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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알프스 - 만년설 아래 더위를 이기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6.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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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하면 떠오르는 것, 바로 ‘알프스’다. 모 포털사이트에서 설명된 ‘알프스(Alps) 산맥’은 유럽 중남부에 있는 큰 산계(山界). 스위스,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에 두루 걸쳐져 있다. 독일어로 알펜(Alpen), 프랑스어로는 알프(Alps), 이탈리아어로는 알피(Alpi)라고 한다.

산을 뜻하는 켈트어 alb, alp 또는 백색을 뜻하는 라틴어가 어원인데, ‘희고 높은 산’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추측된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이런 사전적 의미보다도 알프스는 친밀한 ‘추억’과 ‘동경’의 세계다. 알프스의 소녀,‘하이디’ 때문이겠지만 퇴색된 유년의 기억 속에도 하이디가 할아버지와 피터를 부르던 ‘그 산’이 잊혀지지 않고 남아 있다. 그리고 오늘도‘그 산’을 찾아 많은 이들이 떠나고 있다. 

오늘날 알프스가 친밀한 이유는 추억이나 동경 때문만은 아니다. 국토 60%가 알프스 산인 스위스 사람들이 그 산을 ‘바라보는 대상’에서 직접 어울리고 체험할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해발 4,000m에 이르는 높은 봉우리라도 산악인들만이 오르는 것은 아니다.

민소매 티셔츠에 반바지 입고 하이힐 신은 아가씨들까지 거뜬히 오를 수 있다. 그곳까지 기차와 케이블카(곤돌라) 등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올라가서 직접 만년설을 발로 밟아 보고 스키와 스노우보드, 그 밖의 눈 위에서 가능한 각종 활동들을 신나게 즐길 수 있다. 그야말로 산악 리조트다. 그렇게 손쉽게 오르내릴 수 있는 산이 스위스에만도 100여 개에 이른다.

본지에서는 올 여름 휴가특집 세 번째 파트너로 스위스의 알프스 산들과 산악 리조트 마을 5곳을 꼽았다. 가장 한국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곳이 그 선정 기준. 그래서 채택된 곳이 융프라우와 그린델발트, 마테호른과 체르마트, 티틀리스와 엥엘베르그, 쉴트호른과 뮤렌, 알라린과 사스페다. 선정은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산을 중심으로 스위스관광청과 함께했다.

당장 갈 계획이 없은들 어떠랴. 더운 여름, 만년설 이고 있는 산봉우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속까지 다 시원해지지 않겠는가.

 


 그린델발트와 융프라우요흐

자연과 인간이 빚은 순백의 장관

소수 탐험가들의 전유물인 줄로만 알았다. 해발 4,000여 미터에 이르는 알프스의 웅장한 봉우리를 코앞에서 지켜보는 일. 아이거 북벽과 베터호른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산악 리조트 마을 그린델발트(Grindelwald)에서 출발한 산악열차는 클라이네 샤이덱에서 한번 갈아타고는 거침없이 올라간다. 1시간 남짓 지났을까. 눈앞에 유럽의 지붕들이 펼쳐진다.

유럽의 정상은 스위스에서도 정중앙에 위치한다. 그린델발트관광청 관계자는 농담처럼 “스위스 전도를 펼쳐놓고 십자 형태로 두 번 접어 가운데 접히는 점이 바로 여기”라고 말한다. 최고봉 융프라우(Jungfrau·4,158m)를 비롯해 묀히(Monch·4,099m), 아이거(Eiger·3,970m) 세 봉우리를 중심으로 빚어내는 알프스의 장관은 전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스위스 산 중 가장 많은 한국인들이 방문하는 곳으로도 손꼽힌다.

세 개의 봉우리는 재미있는 설화를 가지고 있다. ‘처녀’를 상징하는 융프라우, 이를 넘보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열혈남아 아이거와 그로부터 융프라우를 지키고 있다는 수도승인 묀히의 이야기. 최고봉이지만 유려한 선을 지니고 있는 융프라우와 직각의 암벽을 가지고 있어 이를 정복하고자 한 많은 전문 산악인들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한 아이거를 실제 보니 그럴 법한 이야기인 것 같다. 융프라우를 차지하지 못한 욕망이 애꿋게도 인간에게 미치는 모양이다.

