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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① 앙코르와트 시엠레아프 가는 길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7.01.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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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한번쯤은 찾아가 봐야 한다고, 마음속 깊은 곳에 담아 두었던 캄보디아로 떠나게 된 것은.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를 비롯한 거대한 사원들은 현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대대적인 복원 공사 중이다.
그 변화의 손길이 조금이라도 더 뻗치기 전에 반드시 그곳을 봐야만 했다.
그건 돈이나 마음의 여유 따위를 생각할 필요도 없는 숙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글·사진   Travie photographer 박규민
에디터   정은주 기자
취재협조   업투어 02-318-2727┃www.uptour.co.kr

태국 국경을 넘어 캄보디아로 들어가다


ⓒ트래비
바이욘 사원 ㅣ 캄보디아 국경


우리에겐 아직 익숙치 않은 블라디보스톡 항공편을 이용해 먼저 방콕에 도착했다. 방콕은 캄보디아를 가기 위한 관문과도 같은 곳이다. 발 빠른 사람들이라면 이미 직감하겠지만 방콕은 지금 전세계의 어떤 나라보다도 힘차게 문화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캄보디아의 시엠레아프(Siem Reap)로 향하기 위해 지나가야 하는 태국 국경의 풍경은 꽤나 이질적이었다. ‘정말 이 관문만 통과하면 태국이 아니라 캄보디아 땅이 펼쳐질까’ 싶을 정도로 초라한 아치 하나가 두 나라를 갈라 놓고 있는 전부. 마치 보딩 패스를 내밀며 비행기에 오르듯 간단한 비자 수속만으로도 캄보디아로 진입할 수 있었다. 

시엠레아프는 앙코르 유적을 가장 가까이에 두고 있는 관광 도시로 수도인 프놈펜보다 훨씬 더 빠르게 발전해 가고 있는 곳이다. 도시의 규모는 작지만 골목마다 외국인 여행자들을 배려한 편의시설이 가득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물론 번화한 도시라고 해도 방임과 피폐로 얼룩진 캄보디아의 모습을 감추기에는 아직 역부족인 것처럼 보였다. 사실 태국 국경을 넘어 시엠레아프로 향하는 길에서 ‘아차’ 싶었다. 붉은 적토가 뿜어내는 먼지와 검은 매연, 살면서 이제껏 보지 못한 가난의 땅은 아무 생각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엔 너무나 참담했기 때문이다.    

캄보디아의 가장 서민적인 교통수단은 택시나 버스가 아니라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픽업 트럭(캄보디아의 대중적인 교통수단으로 그저 기름 값이나 나눠 내며 아무나 올라타는 차편)’과 금세라도 부서져 버릴 것 같은 오토바이이다. 관광객들이 처음 시도하기에 이 두 가지는 다소 무리가 따를 듯. 붉은 흙 먼지의 위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지인들은 이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천연덕스럽게 이런 악조건 속에서 살아간다. 웬만큼 모험심이 강한 사람들이 아니라면 캄보디아에서는 버스나 택시를 선택하는 게 현명하다. 

동양 최대의 호수, 톤레 샵에 서다


ⓒ트래비

1. 톤레샵 호수 위에 꾸며진 수상촌 
2. 가난 속에서도 아이들의 모습은 순수하기만 하다
3. 톤레 샵 수상촌에서는 작은 쪽배가 주민들의 이동 수단이다



매캐한 모래 먼지를 뒤집어 쓰면서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동양 최대의 호수라고 불리는 ‘톤레 샵(Tonle Sap)’. 경상남북도의 면적과 맞먹는다는 거대 호수는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을 위해 수상촌 마을로 꾸며져 있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곳은 우기와 건기에 따라 호수의 크기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이다. 건기로 수위가 가장 낮은 5월에는 호수 면적 역시 좁아지지만, 히말라야에서 눈이 녹는 우기로 접어들어 메콩 강의 수위가 높아지고 프놈펜에서 역류한 물까지 유입되면 호수는 2배 가까이 넓어진다. 현재 호수 주변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주로 베트남 사람들로 호수의 수위에 따라 수상 가옥을 이동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고무신처럼 앞코가 뾰족한 보트를 타고 톤레 샵 호수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룻배를 타고 관광객들에게 물건을 팔러 다니는 현지인들과 실제로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잔잔하게 펼쳐진 호수는 아름다웠지만 그 풍경 속에는 참 안타깝고 잊혀지지 않는 삶의 모습들도 있었다. 어떤 어미는 가축과 쓰레기가 우글거리는 물 웅덩이에 쭈그리고 앉아 갓난쟁이를 목욕시키고 있었고, 손톱 밑이 새카만 아이들은 날파리가 윙윙대는 쓰레기통에 머리를 박은 채, 무언가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 그들에게 수치심은 없었고, 그저 살아야겠다는 소리 없는 투쟁만이 가득했다. 

