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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철의 하얼빈에서 온 편지 ⑤ 두만강 푸른 물에~ 옌볜 여행 2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7.07.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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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비는 지난 2월 중국 하얼빈으로 ‘조금 긴 여행’ 길에 오른 Travie writer 서동철 기자의 ‘하얼빈에서 온 편지’를 이번 호부터 약 10회에 걸쳐 격주로 연재합니다. 서기자를 통해 듣는 중국의 현지 문화와 생활 체험담, 그리고 속 깊은 여행 단상들이 독자 여러분들께 간접 체험의 즐거움을 안겨 드릴 것입니다.    




 ⓒ트래비

조선족 자치구의 주도인 옌지(연길)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열차는 한산해졌다. 변경으로 향하는 차창 밖의 풍경은 쓸쓸하고 을씨년스럽다. 불그죽죽한 흙이 벌판을 이루고 있고 붉은 벽돌로 쌓아 올린 헐거운 집들이 이곳에도 사람이 산다는 듯 띄엄띄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길가 상점의 간판과 도로 표지판은 한자보다는 한글이 우선이어서 친숙한 느낌이었지만, 만주 땅 특유의 황량함은 지워내지 못했다.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남양시를 마주보고 있는 투먼(도문)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7시30분경. 물어물어 찾아간 두만강은 푸르지도 않았고, 노 젓는 뱃사공도 없었다. 우기가 아니어서인지 강이라 칭하기엔 쑥스러울 만큼 좁은 강폭에 수량도 적다. 바지를 걷어 올리고는 신발을 양손에 들고 시냇물을 건너듯 이북 땅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중국측 강변에는 북한과의 우호관계를 강조하는 조잡한 기념물들이 늘어서 있고, 두만강에서 래프팅을 즐길 수 있다는 간판은 아직 찬바람이 불어서인지 생뚱맞아 보인다.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강 너머로 사람들이 거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손을 높게 흔들며 소리를 지르면 나를 건너다볼 것처럼 그들과 나 사이는 가까웠다. 낮게 깔린 구름, 이른 아침의 안개, 그리고 그 구름과 안개 사이로 지워질 듯 이어지는 산하는 고향만 같아서 먼 길을 돌아와야 했던 남한 사람은 착잡할 따름이다. 중국과 북한을 연결하는 철교는 중간 즈음을 경계로 붉은색까지는 중국, 파란색부터는 북한이다. 얼마의 돈을 내면 중국의 군인과 함께 파란색 바로 앞까지 갈 수 있다고 하지만 썩 내키지 않았다. 남의 나라에 와서 남 같지 않은 나라를 무슨 신기한 볼거리처럼 구경하는 일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트래비

발길을 돌리려는데 강변의 조그만 기념품점에서 한 조선족 아가씨가 “커피 한잔 하고 가세요”라며 손짓을 보낸다. 따뜻한 커피 한잔에 북한산 담배, 돈, 우표 등을 보여 주며 그녀가 들려준 북쪽 이야기가 기가 막히다. 요전에는 많은 북한 사람들이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두만강을 손쉽게 건너 다녔지만 요즘엔 경비가 삼엄해서인지 드물다고 한다.

 이에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한 조선족이 친척 방문 형식으로 먹을거리와 생필품을 전달하기 위해 북으로 넘어갔는데, 웬일인지 북한에 있는 친척이 어서 돌아가라고 재촉하더란다. 섭섭한 마음에 이유를 물으니 굶주린 주민들이 ‘실한 사람’을 보면 잡아먹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단다. 정말로 사람을 먹는 일이 일어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만큼 살벌한 민심을 말해 주는 일화이기에 씁쓸했다. 그 기념품점에서 ‘내고향’이라는 북한 담배를 사서 한 대 피워 물었다. 독하고 쓴 담배연기가 고향이라는 애틋한 이름과 뒤섞여 강물 위로 흩어져 간다. 이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면 백두산. 현재 우리가 오를 수 있는 것은 창바이산(장백산)이라 불리는 반쪽의 백두산이지만 하얼빈을 떠나기 전 꼭 한번 오를 것을 다짐했다.

두만강을 뒤로하고 시인 윤동주가 중학교를 다녔다는 룽징(용정)을 거쳐 옌지로 들어오니 과연 중국 속의 한국에 다름없다. 거리에 넘쳐나는 한글과 친숙한 이목구비, 그리고 젊은이들의 옷차림은 서울 번화가 한복판에 온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버스를 타면 트로트가 운전기사의 흥을 돋우고, 우리네 동대문 쇼핑몰과 다를 것 없는 건물에 들어서니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아이들이 자그마한 무대에서 한국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춘다. 개고기 전문점이 즐비한 것도 옌볜의 특징이다. 조그만 구멍가게에서 ‘개고기라면’까지 발견했을 땐, 개고기를 먹지 못하면서도 기묘한 동질감이 전해져 왔다. 

중국어와 함께 조선어로 안내방송이 흘러나오는 옌지 역에서 하얼빈으로 돌아오는 열차에 올랐다. 배낭을 침대 안쪽으로 밀어 넣고 잠을 청하려는데 배우 고두심씨를 쏙 빼닮은 조선족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통일에 대해 물으니 “그러면 좋지. 한국에 있는 친척들 보러 갈 때 비행기 안 타도 되고 말이야”라며 그냥 웃으신다. 맨 위층 침대에 걸터앉아 다리를 흔들거리며 짓는 그 소박한 웃음이 흡사 작은 소녀를 떠올리게 했다. 통일이란 어쩌면 그런 것이어야 할지도 모른다. 애초에 갈라진 이유가 무엇이었든간에 신발을 양손에 들고 첨벙첨벙 물을 건너 할머니 댁을 놀러가는 아이의 천진함 같은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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