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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제철 여행지, 포항

  • Editor. 이우석
  • 입력 2023.01.13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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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제철’ 여행지라 부를 수 있는 곳은, 전국에 포항뿐이다. 

호미곶 해맞이 공원의 상생의 손. 하지만 일출사진을 찍기 위해선 일찍 일어나 추운 데서 벌벌 떨어야 하니 고생의 손이다
호미곶 해맞이 공원의 상생의 손. 하지만 일출사진을 찍기 위해선 일찍 일어나 추운 데서 벌벌 떨어야 하니 고생의 손이다

연락이 왔다. 새해도 되고 했으니, 기존 불만이 가득했던 에세이를 다른 형태의 원고로 바꾸자는 의견이다. 마감 일자를 두고 인질극을 벌였지만, 결국 ‘제철 여행’이란 주제로 결정이 나고야 말았다, 에헤이.


그렇다. 말마따나 24절기를 갖춘 한반도에는 언제나 제철을 맞는 음식이 있다. 게다가 월간지 <트래비>에 연재를 하는 것이니, 매달 결국 12번 제철 음식과 여행지를 제시하는 것쯤이야 무리가 아닐 테다.

난 거창하게 시작할 신년 첫 여행지를 골똘히 고민했다. 늘 새해를 맞을 때마다 매번 고민하고 또 기원했지만, 뭐 딱히 좋게 한 해를 마무리한 것은 아니었다. 무릎뼈가 스마일 모양으로 작살나던 해의 1월1일에도 복을 기원했으며, 호기롭게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 회사를 차린 후 겸허하게 팬데믹 상황을 맞던 2020년 연초에도, 난 좋은 한 해가 되길 기대했더랬다. 휴… 그래도 새해인걸. 검정토끼의 해 계묘년(癸卯年). 너무도 고생 많았던 신데렐라가 홧김에 내뱉는 욕지거리 같은 해 이름이다.


그렇지, 제철이니 당연히 포항으로 가장 먼저 간다. 마침 새해이기도 하고 신년 일출 관람과 더불어 신년 여행을 제대로 시작할 수 있는 제철(製鐵)의 메카 포스코가 보이는 그곳으로 운전대를 돌렸다. “뛰뛰 포항~포항”

사실 가장 시간을 잘 맞춰 주는 수단은 역시 KTX다. 포항역은 KTX가 운행하는 역이다. 고속열차는 지난 월드컵 한국-가나 전에서 심판을 봤던 앤서니 테일러씨처럼 먼저 도착시키진 않지만 대부분 제시간 즈음에 나를 포항 땅에 내려놓는 정확한 수단이다. 하지만 포항은 발음처럼 넓고 크다. 포항이란 이름을 말하자면 입술이 확 펴지며 커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특히 입술이 텄을 때 해보면 단번에 안다). 따라서 차량을 이용해 돌아다니기로 작정했다.

태곳적부터 해 마중을 하는 곳이 영일만(迎日灣)이다. ‘영일만 친구(1979년, 최백호)’라는 노래도 있다. “누가 뭐래도, 나의 친구는 바다가 고향이란다”

포항은 대한민국 산업 중심도시이기도 하지만 노랫말처럼 동해안 최대 만(灣)과 곶(串)을 품은 바다의 고장이다. 동해로 불룩 튀어나온 호미곶과 그 너머 떠오르는 해를 가장 먼저 끌어안는 넉넉한 영일만은 포항의 상징이자 황금어장을 품은 삶의 터전이다. 게다가 철을 실어 나르는 대형 화물선을 위한 독(Dock)이 있다. 김치나 배를 담는 곳을 독이라 한다. 포항(浦項)의 항은 항구 항(港)자가 아니지만 분명 커다란 바다를 품고 있다.


그동안 포항을 수십 번 다녀왔다. 가장 기억이 나는 때는 무려 32년 전 어느 겨울이다. 입대를 하기 위해 머리를 박박 깎고 포항 오천읍을 간 것이다. 그 이후 수십 차례는 뭔가 먹은 것만 기억난다. 물론 박박 깎은 머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포항 사람’ 하면 전직 대통령을 떠올릴 사람이 많겠지만, 사실 가장 먼저 역사(삼국유사 제1권 기이 제1편)에 기록된 이는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 부부다. 해초를 따던 연오랑이 갑자기 바위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왕이 됐다는 얘기다. ‘왕게임’보다 쉽게 왕이 된 밀항자 연오랑과 그 아내 세오녀. 그들이 떠난 이후 신라에는 해와 달이 사라졌다.

