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50년이 흐른 뒤 나는 그들과 같이 거리에 섰다.
이룰 수 없는 꿈은 세상에 없을 것만 같았다.
*스코트 맥켄지(Scott Mckenzi)는 1967년 5월 ‘San Francisco(Be Sure to Wear Flowers in Your Hair)’를 발표했다. 꽃은 히피 문화의 상징이었고, 맥켄지의 노래는 1967년 6월 히피들의 축제였던 ‘몬테레이 팝 페스티벌(Monterey International Pop Festival)’의 홍보곡이었다.
Summer in Love
그해 여름, 꽃말은
달리는 차는 목적지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일행 중 한 명이 기다렸다는 듯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If you’re going to San Francisco~” 익숙한 멜로디에 ‘샌프란시스코’라는 단어가 귀에 박혔다. 노래가 끝을 내달리는 동안, 우리는 어느새 다리의 끝에 다다랐다.
노래 한 곡이면 될 몇 분 만에 바다를 건널 수 있었던 건 골든게이트 브릿지(금문교, Golden Gate Bridge) 덕분이다. 브릿지가 생기기 전 샌프란시스코 반도와 마린 카운티(Marine County) 사이를 건너는 수단으로는 페리가 유일했다니 말이다.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바람과 물살이 세서 다리 건설이 어렵다.’ 공공연한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던 다수의 견해였다. 팩트 아닌 팩트를 무너뜨린 건 소수의 뾰족한 도전이었다. 다리 건설을 위해 결성된 조직은 대공황 직후였음에도 건설비용 채권 조달에 성공했고, 설계자 조셉 스트라우스(Joseph Strauss)는 여러 반대파들과 공학 전문가, 페리 사업가 등 관계자들을 설득하고 나섰다. 그렇게 1933년 착공에 들어간 다리는 보란 듯이 단 4년 만에, 1937년 개통됐다. 길이 2,800m에 높이 227m.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길고 높은 현수교*에는 ‘골든게이트’라는 이름이 붙었다. 골드러시 시대에 불리던 샌프란시스코의 또 다른 이름이다.
골든게이트는 반짝이는 꿈이자 미래였다. 1800년대 중반 금광이 발견된 캘리포니아로 미국 각지뿐 아니라 유럽, 중남미, 중국 등지에서 이민자들이 몰려들었고 샌프란시스코는 빠르게 성장했다. 다양한 문화가 섞인 도시에는 다수와 소수가 갈렸다. 인종간 갈등, 그리고 특히 성 소수자들의 인권 문제가 뜨겁게 떠올랐다. 끊임없이 다수에 맞선 소수는 점차 그들의 권리와 영역을 확보했다. 1977년 동성애자인 하비 버나드 밀크(Harvey Bernard Milk)가 시의원으로 당선됐고, 197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하던 예술가 길버트 베이커(Gilbert Baker)는 동성애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만들었다.
샌프란시스코에는 ‘융합’과 ‘자유’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현수교 | 다리 위에서 케이블을 아래로 늘어뜨려 하중을 분산시킨 구조의 다리
자유는 여기저기서 튀어 올랐다. 마주치는 사람들의 생김새와 말의 억양, 옷과 헤어스타일이 제각각이다. 간판에는 영어, 중국어, 아랍어, 알 수 없는 문자들이 장식하고 있다. “For those who come to San Francisco, summertime will be a love-in there(샌프란시스코에 오는 이들에게, 여름은 사랑일 거야).” 거리를 거니는 와중에도 일행의 노래는 계속됐다. 같은 후렴구가 몇 번이고 반복되고 나서야 ‘샌프란시스코’ 뒤의 가사가 들려왔다. “Be sure to wear some flowers in your hair~” 샌프란시스코에서는 꼭 꽃을 달아. 그것도 머리에.
스코트 맥켄지의 ‘San Francisco(Be Sure to Wear Flowers in Your Hair)’는 1967년 5월에 열린 히피*들의 축제, ‘몬테레이 팝 페스티벌’의 홍보를 위해 만들어진 곡이다. 꽃은 히피의 상징이었다. 저마다 꽃을 단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며 자유와 평화를 외쳤다. 장르는 록, 이전의 팝이나 재즈와는 다른 것이었다. 그렇다고 헤비메탈은 아니다. 맥켄지의 멜로디는 부드럽고, 히피들의 축제도 그렇게 흘렀다. 도발, 해방에 대한 염원은 지극히 평화로웠다.