 해발 3,454m까지 기차 타고 오르다

 기차의 종착점은 ‘유럽의 정상(Top of Europe)’이라고 불리는 융프라우요흐(3,454m)다. 융프라우봉과 묀히봉 사이에 말 안장처럼 앉아 있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기차역이기도 하다. 익히 잘 알려진 대로 톱니로 기차가 꼭대기까지 끌어 올려진다.

그린델발트에서 중간 기착지인 클라이네 샤이덱을 거쳐 융프라우요흐까지는 약 2시간이 소요된다. 클라이네 샤이덱에서 잠깐 기념촬영을 하고 바로 융프라우요흐행 기차로 갈아탄다. 그전까지는 일어서서 풍광들을 촬영하기 바빴다면 지금부터는 조용히 앉아 창밖을 감상하거나 잠깐 눈을 부칠 수밖에 없다. 급격히 변화하는 고도에 몸이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숨을 가볍게 내쉬고 몸도 천천히 움직여 본다.

융프라우요흐에 도착하면 식사도 하고 휴식도 취하고 기념품도 살 수 있는 산정 휴게소로 연결되고 거기서 다시 해발 3,571m 유럽 최고 높이에 위치한 관망대, 스핑크스까지 초고속 승강기로 연결된다.

마치 하얀 눈이 강처럼 흐른다. 알프스에서 제일 길다고 하는 알레취 빙하(22km)다. 저마다 눈부심도 아랑곳없이 사진기 셔터를 누른다. 반대편에는 멀리 인터라켄까지 훤히 보이는 장쾌한 시야를 자랑한다. 저쪽 너머 봉우리에 보이는 것이 쉴터호른 전망대다.

융프라우요흐에서 또 다른 자랑거리는 얼음궁전. 약 1,000m2의 규모로 만년설을 동화의 나라로 바꾸었다. 전망대에서 본 알레취 빙하를 이용한 것이다. 아치형 지붕과 얼음으로 된 으리으리한 기둥, 푸른 불빛 아래 야생동물 등을 만들었다. 만년설이란 설명 하나만으로도 괜히 손길이 한번 더 간다.

융프라우요흐에서는 단순히 보는 관광만 즐기는 것이 아니다. 겨울에는 심한 기온 변화로 밖으로 나갈 수 없지만 비교적 안정적인 여름에는 직접 밖으로 나가 만년설을 발 아래 느낀다. 스키도 탈 수 있고 썰매도 탈 수 있다. 눈썰매는 무료로 제공된다. 안전한 자일에 매달려 빙하 위 200m를 새처럼 날 수도 있다. 북극견이 끄는 썰매를 타고 빙하를 미끄러져 내려갈 수도 있다. 가이드와 이글루를 만들어 그곳에서 1박을 할 수도 있다. 인터넷으로 그림엽서도 보낸다. 휴게실에는 한국산 컵라면도 있어 기압과 여정에 시달린 입맛을 달랠 수 있다.

 인간의 무한 도전 앞에 다시 감동

내려오는 길은 클레이네 샤이덱에서 계곡 중앙으로 내려오는 라우터브루넨(Lauterbrunnen)행으로 택했다. 이 코스는 스위스인들이 직접 거주하는 아기자기한 마을을 지나치고 거대한 계곡과 폭포도 볼 수 있다. 날씨가 좋으면 융프라우를 가깝게 올려보며 짧은 하이킹을 하기에도 그만이다.

융프라우 철도가 만들어진 것은 104년 전. 아돌프 구에르첼러라는 엔지니어는 클라이네 샤이덱까지만 놓기로 돼 있었던 철도 공사 계획을 수정해 융프라우요흐까지 철도를 놓기로 했다. 아이거봉 아래의 바위를 뚫고 묀히봉 암반 속을 통과해야만 하는 공사였다. 1896년 첫 삽질을 시작했다. 당초 7년이었던 공사기간은 혹독한 자연조건과 붕괴사고, 공사비 조달 지연 등으로 인해 16년으로 늘어났다. 1912년 8월1일 스위스 독립기념일에 개통식이 열렸다.

