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장소애와 자기애

2019-08-01     천소현 기자

어느 여행자가 물었습니다. “요즘 제가 꽂힌 발리 여행 사진이 하나 있는데, 이걸 찍으려면 5시간을 가서 딱 사진 한 장 찍고 오는 거래요. 가는 게 좋을까요?” 검색해 봤습니다. ‘발리, 사원, 인생샷’이라는 세 단어로 바로 알아낼 수 있는, 과연 욕심이 날 만한 사진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남의 여행을 탐내지 말라’는 것이 평소의 소신이라 타인의 인생샷을 따라 한다는 계획에 선뜻 찬성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토포필리아(Topophilia), 즉 장소애(場所愛), 라는 것이 있습니다. ‘풍경이나 장소에 대한 사랑’을 뜻하죠. 타인의 인생샷이 우리를 어떤 장소로 데려다 놓을 수 있다면, 그것은 ‘장소애’의 작용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녀온 여행지는 곧 시시해지고, 아직 다녀오지 않은 여행지만이 추구해야 할 지상목표가 되곤 하니까요. 하지만 곧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우리를 여행하게 만드는 것은 장소애가 아니라 자기애(Philautia)일 겁니다. 


‘찍었노라, 그러므로 존재했노라.’ SNS를 열면 들리는 이 강박의 아우성은 뜨거운 자기애의 발현이 분명합니다. 아무리 멋진 풍경이어도 그 안에 내가 서 있는 그림을 상상할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발리 인생샷 여정에 반대하지는 않았습니다. 자기애로 시작된 여행이 장소애로 안착할 수 있을지, 그 여부는 오로지 그와 장소 사이의 관계 맺기에 달려 있으니까요. 그는 과연 신들의 땅, 발리의 작은 사원에서 사진 한 장 이상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요? 


여행기자들은 포토필리아의 화살을 날리는 큐피드입니다. 그들의 여행 사진에는 단 한 번도 자신이 등장하지 않죠. 자기애는 금기입니다. 풍경과 장소를 충실히 보여 주고, 주인공의 자리는 독자를 위해 비워 놓을 뿐입니다. 이달에는 높고 청명한 오스트리아 알프스, 축제가 흥겨웠던 다낭, 초록의 삼척을 준비했습니다. <트래비> 기자들의 화살이 독자 여러분의 심장에 가 닿기를 바랍니다. 어떤 장소와 사랑에 빠지시겠습니까?  


<트래비> 부편집장 천소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