더러운 환경과 수질 오염으로 매년 수만 명의 아이들이 죽어 가는 땅에 희망은 없어 보였다. 희망은 고사하고 마실 수 있는 물을 끌어올릴 우물 하나를 더 파는 게 급선무인 실정. 실제로 우리나라 환경 단체 등에서는 캄보디아의 식수난을 해결하기 위해 우물 파기 운동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자선냄비에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내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일임을 절감하게 하는 풍경이었다. 이런 상념에 잠긴 동안, 프놈바켄의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일몰이 시작되고 있었다. 마치 눈 내린 풍경처럼 붉게 물든 석양 속에 캄보디아의 외면할 수 없은 현실도 서서히 사그라들고 있었다.


ⓒ트래비

4,5,6. 앙코르와트 유적군에서 만날 수 있는 고대 사원들.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조각들이 신비스럽다.
7. 영화 <툼레이더>의 배경이 되었던 타프롬 사원

건축 예술의 극치, 앙코르 사원   

캄보디아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앙코르와트를 보기 위함이다. 동남아 최대의 관광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앙코르 유적은 톤레 샵에서 프놈바켄에 걸친 방대한 지역에 분포해 있는 크메르 제국의 사원들이다. 

14세기 후반에 세력이 약화되면서 정글 속에 묻혔던 앙코르 유적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1850년대 후반. 1992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1996년에 태국과 육로 국경이 개방되면서 여행자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해 현재는 하루에 2,000명이 넘는 관광객이 드나들고 있다. 워낙 방대한 유적이 산재해 있어 하루에 사원을 다 둘러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최소한 3일은 시엠레아프에 머물면서 웅장하고 거대한 앙코르 유적들을 탐험한다. 시엠레아프에서 앙코르 유적까지는 12km 정도. 보통 오토바이나 툭툭, 택시나 승합차로 이동한다.  

앙코르톰, 앙코르와트, 바이욘 사원, 코끼리 테라스, 구왕궁, 타프롬 사원 등 크메르 왕국의 유적지들은 그 규모를 가늠할 수 없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유적들은 작은 돌조각들로 만들어졌다는 것. 돌을 나르는 기계나 절단기가 없던 당시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기엔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게다가 돌조각들 표면에 정교하게 새겨진 문양과 조각들은 입을 다물 수 없게 만든다.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70° 경사에 폭이 매우 좁아 마치 절벽과도 같이 가파른 계단을 밟고 사원 꼭대기까지 오르기도 하는데, 계단 옆에 놓여진 안전 줄에 의지하지 않고는 한발짝도 떼어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이처럼 아찔한 경험을 하도록 지어진 이유는 우주로 향하려면 인간의 거만한 욕심과 자만심을 버리고 더없이 보잘것 없는 존재가 되어 조심스럽고 경건한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는 뜻이다.

앙코르 사원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 깎아지른 듯한 아래쪽을 내려다보면서 문득 생각했다. ‘수많은 서양인들에게 캄보디아는 지상 낙원이자 숨겨진 보석 같은 땅이었겠지. 하지만 전쟁으로 폐허가 된 캄보디아엔 정작 그런 낭만 따윈 없어. 다만 이 땅에서 삶을 깨달을 순 있겠지. 베트남 전쟁의 여파로 폐허가 된 캄보디아를 취재하러 온 특파원과 그의 친구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영화 <킬링 필드(Killing Field)>처럼 말이야.’

캄보디아는 그런 깨달음과 안타까움과 절망, 그리고 마침내 작은 희망을 안겨주는 곳이다. 그래서 언제든 다시 한번 찾고 싶은 나라이다. 아무것도 잃을 게 없고, 또 아무것도 얻을 게 없는 나라. 그걸로 충분한 나라….

짧은 시간 동안 캄보디아를 둘러보았지만 그 여운은 지금까지도 아련하다. 거대하고도 신비로운 앙코르와트 유적부터 느린 듯하지만 결코 게으르지 않은 사람들, 하루에 세 시간을 걸어 태국 국경을 넘어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그들을 보면서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인가를 다시 곱씹어 보게 된다.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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