하지만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1970년대 불타 버린 휴게소 대신 현재의 융프라우요흐를 건설했고 1996년엔 해발 3,571m에 최고의 관망대인 스핑크스 테라스를 건설했다. 스핑크스 테라스와 아래 휴게소를 연결하는 2개의 승강기는 108m의 거리를 단 25초 만에 주파한다. 인간의 도전이 장엄한 자연 앞에서 더욱 빛나는 순간이다.  


체르마트와 마테호른

산소가 조각한 균형미 돋보이는 산 

흰 와이셔츠나 브라우스 차림으로 퇴근한 날은 서울에서 산다는 것이 서글퍼진다. 깨끗하던 깃과 소매는 온갖 매연과 먼지로 하루 만에 제 색을 잃어버리기 마련이다.

스위스 발레주의 산악마을 체르마트(Zermatt)에서는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공기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공기 오염을 막기 위해 가솔린 차량은 출입 자체가 금지돼 있는 탓에 체르마트로의 여행은 중간역인 티슈에 차를 세우고 등산 철도를 타야 한다. 마을에 도착해서도 전기 자동차와 자전거가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1,620m의 고산마을을 산 아래와 연결해 주는 산악열차에서 내리면 제일 먼저 심호흡을 하자. 마테호른(Matterhorn·4,478m)의 장엄함이나 스키 타는 재미 이전에 몸 안 가득 퍼지는 상쾌한 공기는 체르마트 여행의 보이지 않는 선물이다.

이탈리아와 접하고 있는 산골 마을 체르마트는 스위스에서도 손꼽히는 스키 리조트. 겨울철이면 전세계에서 몰려 든 스키어로 만원을 이루지만 5월이 지나면 마을 전체가 방학을 맞은 듯 조용한 고산휴양지로 변신한다. 스키가 목적이 아니라면 오히려 스키 시즌을 피했을 때가 차분히 체르마트의 여행을 즐기기에 좋은 시기다. 북적이는 관광객이 없는 체르마트는 유명 관광지의 번잡함을 찾아볼 수 없는 스위스 시골마을의 풍취를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특히 영봉 마테호른과 마주하는 순간을 방해받지 않을 수 있어 더욱 값지다.

 
체르마트의 수호신 마테호른

체르마트는 산악인들 사이에서는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로고로 잘 알려진 마테호른을 오르기 위한 관문으로 유명하다. 모든 영화인들이 모이는 거대한 산을 꿈꾸는 파라마운트사의 바램을 나타내기에 마테호른은 최고의 캐스팅이 아닐 수 없다.

마테호른의 첫인상은 위엄과 당당함이다. 기백 넘치는 천재 조각가가 사각뿔을 기운차게 조각해 놓은 듯한 모습이 시원스럽게 잘 생긴 남자의 얼굴을 보는 듯하다. 마테호른은 동벽과 북벽이 보이는 스위스 쪽에서 바라봤을 때 가장 균형 잡힌 모습을 보게 된다는 평이 결코 과장은 아닌 듯 싶다.

마테호른을 보다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면 등산열차를 타고 고르너그라트(3,130m)까지 오르면 된다. 오렌지 빛깔의 열차를 타고 고르너그라트로 향하는 길은 마테호른의 곁으로 다가가는 가장 손쉬운 선택. 등산열차가 올라감에 따라 철길 옆으로는 야생초 사이의 만년설이 히끗히끗 얼굴을 드러내고 차창 넘어로는 상쾌한 바람이 이마를 가른다.

