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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남사예담촌

  • Editor. 정은주
  • 입력 2023.03.24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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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갈하게 쌓은 옛 담을 품은 마을 남사예담촌. ‘예를 담아 드린다’는 깊은 속뜻을 지닌 선비의 고장으로 떠나보자. 

●햇살 따스한 날의 고택 산책
남사예담촌

한옥마을 하면 수백 년을 이어온 기품 있는 고택들을 떠올리게 된다. 경북에 안동 하회마을이 있다면 경남에는 남사예담촌이 손꼽힌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1호로 선정된 남사예담촌은 지리산에서 흘러온 남사천(사수천)이 마을을 감싸 안은 명당에 위치해 있다. 예로부터 주변 지형을 공자가 태어났던 니구산과 사수에 비유할 만큼 학식 높은 선비들이 많이 배출되었던 고장이다. 특이하게도 대부분 한옥마을이 같은 성씨로 이뤄진 집성촌인데 반해 남사예담촌은 여러 성씨가 모여 있다. 이씨 고가, 최씨 고가, 연일정씨 문중의 재실인 사양정가 등 서로 다른 성씨들이 함께 살았음을 알 수 있다. 

따스한 봄빛을 품은 황톳빛 담장은 남사예담촌이 지켜온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옛적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덕에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마을 산책에 나선 길. 금세라도 담벼락을 뚫고 나올 것 같은 회화나무 고목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서로를 향해 자라난 두 나무가 껴안고 있는 것처럼 애틋해 보인다. 이런 멋진 장면을 로케이션 담당자들이 놓칠 리 없다. 아니나 다를까 드라마 <왕이 된 남자>와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이 나무 아래서 촬영되었다. 고목이 만들어낸 아치를 부부가 함께 지나면 오래도록 해로한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사진은 둘째 치고라도 손잡고 꼭 걸어보기를 권한다.  

남사예담촌에는 문화재급을 포함해 약 40여 채의 고택이 남아 있다. 1700년대에 지어진 이씨 고가는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한옥으로 꼽힌다. 300년 남짓한 세월에도 불구하고 안채가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이 놀랍다. 전체적으로 전형적인 남부 지역의 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각진 앞마당에 둥근 화단을 만들어 음양의 조화를 이룬 점이 색다르다. 

고고한 선비들이 살았던 고장답게 의로운 인물들도 많다. 일제강점기 시절 유림독립운동을 이끌었던 면우 곽종석 선생이 이곳 출신이다. 마을 안에 있는 유림독립기념관에는 일제의 탄압에 맞서 파리장서 독립청원운동에 서명한 유림 137명의 활동상이 소개되어 있다. 독립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내던진 숭고한 정신에 마음이 숙연해지는 곳이다. 

남사예담촌은 느릿한 걸음으로 다녀야 더 많이 보고 즐길 수 있다. 태조 이성계가 개국공신 이제에게 내린 공신 교서를 새긴 비도 찾아봐야 하고, 마을의 역사와 함께 해온 오래된 매화나무도 만나야 한다. 한복을 입고 곱게 단장한 후 길을 나서 보는 건 어떨까. 골목을 돌다 보면 운치 있는 찻집과 예쁜 카페, 염색 체험 공방들이 반갑게 맞는다. 밤하늘에 총총히 뜬 별들과 함께 고택에서 하룻밤 묵어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한국 국악계를 이끌어온 스승
기산국악당

남사예담촌에서 다리 하나를 건너면 기산국악당에 닿는다. 한국 국악계에 큰 공헌을 한 기산 박헌봉 선생의 업적을 기린 곳이다. 산청이 고향인 박헌봉 선생은 1960년 최초의 사립국악교육기관인 국악예술학교를 설립했으며 판소리 사설집인 ‘창악대강’을 집필해 국악 발전을 이끌었다. 한옥과 너른 앞마당이 어우러진 국악당은 이른바 열린 음악 교실이다. 야외에 전시된 악기들은 두드려보거나 체험할 수 있다. 여름, 가을 시즌에는 주말마다 무료 공연이 진행되니 기왕이면 일정에 맞춰 가보기를 추천한다. 

기산국악당 옆에는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하던 때에 묵어갔던 이사재(尼泗齋)가 있다. 단정한 한옥 건물은 대사헌과 호조참판을 지낸 송월당 박호원의 재실이다. 문중의 중요한 공간을 선뜻 내줄 만큼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았던 이순신 장군의 덕망이 깃든 공간이다.  

 

●조선 후기의 대학자와 남명매
산천재 & 남명 기념관

남사예담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조선 시대 대학자인 남명 조식이 말년을 보낸 산천재(山天齋)와 남명기념관이 있다. 임금의 부름도 마다하고 초야에 묻혀 평생 학문에 정진한 조식은 후진 양성에 힘쓰며 올곧은 선비의 상을 몸소 보여준 인물이다. 산천재에는 조식이 심고 가꿔온 매화나무 고목이 있는데 어떤 고난에도 품위를 잃지 않는 선비의 기상을 닮았다. 일명 남명매라 불리며 남사예담촌에 있는 원정매와 더불어 산청 3매 중 하나로 꼽힌다.

 

●성철 스님을 만나다
겁외사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성철 스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있다면 생가 터에 세운 겁외사(劫外寺)도 가볼 만하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이란 뜻이다. 생전에 돈오돈수(頓悟頓修, 한 번 깨닫고 나면 더 이상 닦을 것이 없는 경지)’를 이야기했던 성철 스님은 한국 불교계의 큰 스님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경내에 성철 스님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뒤쪽에 복원된 생가가 있다. 겁외사 맞은편에 성철스님 기념관이 있어 함께 둘러볼 수 있다. 

 

글·사진 정은주 트래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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