꽃은 그해 여름, 만발했다.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해 북미, 캐나다 등에서 모여든 젊은이들이 샌프란시스코 헤이트-애시베리(Haight-Ashbury) 거리에 모였다. 꽃은 무려 10만 송이가 넘었다. 기존체제에 반하는 히피들은 물질주의 거부, 베트남전 반대, 여성 해방, 친환경, 공동체 생활 등을 주장했다. 숱한 젊은이들이 한데 모인, 미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건으로 기록된 그해의 날들은 꽤 감미로운 칭호를 얻었다. 1967년 샌프란시스코는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이었다.
*히피 | 1960년대 기성세대의 체제에 반하던 젊은이층을 말한다. 1950년대 기존 체제를 거부하고 자유를 추구하던 비트 제너레이션(Beat Generation) 문학 기조에 영향을 받았다. 사랑의 여름에 정점을 이룬 히피들의 운동은 ‘플라워 무브먼트(Flower Movement)’라 불리기도 했다.
City in Art
도시의 강약과 높낮이
사랑의 여름, 이후 50년도 더 지나고서 나는 샌프란시스코에 있었다. 꽃을 달지는 않았지만, 사뿐사뿐 춤을 추면서. 아니, 꼭 그런 것처럼 신이 나서 걸었다는 얘기다. 아직 완연한 여름은 오지 않았지만 따스한 오후였고, 자유로웠다. 그날 내 춤사위가 어땠는지는 모르겠으나, 뭐. 괜찮다.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샌프란시스코는 그런 세상이었으니까. 머리에 꽃을 달지 않았던 건 그래도 좀 다행인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거리를 거니는 것만큼이나 샌프란시스코의 분위기를 잘 느낄 수 있는 방법은 2층 버스를 타는 것이다. 빤하게 들릴 방법이긴 해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 눈높이를 높여 주기 때문이다. 걸어서는 보이지 않았던 도시 곳곳의 벽화와 조형물들이 2층 버스 높이 즈음에서야 제대로 다가온다. 샌프란시스코 도시의 중심, 유니온 스퀘어(Union Square)에서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샌프란시스코시청, 헤이트-애시베리 거리, 골든게이트 공원과 골든게이트 브릿지를 지나 롬바드 스트리트, 워싱턴 스퀘어를 거쳐 돌아왔다. 버스에는 요즘 말로 ‘스웨그(Swag)’ 넘치는 가이드가 동행했다. 그녀가 말하는 모든 문장들은 마치 힙합 음악의 랩 가사처럼 들렸다.
“소녀의 머리에는 꽃이, 꽃에는 나비가 날아드네요. 저기 보이는 건물의 창문 좀 봐요. 푸른 잎사귀가 겹겹이 갈라져요. 벽과 벽의 좁은 틈 사이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저 힌두신은 어떻고요? 발밑을 자세히 보면 보드를 타고 있어요. 등불 위 지붕에서는 스르르 누군가의 손을 타고 리본이 내려앉고 있어요. 사랑(Love), 존엄(Dignity), 정의(Justice)의 끈이요.”
그녀의 충만한 소울에 좀처럼 알아듣기 힘들었던 가사는 대충 이런 내용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봤다.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연하게. 그녀의 랩은 ‘밀당’에 탁월했다. 멜로디는 지나는 풍경 풍경마다 높낮이를, 리듬은 강약을 달리했다. 이보다 샌프란시스코일 수는 없었다.
가격: 1 Day hop on, hop off | (온라인) 성인 49.50USD, 어린이(5~15세) 37.80USD (현장) 성인 52USD, 어린이 40USD
홈페이지 www.bigbustours.com
오픈: 미술관 | 금~화요일 10:00~17:00, 목요일 10:00~21:00(수요일 휴관) 뮤지엄 스토어 | 금~화요일 10:00~18:00, 수요일 10:00~17:00, 목요일 10:00~21:30
전화: +1 415 357 4000
홈페이지: www.sfmoma.org
Hearts in People
여전히 마음이 춤추는 곳에
두근두근. 버스에서 내려 다시 돌아온 유니온 스퀘어에는 심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른바 ‘하트 인 샌프란시스코(Hearts in San Francisco)’라 불리는 이 조형물은 샌프란시스코 제너럴 호스피탈 파운데이션(San Francisco General Hospital Foundation)*의 사회적 약자 의료지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세워졌다. 각각의 하트는 캔버스가 되어 매년 다른 아티스트들의 작품들로 채워지고, 완성된 작품은 경매를 통해 기부로 이어진다. 샌프란시스코의 심장은 늘 뜨겁다.