열차를 타고 손쉽게 올라 온 것 같지만 고르너그라트는 웬만한 산보다 훨씬 높은 3,000m가 넘는 고지대. 가슴이 답답하거나 평형감각이 떨어지는 등 작지만 확실한 신체의 변화가 지금 서 있는 높이를 실감케 한다. 마테호른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우선 선글라스를 챙겨야 한다. 마테호른뿐만 아니라 고르너그라트 주위의 만년설이 햇빛을 반사하기 때문. 마테호른과 마주 선 사람들은 예외없이 저마다의 생각에 잠기곤 한다. 미래를 생각하는 젊은이를 비롯해 변지 않는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 지난 생을 반추하는 노년의 관광객들도 보인다.

체르마트는 걸어서 돌아봐도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작은 마을이지만 각종 기념품 가게들이 다양하며 마을을 기점으로 한두 시간 코스의 트래킹도 즐길 수 있다. 이밖에 산악박물관도 체르마트의 특별한 볼거리. 마테호른 등정 과정에서 일어난 각종 사고 기록이나 각 봉우리의 축소 모형을 비롯해 1860년대에 사용한 등산 자일 등 알프스 등반 자료가 전시돼 있다.

 

앵엘베르그와 티틀리스

푸른 초원과 하얀 눈에 싸인 천사의 고향

알프스의 또 다른 봉우리 티틀리스(Titlis 3,238m)를 오르기 위한 기착지, 엥엘베르그(Engelberg). 그곳으로 가는 도중 알프호른 제작소를 찾아간다. 원래 오케스트라 트럼펫 연주자이면서 옛 가구 복원사이기도 했다는 토비아스 베르치. 그는 혼자서 수작업으로 알프호른 제작에 매진하고 있다.

옛날 산에서 산으로의 연락을 위해 쓰였다는 알프호른을 이제는 현대 오케스트라 연주에도 적합하도록 음역을 조절하여 제작하고 있다. 제작하기가 무섭게 팔려나간다고 하는데. 3.5m 길이에 세밀한 제작 과정을 거치는 알프호른은 1개 제작 기간이 2달여 정도 걸린다고 한다. 너도나도 알프호른 불기에 도전해 본다. 악기 길이에 지레 겁먹지만 않는다면 단소 불듯이 어느 순간엔가 터득되는 때가 있다. 그 요령만 알면 한 순간에 흡족한 소리를 낼 수가 있다.

‘천사의 고향’이라는 뜻을 가진, 해발 1,002m의 엥엘베르그는 12세기 베네딕트 수도원을 중심으로 산골짜기에 생겨난 도시이다. 여름에도 하얀 만년설이 덮인 티틀리스를 볼 수 있고, 산상 호수와 꽃들이 지천인 초원이 아름다운 이곳에서는 티틀리스와 연계하여 하이킹, 패러글라이딩, 번지점프, 산악자전거, 스키 등 폭넓은 스포츠 활동을 즐길 수 있다. 또한 지금도 60여 명의 수도승들이 수도 중인 엥엘베르그 수도원은 그 안의 치즈 숍이 매우 유명한데 치즈와 토산품 구입뿐 아니라 전통적인 수도원 치즈를 계승한 근대적인 치즈제조 과정을 견학할 수도 있다.

엥엘베르그에서 티틀리스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두 번에 걸쳐 케이블카를 갈아타고 올라가게 되는데 티틀리스로 가는 마지막 구간에 세계 최초의 회전 공중 케이블카, ‘로테어(Rotair)’가 운행되고 있다. 산 정상의 전망대에는 만년설과 빙하가 기다리고 있고, 기후 조건만 좋다면 6인승 리프트, ‘아이스 플라이어’를 타고 빙원까지 갈 수도 있다. 리프트 위에서 발 아래로 보이는 크레바스가 아찔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여름에도 썰매와 스노우 튜브, 스노우 스쿠터 등 눈놀이와 스키가 가능한 티틀리스는 스포츠 마니아들에게 더더욱 환상적인 장소이다. 게다가 그 밖에도 빙하 트래킹, 케이블카에서의 번지점프 등 흥미로운 종목들이 다양하다.

