로 인해 공사가 중단되고 윤숙이 전라도 병마절도사로 이동하면서 미완성으로 남게 됐다. 현재 확인 가능한 구간은 아치로 쌓은 북문에서 수구문 구간이다. 

군위 화산산성 하늘전망대
군위 화산산성 하늘전망대

짓다 만 성곽과 함께 황무지로 방치되었던 화산마을은 이제 살기 좋은 농촌 마을로 소문이 났다. 여느 농촌마을처럼 쇠락해 한때 소멸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고랭지 농업으로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해 낼 수 있는 환경, 빼어난 경관 등이 주목을 받으며 귀촌 인구가 늘고 있다. 몇 해 전에는 주민들이 방치되어 있던 경사면에 해바라기를 심고 잔치를 연 것이 화제가 되어 구경 오는 이들도 계속 늘고 있다.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비탈 아래 고랭지 밭과 마을 전경이 내다보이는 하늘전망대, 군위댐이 한눈에 들어오는 풍차전망대가 주요 목적지다.

화산산성 전망대
화산산성 전망대

전망대에서 눈 아래 펼쳐지는 그 경관을 보고 있으면 이 산자락을 맨손으로 일군 이주민들의 노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더욱 감탄하게 된다. 동시에 그곳이 어디든 소중한 삶의 터전을 지키는 건 물리적인 환경보다 그것을 지켜내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화산산성
주소 : 경상북도 군위군 삼국유사면 화북리 산229-2

화산산성 풍차전망대
주소 : 경상북도 군위군 삼국유사면 화북리 산230

화산산성 하늘전망대
주소 : 경상북도 군위군 삼국유사면 화북리 산229-17


●내 안의 숲을 마주하게 하는 사색의 땅

군위 부계면에 위치한 사유원은 국보 제83호 반가사유상에서 보여주는 그 ‘사유’의 세계를 지향하는 사색의 공간이다. 10만 평에 달하는 산자락에 수목원 형태로 구현되어 있다. 알바로 시자, 승효상 등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설계한 건축물이 사유원 곳곳에 자리하며 정식 오픈을 하기 전부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사유원은 모과나무 네 그루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대구 지역 향토기업인 태창철강 유재성 회장이 일제강점기 때부터 일본으로 반출되고 있었던 우리나라 모과나무의 사정을 알게 된 이후 수백 년 우리 땅에 뿌리내린 모과나무가 불법 채취되거나 바다 건너에서 수명을 다하는 일이 없도록 모으기 시작했다. 사유원 내 ‘풍설기천년’은 그가 30년간 수집하고 가꾼 108그루 모과나무를 한데 모은 정원이다. 유재성 회장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승효상 건축가와 손을 잡고 이 땅을 사유할 수 있는 수목원으로 가꾸어 나갔다. 

사시사철 푸른 산중에 콘크리트와 철판으로 마감된 건축물은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그 극명한 차이는 이질적인 데서 느껴지는 어색함보다는 독특한 아우라로 다가온다. 자연의 일부가 되기보다는 자연 속에서도 오롯이 존재할 수 있는 일정한 공간을 확보하는 것, 그리하여 사색하게 하는 것이 이 놀라운 건축물들의 역할인 듯하다. 물론 첫 방문이라면 사유는 접어두어야 한다. 발길 닿는 곳마다 감탄하며 사진 찍기에 바쁠 테니 말이다. 그 사이에 ‘사유란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된다. 사유를 너무 무겁게만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러니까 좋은 공기 들이마시며 문득문득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보는 것, 잠시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 그 정도의 가뿐한 마음으로 둘러본다면 사유원은 충분히 이름값을 하는 곳이다.

사유원은 2021년 9월 시범 운영을 시작해 2022년 4월 기준 현재까지 사전 예약제로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원하는 날짜에 방문하려면 한 달 단위로 오픈되는 예약 공지를 부지런히 체크해야 한다. 주어진 몇 시간 동안 사유는 꿈도 못 꾼다. 다행인 것은 사유원이 아직 완성된 공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주변으로 계속 땅을 매입하고 있고, 방문객이 머물 수 있는 공간도 준비하고 있다. 과연 이 사유의 정원이 어떻게 진화해 나갈지 궁금해진다.

사유원
주소 :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치산효령로 1150 
*사전 예약제


글·사진 서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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