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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도의 새로운 이유, 강화 화개산 모노레일

  • Editor. 곽서희 기자
  • 입력 2022.09.21 11:14
  • 수정 2022.09.21 1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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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와 ‘물음표’ 속에서 고민할 때.
구불구불한 선로가 보여 준, 교동도로 향해야 할 새로운 이유.

●쉽게 쥔 풍경


화개산을 오른다. 등산복 대신 청바지를 입고, 등산로 대신 레일을 따라서. 두 다리에겐 모처럼 만의 휴가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푹신한 좌석에 기대앉아 정상으로 향했다. 힘들여 애써 봐도 잃곤 하는 이 세상에, 노력 없이 얻어지는 것도 있어야지. 손쉽게 쥐게 된 풍경은 가볍지 않았고, 또 금방 잊혀질 것 같지도 않았다. 강화 화개산 모노레일이 내게 준 위로란 이런 결의 것이었다.

●공식을 깨는 중입니다


벌써 40분째. 모노레일 승차장의 줄은 자꾸만 뚱뚱해졌다. 서너 명씩 무리 지어 서 있던 탓이다. 몸집을 불리는 건 줄뿐만이 아니었다. 2층 카페와 3층 레스토랑, 루프톱마저 사람들의 에너지로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강화도 부속섬. 섬 속의 섬. 민통선 너머의 섬. 교동도까지 굳이 찾아올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고, 빵빵해진 승차장이 외치는 듯했다. 


교동도는 지금, 공식을 깨는 중이다. ‘교동도=대룡시장’이란 관습, ‘교동도=심심한 섬’이란 편견. 굳건했던 이 등호에 과감히 X표를 치는 대표주자는 화개산이다. 현재 강화군은 국비와 민간 투자로 화개산 인근 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투자금 규모만 약 500억원. 강화도 역사상 최대 규모의 관광지 조성사업이다. 화개산 정상엔 전망대가, 약 11만여 평방미터 부지엔 화개정원이 올해 11월 개방을 목표로 뚝딱뚝딱 세워지고 있다. 그중 강화 화개산 모노레일이 제일 먼저 스타트를 끊었다.

시작이 꽤 산뜻하다. 아직 전망대와 화개정원이 공사 중이라 온전한 관광을 즐길 수 없는데도, 모노레일의 인기는 ‘대기 40분’ 어치나 된다. 방문객은 가족 단위가 압도적이다. 특히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과 등산을 힘들어하는 어린이들의 발걸음이 잦다. 하긴, 20분 동안 편안히 앉아만 있어도 화개산 구석구석을 지나 정상까지 닿게 해 주니, 나 같은 ‘등린이’들에게도 매력적인 선택지인 건 분명하다. 


거북이 등에 타서 용궁을 구경하면 이런 기분일까. 느릿느릿, 엉금엉금. 9명의 탑승객을 태운 모노레일이 화개산 등반을 시작한다. 커다란 앞 유리로 숲이 쏟아진다. 수천 개의 나뭇잎들은 해의 기울기에 따라 다채로운 색을 띠었고. 오르막과 내리막에선 몸의 기울기도 덩달아 가팔라졌다. 어깨 옆 작은 창문을 여니 덜컥 가을바람이 들어온다. 오를수록 눈에 담기는 교동도의 면적도 넓어졌다. 창문에 담기는 화개정원도, 너른 논밭도, 한강 하구 너머의 북한 땅도. 바닷속 궁전 못지않은 풍경이다. 

꼭대기에 다다랐다. 열차가 멈췄다. 지상에서 정상까지. 대지에서 천공(天空)까지. 순식간에 두 세계를 넘나들었다. 정상부는 마치 완결되지 않은 소설 같았다. 전망대는 뼈대를 갖춰가며 다음 챕터를 준비하고 있었고, 북쪽 사면의 화개정원도 막바지 공사에 돌입했다. 화개산에 쓰여질 이야기는 모험담일까 판타지일까. 머잖아 결말을 읽을 생각에 마음이 미리 달뜬다. 

교동도는 더 이상 등호로 표기할 수 없는 섬이 됐다. ‘=’ 하나로 수렴하기엔 관광지 하나하나의 무게가 상당하다. 대룡시장 하나만 보고 돌아서기엔 모노레일이, 전망대가, 정원이 발목을 잡는다. 교동도까지 굳이 찾아올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고 외치면서. 그 목소리의 무게는 점점 더 묵직해질 예정이다. 미리 선수 쳐 고백하건대, 마음의 부등호는 이미 교동도로 쏠린 지 오래다.


●모노레일에서 시장까지,  
교동도 도보여행 코스

모노레일에서 출발해 교회를 지나 시장을 걷는다.  필요한 건 차 키 대신 뚜벅뚜벅 나아갈 두 다리뿐.