포항 밤 풍경
포항 밤 풍경

당시 신라의 ‘아달라왕’이 사신을 보내 연오랑에게 ‘와 달라’고 했지만, 돌아가면 그곳에선 그저 어부인 연오랑이 돌아올 리가 없었다. 대신 세오녀가 짠 비단을 들려 보냈는데 과연 해와 달이 다시 빛을 냈다는 설화가 있다. 현대 천문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실제로 그 시기에 일식이 있었을 것이라 했다. 역사학자들은 ‘연오’가 일본에 전해 준 것은 바로 철기를 다루는 기술(해)이며, 세오는 베를 짜는 직조술(달)을 가르쳐 줬다는 것으로 해석했다.

철기, 즉 제철이다. 2,000여 년 후인 1968년 바로 그 바다 영일만에 한반도 최초 종합제철소인 포항제철이 들어선 것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제철’ 여행지로서 ‘딱’이란 이야기를 지금껏 하고 있다. 자신이 없었나 보다. 아무튼 연오랑 세오녀 테마공원이 영일만에 있다. 해안 언덕 위에 정자와 신라 한옥촌 등을 지었다.

호미곶 끄트머리에 위치한 천혜의 어항 구룡포와 호미곶 해맞이공원에선 매일 이벤트가 벌어지고 있다. 대한민국 본토 최동단 호미곶 해맞이공원에선 매일 금싸라기 같은 해가 올라오고, 구룡포 어선에선 해(蟹)가 내린다. 구룡포의 해는 게를 뜻한다. 붉은 게는 ‘홍게’이며 밝은 게는 ‘대게’이다.

해맞이 광장에는 한 쌍의 ‘상생의 손’이 바다까지 이어진다. 수많은 사진가들이 잠을 설쳐가며 매일 아침 이곳을 찾는다. 상생이 아니라 고생의 손이다. 고생을 했으니 맛난 것을 먹어야 한다.

포항 죽도시장에는 맛난 제철 수산물이 넘쳐난다
포항 죽도시장에는 맛난 제철 수산물이 넘쳐난다

●필수 포항내역


겨울에 제철을 맞은 도시, 포항에선 조금 이르지만 저렴한 가격에 홍게나 대게를 맛볼 수 있다는 가장 큰 장점이 있다. 구룡포는 동해안 최대 어업 전진기지로 멀리 오키군도 인근까지 가서 다양한 수산물을 잡아 온다. 일제 강점기부터 황금어장으로 소문난 구룡포항답게 거리와 시장에는 해산물로 가득하다. 

그중 하나가 대게다. 사실 대게에 살이 차오르는 때는 정월대보름이 지나서다. 그때부터 수율이 좋은 것들이 나온다. 하지만 금어기도 끝났고 새해를 맞으니 반가운 마음이 앞서, 그만 대게 앞에 서고 만다. 황금어장으로 유명한 구룡포항 앞에는 대게 식당이 밀집한 골목이 있다. 칙칙 김을 내뿜으며 게를 삶고 있다. 영덕과 울진에 비해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포항은 대게 생산량이 가장 많은 곳이다.

금어기엔 수입 대게나 냉동 대게를 쓰지만, 제철이면 싱싱한 대게를 맛볼 수 있다. 특유의 달달한 게 향기 가득한 수증기를 뚫고 가게에 들어서면 손님 누구나 대화는 잊은 채 게를 해체하는 데 몰입하고 있다. 과연 진정성이 엿보이는 풍경이다. 이즈음 포항에 온다면 대개 대게를 먹겠지만 아직 비싸다면 홍게를 먹으면 된다. 맛은 더욱 진하다.

포항에 이즈음 방문하면 대개 대게를 먹게마련이다
포항에 이즈음 방문하면 대개 대게를 먹게마련이다

대게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어디서 봤더라? 입과 눈 이 영화 <디스트릭트9>의 외계인을 닮았다(극중에선 새우라 부르지만 아무래도 게를 더 닮았다). 아마도 ‘닐 블롬캠프’ 감독은 게를 싫어하든 좋아하든 관심이 있었을 게 분명하다. 영화 속에는 외계인을 먹으려는 나이지리아 갱단 두목이 등장하긴 한다.

아무튼 동해의 보물 대게는 꽃게에 비해 껍질이 얇아 수고가 덜하다. 다리를 비틀어 쑥 뽑으면 바로 맛살처럼 기다란 게살만 쏙 빠져나온다. 흔들흔들 탱탱한 다리를 입에 넣고 씹으면 된다. 달고 진한 풍미가 입 안을 가득 채운다.

