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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시인 - 시인일 수밖에 없는 ‘시인’을 만나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6.06.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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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비

경북 예천 산골에서 태어나 화가를 꿈꾼 소년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소년은 문예반 활동을 하며 수업을 빼먹는 재미로 백일장에 참여해 온갖 상을 휩쓸게 된다. 시인 안도현의 이야기다. 그의 몸에는 일찍이 시인의 피라도 흐르고 있었던 걸까. 아니, 시를 그림처럼 그려 내니 그는 어쩌면 화가의 꿈을 이뤘는지도 모르겠다. 

대학 시절, 안도현 시인의 꿈은 교사로 바뀌었다. F학점 10개를 맞고 꼴등으로 학교를 졸업했지만 꼭 교사가 되기를 꿈꿨다. 그렇게 국어 교사로 부임했던 한 중학교에서 5년이 채 되지 않아 전교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잘렸다. 해직 후, 오전 10시경이면 학교 운동장을 기웃거렸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저곳인데, 내가 여기에서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남들이 일하는 시간에 다시 학교로 출근하게 된 건 4년 6개월이 지나서다. 전북 장수의 산서중학교. 3년간 열심히 학교를 다녔지만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96년에 펴낸 <연어> 덕분이었다. 당시 학교에는 전화가 몇 대 없었다. 교감 선생님의 책상 위에 그나마 있던 전화가 <연어> 덕분에 불이 난 거다. 안도현 시인은 "미안한 마음에 도저히 학교를 다닐 수 없었다"고 한다.

술 백 잔에 한 편의 시를

돈을 가장 많이 번 건 산서중학교를 그만둔 후, 백수 시절이었다. 1년에 산문을 2,000매 가량 쓴 적도 있다. "글을 많이 쓸수록 돈을 많이 버니 글을 쓰는 것도 일종의 노동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농담 반, 진담 반. 안도현 시인은 실질적인 액수를 떠나서도 자신이 돈을 많이 번다고 생각한다. 글을 써서 먹고 살 수 있는 자체가 돈을 많이 버는 거란다. 

그가 글을 써서 먹고 살 만한 데는 이유가 있다. "시는 가능하면 쉽고 짧아야 한다", "나 혼자만 이해하는 시는 쓰지 않겠다"는 그의 생각이 그 이유다. "읽기 쉬운 시가 독자를 편안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얼핏 타고난 시인이라 그런가 보다 했다. 한데 그는 쉬워 보이는 시를 쓰기 위해 수백 번을 고치고 단어 하나라도 메모를 해 PC에 넣어 둔다고 한다. 안도현 시인의 PC에는 "어제 것은 물론 7~8년 전의 시화되지 않은 단어들도 있다"고 한다. 

지난 2004년부터 안도현 시인은 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로도 일하고 있다. 그는 학생들에게는 시 백 편을 읽고 한 편의 시를, 술 백 잔을 마시고 한 편의 시를 쓰라고 말한다. 좋은 시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다. 술 백 잔을 마시면 그만큼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질 거라는 생각에서다. 학기가 끝난 지금, 중요한 근황은 없다고 한다. 대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겠다며 얼마 전, 김용택, 도종환 시인과 시 낭송회 후 술을 마신 이야기를 한다. 

"김용택 시인은 교직에 37여 년 몸을 담아 퇴직금만 해도 어마어마하답니다. 한데 도종환 시인은 교직에 10년 남짓 몸을 담았다가 1,900만원의 퇴직금을 받았답니다. 그나마도 계산이 잘못 됐으니 100만원을 돌려달라고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고 하네요. 하하. 재미 없나요?" 


ⓒ트래비

여행이란 인생의 쓴 맛 본 자들만이 떠나는 것

안도현 시인은 초등학교 6학년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바다를 봤다고 한다. 푸른 물결 넘실대던 포항의 동해. 서해는 스무 살 이후에 처음으로 봤다. "바다도 아닌 것이 바다 행세를 하는 서해가 같잖았지요." 반대로, 그래서 서해가 친숙했다. "어떤 시에서 군산을 '오래된 책 표지 같은 군산'이라고 쓴 적이 있는데, 탁류로 상징되는 바다도 바다지만 일제 때의 건물이 드문드문 남아 있는 낡은 군산 시가지는 왠지 시적으로 느껴지곤 해요. 서해는 바다 같지 않아서 친숙한 느낌이 들고요." 

20대, 시련이 있을 때마다 서해를 찾아서인지 서해는 그에게 특별하다. <모항으로 가는 길>이나 <낭만주의>는 '(변산반도) 풍경이 기억 속에 차곡차곡 쌓이고, 쌓인 것이 재구성돼' 태어난 시다. 시에는 여행에 대한 그의 생각도 녹아 있다. 

"<모항으로 가는 길>이라는 시에 '여행이란 인생의 쓴 맛 본 자들만이 떠나는 것'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여행의 속성이 여유와 낭만일진대 그것은 생을 전력투구해 본 사람만이 여행을 떠날 자격이 있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지요. 배 두드리며 놀고 먹는 여행 말고요." 꼭 어디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 의무감 같은 것도 없다. '집과 직장을 벗어나면 다 여행'이고 '낯선 풍경을 순간적으로 만나는 것도 여행'이라고 생각해서다. 다만 여행의 내용보다는 이미지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렇다고 이미지를 붙잡기 위해 골몰하는 건 아니고요. 풍경이든 사람이든 시인은 자신이 맞닥뜨리는 것들을 언어로 형상화해야 할 의무가 있는 자들이므로 가능하면 관찰을 게을리 하지 않으려고 하지요."

이쯤 되니 시인은 그의 운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라는 말은 여전히 어색합니다. 저는 시인입니다. 시인이라 시도 쓰고 산문도 씁니다. 시인은 좋은 풍경, 느낌을 전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늘 내가 느낀 만큼 써야겠다고 생각하지요." 안도현 시인. 그가 원하는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시'가 탄생되는 건 시간 문제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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