광장을 벗어나도 붉은 기는 여전하다.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San Francisco Chinatown)은 세계 최대 규모의 차이나타운으로 알려져 있다. 1950년대 초반, 골드러시 때 이주해 온 광부들과 미국 철도 건설에 투입된 노동자들을 시작으로 중국인들은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했다. 학교를 짓고 교회를 만든 그들은 차와 딤섬, 향유하던 맛과 문화를 세월에 걸쳐 부지런히 옮겨 왔다. ‘차이나타운’을 형성했다.
걸음걸음마다 유서 깊은 건물들이 속속 등장했지만, 정작 ‘샌프란시스코 속의 중국’이라는 개념이 가장 깊이 와 닿은 곳은 한 포춘쿠키 가게였다. 포춘쿠키*가 실은 중국이 아닌 이곳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만들어졌다는 설을 막 들었던 터다. 킁킁. 골든게이트 포춘쿠키 팩토리(Golden Gate Fortune Cookie Factory)는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고소하고 달큼한 냄새가 그득 퍼져 왔다. 미국에서 유일하게 아직도 수작업으로 포춘쿠키를 만드는 곳이란다. 눈앞에서 행운이 빚어지는 현장이 신기해 한참 구경하고 있는데, 주인장처럼 보이는 아저씨가 하나 먹어 보라며 쿠키를 건네신다.
“Your most memorable dream will come true. 04 07 12 32 45, 14.”
한국으로 돌아와 편의점으로 직행했건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걸 보면 로또는 아닌 것 같고. 다만, 얼마 후 기억에 남을 만큼 선연한 꿈을 꾸긴 했다. 활활. 샌프란시스코에서 나는 또다시, 춤을 추고 있었다.
주소: 56 Ross Aly, San Francisco, CA 94108, United States
오픈: 월~금요일 09:00~18:30, 토~일요일 09:00~19:00
전화: +1 415 806 8243
유나이티드항공이 인천-샌프란시스코 직항 노선을 매일 운항한다. 인천에서 오후 4시50분 출발해 샌프란시스코에 오전 11시25분 도착하며(12시간 25분 소요), 복편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오전 10시40분 출발, 인천에 다음날 오후 3시5분에 도착한다(10시간 35분 소요). 투입 항공기인 보잉 787 드림라이너는 기내 흔들림이 적고 LED 조명이 설치돼 있어 눈의 피로도가 낮으며 이코노미 좌석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유나이티드 이코노미 플러스’는 일반 이코노미 좌석보다 레그룸이 10cm 정도 더 넉넉하다. ‘United on the go’ 앱으로 항공 예약 조회, 출·도착 확인 및 모바일 보딩패스 발권, 수하물 트래킹 등이 가능하다.
홈페이지 united.com
인터컨티넨탈 샌프란시스코 InterContinental Hotel San Francisco
위치로 본다면 최적이다. 샌프란시스코 도심에 있어 유니온 스퀘어 등 주변 주요 여행지와 접근성이 좋다. 시설과 직원 서비스 등 인터컨티넨탈이라는 브랜드에 걸맞게 두루 만족스러웠으나 그중에서도 가장 감동적었던 건 침대다. 어찌나 그렇게 푹신하고 편하던지, 시차고 뭐고 간만에 푹 잤다.
주소 888 Howard St, San Francisco, CA 94103, United States
주소 +1 415 616 6500
홈페이지 ihg.com
메이시스 Macy’s
미국 전역에 있는 백화점 브랜드로, 샌프란시스코에는 유니온 스퀘어 바로 맞은 편에 위치해 있다. 현지인과 여행객들로 늘 붐빈다. 겉만 보고 판단하지 말자. 우리나라 백화점에 비해 디스플레이가 다소 정신없어 보일지라도 발품만 잘 팔면 원석처럼 반짝이는 고급 브랜드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득템할 수 있다.
주소 170 O’Farrell St, San Francisco, CA 94102, United States
오픈 월~토요일 10:00~21:00(일요일 휴무)
전화 +1 415 397 3333
홈페이지 l.macys.com
글·사진 김예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