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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상의 항공 이야기] 많이 찾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 Editor. 유호상
  • 입력 2020.08.01 1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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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시대에 이게 웬 말이냐고? 
남다름을 추구하려면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이건 비행기 색상도 예외가 아니다. 
 

엄청난 무게의 페인트가 입혀지는 과정 ©pixabay
엄청난 무게의 페인트가 입혀지는 과정 ©pixabay

●색의 경제학

 

1970년대 미국 최초로 남자의 드레스코드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비즈니스맨의 옷차림에 관해 컨설팅한 존 T. 몰로이(John T. Molloy). 그는 옷에 관한 실험을 많이 했다. 그중 하나가 특히 흥미롭다. 아무 회사에 들어가 사장의 비서에게 제안서를 전해 달라는 요청을 한다. 이때 검은색과 베이지색 코트를 입었을 경우 어느 쪽이 성공률이 높은지를 알아본 것이다.

여러 차례의 시험 결과 베이지색 코트를 입었을 때 성공률이 높았다.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는 확률적으로 밝은 색 옷을 걸친 사람을 부유하다고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밝은 색 옷이 더 비싸서였을까? 그런 것은 아니다. 어두운색 옷은 어지간히 때가 타거나 해져도 눈에 잘 띄지 않아 세탁비도 덜 들며 오래 입기에 부담이 없다. 반면 밝은 색 옷은 관리가 힘들다. 당연히 옷을 여러 벌 사는 데 부담 없는 부유한 사람이 밝은 색 옷을 고르는 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밝은 색 옷은 비싼 옷이 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색의 경제학이 옷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가장 인기 있는 흰색 비행기  ©유호상
가장 인기 있는 흰색 비행기 ©유호상

●흰색이 최고야

 

항공사나 기종을 막론하고 가장 일반적인 비행기 색상은 흰색 혹은 밝은 단색이다. 보다 화려하고 과감한 색상의 비행기가 눈길을 끌기에 좋으련만 왜 저렇게 밋밋하게 칠하나 싶은 생각이 들 수 있다. 왜 그럴까? 

눈길을 끌기엔 역시 노란색 ©유호상
눈길을 끌기엔 역시 노란색 ©유호상

사실 비행기 도장은 단순해 보여도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프라이머, 컬러 코팅 및 보호용 바니시 등 여러 층으로 칠해져 있다. 각 층의 두께가 밀리미터(mm) 단위에 불과해도 도장 면적이 넓기 때문에 페인트 무게는 엄청나다. 작은 개인용 제트기의 페인트 무게야 수십 킬로그램(kg) 정도지만 초대형기에서는 1톤에 달할 수 있다! 화려하고 멋진 색상을 택하면 더 겹겹이 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산뜻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즉 흰색보다 개성 있는 도장을 원하면 더 많은 무게를 각오해야 한다. 인건비와 작업 시간의 추가는 물론이다. 수명 문제도 있다. 도료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퇴색되는데, 알록달록한 색은 진행이 더 빠르다. 컬러풀한 타월은 색이 빠지면서 금방 보기 흉해지기 때문에 호텔에서 흰색 타월을 많이 쓰는 것과도 비슷하다. 이건 단순히 ‘페인트를 더 자주 칠하면 되지’의 문제가 아니다. 항공사가 기체 유지 보수로 시간을 쓰는 만큼 비행시간은 줄어들고 이는 수익과도 직결된다. 기체 색상에 따라 말이다. 게다가 흰색 페인트는 기본적으로 수요가 많아 다른 색상의 도료보다 더 구하기 쉽고 저렴하다는 장점도 있다고. 

아메리칸항공의 이전 ‘누드(?) 기체’ ©Wikipedia
아메리칸항공의 이전 ‘누드(?) 기체’ ©Wikipedia

승용차와 비슷한 실용적인 이유도 있다.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짙은 색 비행기는 밝은 색 비행기보다 훨씬 더 뜨거워진다. 공항에 있을 때는 외부의 전력 공급으로 에어컨을 켤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별도의 보조 전원이나 자체 엔진을 켜 비싼 기름을 써가며 에어컨을 돌려야 한다. 그 외에도 비행 중 발생하는 기체의 열팽창과 저온수축은 기체의 수명에 결코 좋지 않다. 이때도 흰색은 이를 최소화하기에 유리하다. 밝은 색상의 도장은 기체 육안 점검시 파손이나 누수 등이 쉽게 눈에 띄어 좋다고 하니 안전도 향상에도 기여를 하는 셈이다. 

이런 특별도장은 말 그대로 특별한 경우에만!
이런 특별도장은 말 그대로 특별한 경우에만!

페인트가 그렇게 무겁고 돈이 든다면 아예 칠하지 않으면 안 될까? 실제로 20세기 초에는 비행기가 도장 없이 은색 금속인 채로 날아다녔다. 현대에 와서도 그걸 선호한 항공사가 있었는데 아메리칸항공이 그랬다. 무게 절감 외에도 반짝거리는 기체는 빈티지 외관으로 주목받아 마케팅 효과도 짭짤했다. 하지만, ‘옷’을 입지 않은 기체는 온갖 종류의 비바람과 유해 요소에 그대로 노출됐다. 유지 보수에 더 많은 주의와 관리가 필요했다. 결과적으로 나가는 돈은 줄지 않았던 것이다. 반짝이는 은색 비행기를 오늘날엔 볼 수 없는 이유다.

 

●‘업’되려니 비용도 ‘업’

 

몇 년 전 서울시 택시의 ‘꽃담황토색’이 기사들에게 반발을 일으킨 적이 있다. 색상이 ‘난해하다’는 말도 많았지만 더 큰 이유는 택시를 되팔 때 눈에 띄는 도장 때문에 일반 승용차로 재생해 중고로 팔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비행기도 마찬가지다. 한두 푼이 아닌 비행기는 항공사 간 중고거래가 활발한데 여기서도 흰색 비행기의 선호도가 높다. 중고 기체를 들여왔는데 흰색이면 큰돈 들이지 않고 새 단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온통 시뻘건 색의 기체라면 시간과 돈을 들여 처음부터 완전히 다시 칠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흰색이 가장 널리 쓰이는 것은 돈을 가장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져 보면 인간 세상만사, 늘 돈 문제로 귀결된다. 아쉽다. 승객 입장에서는 기왕이면 개성 강한 무지개 색상의 비행기를 타면 기분도 ‘업’되고 좋을 텐데 말이다. 

 

*유호상은 어드벤처 액티비티를 즐기는 여행가이자 항공미디어 에디터로 활동 중이다. 인스타그램 oxenholm

글 유호상  에디터 천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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