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배우 오만석 - 친절한 ‘배우’ 오만석의 <하루>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7.01.1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트래비

연극 <이>에서는 왕의 남자 공길로, 영화 <라이어>에서는 게이인 알렉스로. 게다가 뮤지컬 <헤드윅>에서는 트렌스젠더다. 이쯤 되면 그 배우의 이미지는 자의든 타의든 한쪽으로 기울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작년 포도밭 그 ‘남자’도 아닌 포도밭 그 ‘사나이’를 통해 배우 오만석은 시청자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사랑해” 보다는 “니 디진다”라고 표현하는 멋대가리 없는 무뚝뚝한 그 사나이, 입만 열면 “가스나가~말야”가 튀어나오는 고리타분한 그 사나이. 

하지만 그 사나이는 한여름 포도밭에 내리쬐는 뙤약볕만큼이나, 천천히 달아올라 쉽게 식지 않는 뚝배기만큼이나 뜨거운 가슴을 가졌다. 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커다란 눈동자를 꿈벅이며 하얀 치아를 드러내고 해맑게 웃으면서 “징징 징기스칸, 우짜고 저짜고 뭐라고 씨부리쌌노~”를 흥얼거리던 농촌 총각 택기의 경운기는 어느새 시청자들의 가슴 속에 들어왔다.
   

* 글  신중숙 기자   사진  Travie photographer 오진민

“여행 정말 좋아하는데 요새 시간이 없어서 예전만큼 여행할 여유가 없어요.” 

올해만 해도 드라마 <신돈>으로 시작해 그를 스타덤에 오르게 한 <포도밭 그 사나이>, 케이블 TV 드라마 <하이에나>까지 세 편의 드라마를 찍었다. <김종욱 찾기>로 뮤지컬 무대에도 섰다. 어디 그뿐인가. 영화 <잔혹한 출근>에서는 악랄한 흥신소 사장으로 카메오 출연을 하며 스크린에 슬쩍 얼굴을 내비치더니 영화 <수>에서는 비열한 조직 폭력배로 변신했다. 짬짬이 인천 유나이티드FC의 다큐멘터리 <비상>에서는 나레이션을 맡질 않나. 끊임없이 들어오는 방송 출연과 인터뷰 요청, 그의 인생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는 축구까지…. 보는 사람도 ‘헉’ 소리가 나는데 정작 본인은 쉴 틈이나 있었을까. 

“그걸 본능적으로 즐기는 것 같아요. 사실은 쉰 적이 없어요. 올해가 좀 심했던 건 사실이지만 데뷔 이후 쉬지 않고 연극과 뮤지컬을 해왔으니 사실 오래 전부터 바쁘게 지내 왔죠. 하지만 아직은 젊으니까 힘들기보다는 재밌어요.” 


ⓒ트래비

충전, 활력, 보약 같은 여행

작품과 작품 사이, 촬영과 연습 사이, 그 바쁜 짬을 틈틈이 활용해 ‘열심히 일한 자신’에게 마치 ‘보약’처럼 선물하는 것은 바로 축구. 심지어는 촬영 중간에도 마음이 맞는 스태프들과 함께 몰래몰래 공을 차며 스트레스를 푼다. 공 하나에 집중해 너른 운동장을 내달리고 멤버들의 팀워크에 크게 웃고 떠드는 것만으로도 힘이 생겨난다. 

“여행도 축구처럼 제게는 ‘충전’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잠시 동안이라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 일이 무엇인지’를 모두 잊고 한 템포 쉬어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내 몸에 쌓인 노폐물을 깨끗이 털어 버리는 느낌이에요.”
얼마 전 드라마가 끝난 틈을 이용해서 오사카에 다녀왔다. 

“사실 오사카는 고등학교 때 부모님과 이미 여행했던 도시에요. 생전 처음 접한 이국의 문화에 처음에는 문화적 충격도 받았어요. 지나치게 깨끗한 도시와 거리의 풍경 자체도 그렇고 사람을 대하는 일본 사람들의 태도뿐 아니라 심지어는 패스트푸드 점에서 애기가 옆 테이블에 있는데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도 놀랐고요.”

한 차례의 여행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저 쉬엄쉬엄 노닐고 간단한 쇼핑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원래 아무 계획 없이, 발길 닿는 대로 여행하는 그의 스타일 그대로. 

“아참, 그런 것도 굉장히 의미가 있더라고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여행하며 갔던 유명한 포장마차를 14년 만에 다시 찾아 가봤어요. 이번에는 혼자서 그때랑 똑같은 라멘을 먹었는데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그때가 더 맛있었던 것 같아요. 그 라멘 비법과, 맛은 변함이 없겠지만 14년이라는 시간을 살아오면서 저의 취향이나 경험들이 변한 거겠죠.” 

“저 재미없는 사람이에요”

예의 너무나도 독특한 배역들과 <포도밭 그 사나이>에서의 장택기 역할을 상상하고 만났던 오만석. 그는 드라마 속 택기처럼 툭툭 내던지는 무미건조한 화법이 아닌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상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고개를 끄덕이며 주의 깊게 듣고, 시덥지 않은 질문에도 그 큰 눈을 도르르 굴려 가며 신중하게 답한다. 어떤 질문에도 성실한 답변을 주던 그가 유독 난색을 표하는 질문은 최근 쏟아져 나오는 그의 가족에 관한 이야기. 

