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목포시 고속버스터미널. 자전거가 출발했다.
영산강 하구를 따라 강을 거슬러 오르는 길.
바퀴는 무안군과 함평군에 흩어져 있는 명산, 사평, 식영정, 석관정 나루터에 찬찬히 자국을 남겼다.
●삶을 닮다
자연의 이치 중 하나.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순리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일까. 강길을 따라가는 자전거 페달도 상류에서 하류 쪽으로 향하곤 한다. 그러나 자전거의 움직임에 영향을 주는 건, 페달의 방향이 아니라 바람의 움직임이다. 자전거는 바람을 등지고 매끄럽게 나아가기도, 바람에 부딪치며 힘겹게 저항해 가기도 한다. 그런 모습이 인생과 꼭 닮았다.
●터만 남은 터
영산강에는 나루터가 많았다. ‘많다’가 아닌 ‘많았다’로 쓰는 이유는, 이미 과거의 이야기가 됐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다리가 많지 않던 시절, 나룻배는 강을 끼고 마주한 동네 사람들의 소중한 이동수단이었다. 나룻배가 없었다면 영암과 무안이라는 행정 구역의 명칭 차이만큼 주민들의 가치관과 생활 방식에도 격차가 생겼을 테다. 하구 둑과 보로 인해 강폭이 넓어지고, 곳곳에 다리가 놓이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루터의 기능은 쇠퇴해져 갔다. 나룻배와 접안시설의 흔적도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다. 뱃사공도 사라졌다. 나루터는 이제 지도 위 표시로만 남아, 지난날 자신의 존재를 희미하게 증명하고 있을 뿐이다.
●영산강이라는 도화지
영산강이 한 폭의 도화지라면, 무채색과 유채색 물감이 모두 필요할 것이다. 특히 3월 중순,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 무렵이라면 더더욱. 메마른 회색이 아직 강변을 뒤덮고 있지만, 연둣빛 새싹이 살짝 고개를 내민다. 파랗고 노란 야생화가 피기 시작했으나, 모노톤의 억새는 여전히 출렁거리고 있다. 봄이 왔다고 겨울이 끝나는 건 아니다. 그저 얼고 녹으며 헐거워지고 단단해지는 것이 반복될 뿐이다. 강가에는 그렇게 마름과 움틈이 공존하고 있었다. 춘분 즈음이었다.
*이호준 작가의 자전거 여행
우리나라에는 무수한 도시와 촌락이, 아름다운 사찰과 서원이 강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다양한 삶의 모습을 기록하기 위해 페달을 밟습니다. 강길 따라 흘러가는 국내 자전거 여행. 따르릉, 지금 출발합니다.
글·사진 이호준 에디터 곽서희 기자