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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티에리와 필립 - 프랑스에서 온 악동 한국을 휘젓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6.01.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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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에서 온 악동 한국을 휘젓다

‘티에리와 필립의 팔도 유람기’는 ‘리포터 일반’의 억지웃음이나 외국인들의 맹목적인 한국 찬양과는 거리가 있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일조차 만만치 않은 일상에서 티에리와 필립의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울고, 화나면 화내는’ 무아지경의 천진무구는 발칙할 만큼 신선하다. 그들의 꾸밈없는 웃음과 눈물이 시청자들의 냉소를 무장해제 시켰기에 프랑스에서라면 분명 젊잖게 ‘무슈’라고 불렸을 두 남자는 대한민국 남녀노소 모두에게 친근한 티에리, 필립으로 통한다. 


텔레비전의 리포터들은 확실히 오버한다. 연예프로그램 리포터들의 오도방정은 말할 것도 없고, 시사프로그램의 리포터들은 또 그렇게 비장할 수가 없다. 분류가 좀 다르지만 외국인 리포터를 동원한 국내여행 코너도 못마땅하다. 뜻도 통하지 않는 한국어를 떠듬거리는 외국인의 입을 빌려 한국의 멋, 한국의 맛을 역설하려는 PD들의 노력은 가상하되 식상하다. 낯선 문화 속에 속수무책으로 내던져진 외국인들을 관찰하게 되는 상황도 난처하다.    

 그런데 지난 초여름의 어느 날 인천공항에서 티에리(Thierry.31)와 필립(Philippe.32)을 만났을 땐 왜 그렇게 반가웠던 것일까. 행복한 게으름을 만끽하는 토요일 오전, 침대에서 거실로 어렵사리 몸을 부리고 나면 제일 먼저 TV를 켠다. 그러면 감히 ‘잘 먹고 잘 사는’ 법을 알려주겠다는 프로그램이 뜨고 종반부로 치달으면서 두 명의 프랑스 남자가 등장한다. 

“우리는 진짜 힘들어요.”

두 남자는 벌써 1년 5개월째 한국의 방방곡곡을 여행하면서 아름다운 금수강산의 성은을 톡톡히 입고 있다. 일년에 한번 휴가도 빠듯한 지경인데, 이 두 남자는 무슨 복에 ‘트래블 리포터’의 자격으로 한국을 여행하며 매주 꼬박꼬박 TV에 얼굴을 내미는 것인가. 그런 꼬인 마음을 읽었는지 필립이 폭로를 하나 한다. 

“다른 방송에서 리포터들이 힘들다고 하면 너무 웃겨요. 그 사람들은 카메라(가) 있을 때만 일해요. 근데 우리는 (카메라가) 없을 때도 일해요. 그래서 우리는 진짜로 힘들어요.”

두 남자가 그동안 거쳐 온 농어촌 체험은 1년 4개월간의 방송횟수만큼 다양하다. 갯벌에서 뒹굴고, 밭이나 과수원에서 땀을 뻘뻘 흘리는 것만으로 모자라 모내기, 돼지 잡기, 굴비 엮기를 두루 섭렵했다. 경주 골굴사의 무술수련으로 성이 안 찼는지 해병대 체험까지 했다. ‘유람’은커녕 사람 잡을 일이다. 남들처럼 방송용으로 적당히 일해도 그만일 텐데 영악한 프로페셔널리즘이 없는 두 사람은 촬영이 끝나면 녹초가 되어 버린다. 둘이 토닥토닥 싸우고 토라지고 화해하는 일조차 단 한번도 연출인 적이 없다는데, 진짜로 인터뷰 중에도 ‘우엉이 김밥에도 들어가는가’를 놓고 두 프랑스 남자가 실랑이를 했다. 

방송을 시작하고 무엇이 달라졌냐는 물음에 티에리는 ‘인생’이 커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인생’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대화는 깊어질 수 없었지만 티에리는 아내의 나라인 한국에서 소박한 인심과 정을 온몸으로 겪으면서 몸뿐 아니라 정신세계까지도 두 나라를 온전히 공유하게 됐다.  

 

 

“외국인들도 우리처럼 여행하면 좋겠어요.”