“조용히 사는 게 좋잖아요”라고 착한 웃음을 지어 보이기는 하지만 헤드윅에서 공길, 원현스님에서 장택기를 거쳐 이제야 비로소 배우 오만석을 가슴에 품은 뭇 여성 팬들은 그가 유부남에 5살짜리 딸을 둔 아빠라는 사실에 두 귀를 의심한다. 그의 아내는 <친절한 금자씨>, <올드 보이>, <괴물>,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등 영화 의상 담당자로 영화계에서는 유명 인사다. 대학시절 연극 작품을 함께 공연하다 만났고 1년 반의 연애 끝에 지난 2001년 결혼에 골인했다. 얼마 전 그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프러포즈다운 프러포즈를 못했다. 아내가 먼저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고 밝혔다. 하지만 로맨틱한 허니문은 여자들의 꿈이 아닌가. 허니문 이야기를 캐물었다. 

“지금은 거의 붐이라는데 제가 결혼했을 당시만 해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중국 하이난으로 갔어요. 그때 막 개발이 이뤄지던 곳이었기 때문에 너도나도 모두 가는 흔한 여행지의 느낌이 아니라 좋았죠. 호텔 로비와 모래사장이 바로 연결돼 있는데 홀로 제트스키를 타고 경계선이 없는 망망대해를 달렸죠.”
그래도 명색이 허니문인데 아내를 위한 이벤트 정도는 준비했겠지….
“결혼 전에는 제 스스로가 자상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재미없는 사람이에요. 허니문 가서도 둘 다 푹~ 쉬다가 왔어요. 그런데 그 사람은 저보다 더 계획이 없어요. 올 1월 정도에는 ‘리허니문’과 가족여행을 겸해서 여행을 가볼 생각이에요. 아이와 함께 가니까 따뜻한 휴양지로 떠나고 싶어요.”

사실 애초에 시청자들은 <포도밭 그 사나이>는 윤은혜의 드라마인 양 오만석이라는 배우의 존재를 간과했고, 대중들은 뮤지컬 <헤드윅>의 조승우라는 스타에게만 유독 집중했다. 하지만 그는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빛나는 재능을 온전히 펼쳐 보였고 시청자들과 관객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배우 오만석’에게로 이어졌다. <헤드윅>의 인기가 맹위를 떨치던 해, 한국 뮤지컬 대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건 ‘조드윅’이 아닌 ‘오드윅’이었다. 또 작년에는 KBS 연기대상의 신인연기상, 인기상, 베스트 커플상을 한꺼번에 수상하기도 했다. 

“너무 일찍 큰 상을 받아서 부담스럽기도 해요. 저는 제 연기에 한번도 만족해 본 적이 없어요. 연기를 잘하는 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쟤는 뭐라도 찾아 하려는 노력이 가상하구나’라고 생각하셔서 칭찬을 해주시는 것 같아요.” 

실제로 그는 뮤지컬과 연극 무대가 아닌 대중매체에 알려진 이후 이전에는 없던 긴장감이 생겼다고 한다. 그전에는 아예 몰랐기 때문에 제 멋대로 연기를 이끌어 가던 경향이 있었다. 이제는 조금씩 알게 되면서 자신의 맹점뿐 아니라 카메라의 움직임까지도 머릿속에 그리기 때문에 예전만큼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은 한편으로는 아쉽다. 

모든 성공과 성취에 대해서 “모든 게 운이 좋았죠”라는 겸손한 그의 말에 자꾸만 ‘토’를 달고 싶은 까닭은 누구라도 알아챌 만한 그의 성실함과 다재다능함 때문이다. 2007년에도 그의 재능이 반짝일 바쁜 행보가 계속될 예정이다. 스타트는 성공적이었다. 1월6일부터 2월4일까지 유니버설 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하루>. 1월6일을 기준으로 순수 창작 뮤지컬로는 이례적으로 전체 좌석의 40%가 공연 전에 팔렸다. 

“연극은 무대라는 공간에서 관객과 ‘교감’할 수 있어요. 뮤지컬은 거기에 음악의 힘이 지배적인 매력이 있죠. 무대공연은 적극적인 관객들과의 만남이고 한 번밖에 없는, 되돌릴 수 없는, 소멸되는 시간이니 더 소중하잖아요. 또 그에 비하면 드라마와 영화는 기록이 남잖아요. ‘편집’을 통해 내가 해석한 것과는 또 다른 작품이 태어나는 과정도 재밌어요. 뮤지컬, 연극, 영화, 드라마… 저는 가급적 모든 장르를 다 하고 싶어요. ‘배우’니까.” 


-주간여행정보매거진 트래비(www.travie.com) 저작권자 ⓒ트래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트래비 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최신기사
트래비 레터 요즘 여행을 알아서 쏙쏙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