빙하동굴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최수종, 하희라 가족과 장나라, 김민정 등의 사진이 밖에 걸려 있는 기념 사진점에서 그들처럼 스위스 전통의상과 소품을 갖춰 입고, 하얀 알프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이로써 더할 나위 없는 스위스 방문 증명사진이 마련된 셈이다. 사진사의 의상과 소품 고르는 솜씨는 전문적인 코디네이터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어색한 듯, 놀이처럼 찍은 사진 한 장을 들고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온 마을은 노을 빛에 반사되어 아름다워 눈부시다. 저쪽에선 호른 소리를 내는 노란 색 포스트 버스(Post bus)가 잠시 멈추었다가 사람들을 내려주고는 지나쳐 간다.


 

뮤렌과 쉴트호른


거친 산 아래 무공해 사람이 산다

 밤에 도착한 뮤렌(Murren)은 사위가 어두운데도 불구하고 묘한 기운에 휩싸여 있다.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의 긴장감이 몸 속까지 밀려들면서 저 깊이에까지 그 떨림이 전해진다. 날이 밝으면서 펼쳐질 알프스를 기대하며 밤 안개 속 뮤렌의 마을길을 걸어 들어간다.

산은 그다지도 크다. 높다. 깊다. 압도하면서도 푸근하고 또 한편으론 춥고도 쓸쓸하다. 그렇게도 유명한 알프스의 세 봉우리가 눈앞에 동시에 보인다. 아이거, 융프라우, 그 사이에서 융프라우를 지키고 있다는 묀히 그리고는 깊은 계곡. 그 계곡을 향해 가는 능선의 완만함에 따라 여기저기 자리잡고 있는 사람 사는 마을의 풍경.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서 있는 곳은 베른 주에서 제일 높은 마을, 해발 1,639m의 뮤렌이다. 뮤렌은 쉴트호른(Schilthorn 2,967m)으로 향하는 기착지로, 볕 잘 드는 산자락 아래 주민 400명 정도가 삶을 꾸리고 있는, 말 그대로 무공해 리조트 마을이다. 라우터브룬넨 계곡, 우뚝 솟은 낭떠러지 위에 새둥지같이 자리잡고 있는 뮤렌은 휘발유 차량 진입 금지 구역이기도 하다. 차도 없는 조용한 마을길을 소 몇 마리가 절그렁 절그렁 방울을 울리면서 지나간다.

그곳 마을 어귀에 가만히 서서 산봉우리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게 누구이든 그저 순하고도 겸손한 하나의 피조물이 된다.

한겨울이 되어 눈이 오면 마을의 집들을 둘러싼 앞뒤 마당의 경사면들이 그대로 스키 슬로프로 변하면서 온 마을이 하얀 눈천지의 스키 마을로 탈바꿈한다. 이웃 나들이나 장을 보기 위해 스키를 신고 집을 나설 이곳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곳도 계절별로 더욱 붐비는 때가 있는데 크리스마스와 새해, 부활절과 7, 8월 여름 시즌이다. 또 뮤렌에서부터 쉴트호른까지 14.9km 구간에서 벌어지는 3종 경기는 자연을 사랑하는 스포츠 애호가들에게 특히 사랑받는 종목이다.

뮤렌에서 쉴트호른까지는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를 넘나들고 깎아지른 절벽을 거의 닿듯이 수직 이동하는 케이블카를 이용한다. 놀이기구를 탄 양 괴성을 질러대면서 창 밖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의 집들이 우습기만 하다. 거대한 자연 안에서 적응하면서 한편으로 극복해낸 사람들의 노력이 기특하기만 하다.

쉴트호른 정상에서 만나는 피츠 글로리아는 1968년도 007 시리즈, <여왕폐하 대작전> 현지 로케이션 장소로도 유명한데 애초에 영화 세트로 사용하기 위해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해발 3,000m급에 위치하고 있는 세계 최초 360도 회전식 레스토랑인 피츠 글로리아는 식사나 차를 마시면서 동시에 창 밖으로 200여 개의 알프스 봉우리들이 펼치는 환상적인 파노라마를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

갑작스런 고도 변화와 회전하고 있다는 자각증세에서 오는 얼마간의 어지럼증만을 잘 다스린다면 레스토랑 어느 곳에 앉아 있든지 누구나 진귀한 경치를 즐길 수 있다. 이곳에서 볼 수 있는 아이거, 묀히, 융프라우로 대표되는 명봉들과 알프스의 절경들은 그 미적 가치와 다양한 생태계, 역사적 가치로 인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돼 있다.