집게살 부분은 씹는 조직감이 아주 좋다. 주먹을 쥔 듯 두툼한 집게 속에는 꼬들꼬들 결 따라 찢어지는 풍미 좋은 살이 가득 들었다. 몸통 부분 살은 집게나 젓가락으로 슬슬 긁어 게딱지 내장에 담아 놨다가 숟가락으로 한입에 털어 넣으면 된다. 내장에 적신 몸통살이라 다릿살보다 더 진하다. 게 내장에 밥을 볶아 주면 그걸로 충분한 마무리가 된다. 이외에도 제철 음식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과메기나 개복치 역시 포항에서 꼭 챙겨 먹어야 할 ‘포항(함)내역’이다.

 

●이우석 소장의 포항 맛집들


구룡포 대게집은 어느 하나 특정하기가 어렵다. 재료의 질에 방점을 둔 음식인 까닭이다. 그중 커다란 대게 모형을 옥상에 이고 선 ‘대게총판’이 대게 찌는 솜씨나 곁들인 찬이 좋다. 게딱지 비빔밥에 내주는 된장찌개도 구수하고 시원하다.

구룡포 초등학교 쪽으로 향하면 ‘구룡포 까꾸네 모리국수’가 있다. 잡어를 한데 넣고 팔팔 끓인 얼큰한 국물 국수가 전국적으로 소문난 까닭에 끼니 때와 상관없이 기나긴 줄을 드리운다. 구룡포 초등학교 앞에는 바닷바람에 말린 해풍국수를 파는 ‘구룡포할매국숫집’과 수제 찐빵이 맛있기로 소문난 ‘철규 분식’ 등 이름난 맛집이 있고 바로 옆 구룡포 시장을 둘러볼 수 있어 많은 이들이 찾는다.

구룡포 해풍국수도 맛좋다
구룡포 해풍국수도 맛좋다

포항 죽도시장은 서울을 제외한 전국 최대 재래시장이다. 축구장(14만8,500m2)보다 훨씬 큰 죽도시장 곳곳엔 어물전과 농산물, 혼수, 생활용품이 가득이다. 엄청난 규모에 놀란다. 볼거리, 살 거리, 먹을거리도 많다.


겨울이지만 물회도 빼놓을 수 없다. 포항식 물회의 특징은 육수가 따로 없이 고추장에 맹물을 넣는다는 것. 그중에서도 ‘북부시장식’은 청어, 꽁치 등 등푸른생선을 쓴다. 흰살생선보다 맛이 진하다. 처음엔 비빔회로 먹다가 나중에 물을 부어 ‘발우공양’하듯 깨끗이 끝내면 된다. 부드러운 생선이 아삭한 채소와 매콤한 장맛과 어우러져 환상적 하모니를 낸다. ‘명천회식당’이 잘한다.

포항 사람들에게 입소문 난 장기식당 소머리곰탕
포항 사람들에게 입소문 난 장기식당 소머리곰탕

포항 사람들은 3끼를 생선과 회만 먹을 것 같지만 사실 뜨끈한 곰탕도 좋아한다. 죽도시장에 유명 곰탕집이 많다. 이중 ‘장기식당’은 ‘장기(臟器)’를 넣고 끓이는 게 아니라 소머리곰탕을 내는 집이다. 구수하고 진한 국물에 쫀득한 소머릿살을 가득 썰어 넣었다. ‘장기 자랑’할 만한 집. ‘장기’는 포항에서 치솟은 반도의 지명이다.


죽도시장에는 대게와 홍게, 생선회를 즐기는 집이 많다. ‘동남회식당’은 수족관 안 싱싱히 살아 있는 대게 홍게를 바로 주문해 쪄 먹을 수 있는 집. 생선회를 원하면 가자미나 강도다리 등 동해 자연산 횟감을 떠 준다. 전복과 개불 등 신선한 해물 밑반찬도 한 상 가득 깔아 준다.


영일대 해변에는 원조 ‘핵인싸’로 꼽히는 ‘폭탄주 이모’가 차린 ‘폭탄주이모네맥주공장’이 있다. 이름은 공장이지만 사실은 호프집이다. 유튜브 이전에 이미 전국적 명성을 보유한 ‘함순복 사장’이 특별한 날을 맞은 손님에게 소주와 맥주를 섞은 다양한 칵테일을 ‘소문처럼’ 말아 준다.

영일대 해수욕장에선 동해식 조개구이를 맛볼 수있다. 한계령 조개구이 본점
영일대 해수욕장에선 동해식 조개구이를 맛볼 수있다. 한계령 조개구이 본점

영일대에 위치한 ‘한계령 조개구이 본점’도 좋다. 바지락이 가득한 서해안의 것에 익숙하지만 동해의 것은 차원이 다르다. 가리비 등 씨알 굵은 동해산 조개를 올린다. 메뉴도 내부 분위기도 모두 술을 부른다. 양은도시락에 따로 국물을 부어 끓여 먹는 조개찌개도 입맛을 다시게 한다. 

 

글·사진 이우석  에디터 트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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