“다른 외국인들도 우리처럼 여행하면 좋겠어요. 덕수궁, 설악산, 불국사도 좋지만 직접 체험하는 여행이 더 값지다는 거, 그런 믿음(이) 있어요.”
아직은 문화의 장벽, 언어의 장벽으로 쉽지 않을 거라고 반론을 제기해 보지만 둘이 입을 모아 ‘할 수 있다’ ‘가능하다’로 일축한다. 일단 다수결에서 밀리고, 이 땅에 사는 이방인은 내가 아니고 그들이니 논리에서도 밀린다. 

잠시 화제를 돌려 필립의 친모 찾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필립의 고개가 ‘툭’ 떨어졌다. 내내 즐겁고 유쾌하던 그의 감정이 롤러코스터처럼 급하강을 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조차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외모에서 알 수 있듯이 필립은 동양인, 정확히 한국인이다. 5살 때 프랑스로 입양되었고 20년이 지나 모국으로 돌아왔지만 아직 가족들의 소식은 듣지 못했다. 너무 멋있게 변해서 못 알아보는 것이라고 멋쩍은 위로를 건네자 필립은 ‘흐흐흐’, 예의 그 가식 없는 웃음을 던지며 절망의 나락에서 ‘풀썩’ 뛰어올라왔다.
 “진짜 부모님을 찾으면 프랑스 부모님, 낳아주신 부모님, 그리고 부산 부모님까지 해서 엄마도 셋, 아빠도 셋이 되요.”

가족을 백방으로 수소문하는 과정에서 부산에 사는 좋은 분들을 만나 부모 자식 같은 정을 나누고 있다. 옆에서 티에리가 ‘부럽다’고 한마디 거든다.

한국 여행의 전도사가 된 두 프랑스 남자는 연말이나 내년 초 발간을 목표로 여행안내서를 준비하고 있다. 아직도 사투리의 직격탄을 맞으면 ‘멍’한 상태가 되어 버리곤 하지만 이제 그들은 그 어떤 주한외국인보다도 한국 문화와 풍습, 풍물에 정통해졌다. 아니 어쩌면 한국 사람들보다 한국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머리로 이해하지 못해도 두 팔과 다리가 부지런히 움직였고, 낯선 환경을 미각과 후각이 먼저 받아들였다.

티에리는 사진촬영이 취미고, 필립은 만화가였으니 재미있는 책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가 높다. 사실 그동안 여행했던 곳 중에 어디가 가장 좋았는지 물어봐야 했지만, 이미 수백 번은 들었을 지겨운 질문을 반복하는 것이 덩달아 지긋지긋해져서 포기했다. 그 답도, 두 남자가 걸어온 길도 책 속에 있을 것 같다.  

“전화할께!”
한국어를 반말로만 배워서 어르신들께 혼쭐깨나 났다는 필립이 작별인사를 던졌다. 그 새 친구가 하나 생겼구나, 돌아서는 마음이 마냥 뿌듯하더니 이내 이별이 서운해졌다. 짧은 만남에도 마음을 활짝 열어 사귈 줄 아는 프랑스 친구들아, 아비엥또!

미술을 전공한 두 사람은 사실 아티스트다. 대사관 모임에서 친구가 된 두 사람은 지난해 초 요리경연대회에 참가했다가 방송국 PD의 눈에 띄어 리포터로 발탁됐다. 벌써 1년 5개월째 SBS <잘 먹고 잘 사는 법>의 여행 코너 ‘티에리와 필립의 팔도유람기’에 출연하면서 한국을 체험하고 있다.    

 
필립은?
본업은 만화가지만 한국에서는 만화가로서의 생존이 쉽지 않다는 것을 터득했다. 98년 교환학생으로 한국 생활을 시작해 벌써 6년 한국에 살고 있다. 지금은 프리랜서 에니메이터와 웹마스터로 일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촬영과 가족찾기에 더 비중을 두게 됐다.


티에리는?
스스로를 ‘모든 것에 미쳐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할 만큼 다재다능하다. 미술을 전공한 그는 2003년 한국 생활을 시작한 이후 디자인과 사진으로 각종 공모전에 입상한 경력이 있고, 미술 전시회에도 참가했다. 또 방송 리포터 외에도 영화배우, 연극배우, 나이트클럽 DJ로도 활동했으며 각종 로고와 포스터, 광고, 웹디자이너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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