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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Ⅱ

  • Editor. 이우석
  • 입력 2022.09.09 07: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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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 예정인 마일리지로부터
나는 헤어지기로 결심했다.
헤어질 결심, 두 번째 이야기. 

마일리지라는 것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저희 380만원짜리 인천(ICN)-로스앤젤레스(LAX) 간 항공권을 예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외로 떠나는 여행길이 열렸다지만 아직까지 여행 일정을 덜컥 잡기엔 요원하기만 하다. PCR 검사만 면제시키면 뭐하나, 콧구멍만 편하지. 수백만원에 이르는 이놈의 항공권 가격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다. 누군가 ‘코로나 이후는 그 이전과 다른 세상이다’라고 했던가. 어딜 검색하나 내게 익숙한 항공권 가격이 아니다. 일명 일구구(19만9,000원짜리) 항공권은 더 이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동안 모두들 똑같이 힘든 팬데믹의 어둠을 견뎌내고 드디어 환한 빛의 여행 자유시대를 맞는가 했는데, 그 보상은 유독 항공사에게만 돌아가는 눈치다. ‘그렇지, 내겐 마일리지가 있었지!’ 그동안 개미처럼 모은 마일리지가 3곳의 얼라이언스와 7개의 항공사에 산처럼 쌓여 있었다.


뭐, 한국의 어떤 공항이건 상관없었다. 김해에서 출발해도 리워드 항공권이 있다면 기꺼이 떠날 작정이었다. 대한민국 영토에서 출발하는 2곳의 항공사에서 마일리지 리워드 항공권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왜 이리도 야박한 것인가 


없다. 나흘 동안 검색했지만 단 하나도 없었다. 창가 좌석에 앉아 소변을 참아가며 얼마나 장거리를 날아가서 힘겹게 모았던 마일리지였던가. 하지만 전혀 쓸 수가 없었다. ‘고객님이 말똥구리처럼 모아 놓은 마일리지는 0월0일에 자동 소멸 예정이오니 한시라도 빠르게 허비해 주세요! 하하하’ 이렇게 왔던 것일까, 아니면 이렇게 보였을까. 아무튼 연말에 통보되듯 날라온 차가운 문자에 허둥지둥 값비싼 다이어리 노트와 생수를 올해도 사 먹어야 하나 깊이 고민했다.

하지만 마일리지를 소비하자고 비수기 일본행 리워드 항공권 가격에 달하는 물건을 구입하기에는, 그동안의 시간이 너무나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항공사의 리워드 프로그램은 이리도 야박할까. 언제라도 마음대로 쓸 수 있도록 프로그램 가입을 유도하고 좀 더 비싸더라도 ‘그놈의 마일리지’ 때문에 자사 상품을 구입하도록 했지만, 정작 리워드 항공권을 주기엔 아까웠던 탓일까.

현명한 소비란


일부 항공사들이 쓰는 ‘보너스 항공권’이란 용어 자체도 그리 달갑지 않다. 이건 ‘덤’의 뜻을 가진 보너스(Bonus)가 아닌 리워드(Reward), 즉 그동안 구매했던 소비에 대한 ‘보상’이 아닌가. 


고객들이 쌓은 마일리지는 분명히 항공사들의 부채다. 부채를 탕감하는 데 항공권을 풀기보다는 남아도는 리조트 객실이나 비싼 물품 판매를 통해 해결하는 게 더욱 나은 경영방침이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항공 좌석의 5% 정도를 마일리지 프로그램에 할당하라는 정부 당국의 권고도 있었던 것으로 분명히 기억한다. 하지만 공개하지 않으니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마일리지의 실제 가치는 얼마인가. 모으기는 어려워도 사용하기엔 너무도 푼돈이다. 리워드 항공권으로 성수기에 유럽이라도 한 번 다녀오려면 나는 적어도 3년간 외교관보다 해외를 자주 여행하며 티끌을 모아야 한다. 티끌을 모았다 치자, 아! 쓸 수가 없다.


대체 사용처도 마찬가지다. 항공사에서 판매하는 생수 한 병을 사려면 제주도를 몇 번이나 다녀와야 하는지 모른다. 비수기 시즌 어떤 항공사의 리조트에 하루 이틀 묵으려면 나는 미국 정도에 정말 가까운 친척이라도 살고 있어야 할 듯하다.


커피 10잔만 마셔도 1잔을 주고, 자장면 10번 도장을 찍으면 탕수육을 얻어먹는 지금 이 세상에 이처럼 ‘알량한 마일리지’가 어딨단 말인가. 애초 마일리지 따윈 염두에 두지 않고 일정 좋고 저렴한 항공편을 예약하는 것이 나은 결정이 아니었을까.


이제 난 헤어질 결심을 한다. 곧 소멸 예정인 마일리지는 물론 대형 항공사와도 멀어질 테다. 이젠 그냥 일정과 가격만 보고 항공권을 예약하리라. 현명한 소비란 진작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이우석의 놀고먹기
‘저세상’ 유머 코드와 황당한 상황극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우석 소장은 오랜 신문사 기자 생활을 마치고 ‘이우석놀고먹기연구소’를 열었다. 신나게 연구 중이다.

 

글·사진 이우석  에디터 강화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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