길이│약 1.2km  시간│20분 소요

1st SPOT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교회
교동 순례자의 교회

‘평화’란 단어가 공간화된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하얀 담장, 가만히 핀 꽃, 찬양가와 물소리가 잔잔히 흐르는 언덕 위 예배당. 교동 순례자의 교회는 평화롭다. 마음에 아무리 생채기가 나도 금세 치유될 수 있을 것처럼.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교회’로 알려진 만큼 공간은 13m2 남짓으로 매우 아담하지만, 홀로 앉아 묵상하기엔 충분히 넓다. 비기독교인을 포함 누구나 들러 원하는 만큼 쉬다 갈 수 있다.

2nd SPOT
레트로 끝판왕 
대룡시장

한국전쟁 때 남하한 황해도 피난민들이 귀향하지 못한 채 머무르다 만든 시장. 낡은 간판과 좁은 골목길이 레트로함의 정수를 보여 준다. 점포 수는 이발소, 방앗간, 카페 등 약 140개. 각각의 가게들이 품고 있는 세월을 들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래된 필름 카메라를 들고 간다면 최고로 레트로한 컷들을 건질 수 있다. 참, 쌀쌀한 날씨일지언정 아이스크림 호떡은 건너뛰지 말 것.

3rd SPOT
힙한 라이더를 위한 
강만장

강만장을 찾는 법은 쉽다. 대룡시장 초입에서 유난히 힙한 바이크들이 정모를 하고 있다면, 그곳이 바로 강만장이다. 내부는 마치 록큰롤에 빠져 사는 미국 힙쟁이의 베이스먼트처럼 꾸며졌다. 라이더들의 집결지답게 카페엔 헬멧을 옆구리에 찬 라이더들로 가득하다. 그 폼이 얼마나 멋진지, 없는 오토바이라도 만들어 끌고 오고 싶단 생각이 들 정도. 히비스커스 레몬티가 당황스러울 만큼 맛있다. 

4th SPOT
황해도 스타일입니다
대풍식당

과연 이름값을 한다. 손님이 바람처럼 밀려 들어오라는 뜻의 ‘대풍(大風)’. 점심 때가 한참 지난 애매한 시간에도 몰려드는 손님들의 모양새는 산들바람보단 회오리바람에 가깝다. 대표메뉴는 황해도식 냉면과 돼지국밥. 전체적으로 담백하고 간이 슴슴한 게, 딱 황해도 스타일이다. 새우젓과 소금, 들깨 가루를 취향껏 넣어 먹으면 풍미가 배가된다. 겨울에는 이북식 만두도 맛볼 수 있다.  

5th SPOT
교동도 가이드북 
교동제비집

교동제비집은 교동도의 가이드북이다. 교동도의 역사와 문화를 IT 기반 시설로 알기 쉽게 제공한다. 교동도 관광 명소 VR 체험, 교동신문 제작 체험 등도 해 볼 수 있다. 단 한 번의 방문만으로도 순식간에 교동도와 친해질 수 있다는 얘기. 대룡시장 입구 근처에 있으니, 시장 탐방 전 가볍게 들러 보기 좋다.

6th SPOT
허리띠 풀어 놓고
파머스마켓

농기구 수리점을 개조한 마켓. 지역 농산물과 특산품을 판매하는 점포들이 아케이드 형식으로 입점해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파머스마켓의 머스트 잇(Must Eat) 아이템은 참기름병에 담긴 ‘교동 밀크티’였는데, 요새는 ‘송화칩스’의 칩들이 인기다. 해바라기씨유로 가마솥에서 튀겨 낸 감자칩과 고구마칩은 씹을 때마다 바사삭, 짜릿한 소리가 난다. 이래저래 허리띠는 두 칸 정도 풀어 놔야 마음도 속도 편하다. 

Another SPOT
샛노란 꽃바다
난정 해바라기정원


장소에도 ‘외모 성수기’가 있다면, 난정저수지에겐 매년 9월 무렵이 그때다. 해가 짧아지는 늦여름. 벼는 고개를 숙이고, 해바라기는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바람이라도 부는 날엔 10만 송이의 해바라기가 물결처럼 일렁인다. 꽃으로 가득 찬 바다. 샛노란 바다. 그런 바다에 빠지면, 잠수 따위 못해도 아무렴 좋겠단 생각이 든다. 올해를 놓쳤다면 기억해 두었다 다음번 성수기를 기약하자. 어쩐지 해를 거듭할수록 더 예뻐지는 듯한데, 이건 해바라기를 향한 난정마을 주민들의 애정 때문이려나. 그들의 정성이 꽃들에겐 태양과도 같다.  


글·사진 곽서희 기자  취재협조·공동기획 강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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