사스페와 알랄린

소박하고도 아기자기한 스노우보더들의 천국

 비스프(Visp)역에서 기차를 내렸다. 사스페(Saas-Fee)까지는 약 1시간 정도 포스트 버스를 타야 한다. 조금 지루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잠시, 이내 노란 버스는 산구릉과 능성이를 굽이굽이 돌며 알프스 산자락을 오르기 시작한다. 잠깐 졸 사이가 없다. 창밖 풍경은 더욱 눈이 커지게 한다. 계곡엔 빙하에서 녹아내린 푸른 물이 흐르고 사방에는 알록달록한 들꽃이 피어 있다. 산굽이를 돌아 서면 작은 집과 마을이 반긴다. 당시엔 차가 없었겠지만 하이디가 살았던 마을이 이러하지 않았을까 싶다. 하이디의 후예들이 하교길인지 가벼운 발걸음으로 버스에 올른다.

1시간여를 올라가서 내린 곳이 바로 사스페. 알프스의 또 다른 영봉인 알라린(Allalin 4,027m)과 돔(Dom 4,545m)에 오르는 길목이다. 스위스에는 수많은 알프스 산악마을이 있지만 사스페는 소박하면서도 스위스적인 매력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으로 꼽힌다. 한국에는 이제 막 알려지기 시작한 곳이지만 스노우보더의 천국으로 꼽히는 만큼 일부 마니아들에게는 꿈의 산악 리조트로 알려져 있다. 특히 하프파이프 등이 잘 갖춰진 펀 파크(Fun Park)는 최고로 꼽힌다.

해발 1,800m에 위치한 사스페 또한 청정마을이다. 가솔린 차는 포스트 버스를 제외하고는 찾아볼 수 없다. 전기차와 자전거 등이 주요 교통수단. 마을 한바퀴 돌아봤자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으니 무슨 차가 필요할까 싶다. 마을 중앙에 위치한 마켓까지도 어디서든 10~15분만 걸으면 도착한다.

언덕 위쪽에 들어선 포스트 버스 역에서는 사스페 마을과 뒤쪽으로 펼쳐진 알프스 산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부랴부랴 호텔 전기차에 짐을 실어놓고는 정신없이 카메라 셔터 누르기에 바쁘다. 통나무 집들이 주를 이루는 마을은 소박하면서도 아기자기하다. 계곡이 흐르고 푸른 하늘과 하얀 눈 덮힌 산이 비쳐 보이는 창문가에는 깔끔하게 꽃화분들이 놓여 있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전망대는 미텔알랄린(Mittelallalin)이다. 여름에는 케이블과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을 달리는 지하철을 타고 간다. 겨울에는 케이블카를 2번 갈아타고 랭플루(Langfluh)에 가서 눈차를 약 30여 분 타고 이곳에 오른다. 이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회전 레스토랑과 가장 큰 얼음동굴이 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밖의 전망대에서는 발레 지방과 융프라우 지방의 산들을 바라볼 수 있다.

랭플루는 다양한 풍경과 박력 넘치는 빙하를 즐기는 하이킹 코스로 유명하다. 사스페에서 4인승 케이블카를 타고 슈필보덴까지 가서 다시 60인승 케이블카를 타고 오른다. 이곳에서는 스위스 내에서 가장 높은 돔 산을 포함한 발레 지방의 알프스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사스페에서 알랄린 반대편으로 위치한 크로이쯔 보덴 언덕 위에서는 4,000m급의 봉우리들이 이어지는 장대한 파노라마를 눈앞에서 관람할 수 있으며 이들이 호수 위에 반사된 그림 같은 사진을 누구나 찍을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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